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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0년 쌀쌀해지는 가을 문턱에서 인사하고 2년 반만입니다. 그 사이 저는 당시 국내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얼마지 않아 필리핀 이국에 가서 반년을 살았고, 돌아와 어느 시민사회단체에서 1년을 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 새 삶을 꾸린 지 3개월여가 됐습니다. 언뜻 다사다난해 보이나 사는 모습은 그대로, 세월만 흐른 것 같습니다.

고향이라지만 16년만이고, 부모님 외 모든 게 낯설어 한동안은 정리하고 적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 생각이 들어 다시금 길 위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떠나고 돌아오는 것의 반복이나 이젠 여행의 끝이 언제나 '진짜 집'인 것이 행복합니다. 살아있는 한 이 편지 끊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간절곶 해안
 간절곶 해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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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간절곶 가는 길

봄 느낀 지 한참인데 작정하고 나서면 어김없이 춥습니다. 하지만 맘이 앞서면 몸도 따르는 법. 오늘 향한 곳은 울산 울주군 간절곶입니다. 저 사는 곳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약 3시간 만에 닿는 곳입니다. 동북아에서 가장 빠른 해돋이로, 사람 키 서너 배쯤 되는 소망우체통으로 꽤 유명한 장소지요. 이미 여러 번 왔던 곳인데 다시금 오고 싶었습니다.

39번 버스를 타고 기장 시장에 하차, 3번 마을버스 타고 월내 시장에 하차, 다시 715번 버스 타고 간절곶 입구에 내렸습니다. 기장에서 월내를 잇는 버스는 이 외에도 마을버스 8-1번, 9번, 일반버스 180번이 있는데 각기 타는 곳이 다르고 배차간격도 20분부터 최대 75분이니 도착 시각과 운행표를 참조해 한곳에 발 묶이는 일 없길 바랍니다.

지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 기장에서 간절곶 사이 풍광의 아름다움입니다. 차창에서 보면 바다가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하고, 닮은 듯 다채로운 그 색과 느낌이 흡사 만화경을 보는 듯 합니다. 옹기종기 붙은 낮은 집들과 사이사이 좁은 골목길은 알록달록 예쁘기도 정겹기도 합니다. 이동, 동백, 문중, 나사리…, 바다가 보일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키작은 등대들은 이방인을 향해 순진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개구쟁이 아이 같습니다.   

몇 번이나 내리고픈 충동을 누르고 환승지점인 월내 시장에 도착. 이번엔 맘먹고 하양, 빨강 두 등대가 손짓하는 월내항으로 척척 걸어 갔습니다. 번쩍번쩍 요란한 가게가 아닌 잔잔한 생활이 펼쳐진 진짜 어촌입니다. 봄볕에 몸 말리는 미역향이 코 안 가득 퍼졌습니다. 시원하고 향긋했습니다. 이렇게 2~3월에 바짝 말려 힘있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기장미역'이 완성된다는군요.

월내항 입구 미역 말리는 모습
 월내항 입구 미역 말리는 모습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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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 위에 낚시꾼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바다 곁에 사니 가까운 날 저도 이 '손맛' 한번 봐야겠습니다. 등대를 돌아 나오는데 예닐곱 되는 중년 남녀가 직접 잡은 물고기로 만찬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숯불에 구운 학꽁치와 초장 양념에 야채와 같이 버무린 전어가 주인공입니다. 차마 한입 주십사 말할 변죽은 없고 정말 사진 한장만 담아가려 허락을 구했더니 "사진은 나중에 찍고요, 기똥찬 거 맛부터 보라"며 음식을 권했습니다.  

'캬~!' 소주 없이도 감탄사가 절로. 누가 생선맛이 비리다 했을까 의문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막걸리 두어 병 사와 아예 눌러앉고 싶었으나 자고로 아쉬울 때가 멈출 때요, 갈 길은 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마을 들어설 때부터 내내 눈에 밟히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리원자력발전소였습니다. 파란 하늘과 바다, 작은 집과 배, 그 안에 사는 작은 사람들과는 대조되는 회색의 둥글고 네모난 건물들, 그 옆산에 촘촘히 박힌 송전탑과 널린 전선들.

이질감의 정체는 '불안'이었습니다. 다수 사람들이 원자력 발전의 유용성에만 기댈 뿐, 그 이면의 위험과 무지에 대해선 눈, 귀, 입을 닫고 있습니다. 일본 원전사고에서 보듯 그것은 언제고 다양한 이유로 통제 불가해질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한 위해(危害)는 규모, 형태, 시기 무엇 하나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사고 발생 직후보다 되레 수백 배 증가한 방사성 물질이 2년이 지난 현재 살아있는 동식물에서 검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동시대에 존재하지 않은' 미래 생명에까지 그 영향력이 미칠 수 있음을 대를 잇는 원폭 피해자들을 통해 목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실은 인간 전부에 대해) 기술은 물론 의식적 측면에서 원자력 활용이 적절한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지난달 바로 이 고리원전에 전기 공급이 끊겼을 때 그 사실은 곧바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우리 법원은 아마도 '실제로 사고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 책임자들을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게다가 인류가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이 영역에서마저 납품비리나 불법하도급 등 '지극히 인간적인' 부정부패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그 까닭입니다.

현명한 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취하는 것의 '양면'을 봐야하겠지요. 음…….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끊어선 안 될 의문의 고리입니다. 만약 앞으로, 이번엔 정전이 아닌 실제 방사능 누출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관련자들이 다시금 입을 닫는다면 오늘 제가 만난 사람들, 제가 먹은 물고기, 이곳의 땅과 바다는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삽시간에 "바람과 물을 타고 여행(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인용)"을 시작해 당신과 내가 사는 곳은 물론 저 극지방 어느매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바다낚시꾼과 어민들의 삶터인 월내항 저 뒤로 고리원자력발전소와 산 위에 촘촘히 박힌 송전탑들이 보인다.
 바다낚시꾼과 어민들의 삶터인 월내항 저 뒤로 고리원자력발전소와 산 위에 촘촘히 박힌 송전탑들이 보인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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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불안한 생각에 잠겨 간절곶까지 이르렀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솔숲을 따라 3분여  걸어 내려오면 시원한 바다가 펼쳐집니다. 덕분에 가슴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빨강과 초록이 선명한 소망우체통이 보입니다. 오늘도 우체통은 행복해지고 싶은, 이미 행복한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저는 월내항에서 반쯤 채운 위를 마저 채우려 매점부터 들렀습니다. 작은 사발면, 설탕과 케첩 바른 핫도그를 샀습니다. 아이 팔뚝만한 노란 찰옥수수와 탱글탱글 물오뎅도 먹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식사 마치고 한참이나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부서지는 파도를 구경했습니다. 이곳 간절곶 바다는 정말이지 박력이 있습니다. 바위는 거칠고 탄탄한 피부에 덩치 좋은 사내 같고, 그 바위에 달려와 온몸으로 부딪히는 파도는 그런 사내 여럿 휘어잡는 풍만한 몸매에 얼굴 예쁜 여인 같습니다. 견디다 못해 길거리 카페촌 한 찻집에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웬지 갑갑한 기분이 들어서요. 그리고 바닷길을 따라 몇 분 더 걸었습니다.

오늘 여정은 여기까지입니다. 버스 배차 간격을 예상해 나왔으나 기다림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지난 번 한 시간에 비하면 오늘 20여 분은 참을만 했습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길 다니기 좋겠습니다. 뭐, 얼마지 않아 분명 그리될 것이고 또 금새 덥다 투정부릴 날이 오겠지만요. 다시 편지할 때까지 즐겁게, 잘 사십시오.

간절곶 소망우체통
 간절곶 소망우체통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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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돌 프로젝트

■ '소원돌 프로젝트'란?

이 프로젝트는 본인이 부모님 계신 고향에 내려와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고자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제 꿈을 현실로 당겨오기 위해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동안 한편으론 외로운 맘에서 여정의 의미를 더하고 싶었고, 또 한편으론 나와 함께 다른 이의 소원도 이뤄지길 바라면 같이 행복해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저는 최근 제 첫 번째 소원을 정말로 이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또다른 소원을 위해 다시금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 여정 안에 소원돌 프로젝트도 이어 가겠습니다. 여러분의 소원돌 프로젝트 참여를 기다립니다.

■ 참여 방법
1. 소원 접수 - 사는 곳, 나이, 이름, 소원을 적어 보낸다.
(오마이뉴스 쪽지, 본인 이메일 gaegosang@naver.com, 페이스북 메시지 /2012activist)
2. 소원돌 인증샷 수신 - 여정 중에 느낌이 오는 장소에서 소원돌 의식을 치른 뒤 그 주인에 인증샷을 보내 드립니다. (인증샷 받으실 분은 본인 이메일 또는 전화번호도를 알려주십시오.)
3. 소원돌 인증샷은 제가 운영하는 작은 여행자의 집 '소원벽'에 전시됩니다.

■ 이번 소원돌 프로젝트 두 주인공은 진소영 님과 유임경 님입니다. 소원은 그 주인과 저, 그리고 돌만이 공유합니다. 

진소영 님(왼쪽)과 유임경 님의 소원돌입니다. 두 분 소원 꼭 이뤄지시길!
 진소영 님(왼쪽)과 유임경 님의 소원돌입니다. 두 분 소원 꼭 이뤄지시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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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여행 경비

교통비>
(39번 버스 1080원+3번 마을버스 환승 적용 200원+ 715번 버스 1100원)×2=4760원
식비>
간절곶 매점 작은 사발면 1500원+핫도그 1500원=3000원
집에 오는 길 골목시장 수제오뎅 9조각 1500원+막걸리 2병 2600원=4100원

총 11860원

■ 정보

간절곶 바다 앞 '다방 미스 리'에서 카페 인수할 분을 찾고 있습니다.

'다망 미스 리'
 '다망 미스 리'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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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길 위에서 쓰는 편지]는 지난 2010년 7월부터 9월까지 32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태그:#월내항, #간절곶, #송전탑, #고리원자력, #소망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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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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