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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자체로부터는 극복될 수 없다. 사회주의, 평등과 정의를 지닌 진실한 사회주의를 통해서…. 우리는 사회주의를 다시 발견해야만 한다. 소련에서 보았던 그러한 사회주의일 수는 없다. 경쟁이 아닌 협동에 기반한 새로운 체제를 우리가 발전시킬 때 출현할 것이다."(2005년 1월 30일 세계 사회 포럼에서 차베스)

차베스에 대한 극단적 평가들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는 3월 6일자 뉴욕 타임스 기고를 통해, "차베스의 철학과 신념은 향후 대학, 정당, 보다 평등한 권력배분과 사회정의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 향후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논의될 것이며, 라틴아메리카 해방의 아버지 시몬 볼리바르가 차베스에게 영감을 줬듯이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논평했다.

우리 언론에서도 양 극단의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벌써부터 그의 공과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수많은 평가 속에서, 그의 정치적 견해나 통치 스타일을 잠시 접어두고 무엇보다 실제 그가 객관적으로 이룬 경제적 성과를 냉정하게 평가해보고 차베스 이후의 베네수엘라 민중의 삶을 전망해보려는 침착한 태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베네수엘라와 남미 민중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보여주었던 차베스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는 극심한 경제 침체와 빈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살인적인 물가에서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을, 차베스가 주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정치 지도자 차베스에 대한 주관적 선호를 따지기에 앞서 그의 14년 집권 기간 동안의 경제 실적을 객관적 자료에 토대하여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차베스 집권 기간 사이에 두 차례의 정치 경제적 충격을 받았다. 하나는 차베스 집권 초기에 두 차례의 자본파업과 석유파업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석유가격 폭락이다.
▲ [그림1]차베스 집권 전후 베네수엘라의 실질GDP 추세 베네수엘라 경제는 차베스 집권 기간 사이에 두 차례의 정치 경제적 충격을 받았다. 하나는 차베스 집권 초기에 두 차례의 자본파업과 석유파업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석유가격 폭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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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경제 성장 지표부터 살펴보자. 위 [그림1]은 차베스 집권 전후 베네수엘라의 실질GDP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차베스 집권 기간 사이에 두 차례의 정치 경제적 충격을 받았다. 하나는 차베스 집권 초기에 두 차례의 자본파업과 석유파업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석유가격 폭락이다.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베네수엘라 경제

1999년 2월 차베스가 취임한 이래 14년 동안 베네수엘라 경제는 46% 성장했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대략 2.7%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차베스 집권 이전 거의 20년 동안 성장률 정체에 비하면 상당한 성과지만 그리 썩 놀라운 수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두 차례의 자본파업과 석유파업으로 GDP의 29%가 감소한 집권 초기를 고려하지 못한 평가다. 재정수입의 50%와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국영석유회사(PDVSA)를 통제하기 시작한 2003년부터  계산하면 10년 동안 성장률은 5.6%에 달한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을 받기 이전인 2003년부터 2008년 2사분기까지 성장률은 연평균 13.5%에 달할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거의 두 배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그 기간 1인당 소득 증가율 또한 연평균 11.7%에 달한다. 자본파업으로 경기침체가 발생하기 전 정점으로 회복한 2004년 3분기를 기준으로 해도 성장률은 8.8%, 1인당 성장률은 6.9%에 달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남미 지역의 성장률을 잠깐 언급하면, 1960년 이후 20년 동안 남미 지역의 1인당 경제성장률은 3.3%에 달했다. 반면 80년 이후 20년 신자유주의 기간 1인당 성장률은 0.3%에 불과했다. 20년 동안 불과 5.7%만큼만 소득이 증가한 것이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1980년 1인당 소득은 8.458달러였지만, 2000년 소득은 8504달러로 거의 변함이 없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20년은 남미 역사에 '잃어버린 20년'이라 기록해도 무방할 것이다.

차베스 집권 전 남미 1인당 경제성장률 연 0.3%에 불과

그런데 1999년 차베스가 취임하고 연이어 좌파 정권이 집권한 이후 10년 동안 연평균 1인당 성장률은 2%를 기록했다. 차베스 집권 이전 20년 동안(1978~1998년) 베네수엘라의 1인당 소득은 21.5% 감소했다. 서부 사하라 이남을 제외하고 20세기 최악의 경제적 성과를 기록한 나라가 베네수엘라다. 70년대 석유가격은 지금보다 더 높았고 더 빨리 상승했지만, 국민소득은 하락하고 대외부채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기형적인 나라가 바로 베네수엘라의 과거였다. 다른 남미 지역 혹은 베네수엘라의 과거와 비교해도 차베스 집권 시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평가하는데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속한 경기회복은, 석유가격에 의존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국제 석유가격은 2008년 4사분기에 50% 폭락했다. 재정수입의 80%를 차지하는 석유가격 폭락과 세계경제 침체는 베네수엘라 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정부의 경기 조절적 재정지출 증가와 석유가격 회복은 2010년 2분기부터 11분기 연속 성장세를 유지한 바탕이 되었다. 2011년 4.2%, 2012년 5.5% 성장률로 베네수엘라 경제는 최근 양호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민간과 비석유 부문이 경제성장을 주도할 정도로, 차베스 시대는 미래 경제의 구조적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실업률은 1998년 11.2%에서 자본파업에 따라 2003년 18.1%로 치솟았지만, 이후 경제성장과 사회적 경제의 확대로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에는 7.3%까지 떨어졌다. 이후 경기침체로 2010년 8.6%까지 상승한 실업률은 경기회복에 따라 작년 말 8%까지 떨어졌다.

차베스의 유산, 볼리마르 미션을 통한 사회적 경제

한편 차베스가 남긴 가장 크고 훌륭한 유산은 바로 수많은 볼리바르 미션이 상징하는 '사회적 경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재정수입의 50~60%를 사회복지에 지출하고 있는데, 1999년 GDP의 12.8%에서 2011년에는 22.8%까지 사회적 지출 비중이 상승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사회적 경제는 중앙정부의 재정지출뿐만 아니라, 국영석유회사와 국가개발펀드의 직접적인 사회적 지출과 투자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 이들을 모두 포함할 경우, 1999년 GDP의 24.5%에서 2006년에는 40%까지 상승했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다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GDP의 30% 가량을 사회적 지출에 쏟아 붓고 있다.

빈곤률은 1998년 48.7%에서 2011년 27%로 44.6% 감소했다. 같은 기간 극 빈곤 가구는 19%에서 2011년 7%로 2/3 정도 감소했다.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8년 0.49에서 2011년 0.39로 20% 정도 감소했다.
▲ [그림2]차베스 시대 빈곤율과 소득분배율 빈곤률은 1998년 48.7%에서 2011년 27%로 44.6% 감소했다. 같은 기간 극 빈곤 가구는 19%에서 2011년 7%로 2/3 정도 감소했다.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8년 0.49에서 2011년 0.39로 20% 정도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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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유엔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유엔 밀레니엄 개발 목표'에서 제시된 8개 과제 중 베네수엘라는 빈곤률 등 상당한 과제를 앞당겨 수행하고 있다. 2010년 유엔총회 의장인 트레키는 베네수엘라를 방문하면서, "다른 국가들은 밀레니엄 개발 목표와 관련하여 베네수엘라가 달성한 업적들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회적 경제에 재정지출을 투자한 결과, 차베스 집권 기간, 특히 2003년 자본파업이 종료된 이후 소득분배는 상당히 개선되었다. 빈곤률은 1998년 48.7%에서 2011년 27%로 44.6% 감소했다. 같은 기간 극 빈곤 가구는 19%에서 2011년 7%로 3분의 2 정도 감소했다.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8년 0.49에서 2011년 0.39로 20% 정도 감소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지니계수가 급격히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이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차베스 사후 베네수엘라 경제는 지속 가능할 것인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언론은 베네수엘라의 사회적 경제를 포퓰리즘으로 폄하하며, 석유가격이 붕괴하면 베네수엘라 경제도 머지않아 붕괴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어떤 경제체제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평가한다면 그 이유는 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하기 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의 부동산 버블이 대표적이다. 또는 한 나라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대외부채가 누적되거나, 부동산버블로 가계부채가 누적될 경우 불가피한 조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베네수엘라는 어떨까? 국가채무와 경상수지, 그리고 인플레이션이라는 차원에서 각각 평가해보자. 우선 2012년 기준 베네수엘라의 GDP대비 정부부채는 IMF 공식 자료에 따르면 51.6%에 달한다. 차베스가 취임할 당시 38%(2003년 49.3%)에서 경제성장에 따라 2008년 26.3%까지 줄어들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으로부터 360억 달러를 차입했기 때문에 늘어났다.

IMF 자료에는 국영석유회사(PDVSA) 부채 349억 달러(2011년 기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중앙정부의 부채는 GDP 대비 25.1%(2011 기준)에 불과하다. GDP대비 정부부채가 100%를 상회하는 남유럽이나 다른 선진국 국가들에 비하면 베네수엘라의 재정건전성은 양호한 편이다.
           
베네수엘라 재정건전성 양호, 경상수지 흑자, 물가 안정

또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일환으로 추진된 중국으로부터의 차입은 현재 225억 달러가 남았는데, 리보 금리에 1~2% 가산 금리를 더한 것으로 통상의 남미 국가의 대외 차입 금리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낮은 이자 부담과 매년 20억 달러의 원금 상환도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에 견주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면 경상수지를 살펴보자. 작년에 베네수엘라는 GDP의 7.4%에 달하는 248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석유가격 폭락으로 2분기 연속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차베스 집권 이후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현재 베네수엘라의 외환보유고는 270억 달러에 달한다. 통상 외환보유고는 총 수입액의 3개월이면 적정하다고 하는데, 이는 5개월 치를 초과하는 규모다. 현재 수준의 외환보유고도 경제규모와 대외부채 수준에 견주어 충분하지만,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 구조에 따라 외환보유고 또한 더 늘어날 것이다.

세 번째로, 베네수엘라 경제에 지속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남미의 고질병인 높은 물가상승률을 살펴보자. 아래 [그림 4]로부터 차베스 집권 전후, 물가상승률에서 비약적인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3년 2월부터 2006년 5월까지 경제가 급격히 확장할 때, 물가상승률은 38.6%에서 10.4%까지 떨어졌다. 당시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7% 성장률을 기록했다.
▲ [그림3]차베스 집권 전후 물가상승률 추세 2003년 2월부터 2006년 5월까지 경제가 급격히 확장할 때, 물가상승률은 38.6%에서 10.4%까지 떨어졌다. 당시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7% 성장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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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부터 2006년 5월까지, 경제가 급격히 확장할 때, 물가상승률은 38.6%에서 10.4%까지 떨어졌다. 당시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7% 성장률을 기록했다. 통상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을 통화 공급량 확대나 정부의 인위적인 환율 평가절하라고 분석하지만, 이는 베네수엘라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경제는 급격히 성장하는데 물가상승률이 떨어진다면 이는 공급 측면의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20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따라 제조업이 붕괴되어 발생하는 공급 부족 현상이 베네수엘라 물가상승의 주범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베네수엘라 정부는 경제성장을 유지하면서 물가상승률을 억제할 수 있는 거시경제 수단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포스트 차베스 시대, 베네수엘라의 미래

IMF 자료에 따르면, 차베스 집권 이전인 1980~1998년 기간 중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무려 14% 감소했다. 20년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된 결과 국민경제가 사실상 붕괴된 것이다. 그러나 차베스 집권 이후, 특히 2003년 자본파업이 종료되고 석유부문을 정부가 통제된 이후 1인당 소득은 급격히 늘어났다. 다만 2012년 말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2005 볼리바르였는데 이는 1980년의 2110 볼리바르에도 여전히 미치는 못하는 수준이다. 달러로 환산하면 만 천 달러에 해당한다. 

차베스 집권 이전인 1980~1998년 기간 중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무려 14% 감소했다. 차베스 집권 이후 특히 2003년 자본파업이 종료되고 석유부문을 정부가 통제된 이후 1인당 소득은 급격히 늘어났다.
▲ [그림4]차베스 집권 전후 1인당 국민소득 차베스 집권 이전인 1980~1998년 기간 중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무려 14% 감소했다. 차베스 집권 이후 특히 2003년 자본파업이 종료되고 석유부문을 정부가 통제된 이후 1인당 소득은 급격히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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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의 경제정책은 점진적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국가의 사회복지 지출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규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극복하면서 통상적인'제3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기존 제3의 길이 국가와 시장의 결합이라면, 베네수엘라는 국가와 시장에 사회적 경제를 혼합한 이른바 '제4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21세기 사회주의라 일컫는 '제4의 길'의 4기 집권을 앞두고 차베스는 세상을 떠났다. 지난 14년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과 남미 좌파 블록 형성을 진두지휘했던 선봉장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차베스는 미국의 CIA가 개입한 군부 쿠데타와 두 차례의 자본 파업과 석유 파업을 이겨내면서 14년 동안 베네수엘라의 경제와 정치를 포함하여 사회 모든 분야를 개혁했다. 집권 기간 14차례의 선거에서 13번 승리할 정도로 국민의 지지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포스트 차베스 시대를 전망하면서 베네수엘라와 남미의 불안한 정치경제적 미래를 전망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차베스가 투병 중이던 지난 해 12월 주지사 선거에서 집권당인 통합사회주의당은 23개 중에서 20개 주에서 승리했다. 기존에 차지하던 15개 주보다 5개 주가 더 많아진 것이다. 통합사회주의당 당원이 7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정치적 기반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미에는 2000년대 이후 차베스의 친구들이 계속적으로 집권하고 있다.

2007년 첫 집권에 성공한 에콰도르의 꼬레아는 올해 초 압도적인 표차로 3선 대통령이 되었다. 브라질에서는 룰라가 연임에 성공한 이후, 2010년에 룰라의 뒤를 이어 호세프가 세 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볼리비아에서는 최초로 원주민 대통령이 된 모랄레스가 2009년에 연임에 성공했다. 우루과이에서는 월급의 90%를 기부하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유명한 무히카가 2010년부터 두 번째 집권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크리스티나가 2011년에 역시 압도적인 표차로 남편의 뒤를 이어 집권에 성공했다.

남미에서는 1980년대 이후 20여 년 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국민경제를 붕괴시켰고, 좌파는'신자유주의'반대를 명확히 내걸고 당선되었다. 주지하듯이 1999년 차베스의 집권은 남미 좌파 블록 형성의 서막이었다. 이들은 당선이 된 이후, 차베스의 새로운 사회경제정책을 자기 국가의 특성에 맞게 차용하여 추진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새로운 경제정책은 사회복지와 경제성장 그리고 경제적 안정을 가져왔다. 이러한 경제적 성과가 정치적으로 연이은 재집권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5000억 배럴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지닌 나라다. 이 중 매년 10억 달러를 채굴하고 있다. 서방의 비극적 예언과 달리 석유가격이 반토막 났어도 2008년 세계적 경기침체를 빠르게 회복했다. 대외부채, 실업률, 물가상승률, 경상수지 등 여러 거시경제 변수를 살펴보아도 정치적 안정만 지속된다면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개선은 지속될 것이다. 이는 비단 베네수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차베스는 죽었지만, 남미의 다른 국가에서 기존의 경제정책을 지속한다면 남미의 좌파 블록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차베스는 생전에 한쪽에서는 '악마', 다른 쪽에서는 '천사'로 불리곤 했다. 그가 '악마'로 묘사된 까닭은 그의 지나온 행적이 그들의 이익과 반했기 때문이다. 민중을 세상에서 가장 천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악마'와 '독재자', 민중을 세상만물의 주인이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천사'와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경훈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태그:#차베스, #베네수엘라, #차베스 경제정책, #볼리바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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