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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 유달산 일주도로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유달산 꽃봄의 시작이다.
 목포 유달산 일주도로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유달산 꽃봄의 시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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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진분홍색…. 색(色)으로 유혹하는 봄이다. 햇살 한 줌에도, 바람결에도 아릿한 꽃향기가 실려 있다. 매화와 산수유꽃으로 시작된 봄꽃 행렬에 개나리가 동참했다. 그 뒤를 벚꽃과 진달래꽃이 잇고 있다. 눈 두는 곳마다 황홀경이다. 꽃의 노래에 가슴 가득 꽃바람이 든다.

목포 유달산이다. 산수유꽃보다도 더 샛노란 빛깔로 유혹하는 개나리꽃이 피었다. 길게 늘어뜨린 가지에 촘촘히 걸린 개나리꽃이 동심으로 이끈다. 학창시절 봄소풍이라도 온 것 같다.

개나리꽃 핀 일주도로에 조각공원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1982년 문을 연 야외 조각공원이다. 조각작품이 바다와 자연을 형상화하고 있다. 해양도시의 조각공원답다. 여기서 길이 달성공원으로 이어진다.

 유달산 산책로. 조각공원과 달성공원을 이어주는 길이다.
 유달산 산책로. 조각공원과 달성공원을 이어주는 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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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 유달산 산책로. 산속 길답지 않게 다소곳이 예쁘다.
 목포 유달산 산책로. 산속 길답지 않게 다소곳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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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가 예쁘다. 돈나무, 붓순나무, 굴거리나무가 보인다. 히어리, 모감주나무, 후박나무, 구상나무도 있다. 봄햇살에 이파리들이 한결 보드라워졌다. 산빛도 환해졌다. 빨간색 동백꽃에선 봄내음이 물씬 묻어난다. 길섶엔 쑥부쟁이, 범부채, 앵초, 비취장대 등 이름도 정겨운 들꽃이 지천이다. 금세 산책로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일 기세다. 일일이 눈 맞추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생식물원 앞에 있는 철거민탑도 눈길을 끈다. 산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사라진 집의 주춧돌을 모아서 쌓은 것이다. 달성사를 거쳐 비탈을 조금 오르니 유선각이다. 유달산에 있는 다섯 개 정자 가운데 하나다.

 목포 유달산 철거민탑. 공원을 조성하면서 이주한 초가집의 주춧돌을 모아 쌓은 것이다.
 목포 유달산 철거민탑. 공원을 조성하면서 이주한 초가집의 주춧돌을 모아 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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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삼학도. 옛 전설을 간직한 섬으로 최근 복원됐다.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삼학도. 옛 전설을 간직한 섬으로 최근 복원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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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가지와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수군통제영을 처음 설치하고 수군을 재건했던 고하도가 눈앞이다. 유달산과 함께 목포의 상징이 된 삼학도도 한쪽으로 펼쳐진다. 유달산에 사는 젊은 장수를 사모한 세 여인이 죽어 학이 됐고, 그 학이 떨어진 자리에 섬이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최근 복원된 것이지만 옛 삼학도를 본 것 같다.

위로는 일등바위와 이등바위가 우뚝 서 있다. 유달산(228m)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중간 즈음에 낙조대도 있다. 다도해의 수려한 경관과 어우러지는 해넘이를 보는 조망지점이다. 봉우리와 눈도장을 찍는 것으로 만족한다. 발걸음을 노적봉 방향으로 돌려 '목포의 눈물' 노래비와 만난다.

 목포 유달산과 목포시가지 전경. 그 너머로 다도해가 펼쳐진다.,
 목포 유달산과 목포시가지 전경. 그 너머로 다도해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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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달산에 서있는 '목포의눈물' 노래비. 그 옆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유달산에 서있는 '목포의눈물' 노래비. 그 옆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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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활동했던 가수 이난영의 노래다. 무명시인이던 문일석이 1934년 OK레코드사 주최 전국 애향가요 가사공모에서 1등을 한 작품에 손목인 선생이 곡을 붙였다.

이 노래는 당시 고향을 등지고 낯선 땅을 헤매야 했던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줬다. 전라도 사람들의 한을 대변하며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도 했다. 80년대 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의 응원가로 애창되면서 '전라도 애국가'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노래비 앞에서 지난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목포 노적봉 옆에 있는 다산목. '여자나무'로도 불리는 이 나무는 오래된 팽나무가 연출한 것이다.
 목포 노적봉 옆에 있는 다산목. '여자나무'로도 불리는 이 나무는 오래된 팽나무가 연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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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에서 내려오니 노적봉이 반긴다. 짚단을 덮어 군량미로 보이게 했다는 이순신 장군의 전설이 얽힌 곳이다. 바위의 형세가 누워있는 큰바위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봉우리다.

노적봉 옆에 있는 다산목도 재밌다. 사람들이 '여자나무'라 부른다. 이 나무를 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수령 150년 넘은 팽나무인데, 어미나무의 뿌리에서 싹이 나와 자라서 지금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유달산 자락에 있는 옛 일본영사관 건물. 목포 근대유적 가운데 대표적인 건물이다.
 유달산 자락에 있는 옛 일본영사관 건물. 목포 근대유적 가운데 대표적인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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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일본영사관 뒤편에 있는 방공호. 김향원 목포시문화관광해설사가 방공호를 가리키고 있다.
 옛 일본영사관 뒤편에 있는 방공호. 김향원 목포시문화관광해설사가 방공호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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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예술공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니 붉은 벽돌건물이 나타난다. 1897년 10월 목포가 개항된 이후 일본의 영사업무를 위해 지어진 옛 일본영사관이다. 목포 최초의 서구식 근대 건축물로 목포의 아픈 근대사를 증거하고 있다. 70년대 이후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으로 쓰였다.

건물 뒤에 일제가 파놓은 방공호도 있다. 미군의 공습에 대비,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판 것이다. 높이 2m, 길이 82m에 이른다. 신사참배 용도로 쓰였던 봉안전(奉安殿) 터도 바로 옆에 있다. 한국인의 신사참배를 위해 만든 것인데, 철옹성 같았던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

"만호동과 유달동, 남양동, 북교동 일대가 목포의 근대문화 유적지입니다. 일본식 가옥 200여 채가 남아 있어요. 지금은 거기에 목포사람들이 살고 있죠. 일제시대 목포항을 중심으로 얼마나 많은 일본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았는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김향원(51) 목포문화관광해설사의 얘기다. 실제 이 인근에 일제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옛 일본영사관 건물에서 국도 1, 2호선 기점을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면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쓰였던 건물이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을 개조해 전시관으로 꾸몄다.
 목포근대역사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을 개조해 전시관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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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문을 연 이 회사는 토지를 사들였다가 다시 빌려주며 높은 소작료를 받아 챙기는 수법으로 한국인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철문이 달린 대형 금고도 그 모습 그대로다. 해방 이후엔 해군 목포경비부와 목포해역사 헌병대로 쓰였다. 철문 달린 금고는 헌병대의 유치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지금은 목포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해 일반에 개방되고 있다.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사진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나라를 빼앗긴 우리 선조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다. 참담한 기분 억누를 수가 없다. 마음도 숙연해진다. 그 마음을 지척에 있는 목포항과 종합수산시장이 어루만져 준다.

 목포 유달산 산책로. 조각공원과 달성공원을 이어주는 길을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목포 유달산 산책로. 조각공원과 달성공원을 이어주는 길을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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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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