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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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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논쟁을 불러오는 '문제적 감독'이 있다. 바로 김기덕 감독이다. 이번엔 영화 <뫼비우스>를 들고 왔다. 아직 개봉되지도 않았는데 근친상간 장면 등이 나온다는 이유로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영화를 '무삭제판'으로 보기는 어렵게 됐다.

극장에 걸리는 모든 영화에 등급을 매기는 기구인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뫼비우스>를 제한상영가등급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영화등급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상자기사 참고). 영등위는 이 영화가 "직계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인 표현이 있어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한 영화"라고 밝혔다.

제한상영가등급은 사실상 상영불가를 뜻한다. 현재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이다. 제한상영가등급을 받은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운명'은 두 가지다. 첫째 상영을 못하고 묻히거나, 둘째 스스로 가위질을 해서 다시 등급을 받아 관객을 만나거나.

제한상영가등급이 사실상 '상영불가'인 까닭

김기덕 감독은 고육지책으로 후자를 택했다. 영등위에서 문제를 삼을 만한 장면들을 자진 삭제한 후 다시 등급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그러면서 "영화를 아껴주신 관객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는 사과까지 해야 했다.

헌법재판소가 '영화에 대한 사전심의는 검열에 해당하므로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것이 1996년이다. 이후 관련 법과 제도는 수 차례 바뀌었지만, 영화가 관객을 만나기까지 제작자는 여전히 당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현재의 영화등급제도는 사실상 검열"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영화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포스터.
 영화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포스터.
ⓒ 곡사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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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슷한 처지에서 자진 삭제 대신 제3의 길을 택한 영화가 있다. 이름도 독특한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다.

이 영화는 2011년 6월과 2012년 9월 2차례 모두 제한상영가등급을 받았다. <자가당착>을 만든 김선 감독은 영등위의 등급분류 결정에 불복, 지난해 1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5월 나온 1심 판결은 김 감독이 보기에도 "뜻밖의 결과"였다고 한다. 법원은 제한상영가등급취소 판결로 김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영등위의 등급에 제동을 건 최초의 판결인 듯 싶다.

법원의 판단은 명료했다.

'이 영화를 성인 관객들이 보게 해서 자유롭게 비판하도록 하라.'

영화 <자가당착>과 판결 속으로 들어가보자. 

영화 등급분류제도와 제한상영가등급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선언으로 영화 사전검열은 사라졌다. 그러나 사전에 영화등급을 분류하는 제도는 남아있다. 마치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시중에 유통되기 위해서는 등급판정을 받아야 하듯이, 영화도 극장에 걸리기 위해서는 등급분류를 마쳐야 한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내 제작영화와 수입영화는 상영 전에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부터 상영등급을 분류받아야 한다.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영화를 상영하게 되면 형사처벌(3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영화의 상영등급은 총 5가지가 있다. 영등위는 영화의 내용, 영상 등의 표현 수위 정도에 따라  1.전체관람가, 2.12세 이상 관람가, 3.15세 이상 관람가, 4. 청소년 관람불가(18세 이상 관람가능) 등급을 매기게 된다.

18세 이상이 되면 모든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성년도 관람할 수 없는 영화가 있다. 바로 5.제한상영가등급을 받은 영화이다. 법에 따르면 제한상영가등급 영화는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하여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선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를 뜻한다.

영등위가 '제한상영가'로 등급을 매긴 영화는 사실상 관람이 불가능하다. 제한상영가 영화는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고 비디오로 제작, 판매할 수도 없다. 제한상영관은 일반 영화를 함께 상영할 수 없으며, 영화의 광고와 선전도 오로지 제한상영관 안에서만 할 수 있고 밖에서 보이지 않게 하여야 한다. 이런 엄격한 제약 때문에 현재 한국에는 제한상영관 자체가 없다.

영등위는 영화 <자가당착>과 <뫼비우스> 등에 대해 제한상영가등급을 내렸다. 영등위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3년 5월까지 제한상영가등급을 받은 영화는 총 36편(외화 22편 포함)이다.


법원, "<자가당착> 제한상영가등급 취소" 제동

영화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몸이 불편한 포돌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쥐들과의 일대격전을 벌이는 정치 풍자영화다.
 영화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몸이 불편한 포돌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쥐들과의 일대격전을 벌이는 정치 풍자영화다.
ⓒ 곡사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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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화의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몸(하반신)이 불편한 포돌이(경찰 마스코트)는 하반신을 만들어서 멋지게 걷고 뛸 날을 고대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날 쥐들이 나타나 포돌이를 방해하고, 포돌이는 쥐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싸움은 점점 커지고, 동네주민들이 시끄럽다며 포돌이를 괴롭히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경비원의 공격을 받은 포돌이는 경비원을 기절시키고, 청소기를 빼앗는다. 포돌이는 청소기로 쥐들과 혈투를 벌이지만, 하반신이 엉망이 되고 만다. 그 와중에  한 여인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가 사랑에 빠진 사이 쥐들의 공격은 더 격심해지고, 포돌이는 여인을 뒤로 한 채 쥐들과의 일대격전을 벌인다.

여기까지 보면 별로 문제될 부분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영화 곳곳에는 각종의 상징과 장치가 들어있다. 마네킹의 목이 잘리거나 남자의 모형성기도 등장한다. 게다가 (비록 마네킹과 사진이긴 하지만) 실존 정치인까지 등장한다.    

영등위는 <자가당착>이 "인권과 윤리에 어긋나는 잔혹한 장면이 다수 등장하고 영상의 표현 수위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하게 훼손하고, 국민의 정서를 손상할 우려가 높다"며 제한상영가로 분류했다. 쉽게 말해 폭력성, 선정성이 지나쳐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상영하는 것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영등위가 특히 문제 삼은 부분은 ▲송곳이 머리에 꽂혀 죽은 경비원이 옥상에서 불태워지는 장면 ▲여자 경찰이 지퍼를 내리자 불이 붙은 남자의 성기가 묘사된 장면 ▲실제 인물의 사진이 부착된 마네킹 목을 쳐 피가 솟구쳐 선혈이 낭자한 장면 등이다.

김 감독은 "영등위가 재량을 남용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맞섰다. "이 영화는 이명박 정부에서 불거졌던 사건들(촛불집회, 용산참사, 4대강 사업)을 풍자한 영화"라며 청소년관람불가등급으로 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영등위의 결정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었다"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 "상영과 관람은 영화의 자유의 본질"... 사전심의 위헌결정

법원(서울행정법원 11부 재판장 문준필 부장판사)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법원은 우선 1996년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이 위헌이라고 선언했던 헌재의 결정을 인용한다.

"영화도 의사표현의 한 수단이므로 영화의 제작 및 상영은 다른 의사표현수단과 마찬가지로 언론·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장을 받음은 물론, 영화는 학문적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예술표현의 수단이 되기도 하므로, 그 제작 및 상영은 학문·예술의 자유에 의하여도 보장을 받는다."[헌법재판소 1996. 10. 4. 선고 93헌가13, 91헌바10(병합) 결정]

법원은 이어 "영화는 문학·연기·영상·음악·미술 등이 함께 어우러져 인간의 정신활동을 표현하는 종합예술로서 그 가치와 내용은 '상영과 관람'이라는 방법에 의하여 공표되고, 전달되는 것이므로, 상영 및 관람의 자유는 영화의 자유의 본질적 요소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법원은 영화의 등급분류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도록 엄격해야 해석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상영과 관람의 방법을 조정하기 위하여 사전에 심사할 필요는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상영등급분류에 관한 규정을 해석할 때에는 영화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이 침해되지 않도록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또한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주제나 배경이 되는 사회적 흐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법원 "사람 팔·다리 잘리는 <킬빌>도 청소년불가등급"

<자가당착>을 바라보는 시각도 영등위와는 달랐다. 먼저 주제와 내용면에서 영화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의 마스코트인 포돌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현실정치와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려 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폭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정치인의 사진이 달린 마네킹의 목이 잘리는 장면을 종이칼에 의하여 사진이 찢기고 붉은 물감이 뿜어져 나오는 방식으로 표현한 점"으로 감안할 때 "폭력의 잔혹함을 부각시켜 선정적으로 관객을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법원은 영화 <킬빌>이 사람의 머리, 팔, 다리가 잘리고 피가 흐르는 장면이 나오는데도 2003년 청소년관람불가등급을 받은 사실과의 형평성도 제기했다. <자가당착>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영등위의 판정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성적 묘사가 인형 신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점, 남자의 성기는 모형성기에 불과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성적 상상이나 호기심을 불필요하게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제한상영가 영화는 사실상 국내개봉이 불가능한 점 ▲<자가당착>이 다수의 영상 표현기법과 여러 장르를 혼합한 실험적 작품이고 베를린영화제 등에서 공식 상영된 점 ▲영화진흥위원회가 예술영화로 인정한 점에도 주목했다. 이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피에타>, 선댄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지슬>을 거론하며 "제도와 자본에 구속되지 않고 실험적 영화를 제작 상영할 수 있도록 한 문화풍토에서 이루어낸 쾌거"라고 강조했다.

"성인이 보게 하고 자유로운 비판에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

법원의 결론은 이렇다.

"성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 영화를 관람하게 하고, 이 사건 영화의 정치적, 미학적 입장에 관하여 자유로운 비판에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판결로 <자가당착>의 제한상영가등급분류가 취소되는 듯 했다. 하지만 영등위는 이에 불복,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사건은 2심(서울고법)으로 올라갔다. 제작된 지 2년이 넘은  <자가당착>이 관객과 만날 수 있을지는 또다시 법원의 판단에 달리게 되었다. 그 사이 영화는 일본상영이 확정되었다. 영등위가 1심 판결을 존중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가 관객을 만나게 하라. 나쁜 영화를 욕하는 것도 관객의 몫이다."

판결은 영등위에게, 아니 우리 사회에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태그:#사전검열, #자가당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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