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깨끗하고, 편리하고, 친절했다. 반면에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대기업 임원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백화점 직원이 매출 압박을 받았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친절과 미소가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뒤이어 또 다른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진열된 상품이 아니라 사람들만 쳐다봤다. 주차장부터 매장 곳곳에서 만나는 직원들, 누구는 정규직이고 누구는 비정규직일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에서 최근에 정규직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눈으로는 구분이 안 된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성수동 신세계 이마트 본사에 위치한 이마트 성수점을 찾았다. 대규모 정규직 전환이 있은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월 내부자료를 입수해 직원사찰과 노조설립 방해, 불법파견 등 이마트의 문제를 집중보도했다. 그 결과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에서 23개 매장 1900여 건의 불법파견 사례가 적발돼 직접고용명령이 내려졌다. 여기에 이마트는 1만789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1일 최종적으로 910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공공기관이 아닌 기업에서 이뤄진 정규직 전환 사례 중에 가장 대규모였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비정규직으로 일한 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신규채용으로 전환이 된다는 점과 이전보다 오히려 처우가 나빠진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또 전환 과정에서 일부 인원이 퇴사했고, 이에 대한 인력보충이 늦어져 업무강도가 높아진다는 불만도 있었다(정규직 됐지만 불만 속출...이마트에 무슨 일이?). 그럼에도 정규직 전환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정규직 전환에 따른 '고용안정'의 효과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날 취재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겠다는 목적으로 이마트 측에 요청해 이뤄졌다. 이마트 측은 성수점에서 일하는 두 명의 직원을 소개했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대학 졸업예정자와 상당기간 비정규직으로 일해 온 주부 직원이다. 인터뷰와 함께 일하는 현장의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다. 이마트를 비판해온 기자와 홍보실 직원 사이에서 이들은 다소 긴장하면서도 꾸밈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정규직이 된 9100명이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들의 미소에는 피로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비정규직으로 2년, 이춘경씨가 느낀 정규직은?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좋아. 일단 진짜로 일에 의욕이 생겼다니까."

이춘경(50)씨의 평소 호칭은 '여사님'이다. 마트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여성 노동자들은 대게 이 호칭으로 불린다. 이씨는 딱 봐도 활기찬 성격에 '분위기 메이커'역할을 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외모도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고 에너지가 넘쳤다. '최강 동안'이라는 자기 소개에 공감이 갔다. '여사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다고 하자 "그냥 편하게 불러요"라며 크게 웃었다. 일단 인터뷰하는 동안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기로 했다. 그는 정규직 전환 이후 업무에서 가장 큰 변화를 묻는 질문에 "열정"이라고 답했다.

주부사원인 이춘경(50세)씨는 고객들이 온라인상으로 주문한 상품을 매장에서 수집(픽킹)해 포장(팩킹)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지 한 달을 맞은 그는 "이마트는 지금 나를 웃게 만드는 직장"이라며 "정년도 연장된다고 하는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부사원인 이춘경(50세)씨는 고객들이 온라인상으로 주문한 상품을 매장에서 수집(픽킹)해 포장(팩킹)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지 한 달을 맞은 그는 "이마트는 지금 나를 웃게 만드는 직장"이라며 "정년도 연장된다고 하는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전에는 일을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시간만 때우면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책임감이 생겨요. 예전에는 시간에 맞춰 했던 일을 지금은 할 수 있다면 빨리 끝내려고 해요. 그러면서 열정이 생기죠. 그리고 예전에는 친구들을 만나도 이마트에서 일한다고 안하고 '그냥 어디 다녀' 그랬는데, 지금은 얘기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전에는 이마트에서 일해도 이마트 직원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직원이 됐으니까요."

그는 이마트 온라인몰에서 일한다. 고객이 온라인상으로 주문한 상품을 매장에서 수집(픽킹)해 포장(팩킹)까지 하는 일이다. 이씨가 일을 마치면 배송기사가 주소지로 배달을 한다. 매장에서 직접 손님을 대면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의 일도 녹록하지 않았다. 매장 뒤편 창고 한편에 마련된 작업공간에는 100개는 족히 돼 보이는 바구니가 정렬돼 있었고 한쪽에는 상품이 쌓여 있었다. 매장에서 수거해 온 상품을 주문별로 바구니에 담는 일이 남아있었다. 이씨는 한 손에 PDA 단말기를 들고 상품과 바구니 사이에서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 2월, 이마트와 직접고용 관계가 아닌 하도급 업체 소속으로 일을 했다. 동대문에서 도매의류 사업을 20년 가까이 하다가 가게를 정리하고 다른 일을 찾던 중에 '알바나 좀 하자'는 생각으로 처음 일하게 됐다. 생계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활발한 성격상 계속 일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런 이씨도 지금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20대 직원들도 힘에 부쳐 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나이가 조금 있다는 이유로 "하도급 업체 직원들을 총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 일 시작하고 두 달 만에 총괄책임을 맡게 됐어요. 20명이 있었는데, 책임감이 생겨서 일을 금방 그만둘 수 없었어요. 나이가 있어서 정규직이 되면 일에 유리한 점도 있고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런 기회가 생겼죠. 20명이 다 전환이 됐는데 몇 명은 퇴사했어요. 정규직이 싫어서 그만 둔 사람은 없어요. 원래 언제까지만 일을 하자는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고, 아르바이트 학생들 경우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만 둔 거지 다른 이유가 있어 그만 둔 건 아니예요."

이씨는 퇴사한 직원들의 공백으로 업무강도가 올라가지 않았는지 묻는 질문에 "정예부대가 남아 있어서 힘들어 진 건 없다"며 "계속 채용을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금방 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 되고 9일치만 반영됐는데 월급도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온전하게 월급이 나오는 다음달을 기대하고 있다"며 급여 처우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래도 직장인데 아무 불만이 없다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에서 애로사항이 있는지 물었다.

"아직 정규직이 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아직은 잘 몰라서 개선점은 잘 못 찾겠어요. 지금은 조금 더 책임감 있게 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이제 진짜 직원이 됐으니까 책잡히면 안 되잖아요. 다른 곳은 모르지만 온라인몰의 경우는 정해진 점심시간이 없다는 건 조금 불만이에요. 배송시간을 맞춰야 하는 업무 특성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하고 밥도 잠깐 짬을 내서 밥을 먹어야 해요. 직원들이 모여서 먹지는 못해요. 그런 건 업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누구나 하나쯤 가진 문제라고 생각해요."

정규직이 된 한 달 동안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인지 묻는 질문에 이씨는 "직원카드가 나와서 그걸 내밀었더니 할인이 되더라"며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직원 할인이 찍혀 나왔다, 남편에게 할인 되니까 더 써도 된다고 했다(웃음)"고 말했다. 그는 의료비 혜택 등 정규직 직원이 되면서 받을 수 있게 된 복지에 가장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이마트는 지금 나를 웃게 만드는 직장"이라며 "정년도 연장된다고 하는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 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기계 만지던 공대생, '알바' 하다가 정직원으로

자동차 용품과 조명 코너에서 일하는 문동석(26)씨가 서자 진열대 위로 머리가 보일락말락 했다. 큰 키에 상당한 훈남이었다. 노란색 유니폼 위에 입은 조끼 오른편에 '문동석'이라고 적힌 명찰이 보였다. 본사에서 나온 직원들은 목에 직원카드를 달고 있었지만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이 명찰로 직원임을 표시한다. 문씨는 창고에 있는 상품을 매장에 진열하는 일을 한다. 평일 오후 시간이라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문씨는 자동차 실내 바닥커버를 사러온 손님을 능숙하게 응대했다.

이마트 성수점에서 자동차용품과 조명기구 진열을 담당하고 있는 문동석(26세)씨는 올해 8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달 초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학비 마련을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작한 문씨는 6개월 여 만에 안정된 직장까지 얻게 돼 취업준비 중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마트 성수점에서 자동차용품과 조명기구 진열을 담당하고 있는 문동석(26세)씨는 올해 8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달 초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학비 마련을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작한 문씨는 6개월 여 만에 안정된 직장까지 얻게 돼 취업준비 중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문씨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대학 4학년으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학업을 하면서도 계속 일해 학비를 마련했다. 다소 전공과 동떨어진 일인데 정규직으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처음부터 한동안은 계약기간 동안 일하고 다른 일자리를 구하러 나갈 생각이었다"며 "그러다 정규직 전환 소식을 들었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취업하기도 정말 어렵고 정규직이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주변에 졸업해도 취업 못한 친구들이 많아요. 그걸 보면서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은 부러워하기도 하고 응원도 많이 해줬어요. 잘 됐다고... 정규직이 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다른 것도 있지만 신세계 이마트라는 큰 기업에 직원이 됐다는 자부심이 생겼다는 거예요. 전에는 이마트에서 일은 하지만 이마트 직원이 아니었잖아요. 이마트 직원이 아니니까 시킨 일만 했는데 지금은 매출이 오를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어요. 애사심이 늘었죠. 부모님도 걱정이 많으셨는데, 학자금 대출 받은 것도 조금씩 상환할 수 있고 잘 됐다고 생각해요."

그는 정규직 전환 이후 업무 변화를 묻는 질문에 "전에는 같이 일을 해도 팀장님이 제가 다른 업체니까 지시하는 거나 업무에서 어려워하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서로 소통하는 게 편하다"며 "불편한 점이 있어도 전에는 제가 속한 업체 쪽에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지금은 바로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지급된 첫 정규직 임금에 대한 질문에도 "아직 한 달 분이 다 들어온 게 아닌데 괜찮을 것 같다"며 "하도급업체에 있을 때는 시급으로 받았는데 여기서는 기본급이 있고 월급으로 바뀌니까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마트 직원 중에 비교적 젊은 층인 문씨에게 이마트가 정규직 전환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과정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직원사찰·노조탄압 등 많은 뉴스가 쏟아진 만큼 그도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히는 잘 모르겠다"며 "그 일이 있은 후에는 사원들 고충을 처리해 주는 일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씨는 인력 감소 문제에 대해서도 "인원이 줄어들기는 했어도 같이 일했던 분들과 계속 같이 하고 일도 익숙해져서 크게 힘든 건 없다"며 "정규직 전환이 이제 막 시작됐으니까 조금 더 진행하면서 문제가 있을 때 개선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제가 전에 물류센터에서 택배 승하차 일도 하고 유통 쪽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어떤 일을 해도 계약 기간 전 중간에 그만 둔 적은 없었어요. 그런 경험을 해서 이마트에서도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길게 보고 있어요. 오래 회사를 다니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준비할 생각이에요. 지금은 전문직 2직군인데, 오래 열심히 일하면 다른 업무도 할 수 있고 처우도 좋아지고, 그러면 좋겠어요."

"직원들 만족도 높아지고 있다, 신뢰받기 위해 노력할 것"

이마트 측은 정규직 전환 이후 한 달 동안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효과가 있었다고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예전에 도급업체로 운영할 때보다 이직율이 급감하는 등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규직 전환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직원 전체가 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근무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이마트는 5월 1일 자로 2100여 명 판매전문사원(SE)의 정규직 전환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마트 관계자는 "이번 전환으로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 영업 관련한 거의 모든 직원이 정규직 사원이 된다"며 "모두가 같은 회사의 구성원이 된 만큼 다 함께 노력해서 고객에게 더 신뢰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마트노동조합은 이러한 정규직 전환 효과에는 공감을 표했다. 전수찬 이마트노조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우선은 고용이 안정돼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게 되면서 직원들의 만족도와 안정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여성 주부사원이 많은데 의료비 혜택이나 직원 할인에 대한 부분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 위원장은 "몇 가지 지점에서 아직까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매장에서 일하는 가전 A/S 기사들의 경우 상당한 전문성이 있음에도 그동안의 경력이 인정되지 않았다"며 "곧 정규직 전환이 되는 판매전문사원들도 같은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최근 단체협상 자리에서 제기했으나, 회사 측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전 위원장은 "회사가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태그:#이마트, #정규직, #신세계, #전수찬, #비정규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