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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태 교수의 사과문
 고은태 교수의 사과문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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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님과 저 사이에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카톡 대화가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중략) 카톡대화를 통해 OO님께 상처를 입힌 점 죄송하게 생각하며 사과드립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인권운동가로 유명한 고은태 교수가 한 여성을 성희롱했다는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은 여성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을 복기하면 다음과 같다.

고은태씨는 카카오톡을 통해 해당 여성에게 나체의 사진을 보내도록 하고, 은밀한 성적 만남을 갖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 여성은 인권 쪽에 영향력 있는 고씨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하지 못했다. 고씨의 은밀한 제안들은 계속됐고, 그 여성은 견디다 못해 "이런 관계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고씨는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자연 사건을 두고 울분을 터트렸던 인권운동가가 했던 일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해당 여성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고, 고씨는 트위터를 통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현재 그의 트위터 계정은 삭제된 상태다.

비난의 화살이 앰네스티로... 합당치 않다

후폭풍은 거셌다. 여러 언론사에서 해당 내용을 기사로 내보냈다. 다음 등 포털 검색 순위에서도 '고은태'라는 이름이 10위권 내에서 맴돌았다. 트위터와 인터넷 기사에는 그의 행위를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다. 유망한 인권운동가가 '성희롱범'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불똥은 국제 앰네스티로 튀었다. 고씨는 앰네스티 이사장으로 재직한 적이 있다. 고씨는 앰네스티가 주최하는 강연의 단골 참석자였다. 고씨는 트위터를 통해서도 앰네스티 관련 활동을 홍보했다. 그러자 비난의 화살은 고씨를 넘어 고씨가 있었던 앰네스티로 몰렸다. 트위터네 나온 몇 가지 의견을 소개한다.

@198**** 앰네스티의 실체가 여성의 발가락을 빨고 싶다 이겁니다. @jo***** 앰네스티 한국지부 주소가 채찍 수갑 간호사복 비치되어 있는 럭스모텔 201호냐? @ibm***** 이제 '국제앰네스티'를 'DS 클럽' 정도로 생각할까 약간 걱정이 되는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온라인상의 대화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 사건과 관련된 사항을 확인한 후 정관과 규정에 따라 징계 등의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고씨는 앰네스티의 일반 회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앰네스티라는 조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막으려는 조치로 보인다. 그런데, 국제 앰네스티는 대체 무슨 책임이 있을까.

개인-전체 분리하지 못하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누리집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누리집
ⓒ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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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들 주장은 세 가지로 압축 가능하다.

주장① 고은태 교수는 앰네스티 위원이었다. 부도덕한 회원이 있는 단체는 부도덕하다.

개인의 책임은 곧 단체의 책임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개인과 전체를 분리하지 못하는 과잉 일반화다. 개인의 책임을 단체에 물을 수 있으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해당 단체가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게 그 행동을 행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거나, 단체가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 단체에 소속된 한 개인이 불가피하게 잘못을 저질렀어야 한다. 국제 앰네스티는 성희롱을 지시한 일이 없고, 인권을 알리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성희롱을 저질러야 할 배경을 구성원에게 제공한 일도 없다. 다만 앰네스티가 고씨의 행태를 알고도 방치한 경우라면 간접적 책임이 생길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사실은 찾을 수 없다.

주장② 고은태 교수는 앰네스티가 갖는 조직의 권위를 이용했다. 앰네스티는 부도덕한 회원에게 권위를 부여했다.

피해자의 주장이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피해자는 이 때문에 명시적인 거부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앰네스티에 책임이 있을까. 앰네스티는 고씨가 일반 회원이라고 했다. 고씨에게 부여된 구성적 권위는 없다. 만약 앰네스티가 고씨에게 실질적으로 '영향력 있는' 권위를 부여했다고 가정하자. 앰네스티가 부여한 권위는 인권운동에 활용할 권위를 부여한 것이지, '성희롱'에 써먹으라고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권위를 목적에 맞지 않게 활용한 고씨의 개인적 잘못이 더 커진다.

주장③ 앰네스티는 해당 회원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

특정 단체가 소속된 개인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단체도, 심지어 국가도 개인 행동을 모두 관리하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앰네스티가 소속 구성원들의 도덕성 유지를 위해, 회원들의 사적 생활을 관리하는 것은 형용 모순이다.

뜬금없는 곳에 비난의 화살 돌리지 않길

그렇다면 고씨가 하고 있던 '인권운동'에는 어떤 책임이 있을까. 인권은 특정 가치다. 특정 가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책임도 없다. 다만 어떤 가치를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에 이식할 때, 소수를 방치 혹은 배제하는 경우는 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자유·평등·박애'라는 가치 아래 사회적 소수였던 귀족에 대해 가해졌던 집단적 학살·폭행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은 '자유·평등·박애'에 있지 않다. 귀족들에게 폭행을 가했던 프랑스 민중에게 책임이 있다.

마찬가지로 고씨가 인권을 알리는 과정에서 성희롱을 하지 않았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책임은 고씨에게 있다. 

이렇게 몇 가지 가정을 통해서 책임 여부를 따져보는 이유는 비난의 화살이 개인이 아닌 엄한 곳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오롯이 고은태 교수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는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자숙에 들어갔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해당 여성과의 풀어야 할 일도 남았지만, 그것은 둘만의 문제다.

이번 사태가 앰네스티라는 단체, 인권이라는 가치를 부정하는 도구로 쓰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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