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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삑~"  핸드폰 문자벨소리가 들린다.

'우천으로 인해 뚝섬아름다운나눔장터가 휴장되었습니다.'

지난달 판매하려고 여행 가방에 넣어둔 아이들이 어릴 때 보던 책이 그대로 있다.

"또 휴장이네. 그럼 다시 신청해야 하는데…."
"엄마 뚝섬 장터 안가요?"
"응. 계속 휴장되니 폭염이라고 휴장되더니 이번엔 비가 내린다네. 그나저나 지난번 뚝섬 장터가서 힘들지 않았어?"
"그래도 갈 거예요. 가서 장난감 사야지."

지난번 참가했을 때 동생 옷은 잘 팔리는데 자기 옷은 하나도 팔리지 않는다며 장터 마감시간까지 앉아서 "천원"을 외치며, 투정을 부리던 아이였다.

"엄마! 천원 벌기가 너무 힘들어요"

여동생 옷은 팔리는데 본인의 옷은 하나도 안 팔리자 집에 그만 가자고 해도 안 가고 혼자서 자리를 지키며 "천원! 천원!" 외치던 아이. 2013. 4. 21 바람이 많이불어 추웠던 날
▲ 뚝섬아름다운 나눔장터 어린이판매자 여동생 옷은 팔리는데 본인의 옷은 하나도 안 팔리자 집에 그만 가자고 해도 안 가고 혼자서 자리를 지키며 "천원! 천원!" 외치던 아이. 2013. 4. 21 바람이 많이불어 추웠던 날
ⓒ 공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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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폐장으로 참가를 못하게 되었는데도 포기하지 않는 아들은 힘들었던 것보다 장터에서 신발이랑 장난감을 샀던 게 좋았나 보다.

우리 가족은 올해부터 뚝섬아름다운나눔장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우연히 지하철 광고에서 나눔장터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에 있는 물건들을 보니, 내가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너무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늘려가기 보다는 먼저 줄여가는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

지구가 많이 아파하고 있어

먼저 아이들이 보던 책들을 정리하고, 작아진 옷들을 가지고 갔다. 아이들은 장사놀이를 하러 온 것처럼 신나했다. 하지만, 점점 날씨는 더워지고 생각보다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힘겨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날씨가 너무 덥지! 지구가 아파서 자기 몸에 열을 내고 있는 거야. oo이가 감기 걸리면 열이 나는 것처럼. 그래서 지구가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만들어줘야 해. 그러려면 충분히 쉴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물을 오염시키지 않고, 자연 있는 그대로 나둬야 지구가 쉴 수가 있어. 우리도 아프면 물도 마시고 푹 쉬잖아. 그런데 누군가 계속 놀자고 하고 쉬지 못하게 하면 감기가 빨리 낫지 않아. 아프면 짜증내고 화도 잘 내게 되잖아. 지구도 마찬가지야. 아프면 지진도 더 잘 일어나게 되고 태풍도 더 많이 생기게 되는 거야."

"사실 우리가 쓰는 연필 한 자루를 만들려면 나무와 석유 등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로인해 환경은 오염되게 된단다. 물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고용이 창출되고 경제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재활용의 이익만큼은 아니란다. 재활용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단다."

옆에서는 듣고 있던 남편은 "아이가 이해하겠어?"라며 말리지만, 장터에 갈 때마다 지구와 환경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다 이해는 못하더라도 무의식에 내가 해준 말이 저장되었는지, 차츰 아이들은 장터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 전 같으면, 딱지를 새로 사달라고 문구점 앞을 떠나지 않았는데, 그냥 지나치며 "장터 가서 중고딱지 살래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갖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기다릴 줄 아는 아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장터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아이들, 춥고 배고팠던 아이들 오뎅을 사먹었다.
▲ 뚝섬아름다운 나눔장터 어린이판매자 장터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아이들, 춥고 배고팠던 아이들 오뎅을 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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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를 여러번 다니다 보니 이제 어떤 물건이 잘 팔리는지, 어떻게 해야 당첨이 잘 되는지 알게 되었다. 보통 신청은 뚝섬아름다운장터 홈페이지를 통해 하게 되어있는데, 일반 신청과 어린이 신청으로 구분된다. 어린이 신청이 당첨이 잘 되는 편이며, 어린이 신청은 어린이와 동반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물건은 너무 어린 유아의 옷과 물품보다는 초등학생 이상의 물건과 성인 옷이 잘 거래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간혹 상업적인 판매자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집에서 쓰다가 가져나온 물건들이다. 좋은 물건을 구매하려면 장터가 시작되는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가 가장 활기찬 듯 하다. 오후 3시 이후 마감엔 땡처리를 하는 판매자들도 있으니, 저렴한 물건을 더 싸게 살 수 있다. 또한 한강유원지는 일요일은 무료주차이지만, 뚝섬 한강유원지는 장터가 열리는 날은 늦게 도착하면 주차하기가 어려우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아름다운나눔장터에 가서 얻는 실 이익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옷을 판다고 치면 옷 정리에 드는 시간과 노력, 차비 또는 주차비에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과 오뎅을 사먹고 점심식사까지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날 판 돈을 다 쓰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팔다가 남은 물건은 다 기부하고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신청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중한 물건들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쓰일 수 있다는 보람이 가장 크고, 더불어 아이들에게 직접 물건을 팔아보게 함으로써 경제적 관념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삐빅~"
'우천으로 인한 당첨은 유예되지 않습니다.'
"어. 다시 신청해야 하네. 아들, 이번에도 같이 갈 거야?"
"네. 갈 거예요."
"그럼, 어린이 판매자로 신청한다."
"와! 신난다. 이번에 가서 천원 꼭 벌어 올 거야."


태그:#뚝섬아름다운나눔장터, #재활용, #나눔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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