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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아파르트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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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아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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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3월 19일 프랑스 예산장관(제롬 카위작)이 사임한 이후 그의 스위스 비밀계좌를 폭로했던 뉴스사이트 <메디아파르트>(Mediapart)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Rue 89>와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터넷 독립신문인 <메디아파르트>에는 이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독자가 모여들고, BBC·CNN 등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메디아파르트>의 성공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사이트가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가치들을 존중하면서 인터넷 시대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뉴스 정보의 유료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메디아파르트>의 성공 요인에 대한 분석은 재정적인 위기상황에 놓인 뉴스미디어들에게 어떻게 이 위기를 탈피할 것인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신뢰의 위기에 빠진 그들에게 저널리즘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재고해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기대한다.

유일한 유료 인터넷 신문

창간부터 광고주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을 지향한 메디아파르트는 프랑스의 인터넷 독립신문으로는 유일하게 유료 사이트로 정착했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각국의 언론 그룹들은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봉착했고 이 위기는 저널리스트들의 독립성의 위기 또한 초래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예외는 아니다. 2012년 1월, 프랑스의 유력 경제 일간지 <라 트리뷴>(La Tribune)은 재정난에 허덕여 종이신문을 폐간했고, 오랜 전통의 일간지 <프랑스 스와>(France Soir)는 2011년 12월 신문발행 중단에 이어 이듬해 7월 파산을 선고했다.

La Tribune과 France Soir
 La Tribune과 France Soir
ⓒ La Tribune/ France S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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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이름 없는 신생 뉴스사이트가 유료를 선언한다는 건 일종의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2008년 창간 당시만 해도 <메디아파르트>의 유료 정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메디아파르트>가 유료 모델을 고수한 까닭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에서 출발한다. '가치 있는 정보는 무료일 수 없다'는 것과 '이 정보에 대한 대가 지급은 바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라는 것이다.

독자의 정기구독으로 운영되는 <메디아파르트>는 독자들에게 정기구독에 앞서 처음 15일 동안은 1유로로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이후에는 기사의 일부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단 기사들이 구독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독자에게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그 이후 기사 전체를 읽기 위해서는 구독 신청을 해야 하는데 구독료는 월 9유로(1만3000원가량)이다. 이처럼 <메디아파르트>의 비즈니스 모델은 95% 독자의 구독에 의존하고 있고 나머지는 이북(e-book)과 뉴스콘텐츠 판매를 통한 수익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라디오 채널인 프랑스 엥테르에 따르면(관련 기사 보기) 지난 3월 19일 카위작이 사임한 이후 15일 동안 메디아파르트의 정기구독자가 1만여 명이 더 늘었다고 한다. 2012년 12월 6만여 명이던 구독자가 7만여 명이 된 셈이다.

<메디아파르트>에는 또한 5000개 가량의 기업 및 공공단체의 유료회원이 가입돼 있으며 2010년 가을부터 흑자경영으로 돌아섰다. 2011년에는 57만 유로의 순수익(총수익 500만 유로, 한화 71억 원), 2012년에는 70만 유로의 순수익(총수익 600만 유로, 한화 86억 원)을 거둬들였다.

조금 더 견고한 독립언론이 되기 위해 10만 명의 구독자를 목표로 하는 이 사이트에는 최근 하루에도 수천 명의 새로운 구독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급격한 성장은 이미 2010년 6월, <메디아파르트>가 UMP(대중운동연합)의 전 예산장관인 에릭 베르트와 프랑스의 최고 부자인 로레알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꾸르 사이의 검은 커넥션을 폭로한 이후부터 지속하고 있는 추세기도 하다.

<오마이뉴스>에서 <메디아파르트>까지

오마이뉴스 첫화면.
 오마이뉴스 첫화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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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탕꾸르 스캔들을 최초로 폭로하면서 프랑스 독자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메디아파르트>는 2008년 3월 <르 몽드>의 전 편집국장 에드위 플레넬(Edwy Plenel)이 3명의 저널리스트와 함께 창간했다.

참여 미디어(Media participatif)라는 프랑스어를 압축해 만든 그 이름처럼 <메디아파르트>는 독자와 전문가 그리고 직업 저널리스트가 함께 만들어가는 뉴스사이트다. 창간한 지 5년이 지난 현재, 이 매체에는 30여 명의 전문기자를 포함 45명이 일하고 있으며 1년에 1600만 명가량의 네티즌들이 방문하고 있다.

<메디아파르트>는 <오마이뉴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디아파르트 창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디지털미디어 전문가 브느와 티유랑의 글, '오마이뉴스에서 메디아파르트까지'(De Ohmynews à MediaPart)에 의하면 이 사이트는 참여저널리즘의 세계적인 상징이 된 <오마이뉴스> 모델을 이용하고자 했으나 <오마이뉴스>는 민주주의의 전환기라는 한국의 독특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있어 프랑스에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참여'와 '공동체'라는 이 두 가지 속성은 <오마이뉴스> 모델에서 빌려 왔음을 밝히고 있다.

요컨대 <오마이뉴스>가 시민기자들과 편집기자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나 오마이스쿨의 저널리즘 교육을 통해 이뤄낸 커뮤니티적인 성격 그리고 독자들의 글을 적극적으로 싣는 참여의 모델이 메디아파르트에도 적용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초창기 <오마이뉴스>가 '뉴스게릴라'라는 시민기자의 기사를 통해 주류 언론에 반기를 들었다면 <메디아파르트>는 소수 정예로 구성된 전문기자들의 탐사보도를 중심으로 정보의 질과 독창성에 중점을 뒀다.

정보의 질을 중시하는 탐사 저널리즘 구현

<오마이뉴스>뿐 아니라 인터넷의 다양한 하이브리드 사이트들을 응용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메디아파르트>는 무엇보다 정보의 질과 독창성을 중시한다. 정보의 가치가 바로 디지털 저널리즘의 미래라 주장하며 국제·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분야에서 차별화된 콘텐츠와 심도 있는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이트가 유료화에 성공한 가장 큰 요인은 정치와 자본권력의 비리 폭로에 있다.

사르코지 정부 아래에서 '안티 사르코지주의자들'로 불릴 정도로 이 정부의 비리를 적극적으로 폭로해왔던 <메디아파르트>는 우파 정치인들에게 파시스트들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몇몇 저널리스트들은 폭로 저널리즘의 위험성을 말하며 증거가 불충분한 사안들에 대한 메디아파르트의 의혹 제기를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비난에 에드위 플레넬은 자신들은 단지 민주주의의 '워치독' 역할에 충실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파키스탄 카라치 폭탄테러에 대한 의혹 제기, 릴리안 베탕꾸르의 불법선거자금 지원, 카다피의 사르코지 대선자금 지원 그리고 최근 사회당 올랑드 정부의 예산장관이었던 제롬 카위작의 스위스 계좌 폭로까지 독자에게 독특한 시선으로 다뤄진 참신한 뉴스를 제공하고 권력이 숨기고 있는 비리를 파헤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정권이 우파에서 좌파로 바뀐 이후에도 바뀌지 않고 있다.

에드위 플레넬의 유명세도 한몫

에드위 플레넬(2011.3)
 에드위 플레넬(2011.3)
ⓒ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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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공에는 <르 몽드>에서 오랫동안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에드위 플레넬의 유명세 또한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1980년 <르 몽드>에 입사한 그는 1985년 그린피스의 레인보우 워리어호 폭파사건에 프랑스 첩보기관이 개입돼 있음을 밝히는 등 탐사보도 기자로서 명성을 날렸고 1996년부터 2004년까지 <르 몽드>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의 사임에는 2003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르 몽드의 감춰진 이면>(Face cachée du Monde)이라는 책이 영향을 끼친 듯하다. 대항권력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권력화된 <르 몽드>를 비판한 이 책에서 그는 <르 몽드>를 망친 세 사람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후 디지털 저널리즘의 가능성, 특히 적은 비용과 소수의 인원으로 독립적인 매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매료된 그는 실력 있는 주류 언론사 출신의 기자들과 <메디아파르트>를 창간하기에 이르렀고 끊임없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기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프랑스 독자들에게 <메디아파르트>가 '믿고 볼만한 신문'이라 인식을 심어 주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 시사매거진 르포앙(Le Point)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단지 평범한 저널리스트에 불과하며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존중할 뿐"이라며 "나에 대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관심은 프랑스 언론의 허약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라고 말하며 씁쓸해했다.

가치있는 정보는 유료라 해도 독자를 매료시킨다는, 언뜻 상식적이지만 쉽게 믿기는 힘든 그의 확신은 이제 <메디아파르트>가 프랑스 미디어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면서 구체화하고 있다. 아직은 몇 가지 주요 섹션들만을 다루고 있는 <메디아파르트>가 다양한 사고들의 토론, 경제적인 쟁점들, 국제사회의 문제들도 함께 다루는 '완전한 신문'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꿈은 이뤄질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슬로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메디아파르트, #유료정보, #프랑스미디어, #에드위 플레넬,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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