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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로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다섯 명이 가스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고 왜 죽음을 당했을까요? 사고 후 남겨진 이야기들을 취재해봤습니다. [편집자말]
14일 당진시 당진종합병원에 마련된 노동자들의 영정. 이들은 지난 10일 현대제철에서 전로 작업 중 아르곤 가스 주입 사고로 사망했다.
 14일 당진시 당진종합병원에 마련된 노동자들의 영정. 이들은 지난 10일 현대제철에서 전로 작업 중 아르곤 가스 주입 사고로 사망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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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다른 것 요구한 적 없습니다. 사망자들 작업소인 현대제철 정문에 합동 분향소 설치해달라는 거 하나에요… 회사에서 계속 회사 생각만 한다면… 여기 옆이 영안실인데 (시신을) 끌고 올라갈 겁니다."

15일, 충남 당진시 반촌로 당진종합병원 지하 1층 장례식장. 인찬호 유가족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심경을 묻자 시선을 내리며 "참담하다"는 짧은 표현과 함께 깊은 숨을 내쉬었다.

지난 10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3번 제철소에서 일하던 (주)한국내화 노동자 다섯 명이 아르곤 가스 때문에 질식사한 지 닷새가 지났지만 장례는 아직이다. '잘못했다'던 현대제철 측이 유가족들의 합동분향소 설치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

유족들은 여전히 자신의 아들, 남편이 누구 때문에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지친 표정으로 "이렇게 사람이 다섯이나 죽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면서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행한 일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거냐"고 물었다. 노동자 다섯 명이 살던 이곳 당진시장은 13일 늦은 조문을 와 서운함을 토로하는 유가족에게 되레 막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이날 유족들을 취재하러 장례식장을 찾은 기자는 6명. 인 공동위원장은 "유족 취재도 안 한 기자들이 지금 이곳에서 장례가 진행 중이고 회사 측과 보상협의도 하고 있다고 허위기사를 쓰고 있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14일 당진시 당진종합병원 지하1층에 마련된 한국내화 사망 노동자들 빈소.
 14일 당진시 당진종합병원 지하1층에 마련된 한국내화 사망 노동자들 빈소.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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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유족에게 최선 다할 것... 분향소는 안 돼"

이날 찾아간 당진종합병원 지하 1층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노동자들이 다니던 회사인 한국내화에서 사건 직후 마련한 빈소다. 영정사진과 위패를 놓고 통상 한 집에서 1칸을 쓰는 빈소 3칸을 빌려 널찍하게 터놨지만 검은 옷 입은 문상객은 거의 없었다. 빈소 구석 바닥에 구르는 다 먹은 우황청심환 병이 '급변'을 당한 상가의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상복 입은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서는 가슴팍에 검은색 '근조' 리본을 붙인 한국내화 동료 노동자 10여 명이 굳은 표정으로 번갈아가며 자리를 지켰다. 복도에는 각계에서 도착한 흰 국화 화환들이 다른 복도까지 줄지어 세워야 할 정도로 붐비며 빈소 안과는 대조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빈소는 있었지만 장례는 없었다. 유족들은 장례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묻자 "이곳은 장례를 치를 곳이 아니다"라고 입을 설명했다. 유족들끼리 고인들이 일했던 현대제철 안에 우선적으로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장례를 치르기로 뜻을 모았다는 것이다.

기자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단답형 답변을 하던 한 유족은 '현대제철과 합의가 잘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는 "나도 도무지 잘 이해가 안 간다"면서 봇물 터지듯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현대제철이 공식적으로 잘못했다고 했고, 며칠 전 조문하러 왔던 대표이사도 유가족측이 '현대제철 정문 앞에 합동 분향소 설치하게 해달라' 하니까 '알았다'고 했다"면서 "그런데 지금와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 측이 말로는 '잘못했다'고 하면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없다는 게 유족들의 설명이었다.

빈소 맞은편에 마련된 당진 현대제철 가스 사망사고 유가족 비상대책위원회실.
 빈소 맞은편에 마련된 당진 현대제철 가스 사망사고 유가족 비상대책위원회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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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이 안 된다면 현대자동차에 분향소 설치해달라"

이같은 분위기는 이날 오후 1시경 빈소 맞은편 공실에서 열린 유가족-현대제철 대책회의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임직원 10여 명과 함께 회사의 공식 입장을 전하러 유가족을 찾아온 최봉철 현대제철 부사장은 "이번 사고는 원인과 경위를 떠나 저희 회사에서 발생한 만큼 모든 책임은 현대제철에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한 최 부사장은 "깊은 애도를 드리며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며 유족분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 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족들의 요구사항이었던 제철소 안 분향소 설치는 회사 직원들 사기 문제상 어렵다고 거절했다. 유족들이 "대표이사가 분향소를 설치해주겠다고 했다"고 항의하자 회사 측에서는 그같은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가볍게 부인했다.

최 부사장은 "하루 4회 당진제철소에서 당진종합병원을 오가는 조문용 셔틀버스를 운영하겠다"고 설명하면서 사고 책임자를 가려내는 진상규명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현대제철 측 입장을 들은 유족 측 인찬호 공동위원장은 "현대에서 죽은 노동자들에 대해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입을 열었다. 그는 "무리한 보상 요구가 아니라 성의있는 대책을 원한다"면서 "직원들 사기상 제철소에 분향소 설치가 불가능하다면 모그룹인 현대자동차에 분향소를 설치해달라"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오늘도 보니까 현대제철 주가는 올라갔다"면서 "어떻게 사람을 죽인 회사의 주가가 올라가는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들은 사고 책임자를 구속해줄 것과 장례를(한국내화장이 아닌) 현대제철장으로 치러줄 것을 추가로 요구하며 회의를 끝냈다. 이날도 양 측 사이에 진전된 협의는 없었다.

인찬호 유가족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인찬호 유가족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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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죽인 죄값 더 크지 않나... 언론기사 1면은 다 윤창중"

유족 채 아무개씨는 회의가 끝나자 "윤창중 때문에 답답하다"고 말을 건넸다. 윤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 때문에 언론이 현대제철 사망 노동자를 다루지 않고 있어, 다섯 명의 억울한 죽음이 더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변인이 엉덩이 만진 게 더 중요합니까. 멀쩡한 젊은이 다섯 명이 목숨 잃은 게 더 중요합니까. 이건 거의 살인이에요. 사람 죽인 게 죗값이 더 큰 것 아닙니까. 언론기사 1면은 다 윤창중인데…."

그는 하루 전에 있었던 일도 털어놨다. 이철환 당진시장이 사고 발생 4일째인 13일에서야 합동분향소를 찾아와 고인과 유가족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더니 유족들이 항의하자 "나한테 시비거는 거냐"면서 되레 '막말'을 했다는 것이다.

채씨의 목소리는 어느새 높아져 있었다. 그는 "당진시장이 이곳보다 현대제철을 먼저 찾아갔다고 들었다"면서 "분향소에 의무적으로 왔냐고 물어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라고 하더라"면서 "시장 보좌관들도 다 있었는데 말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사망한 고인 5명은 모두 당진 시민"이라면서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진시 관계자는 이 일에 대해 "처음에 조문을 안 받는다고 해서 늦게 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조문을 안 받는 줄 알면서 왜 왔느냐'는 질문에는 "그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았다"고 궁색한 답을 내놨다. 유족들은 당진시장이 다녀간 후 그가 보낸 조화를 버린 상태다.

오후 4시가 되니 현대제철이 마련한 조문 버스를 타고 금색 테두리 근조 리본을 단 현대제철 직원들이 빈소에 도착했다. 빈소에 있던 몇명의 유족들이 급히 복도로 나가 '현대제철 조문을 받지 않는다'고 직원들을 돌려보냈다.

인 위원장은 "자기들 식으로 우리한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조문 안 받는다는데 직원들 보내서 밀어붙이고 이게 대기업 횡포 아니냐"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태그:#현대제철, #한국내화, #당진제철소, #당진시장, #윤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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