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널 박주영 선수

셀타비고에서 임대 선수로 뛰고 있는 박주영 선수(자료사진). ⓒ 연합뉴스


박주영의 축구 인생이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벌써 몇 년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혀있는 박주영의 축구 인생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주영의 소속팀 셀타비고는 지난 4일 새벽(한국 시각) 발라이도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2013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4라운드 경기에서 빌바오와 1-1 무승부에 그쳤다. 부상 중인 박주영은 최근 두 경기 연속 결장했다. 남은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도 모자랄 상황에 이대로 시즌 아웃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임대선수 신분인 박주영에게 셀타비고의 1부 잔류와 강등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박주영이 아스날에 이어 셀타비고에서도 장기간 부진한 모습을 이어가며 향후 거취가 더욱 불투명해졌다는 점이다. 셀타비고는 박주영에게 있어서 마지막 돌파구였다. 아스날에서 전혀 기회를 얻지 못한 박주영으로서는 어떻게든 셀타비고에서 자신의 기량이 건재함을 입증해야 유럽무대에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셀타비고에서도 확실한 주전 자리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고 활약도 극히 저조했다. 스페인 언론은 올 시즌 셀타비고의 박주영 영입을 대실패라고 규정하며 연일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셀타비고로서도 팀 성적이 저조한 마당에 불필요하게 몸값까지 높은 박주영을 다음 시즌에도 안고 갈만한 명분이 없다. 독일무대에서 활약 중인 구자철이나 지동원이 임대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 것과는 천양지차다.

성장·극복 없는 박주영의 스토리텔링

아스날 복귀는 박주영에게는 또 다른 재앙의 시작에 불과하다. 벵거 감독은 이마 박주영을 전력외 선수로 분류한 지 오래다. 아스날은 이미 기존의 루카스 포돌스키가 건재하고 여름 시장에서 또 다른 공격수인 스테판 요베티치(피오렌티나)의 영입설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추진하려고 해도 아스날이 박주영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지불한 몸값을 반드시 회수하겠다는 입장이라 조율이 쉽지 않다. 박주영이 과거 몸담았던 모나코와 프랑스 리그의 몇몇 구단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도 나오지만, 아스날로 이적했던 2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 주가로는 몸값을 맞추기 쉽지 않다.

안타깝지만 지금의 상황은 결국 모두 박주영이 스스로 자처한 인과응보에 가깝다. 2011년 모나코의 2부리그 강등에서부터 시작된 악순환의 고리는, 유럽무대에서의 성공에 목말랐던 박주영의 조급증을 부추겼고 연이은 악수를 초래했다. 자신의 수준과 주변 환경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시도한 이적은 자신을 물론 당시 관련된 구단들에게도 '최악의 이적사례'만을 남기며 상처로 되돌아왔다. 더구나 자신만을 생각한 경솔한 처신으로 병역 논란과 대표팀 잠적-올림픽팀 무임승차 논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보는 박주영의 이미지만 더욱 악화시키며 국내 팬들마저도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올 시즌 많은 한국인 유럽파들이 소속팀에서 치열한 1부리그 잔류와 강등전쟁 사이에서 고전해야 했다. 하지만 똑같이 악전고투를 면치 못했던 박지성이나 이청용·지동원 등이 충분히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소속팀이 받쳐주지 못했다는 동정론을 얻고 있는 것과 달리, 박주영을 바라보는 국내 팬들의 여론은 대체로 싸늘하다.

박지성이나 기성용도 유럽무대에서 저마다 고비는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국인 선수들이 유럽무대에서 열악한 상황에서도 역경을 딛고 돌파구를 마련해왔던 과정에 비해 박주영에게는 이러한 '성장과 극복의 스토리텔링'을 찾아보기는 유독 힘들다.

어찌 보면 K리그 FC 서울 입단 시절부터 끊임없이 거듭되어온 테마다. 슬럼프나 역경에 부딪힐 때마다 주로 이적과 편법 등으로 현실을 도피하려는 이미지만 남겼을 뿐 주어진 상황에서 주전 경쟁을 딛고 생존한다든지, 팀이 필요로 하는 포지션이나 역할에 맞춰 유연하게 녹아드는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새로운 팀으로 이적할 때마다 구설수도 많았다.

결국 전술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팀, 자신에게 무조건적으로 기회를 주는 지도자 밑에서만 위력을 발휘했지만 조금이라도 조건이 맞지않으면 무력해지기 일쑤였다. 국내무대라면 몰라도 용병으로 살아가야 하는 유럽무대에서 압도적으로 강안하지도, 카멜레온처럼 유연하지도 못했던 박주영의 한계였다.

지금 필요한 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

박주영은 최근 마지막 보루였던 대표팀에서도 전력에서 제외된 상태다. 박주영은 그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국내 지도자들에게 많은 배려와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조광래·홍명보 감독 등은 박주영이 소속팀에서 아무리 부진하거나 설사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더라도 무조건 중용하며 전폭적으로 신임했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 부임 이후 대표팀에서 박주영에 대한 특혜 논란도 사라졌다. 최강희 감독은 지난 3월 카타르와의 최종예선 경기에서도 박주영을 소집하지 않았다. 당시에 비해 박주영의 활약이나 기량이 크게 나아진 게 없는 상황이라 다음 경기 때도 차출은 불투명하다. 박주영이 빠진 상황에서도 이동국·이근호·손흥민·지동원 등이 빈자리를 메우며 대표팀에 예전만큼 박주영의 공백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박주영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출전의 꿈도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데뷔 이래 한국축구의 기둥으로 평가받으며 승승장구했던 박주영의 축구인생이 점점 사면초가로 치닫고 있는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서른을 바라보는 박주영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실패를 만회할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든 다음 시즌에도 유럽무대에서 안정적으로 출전기회를 얻을 수 있는 팀을 찾는 게 중요하다. 중동진출이나 K리그 복귀설은 박주영의 몸값이나 주가를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 유일한 희망은 아스날이 몸값을 낮춰 어떻게든 이적의 길을 여는 것과 재임대 정도뿐이다. 박주영으로서도 더 이상 과거의 명성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팀에 가서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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