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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A씨. 허겁지겁 출근준비를 마치고 2호선 열차에 탑승한다. 강변역에서 강남역까지 약 20분의 시간 동안 화장도 고치고, 옷매무새도 단정히 한다. A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이가 있다. 바로 2호선 전동차 객실 내 설치된 폐쇄회로(CCTV)다. 41만 화소급의 CCTV는 운전실에 설치된 영상표출 모니터에서 임의조작이 가능하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시민이라면 매일 같이 100회 이상 CCTV에 노출된다고 한다. CCTV 노출 횟수를 감안하면, 전철 탑승하는 동안 노출되는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동차 내 CCTV는 엄연히 다르다. 대부분의 CCTV가 이동 중 단시간 노출되는 것에 비해, 지하철 CCTV는 이동거리가 길면 길수록 장시간 노출될 수 있다. 지하철 막장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촬영자에게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미 CCTV가 촬영하고 있던 셈이다.

개인정보와 사생활 침해 문제가 있음에도 일파만파로 퍼지던 'CCTV 만능론'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6일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전동차 객실 내 설치된 CCTV가 설치 목적인 범죄예방 효과가 미흡하고, 시민의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운영기관인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에 개선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2012년부터 지하철 객실 내 폐쇄회로 CCTV 모니터 화면
▲ 지하철 CCTV 2012년부터 지하철 객실 내 폐쇄회로 CCTV 모니터 화면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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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조사한 노승현 시민인권보호관은 "CCTV 설치의 이유로 제시한 근거들이 부실하고 행정 목적 달성도 불확실한 것이 조사 결과 확인됐다"며 "불특정 대다수 시민들의 인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CCTV 설치는 시민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CTV 관련 국가인권위 진정 및 상담이 지난 5년 사이에 4배가 늘 정도로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범죄예방 효과 앞에서 가려졌던 것을 감안하면 서울시의 이번 결정은 큰 의미가 있다.

당초 서울시는 전동차내 모든 객실에 CCTV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검토 지시로 시작된 CCTV 설치계획은 혼잡도가 높은 2, 7호선부터 총 3단계에 걸쳐 1~8호선으로 확대 실시될 예정이었다. 2012년 6월까지 총 2, 7호선 860량 전동차 내 1720대의 CCTV가 설치됐다. 하지만 서울시 투자심사위원회가 시급성이 떨어지고, 범죄예방 효과가 불확실한 점을 이유로 2단계 사업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  

올초 개인정보위원회 역시 승객의 생명·안전·재산의 보호 및 전동차의 안전운행 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설치·운영목적과 관계없이 CCTV 상시 모니터링 금지를 결정한 바 있다. 서울시의 이번 결정은 지난 4월 진보네트워크센터, 서울지하철노조 등이 '지하철 CCTV로 인해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진정한 데 따른 것이다.

공동신청인인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활동가는 "서울시의 이번 결정은 지하철 객실 CCTV의 사생활 침해 측면을 짚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촬영당하는 시민들의 정보인권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고, CCTV 만능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조사를 담당한 노승현 시민인권보호관은 "CCTV의 범죄예방 효과는 현재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CCTV 설치목적이 (범죄예방 외에도) 시민의 안전, 화재 예방이 있는 만큼 CCTV 설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긴 어렵다"고 이번 결정의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CCTV 범죄효과 있다 VS 범죄효과 없다 사생활만 침해할 뿐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이 이번 결정을 내린 데는 CCTV의 설치목적인 범죄예방 효과가 미흡한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찰청에서 지난 6월 10일 발표한 올해 1~5월 지하철 범죄 통계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대 성범죄 발생률이 62.8%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동차 내 설치된 CCTV는 머리 위만 보이기 때문에 출퇴근시간 성범죄 현장을 포착하기 어렵고, 범죄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지하철 내 범죄발생을 호선별로 보면 2012년 6월에 CCTV를 설치한 2호선의 경우 2010년 1148건, 11년 805건, 12년 427건으로 설치 이전부터 범죄 발생률이 꾸준히 줄었다. CCTV를 설치하지 않은 1호선 역시 2010년 527건, 2011년 467건, 2012년 276건으로 CCTV 설치 여부와 무관하게 줄었다. 전동차 객실 내 CCTV가 설치목적인 범죄예방에 효과가 없거나 무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시 전체적으로 보아도 CCTV의 범죄예방 효과가 분명치 않다. 표를 보면 CCTV 설치는 꾸준히 증가됐지만, 강력범죄 발생률은 2006년까지 감소하다, 다시 증가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CCTV가 사건 발생 후 범죄수사에는 효과가 있지만, CCTV가 범죄예방이 있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왔다. 

2010년 8월까지 조사된 바로는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CCTV는 총 2만3000대이다. 최근 4년 동안 신규 설치된 CCTV는 약 8000여대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행안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CCTV 증가율에 비해 강력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 CCTV 증가 대비 범죄율 비교 현황 행안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CCTV 증가율에 비해 강력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 행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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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증가율과 비례해서 국가인권위 CCTV 관련 민원이 늘고 있다
▲ CCTV 관련 국가인권위 민원 CCTV 증가율과 비례해서 국가인권위 CCTV 관련 민원이 늘고 있다
ⓒ 국가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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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09년부터 서울시 CCTV 영상 제공현황에 따르면, 영상정보 제공이 2009년 2101건에서 2011년 1만2657건으로 총 6배나 증가했고, 2012년 8월까지 1만3333건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공형태 중 영상정보 제공이 88.7%인 3만684건인 것에 비해, 영상정보 열람은 11.3%인 3906건으로 확인됐다. 제공기관별로 3만4353건 중 경찰이 99.5%를 차지했다. 결국 CCTV가 늘어날수록, 경찰의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CCTV에 수집된 사생활 침해 및 기본권 침해 또한 늘어나는 측면이 있다.

장여경 활동가는 "2002년 강남구에 방범용 CCTV가 도입된 후 우리 사회에 CCTV가 무분별하게 확대되어 왔지만 CCTV의 범죄예방 효과에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은 간과되었다"며 "영장 등의 적법절차 없이 수사기관에 CCTV 정보가 마구 제공하는 것도 헌법상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CCTV를 설치 운영 중인 2, 7호선의 관리자와 기관사에 대한 인권교육 및 임의조작 방지대책 그리고 승객들이 CCTV 설치 및 운영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안내방송을 할 것을 서울메트로에 권고했다. 또한 수사기관이나 제 3자가 범죄수사와 분실물 확인 목적으로 열람을 요청할 경우 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의 결정은 CCTV의 사생활 침해 소지는 분명히 있으며, 설치 운영할 시 목적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결정으로 공공기관들이 'CCTV 만능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세상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CCTV, #서울시, #지하철 , #국가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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