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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학자, 경제학자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이 남긴 아주 유명한 명언이다. 원문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인데, 여기에서 중간 항들은 쏙 빠져버리고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만이 남았다.

 

최근 10년 동안 대학 인문계열 학과의 수가 평균 20% 감소했다. 대학에 자본이 침투한 이후 인문학은 언제나 구조조정 대상의 1순위가 되고 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 장관이 '청년실업은 문사철(文史哲)의 과잉공급'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할 정도다. 인문학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도 않으며,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오는데도 힘을 못 쓴다는 이유도 박대를 받고 있다.

 

2013년 상반기 지방 대학은 도미노식으로 벌어지는 학과 구조조정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지방의 한남대, 목원대, 배재대, 대전대, 청주대, 경남대, 조선대가 내년부터 적용되는 구조조정안을 확정했고, 부산대와 동아대는 내년 확정을 목표로 구조조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대전에 있는 한남대는 철학과를 폐지하는 대신 철학상담학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기존 철학과를 폐지하면서 일종의 대체 학과를 만드는 것이다. 소위 '문사철'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과 심리학의 영역인 '상담학'을 합친 이름이다. 지난해 '힐링' 열풍을 타고 상담수요가 급증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대전의 목원대는 독일언어문화학·프랑스문화학과 등을 폐지한다. 배재대는 독문과와 불문과를 폐지한다. 국문과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과'와 통합하고 통합학과의 명칭을 한국어문학과로 하기로 했다.

 

청주대는 애초 회화학과 폐지를 결정했으나 최종적으로는 학과명을 '비주얼 아트'로 바꾸고 교과과정을 실용 중심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조선대는 학과 폐지는 없으나 유사학과 통폐합을 통해 15개 학과를 8개 학과로 줄이는 구조조정안을 의결했다. 경남대도 철학과를 없애기로 했다.

 

통폐합의 대상이 된 문학·사학·철학 등 인문계열 학과들이 처한 비관적 상황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방대의 경우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대학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인문, 예술 계열의 학과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대학 평가가 충원율과 취업률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대학이 인기학문만 중시하고 기초학문을 없애고 있는 것이다.

 

돈벌이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대학이 철학을 버려서는 안 된다. 철학은 대학의 출발이자 근원적 학문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조차 근원적 질문과 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어디로 가게 될지 아무로 모르는 일이다.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대학, 인문학의 위기인가?

 

휴머니티(humanity)의 라틴 어원은 이상적 인간을 뜻하는 후마니타스(humanitas)다.

인문학이란 후마니타스(humanitas)에 대한 배움 즉, '인간다움에 관한 학'이다. 대학(university)의 어원은 보편, 우주라는 의미의 유니버스(universe)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대학의 출발은 보편적인 지식을 배우기 위한 것이었다. 대학은 전문적인 지식과 보편적인 지식을 함께 배우는 곳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교육은 파편화, 개별화 되었다.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찬밥신세이지만, 교문을 벗어난 인문학 강연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인문학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겠다며 다양한 인문학 공간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기현상을 빚고 있다.

 

대학을 벗어난 인문학 강연은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CEO들도 MBA대신 인문학에 집중해 미래지향적 경영을 모색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 통계적 분석 기법으로는 예측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인문학적 통찰력이 대안으로 떠올랐고, 기업들 역시 기술과 가격만으론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문학이 경영의 새로운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경제침체와 같은 이유로 피폐해질 때 사람들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높아지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관련이 있다.

 

20대는 취업문제, 40대는 자녀교육, 60대는 노후보장 문제 등 삶의 고민이 끊이질 않는다. 삶의 고달픔은 역사상 항상 있어왔던 문제지만 특히 현대사회의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 삶의 고달픔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의 월가 시위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외침은 1% 대 99%의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한국사회 역시 빈익빈부익부 문제가 심각하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은 절반 정도에 그친다. 이러한 빈부의 양극화는 결국 '갑'과 '을' 인간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현대인은 많은 편리함을 누리게 되었지만 편리함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 현실의 고달픔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다운 삶 또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등의 질문을 갖게 되고,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학문 즉,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귀결된 것이다.

 

'철학'하는 경기도 중학생들

 

일차부등식과 덧셈·뺄셈으로 왕따가 왜 나쁜지 배운다. 또 함수와 그래프를 통해 내 꿈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경기도교육청이 비판적 사고력과 인성을 기르기 위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철학 교육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중학생용 철학교과서 <더불어 나누는 철학>을 독자적으로 제작해 각 학교에 배포했다. 교사들은 교과와 연계교육의 경우 철학교과서 관련 내용을 활용하면서 해당 교과를 가르친다.

 

예컨대, ▲철학 '학교는 왜 다녀야 하나요' 단원과 도덕 '도덕적 주체로서의 나'를 ▲철학 '잘난 친구를 보면 왜 미울까요'와 국어 '공감과 배려'를 ▲철학 '왜 사람 차별하냐고요'와 영어 '다양한 문화권의 일상생활'을 ▲철학 '욕하면 왜 안되나요'와 한문 '언어생활과 한자문화' 단원을 연계한다.

 

철학 교과서의 '어른처럼 사랑하면 안 되나요?'라는 대단원은 도덕의'청소년 문화와 윤리', 과학의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 생식과 발생' 단원과 연계시키고 '내꿈은 무엇일까요?'라는 철학 단원은 ·기·가 '진로 탐색과 생애 설계, 진로와 직업' 수학의 '함수와 그래프' 단원 등과 연결해 수업을 진행한다.

 

이 역시 몸의 구조와 기능 등을 가르치면서 청소년기의 이성관계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과 올바른 이성관 등을 심어주고, 함수를 통해 현재의 생활과 미래 자신의 꿈 실현 여부에 대한 함수 관계 등을 설명하겠다는 구상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이같은 사례가 단지 예시일뿐 학교 현장의 각 과목 교사들이 각종 단원 수업을 진행하면서 철학과의 연계성을 찾아 독창적이고 효율적인 철학 수업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교육청은 철학교육의 체계적인 진행을 위해 최근 중학교 교사 300명을 대상으로 연수를 한데 이어 올 교과연수에서도 60시간 철학 직무연수를 개설할 계획이다.

 

충청북도 교육청은 성적지상주의 교육으로 전국 일제고사에서 3년 내리 1등을 차지했다. 대구 교육청도 이 정책에 따라 전국 수위의 성적을 올렸지만, 두 곳 모두 높은 청소년 자살률을 보였다.

 

교과서 대표 집필자이기도 한 경기 성남시 이수광 이우중학교 교장은 "사춘기에 정체성 혼란을 겪는 중학생 아이들은 고민하고 괴로운 데 가정과 학교, 교사들은 외면을 하고 있다"며 "아이들한테는 삶의 절실한 문제인데 상의하고 해결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 자신과 타인,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고 자아정체성을 찾도록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요즘 학교폭력 때문에 모두가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해결 노력은 없이 학생부 기재, 징계위원회 회부 등 처벌 방안만 생각하고 있다. 학생들한테 다른 학생을 때리면 왜 안되는지, 학교폭력이 왜 나쁜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에서 하는 철학교육은 비판적 사고력과 인성교육의 오아시스가 되고 있다.

 

이 시대에 철학은 무엇인가?

 

지난해부터 한국 사회에는 힐링을 앞세운 책, TV 프로그램, 각종 강연, 여행상품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힐링 열풍 또한 지나친 속도중심, 경쟁중심 사회에 대한 철학적 반성의 결과다.

 

철학(Philosophie)은 어원적으로 고대 희랍어의 '지식'(sophia)과 '사랑'(philos)이라는 두 단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지식이나 지혜에 대한 사랑이 바로 철학에 대한 어원적 정의인 것이다

 

철학은 시작과 근원을 찾는 일이다. 철학은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간단히 말하면 세상의 일들을 자기 관점에서 본 시각이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종교가 무엇인지, 역사란 무엇인지에 대해 '나는 이렇게 본다'는 관(觀)이다.  자아관, 인생관, 행복관, 종교관, 역사관 등 이런 세상의 일들을 자기 시각에서 보면서 생각하는 것이 철학의 시작이다.

 

철학은 유사 이래로 언제나 존재했다. 중세에는 종교의 힘이 강해 신학에 편입된 형태로 근근히 살아남았지만 중세 말에서 근대를 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 종교가 자본주의로 대치된 것을 제외하고는 중세와도 같은 상황이다.

 

언뜻 생각하면 인문학의 위기 상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를 열 수 있는 것도, 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바로 철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이다.

 

철학은 소수의 전문적 지식인들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배우면서도 민주의식은 없고, 노동자로 살면서도 노동자 의식도 없고, 역사를 배우지만 역사의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본주의에 살면서도 자본주의 윤리도 모르는 사람들은 바로 철학을 모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철학과 문화가 강한 나라였다. 강력한 대륙의 힘을 바탕으로 중국이 끊임없이 한반도를 파고들었지만 언제나 이 땅에는 철학과 문화, 역사가 있었다. 그랬던 이 땅의 문화력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6·25사변을 치르며 메말러갔다. 철학을 상실한 우리들은 한때 이 땅에는 철학이 숲을 이루고 문화가 강물처럼 흘렀다는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철학은 없고 도덕만 가르치는 것은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과 같다. 일제 강점기 학교에서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았다. 일제시대 교육의 목적은 '황국신민'을 만드는데 있었다. 일제가 가장 경계했던건 조선 사람들이 똑똑해지는 것이었다. 동서고금의 독재자들도 민중이 각성되는 걸 가장 싫어했다.

 

철학을 가르쳐 주지 않은 사회에서 그 사회구성원들은 이성이 아닌 힘의 논리가, 정의가 아닌 상업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로 바뀐다.

 

철학을 상실한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향락과 감각이 지배하는 황량한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청소년들은 학업 경쟁의 늪에 빠져 교실과 학원, PC방을 오갈뿐이다. 젊은이들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의 '의미있는 경험'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지적인 능력을 제외하고는 삶을 살아가는 필수적인 역량이 개발되기 어려운 교육 현실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청춘은 더욱 힘이 든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며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 무엇이 오늘을 만들었나? 해답은 인문학에 있다. 철학과 문화, 역사에 물어봐야 한다.

 


속도에서 깊이로, 이제 다시 철학이다

 

인문학은 21세기에 걸맞은 지식 참모다. 세계적으로 1960~70년대에는 회계 전문가들이 CEO가 되었다. 그 시대에는 만들면 팔리는 시기였기에 돈이 세어나가는 부분만 잘 막으면 회사 수익이 높아지므로, 주주들이 회계출신들을 사장으로 앉혔다.

 

1980년대에는 영업 출신들이 사장이 되었다. 이 시대에는 대량생산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져 이제는 회사의 제품을 경쟁회사보다 많이 팔 수 있는 사람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 재벌기업 종합무역상사들의 전성기였다.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글로벌 경쟁이 더욱 심해졌다. 이젠 단순히 많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로 시장을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졌다. 그래서 엔지니어 출신이면서, 경영마인드를 갖춘 분들이 주주들로 하여금 선택되었다. 외국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럼, 21세기에는 어떤 경영자가 적합한가? 이같은 세계의 수많은 석학과 기업의 CEO들이 선택한 사람은 놀랍게도 '철학자'였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21세기 리더십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고 있다. 그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과 공감, 즉 커뮤니케이션 혁명에 얼마나 적응하느냐의 문제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수많은 욕구와 이해관계가 사회 내에서 서로 상충하게 된다. 이때 철학이 깊은 사람만이 갈등관계를 중립적으로 중재할 수가 있고, 이들 사이에 공통점을 묶어서 하나의 목표로 가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 특히 철학은 시대를 꿰뚫는 안목이다. 이병철 삼성창업회장은  "내 모든 경영비법은 논어에서 나왔다"고 했다. 많은 조직에서 개방적이고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철학자 또는 철학이 있는 경영자가 가장 적합하다는 얘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고 봤다. 즉, 로고스(Logos-논리), 파토스(Pathos-감정), 에토스(Ethos-신뢰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논리적인 태도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주장한다. 하지만 로고스만을 내세우면, 때론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먼저 상대방에게 신뢰감, 즉 에토스로 호감을 사고, 파토스(감정)에 호소한다면 소통과 공감의 폭은 더욱 커진다.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심리학, 역사, 문학 등 인문학은 본래 경영학의 인사조직론 등에서 중요한 가치 판단의 근거로 자리했었다.

 

사람의 본성, 욕구 등은 세상이 변해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문학을 통해 미래의 기업경영, 국가정치, 인재 교육 등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원로배우 이순재, 영화감독 박찬욱, 가수 신해철 등이 잘 알려진 철학도 출신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겐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최근 인문학이 급부상한 이유는 창의적 인재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뛰어난 창조성은 오직 시간과 정신적인 여유가 있을 때에만 발휘된다.

 

지식 정보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재의 자질은 창의력과 통찰력이다. 단편적인 전문 지식보다는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상력과 영감, 그리고 감성이 필요하다.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는 균형 감각과 자유로운 상상력, 시대를 꿰뚫는 안목과 교양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인문학이 기업의 성장을 돕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실제로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구글은 2011년 신규 채용인력 6000명 중 5000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충원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조직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싶은 관리자, 늘 새로운 난제와 마주하는 CEO에게도 인문학은 이롭다.

 

21세기 가장 위대한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는 평소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플라톤(Platon)과 호머(Homer)를 비롯해 수많은 동양 고전을 통해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것이 애플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다. 소크라테스와 점심 한 끼 함께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내 놓겠다""라면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시카고 대학교의 숨은 경쟁력 역시 인문학 정책이었다. 1929년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허친스(Robert Hutchins)는 재학생들에게 졸업 때까지 동서양의 인문 고전 100선을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허친스의 인문학 학습 프로그램인 '시카고 플랜'을 통해 시카고 대학교는 3류 대학에서 오늘날 하버드대학 보다 많은 70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시킨 세계 최고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했다.

 

20대 초반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고전을 접한 젊은이들에게 스스로의 역할 모델을 찾으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회 현상에 대한 본질을 관통하는 혜안을 길러준 것이 바로 인문학이었다.

 

또 늘어나는 범죄자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미국의 뉴욕은 한 인문학자가 제안한 '클레멘트' 프로그램을 도입해 큰 성과를 얻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빈민, 노숙자들은 인문학을 접하며 욕이나 주먹다짐이 아닌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보통 스피노자의 명언으로 떠올린다. 그런데 이는 스피노자가 한 말이 아니고, 스피노자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왜냐하면 이 말은 마틴 루터가 했다고 간주되고, 마틴 루터는 스피노자 보다 훨씬 이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피노자의 명언도 많은데, "철학을 한다는 것은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는 그중의 하나다. 상식적으로 철학은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보통 철학을 한다고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취급하는 경향이 많다. 깊이 생각해보면, 철학은 삶 그 자체를 가장 깊이 다루는 학문이므로 되려 현실에 가장 밀착된 학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피노자의 말을 의미를 곱씹어보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보다 근원적인 방법과 목적을 배우는 것이다. 철학을 함으로써 사는 방법을 배우는 셈이다.

 

인문학은 사람의 인성을 갈고 닦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다. 사람들이 인문학을 찾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인생에서 지혜로운 참모를 얻기 위함이다. 인간은 정답 없는 문제를 늘 맞닥뜨리면서, 그리고 수치화할 수 없는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한 나침반으로 인문학을 찾는 것이다.

 

변화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시스템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정부 시스템도 달라지고, 경영 시스템도 교육체계도 달라져야 한다.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 이제 '슬로스쿨'로 가자

 

우리의 현 교육과정은 1970년대의 교육 패러다임에서 거의 한발작도 벗어나지 못했다.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복장에 같은 두발모양, 같은 교실에 앉아 주입식으로 받아들이는 교육방식은 분명 산업화 시대에 어울렸던 교육유산이다.

 

인문학에 대한 공부는 상상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그중 철학은 어제를 담아내는 용광로이자, 내일의 무한발전소가 된다.

 

대한민국 교육을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중 하나는 철학을 가르치는 일이다. '지금'을 놓치면 '미래'를 잃는다. 전국의 모든 중고등학교가 하루빨리 철학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 

 

이문재 시인은 이미 오래전 '산책시'에서 "깜빡이는 것들은, 위험하다. 속도는 기다림인 것을 변질시켜 버린다"고 경고했었다. 시인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방법으로, 질주하는 문명에 대한 대항 혹은 대안으로 '느림'을 제시했다.

 

슬로라이프, 슬로시티, 슬로푸드 등 느림의 미학 연장선 속에 '슬로스쿨'이 있다. 속도의 엑스터시에 파 묻혀 빠른 것이 미덕이 된 우리 사회의 숨가쁨과 헐떡거림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반석으로 삼는다. 철학없는 사회에서 철학을 외친다.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 이제 '슬로스쿨'로 가자.

덧붙이는 글 | 이글을 쓴 한숭동 기자는 국립한국교통대학교 석좌교수입니다.


태그:#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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