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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13주년 기념 학술회의
 14일 서울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13주년 기념 학술회의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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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 열세 돌을 맞은 현재 오히려 그 이전보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정전체제를 끝내고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자는 얘기는 뜬금없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북핵 기정사실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4일 서울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13주년 기념 학술회의에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통일부장관과 미국·중국 등 국내외 북한문제 전문가 등이 참석해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평화체제로의 이행은 가능한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개회사에서 "북핵문제가 아무리 중요하고 조속히 해결돼야 할 문제라지만 그것이 한반도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라며 "북핵문제의 뿌리는 군사정전체제다.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60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정전상태에서 적대적 대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임 전 장관은 "북핵문제에만 집착하지 말고 보다 근본적 문제인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접근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6자가 9·19공동성명을 통해 합의한 대로, 정전체제를 공고한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직접관련 당사국인 미국·중국과 남북한의 4자 평화회담을 지체 없이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핵 문제 원인은 북·미 적대"... "대북제재 뒤 북한 교역이 더 늘어"

기조발제에 나선 캐나다 출신의 도널드 존스톤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현재 남북 간에 조성돼 있는 불신은 어떠한 충돌 없이 중단돼야 하고, 협력과 화해로 빠르게 복귀해야 한다. 다시 말해 리셋 버튼을 눌러야 한다"면서 임동원 전 장관의 견해를 인용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핵 문제는 적대적인 북미 관계의 산물이다.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상호 위협을 제거하고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체제를 수립하며 북미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찰스 암스트롱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역사학, 한국연구소장)도 기조발제에서 "북한의 핵무기는 한반도 대립의 원인이 아니라 징후"라며 "한반도의 분쟁은 양측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상대방을 제로섬 게임이 아닌 상생의 대상으로 인식할 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스트롱 교수는 "평화는 내부에서, 즉 한반도에서 시작돼 동남아시아로,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는 게 7·4남북공동성명이 제시한 비전이다. 이를 바탕으로 6·15남북공동선언은 자체적인 노력을 통한 통일과 상호 신뢰 구축,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과 교류 증진을 요구했다"고 평가하면서 "지난 13년 동안 후퇴도 있었고, 도전과제도 있었지만 한반도 위기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작점으로 지금만큼 적절한 시기는 없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레온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국장은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와 핵억지력 확보 혹은 북한의 정권 교체 등을 핵문제 해결 방안으로 생각하는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협상을 제외한 다른 대안은 실행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시걸 국장은 "북한의 무기저장소의 위치를 모두 알지 못한 채 공격을 감행하면 재앙과 같은 보복을 초래할 수 있다. 핵무장을 한 국가 내부의 정권 교체는 위험이 가득하며 중국이 북한과 관계가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고려할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걸 국장은 이어 "각종 제재조치도 북한의 핵무장을 제어하지 못했고 전혀 효율적이지 않았다"며 "미국 정부는 2005년부터 북한이 국제 금융기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취한 조치가 효과가 있었다고 믿었지만, 북한의 무역은 그 이후로 큰 폭으로 증가했고,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지역으로 교역국 수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20년 노력, 실패 인정하자"... "북한의 대화기조, 무시하면 왕따 될 수도"

14일 서울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13주년 기념 학술회의.
 14일 서울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13주년 기념 학술회의.
ⓒ 심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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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정우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0년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 및 국제사회의 노력은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고 새로 출발해야 한다"며 "실패를 인정하고 평화를 만들기 위한 심각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길 의원은 최근 남북당국회담이 회담대표의 '격' 문제로 무산된 데 대해 "누구의 책임이냐를 떠나 답답하고 참담하다"며 "정말로 우리 민족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고 이토록 아둔한가. 민족의 명운을 다루는 문제에 대한 마음가짐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북한이 핵무기 소형화와 장거리 운반수단 등 실질적인 핵무기 완성을 이루는 데에 3년 정도의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미국 정보당국의 견해를 인용한 길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가서 미국 기업인들을 만나 '북한 도발로 인한 리스크는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만, 북한의 핵 위협 수준이 높아질 경우, 언제까지 리스크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더 이상 느긋하게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다릴 때가 아니란 얘기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3~4월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된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을 공식화한 데 대해 "북한 입장에선 핵억지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고, 미국을 향해 '과연 언제까지 이런 군사적 긴장 상태를 계속할 것이냐', '이제는 서로 대화하고 협상해서 현안들을 풀어가자'는 일관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한·미해상훈련이 끝나자마자 최룡해를 중국에 특사로 보내고, 이어서 남한에 대화하자고 나온 것은 그저 임기응변이 아니라 김정은 시대의 생존과 발전 방향을 여는 국면으로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중국이 '신형 대국관계'라고 표현하는 국제정치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대화 다이나믹스'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여전히 북한과 대치를 계속한다면 우리만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평화체제? "미국은 비용을 더 크게 느껴"..."중국이 보기엔 조건 미성숙"

이날 발표 내용 중에는 '비용-편익' 분석으로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에 나설 수 있느냐를 예상한 내용도 있었다. 존 딜러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평화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협상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을 "꽤 낮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평화협정이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한다는 가정 하에서 딜러리 교수는 미국이 얻을 편익을 ▲ 국방비 부담 감소 ▲ 미국 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된 지역에서의 경제적 리스크 대폭 감소 → 미국 기업과 소비자의 이익 ▲ 중·미관계에서 경제·기후 등 우선순위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됨 ▲ 동북아에서 미국의 위상 과시 등으로 정리했다.

이에 반해 미국이 부담할 비용은 ▲ 비핵화를 완료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에 대한 저항은 크다 ▲ 북·미 관계 정상화에 대한 미국 내 공화당 등의 비판 여론이 형성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 기존의 동북아 안보 논리를 폐기하고 새로 수립해야 하는 상황 등으로 정리했다. 딜러리 교수는 "비용-편익 분석으로 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평화체제 이행 논의에 관여할 가능성은 적다"고 진단했다.

한반도의 평화체제에 대해 '미국이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는 진단이 나왔는데, 중국은 어떨까. 한센둥 중국 정법대학교 교수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정전협정이 조선반도의 평화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동시에, 조선반도 평화체제의 구축문제에 대해 중국정부도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해오고 있다"는 정도로만 짚었다.

한 교수는 사견임을 전제로 "조선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정전협정의 법적인 지위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이므로 평화체제 구축에도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한 교수는 평화협정의 전제 조건으로 ▲ 북한의 불가역적인 핵 폐기 ▲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 정상화를 꼽았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조선반도 지역은 적극적인 평화상태에서 아직 멀고 적극적인 평화체제 구축의 조건도 성숙되지 않았다"고 진단하면서도 "그렇지만 관련 행위자들이 조선반도의 평화유지를 정책결정의 우선적인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평화체제 구축은 여전히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태그:#615, #학술대회,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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