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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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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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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명의 승객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행기 잔해도, 시신의 일부도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사건은 공중폭파에 의한 추락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런 와중에 범인이 잡혔다. 바로 북 특수공작원 김현희라는 인물이다. 사건은 '북의 지령에 의해 비행기가 폭파되어 승객과 기체 모두가 영원히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바로 대한항공858기 실종 사건이다. 때는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87년 11월 29일이다. 위치는 인도양 미얀마 해상. 오리무중 같은 사건은 일사천리로 처리된다. 12월 15일 대선을 하루 앞두고 범인 김현희가 서울로 압송된다.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민심은 온통 김현희에 쏠리고, '지령을 내린 북의 만행'에 분노가 넘쳐난다. 자연스럽게 다음날 치러진 대선에서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가 당선된다. 이렇듯 대한항공858기 사건은 군부독재 민정당의 정권 연장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당시 안기부는 범인 김현희에 대해 짜 맞춘 듯 수사내용을 발표한다. 사건 발생 이틀 만에 김현희 신병을 확보하고, 삼 일째 정부는 긴급 국무회의를 통해 사건을 '북의 테러에 의한 공중 폭파'로 규정한다. 12월 15일 김현희의 서울 압송과 31일 내국인 실종자 113명 전원에 대한 사망 처리, 1988년 1월 15일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1월 20일 미국 국무성의 북 테러지원국 지정으로 이어진다.

사건은 이후 1989년 4월 25일 1심과 7월 22일 2심에서의 사형 선고, 다음해 3월 27일 대법원의 사형 선고 확정 그리고 보름 뒤 김현희에 대한 전격적 대통령 특별사면 단행과 안기부 촉탁직원으로의 채용 발표 그리고 1997년 안기부 직원과의 극비 결혼과 잠적으로 정리된다. 이로써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극악무도한 테러범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사상 초유의 사면 조치로 끝을 맺은 대한항공858기 실종 사건의 전말은 한 마디로 의혹 덩어리로 덮인, 허점투성이의 각본에 의해 실행된 조작이라는 의심에 휩싸인다.

폭파범에 대한 불구속 기소와 사형 선고 보름 만의 특별사면 등 초법적 조치

이후, 상식적으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사건 실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김정대·신성국 신부와 역사가인 서현우씨는 안기부의 수사발표문과 김현희의 자필 진술문, 검찰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등을 샅샅이 뒤지면서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의혹들을 파헤친다. 이들은 사건 발생 25년간 방대한 기록과 현장 탐방, 증언 등을 통해 사건의 범인 김현희의 실체를 조명한다.

안기부와 사법당국이 결론 내린 '폭파범 북 공작원 김현희'에 대한 숱한 의혹들을 제시한 <칼858 전두환, 김현희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출간됐다. 25년간 한 길에서 사건을 추적한 이들 3명이 '거짓을 고발하고 진실을 전하는' 성경 정신에 의거해 펴낸 책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진실뿐이다"라는 것이 이 책의 정신이자 목적이다.

책은 '특수교육을 철저히 받은 북의 대남 정예 공작원'이라는 김현희가 자필 진술서와 안기부의 수사발표문에서 드러낸 갖가지 의문과 거짓을 하나하나 지적한다. ▲김현희의 평양 주소지 혼동 ▲북 정부로부터 받은 공로메달에 대한 혼동 ▲아버지에 대한 기억 혼란 ▲공민증과 당증번호 기억 못함 ▲각종 말 바꾸기 등등. 특히, '김현희가 북 출신'이라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북측 화동에 대한 거짓 판명 등을 통해 김현희라는 실체에 대해 강한 의혹들을 제기한다.

"미국제 폭약 사용, 그러면 천안함 폭파 '1번 어뢰'와 같이 미국이 범행"

또한, 책은 당시 정부가 취한 태도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항공기 추락이라는 특수 사건에 대해 10일이라는 짧은 수색기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한 발빠른 수사결과 발표 ▲사건을 대선에 활용하려는 '무지개 공작' 문건 ▲일사천리로 진행된 보상 합의와 실종자 사망 처리 ▲안기부 수사단장의 거짓말 등을 지적하며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특히, 안기부가 주장한, 김현희가 비행기 폭파에 사용했다는 미국제 폭약 'PLX'와 관련해 "미국 정부와 미군의 엄격한 관리 아래 놓여 있어야 할 미국산 폭약 또는 폭발물 PLX가 적성국 북이 테러에 이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다음과 같이 꼬집는다.

"결론적으로 안기부의 PLX 언급은 안기부 스스로 칼858기 사건 수사발표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자, 안기부의 무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경우가 된다.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사건의 경우, 사고해역에서 수거되었다는 어뢰에 쓰인 매직 글씨 1번이 북한식 표기이기에 북한제 어뢰에 의한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지은 경우의 논리를 적용하면, 칼858기 폭파는 미국제 폭약 PLX에 의한 것이기에 미국에 의한 폭파 테러로 결론지어야 마땅할 것이다."

책은 '김현희의 남자들' 편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적시한다. 전두환과 노태우 당시 대통령, 정형근 안기부 수사국장과 김기춘 검찰총장, 이회창 대법관, 최광수 외무부장관 등의 짜 맞추기 수사진행과 발언 등의 행태를 고발하며 역사적 책임을 묻는다.

87년 6월 항쟁으로 분출된 민주주의 열망으로 기대를 모았던 13대 대선을 결정적으로 뒤흔든 대한항공858기 실종 사건의 전말은 법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의혹과 함께 유가족들의 한은 그대로다. 그렇기때문에 무엇하나 제대로 된 해명이 없는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사건 발생 26년을 맞는 올해, 관계자들의 양심선언이라도 나오길 기대한다. 그것이 망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진실은 살아 있다'라는 진리를 확인할 유력한 방안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힘든 진실 찾기에 혼신을 바친 저자 김정대·신성국 신부와 서현우 역사가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사람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KAL858 - 전두환, 김현희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정대 외 지음, 나이테미디어(2012)


태그:#칼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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