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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로 만든 슬리퍼/ 싱가포르, 20세기 초 중반/ 유리구슬, 면/ 페라나칸박물관
▲ 금사로 만든 슬리퍼(Slippers with metallic embroidery) 금사로 만든 슬리퍼/ 싱가포르, 20세기 초 중반/ 유리구슬, 면/ 페라나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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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 전시가 열린다기에 30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 이미 알고 있는 다른 문화와 맞춰보는 즐거움.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시는 그런 즐거움들을 준다. 아빠와 키가 비슷한 막내딸을 데리고 손잡고 가는 남편 뒷모습에서 행복함이 보인다. 아빠의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딸을 보며 사오정 부녀라고 놀리는 나도 즐겁다.

페라나칸 특별전시실 입구
▲ 페라나칸 특별전시 페라나칸 특별전시실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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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역에 도착하니 지하에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연결통로가 짠하고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무빙워크가 설치되어있고, 양쪽 벽면에는 유물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깔끔하고 쾌적한 그 모습에 기분도 좋아진다. 오전 열한시라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아 관람하기에도 딱 좋은 시간이다.

페라나칸 전시는 3월 19일부터 5월 1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2개월간 전시한다. 어영부영하다가는 2개월이 바람처럼 지나가 버려 놓칠 수도 있으니, 보고 싶은 전시는 미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

전시유물은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 페라나칸 박물관 소장품(복식류, 장신구, 도자기) 등 230점이다.

고대 이래 동남아시아는 동서 세계를 잇는 해상의 교차로였다고 한다. 말레이 반도의 남부 말라카해협에 위치한 피낭, 말라카, 싱가포르와 부속도서로 이루어진 구 영국령 식민지를 '해협식민지(Straits Settlements)'라고 했는데, 지금은 독립하여 '싱가포르 공화국'과 '말레이시아'에 속한다고 한다. '말라카해협'은 극동과 유럽을 잇는 중요한 통로로, 길이 900여㎞, 최대 폭 100여㎞ 정도고, 짧은 곳은 폭이 40여㎞도 채 안 되는데, 이 해협을 통해 우리나라 유조선들이 원유를 수송하며, 최근에는 해적들의 출몰로 치안상황이 악화된 곳이기도 하다.

페라나칸들의 여러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되었다.
▲ 페라나칸들의 모습 페라나칸들의 여러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되었다.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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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나칸은 말레이어로 '현지에서 태어난' 이라는 뜻으로 외국인 아버지와 현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후손을 말한다. 페라나칸의 대다수는 중국계이지만, 이외에도 아랍이나 인도 또는 유라시아계로 구성된 다양한 페라나칸 공동체로 형성되어 있다.

이 번 전시는 19세기 영국식민정부와 강한 유대관계를 맺으며 싱가포르에서 활약했던 중국계 페라나칸(남성은 바바baba, 기혼 여성은 뇨냐nyonya라고 부른다.)의 문화를 소개한다. 전시실 입구에는 여러 계통 페라나칸들의 사진이 걸려있고, 그들의 한마디씩이 적혀있는데, 그들의 마인드가 국제적이라 그런지 우리보다 더 넓은 세계관을 가진 것 같다.

호키엔(중국 푸젠성) 페라나칸(Hokkien Peranakan) 피터 위(Peter Wee)
▲ 호키엔 페라나칸(Hokkien Peranakan) 피터 위(Peter Wee) 호키엔(중국 푸젠성) 페라나칸(Hokkien Peranakan) 피터 위(Peter W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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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키엔(중국 푸젠성) 페라나칸(Hokkien Peranakan) 피터 위(Peter Wee)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페라나칸들은 '순수한(true blu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우리는 자티 페라나칸(jati Peranakan)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진짜'라는 뜻이죠. 이 '순수한'이라는 용어는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아주 상업적인 헛소리죠."

페라나칸 혼례복
▲ 신랑 신부 혼례복 페라나칸 혼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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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5부로 구성되어있으며, 서로 다른 문화가 어떻게 융합되고 혼합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입구를 들어서면 제1부 "믈라카에서 온 신랑 신부"가 우리들을 맞이한다. 신랑은 중국식 복장을 하고 신부는 자수와 구슬공예로 장식된 화려한 예복을 입고 있는데, 옷에 중국인 아이가 새겨져 있다.

신랑의 모자는 청나라 시대의 붉은 술이 달린 고깔모자처럼 보인다. 이 의복들은 12일간 거행되는 페라나칸 혼례의 첫 날 입는 것이라고 한다. 신부는 화려한 머리띠를 두른 후 머리장식을 위에 올려 쓴다. 중국풍이면서도 현지문화의 영향을 받은 신부 옷의 구슬로 장식된 옷깃은 화려함을 자랑한다.

머리띠와 화관으로 이루어진 신부 머리장식_믈라카/ 19세기 말_20세기 초/ 은에 도금, 면, 벨벳, 다이아몬드, 구슬/ 국립싱가포르박물관
▲ 신부 머리장식 머리띠와 화관으로 이루어진 신부 머리장식_믈라카/ 19세기 말_20세기 초/ 은에 도금, 면, 벨벳, 다이아몬드, 구슬/ 국립싱가포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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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모자_중국,  믈라카, 19세기 말_20세기 초/ 면, 종이, 은, 유리/ 아시아문명박물관
▲ 고깔모자 고깔모자_중국, 믈라카, 19세기 말_20세기 초/ 면, 종이, 은, 유리/ 아시아문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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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는 "페라나칸의 혼례 : 중국의 영향"으로, 혼례침실을 재현하여 꾸며 놓았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길상의 의미를 지닌 장신구로 꾸며진 혼례침실은 페라나칸 공예미술의 정수이자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고 한다.

페라나칸에게 혼례식이란 중국적 가치를 반영함과 동시에 전통을 따르는 기회였다. 12일 간이나 진행되는 이 예식에서 중국적 요소(조상 숭배의식, 종교적 관념, 중국적인 길상 색상, 문양을 사용한 혼례장식)가 모두 등장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페라나칸 혼례실 전경
▲ 혼례실 전경 페라나칸 혼례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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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는 "뇨냐의 패션 : 말레이의 영향"이다. 페라나칸 여성은 말레이 전통 복식인 사룽(sarong)과 케바야(kebaya)를 착용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케로상(kerosang)이라 불리는 화려한 보석 장신구로 장식했다. 사룽과 케바야는 페라나칸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복식으로 오늘날까지도 디자이너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러 문양의 케바야와 사룽
▲ 여성 복식_케바야와 사룽 여러 문양의 케바야와 사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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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를 상징하는 새우가 들어간 문양
▲ 새우무늬 케바야 풍요를 상징하는 새우가 들어간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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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자수 새우 문양
▲ 새우무늬 케바야 섬세한 자수 새우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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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가보, 보석 장신구(Treasured Heirlooms) 페라나칸들에게 보석 장신구는 집안의 가보이자 사회적 지위와 부유함을 암시하는 중요한 문화적 지표다.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신무가 지참금으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페라나칸이 착용했던 보석장신구는 말레이, 중국, 유럽의 영향이 섞인 혼성적 성격을 보여준다.

허리띠 버클(Belt buckle)
인도네시아, 19세기/ 금, 붉은 석류석/ 아시아문명박물관
▲ 벨트 버클장식 허리띠 버클(Belt buckle) 인도네시아, 19세기/ 금, 붉은 석류석/ 아시아문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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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즐리 모양 브로치/ 해협식민지, 19세기 말~20세기 초/ 금, 다이아몬드/ 국립싱가포르
▲ 페이즐리 모양의 브로치 페이즐리 모양 브로치/ 해협식민지, 19세기 말~20세기 초/ 금, 다이아몬드/ 국립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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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즐리 모양 브로치/ 19세기 말~20세기 초/ 금, 루비/ 개인소장
▲ 페이즐리 모양 브로치 페이즐리 모양 브로치/ 19세기 말~20세기 초/ 금, 루비/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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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나칸들의 여러 사진
▲ 브로치를 착용한 페라나칸 신부 페라나칸들의 여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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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의복용 브로치(Mourning brooch)
해협식민지, 19세기 말~20세기 초/ 은 진주/ 아시아문명박물관
▲ 브로치 장례식 의복용 브로치(Mourning brooch) 해협식민지, 19세기 말~20세기 초/ 은 진주/ 아시아문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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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바야는 느슨한 긴팔의 개방형 상의로, 그 어원은 9세기 중동 통치자들의 외투 '카바(qaba)'에서 유래했다. 케바야는 보통 케로상이라고 부르는 세 개의 브로치 세트로 고정하여 입는데, 옷깃은 레이스로 되어있어, 단아하면서도 화려하게 보인다.

20세기 중반에는 밝은 색상들로 구성된 커다란 무늬가 유행했으며 풍요를 상징하는 새우, 게와 같은 동물 문양과 사람 모양의 문양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부유한 뇨냐는 유명한 중국계 페라나칸 바틱 메이커에게 손으로 직접 그린 고가의 디자인을 주문하기도 했다.

사룽은 한 장의 천으로 허리를 랩처럼 감싸서 입는 치마를 말하는데, 자바의 북쪽 해안가에서 제작된 사룽은 초기에는 인도의 직물패턴 영향을 받았으나 19세기 말에는 유럽과 자바, 중국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아들였다.

혼례장면이 도안되어있는 사룽
▲ 혼례장면이 도안되어있는 사룽 혼례장면이 도안되어있는 사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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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뇨냐들은 특별한 날에 케바야를 입는데, 케바야 스타일은 싱가포르와 말레이 인도네시아 패션의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한다.

사룽에 쓰이는 염색기법은 바틱(Batik) 기법을 이용한다. 자와 어에서 유래한 바틱이라는 용어는 녹인 밀랍을 이용해 문양을 만드는 기법을 의미하며, 녹인 밀랍은 직물을 염색물에 담갔을 때 특정 부분이 염료를 흡수하지 못하도록 막는 기능을 한다.

사룽1/ 자와,1930년대/ 바틱/ 개인소장
사룽2/ 자와 스마랑, 1870~1900년/ 바틱/ 개인소장
사룽3/ 자와 북부해안, 1890~1910년/ 바틱, 금박
▲ 사룽 사룽1/ 자와,1930년대/ 바틱/ 개인소장 사룽2/ 자와 스마랑, 1870~1900년/ 바틱/ 개인소장 사룽3/ 자와 북부해안, 1890~1910년/ 바틱, 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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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전 중국식 바틱은 흔히 톱니바퀴 무늬의 끝단 장식 및 청색과 홍색의 천연 염색을 특징으로 했다. 1910년 화학염료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색상과 문양을 섬세하게 살린 바틱이 유행하였으며, 이후 밝은 파스텔 색조, 촘촘한 문양을 지닌 일본식 디자인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제4부 "서구화된 엘리트 : 유럽의 영향"에서는 무역상이나 도시적인 사업가로 유럽 문화를 적극 수용했던 페라나칸의 모습이 보인다. 페라나칸은 영어를 배우고 서구식 복장을 했으며, 테니스나 크리켓 등 스포츠를 즐겼다. 서구식 주택을 지어 거주하고 유럽에서 제작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새롭게 획득한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표현했다.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방법 가운데 선호했던 것으로 초상화가 있다.

전시된 초상화들을 보면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초상화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페낭의 페라나칸 부부 초상화
▲ 부부 초상화 페낭의 페라나칸 부부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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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먹과 채색, 금박을 이용하여 그린 이 부부 초상화에는 페라나칸 사업가의 성공이야기가 담겨있다. 남성의 초상화 찬문은 그가 페낭에서 비단 무역으로 돈을 벌어 억만장자가 되어 여러 자선사업을 펼쳤음을 설명하고 있고, 여성의 초상화 찬문은 부인의 아름다움과 미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모자이크
▲ 탄수빈 부부 초상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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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빈 부부 모자이크 초상
▲ 탄수빈 부부 초상 탄수빈 부부 모자이크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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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으로 그린 초상화
▲ 탄벵완 부부 초상 물감으로 그린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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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으로 그린 초상화
▲ 탄벵완 부부 초상 물감으로 그린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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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에서 유리구슬 공예로 만든 슬리퍼가 보인다.
▲ 탄벵완 부부 초상 초상화에서 유리구슬 공예로 만든 슬리퍼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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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남긴 초상
▲ 앙안시앙 부부 초상 사진으로 남긴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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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빈 부부 초상은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20세기 초에 제작했고, 유리 모자이크 방식이다. 탄벵완 부부 초상은 19세기 해협식민지 시대에 제작되었고, 종이에 구아슈 불투명 물감을 사용하였다. 부인의 발에, 구슬공예로 만든 화려한 슬리퍼를 신고 있다. 앙안시앙 부부 초상은 20세기 초 싱가포르에서 제작되었으며 사진을 찍었다.

제5부는 "페라나칸 공예미술"로 페라나칸의 취향이 반영된 공예미술이 전시되어있다. 이 5부가 가장 맘에 들어 한참 동안이나 감상했다. 구슬을 이용한 그들의 공예는 마치 실을 이용하며 수를 놓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섬세한 그 작품이 구슬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페라나칸 슬리퍼
▲ 구슬 공예 슬리퍼 페라나칸 슬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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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마우스 문양이 새겨진 슬리퍼(Orange beadwork slipppers with Betty Boop and Mickey Mouse)
싱가포르, 20세기 초 붕만/ 유리구슬, 면/ 페라나칸 박물관
▲ 미키마우스 문양 슬리퍼 미키마우스 문양이 새겨진 슬리퍼(Orange beadwork slipppers with Betty Boop and Mickey Mouse) 싱가포르, 20세기 초 붕만/ 유리구슬, 면/ 페라나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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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 꽤 높아 보이는 슬리퍼들
▲ 다양한 슬리퍼 굽이 꽤 높아 보이는 슬리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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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개의 구슬이 들어간 대형 식탁보
▲ 구슬로 만든 사각식탁보 100만 개의 구슬이 들어간 대형 식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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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공예로 섬세하게 만든 작품.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작품
▲ 구슬공예로 만든 대형 사각 식탁보 구슬공예로 섬세하게 만든 작품.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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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공예로 만든 꽃병
▲ 꽃병 구슬공예로 만든 꽃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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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나칸 공예미술의 발달에는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성들은 바느질 솜씨와 음식 솜씨를 갖춘 중국 전통에 부합하는 며느리감을 기대하였으며, 이에 따라 페라나칸의 여성들은 뛰어난 자수와 구슬 세공품을 많이 남겼다. 특히 여성들의 공간인 주방에서 사용하는 도자 세트는 신부용으로 따로 주문 제작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페라나칸의 도자를 "뇨냐자기(nyonyaware)"라고 부르게 되었다.

뇨냐자기: 페라나칸고객을 위한 중국 자기
Nyonyaware: Chinese porcelain for Peranakan patrons
선명한 색상의 대비가 특징적이며, 분홍색은 거의 모든 곳에서 사용되었는데, 모란이나, 봉황 등의 문양 뿐만 아니라 그 바탕색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생동감 넘치는 자기들은 청대(1644-1911)말기의 특정 도자 양식과 유사한 점도 있으나, 페라나칸만의 특색이 두드러진다.

섬세한 문양. 벨벳천에 유리구슬로 만들었다.
▲ 구슬공예 꽃병 섬세한 문양. 벨벳천에 유리구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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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놓은 손수건
▲ 신부 손수건 수를 놓은 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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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자수 손수건
▲ 신부 손수건 신부 자수 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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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뇨냐자기의 파편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으나, 중국 경덕진에서 대략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뇨냐자기의 수요가 점차 사라지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중단되었다._출처: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싱가포르에 정착한 중국계 페라나칸 문화가 세계화된 싱가포르 사회에서 어떻게 융화되어 발전했는지 알 수 있으며, 이러한 다양한 문화의 편견 없는 수용은 다문화 사회를 맞이하는 우리 사회에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한다.

유물 관람을 하는 중에 남편의 선배와 동료를 만났다. 거의 20년이 다 지난 세월 동안 서로의 얼굴모양이 변하지 않아 한 눈에 알아보았나 보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서로의 일행을 찾아 따로 관람을 했지만, 남편과 나는 마음이 훈훈했다. 앞으로 페라나칸 전시를 기억할 때마다 기분 좋은 이 만남을 같이 떠 올리리라.

중국에서 생산한 뇨냐자기
▲ 뇨냐자기 중국에서 생산한 뇨냐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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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미니어처 찬합(텡캇)_Pink miniature tengkat_중국_19세기 말~20세기초/ 개인소장
분홍색 찬합(텡캇)_Pink tengkat_중국_19세기 말~20세기초/ 개인소장
봉황,모란 문양 분홍색 타구_중국,19세기 말~20세기 초/ 아시아문명박물관
▲ 뇨냐자기 분홍미니어처 찬합(텡캇)_Pink miniature tengkat_중국_19세기 말~20세기초/ 개인소장 분홍색 찬합(텡캇)_Pink tengkat_중국_19세기 말~20세기초/ 개인소장 봉황,모란 문양 분홍색 타구_중국,19세기 말~20세기 초/ 아시아문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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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관람을 끝내니 오후 1시가 넘었다. 신당동 떡볶기 골목으로 가서 떡볶기 3인분을 시켰더니 커다란 팬에 음식이 담겨 나왔다. 손잡이에 쓰인 글귀가 한쪽은 '마복림'이고 한쪽은 '며느리도 알아'다. 소스 비법은 며느리도 모른다고 하더니 이제는 며느리도 아는 모양이다. 떡볶이를 먹으며 아버지는 말하고 딸내미는 듣는다.

"해협이 뭐냐면, 아주 좁은 바닷길을 의미해. 바다 골목길이지. 이 길을 통과하고 싶지 않으면 다시 뒤돌아서 먼 바다를 빙 둘러 가야하니, 절대 뒤돌아서 갈 수 없지. 그래서 이 길이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가 된 거야.

중국의 정화라는 사람이 이슬람 사람이거든. 그 사람이 중국에 귀화해서 '정화원정대'를 꾸려 세계 바다를 항해하고 다녔지. 중국 청도에 가서 해양박물관에 갔을 때, 세계지도에 정화원정대가 다닌 길을 표시해 놓은 것을 봤지? 다니면서 중간 중간에 중국 사람들을 내려놓고 가는 거야.

그 사람들이 화교인 것이지. 정화가 다닌 길을 마르코 폴로가 다녔다고 볼 수 있지. 유럽 사람들이 중국을 찾아다니다가 길을 잃어 발견한 나라가 일본이고, 일본을 찾아가려다가 길을 잃어 표류한 사람이 하멜이야. 제주도의 하멜 표류기가 그래서 나온 것이지.

그 덕분에 일본은 총을 알게 되었고, 그 총을 발전시켜 조총을 만들었는데, 그 조총 때문에 활과 창 칼 밖에 없는 조선이 코피 터진 거지.

페라나칸 사람들이 중국어를 사용하면서 돼지고기를 먹고, 또 말레이어를 쓰는 것을 현지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하잖아? 회교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나온 말이지. 그런 인식 속에서도 문화를 발전시켜 나온 것은 상인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그리고 모자이크로 된 초상화는 그 부부가 이탈리아에까지 가서 만들었을까? 사진을 보내서 만들었을까?"

청록색 혼례용 대야/중국/아시아문명박물관
▲ 뇨냐자기 청록색 혼례용 대야/중국/아시아문명박물관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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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 모란 문양 녹색 접시/ 중국/ 아시아문명박물관
▲ 봉황 모란 문양 녹색 접시 봉황 모란 문양 녹색 접시/ 중국/ 아시아문명박물관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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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 전시는 바로 그런 문화를 그 지역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아주 좋다. 전시를 보고 나면 이 전에 보았던 문화들과 연관해서 아이와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도 좋다.

'순수한'이라는 용어는 상업적인 헛소리라고 일갈하는 페라나칸의 한마디에 내 편견도 살짝 깨졌다. 우리나라도 여러 문화들의 좋은 점들이 서로 섞여 더 좋은 문화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혼혈의 고유문화가 당당하게 자리 잡은 이 문화를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으면 좋겠다.

박형기의 '친디아의 비밀병기 화교 & 인교'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 화교들과 인교들이 그들의 조국인 인도와 중국을 위해 어떤 역할들을 하는지 많이 궁금해졌다.

덧붙이는 글 | 참조: 해협식민지_두산백과 사전/ 말라카 해협_시사용어 사전/ 페라나칸 문화_국립중앙박물관 보도자료/ 전시 유물 내용_페라나칸 전시장



태그:#국립중앙박물관,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 #구슬공예, #말레카 해협,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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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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