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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서도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는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참 골고루 있는 것 같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쉐프샤우엔에서도 예외 없이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을 골고루 만날 수 있었다.

산 중턱에 있는 베르베르인 마을인 쉐프샤우엔 전경. 푸른 건물들이 늘어선 마을과 초록의 산이 멋들어지게 어울어져 있다.
 산 중턱에 있는 베르베르인 마을인 쉐프샤우엔 전경. 푸른 건물들이 늘어선 마을과 초록의 산이 멋들어지게 어울어져 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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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짐을 끌고 메디나에 있는 숙소로 향하는 길, 열심히 숙소 주소와 가는 길을 적어왔지만 정작 도착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에게 주소를 보여주면서 길을 물어보니 한결같이 손을 쭉 뻗어 언덕 위쪽을 가리킨다.

고맙게도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시고 "모로코에 온 걸 환영해요"라며 기분 좋은 인사까지 덧붙여주시는 아저씨도 있고, 자기도 어차피 그쪽으로 간다며 미로 같은 골목길을 뚫고 있는 호스텔 앞까지 데려다준 파티마도 있었다.

워낙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마을이지만 골목을 몇 개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마을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워낙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마을이지만 골목을 몇 개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마을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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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마을을 둘러보러 나왔을 때는 이곳저곳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는 골목길 때문에 마을 '구경'보다는 '탐색'하게 되었다. 그것도 여자 둘이라 경계태세가 단단히 갖추며 탐색하여서 그런지 제대로 풍경을 즐길 수 없었다. 이렇게 둘이 조금만 걸으니 큰 공터가 나온다. 큰 나무가 한 그루가 늠름하게 서 있고, 그 주위에는 할아버지들이 질레바를 입고 오순도순 수다를 떨고 계신다.

마을 중간에 큰 나무와 모스크가 있는 곳 주위에는 질레바를 입은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모여 수다를 즐기고 있다.
 마을 중간에 큰 나무와 모스크가 있는 곳 주위에는 질레바를 입은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모여 수다를 즐기고 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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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청년들도 삼삼오오 카페에 모여서 대낮에 수다를 즐기고 있다. 그 뒤로는 모로코 특유의 풀이 낮게 듬성듬성 난 산이 장관을 이룬다. 다시 왼쪽 오른쪽 고개를 돌리며 살며시 골목으로 들어가니 '파란 마을'이라는 명성이 어울릴 만큼 다양한 하늘색으로 칠해진 벽이 펼쳐진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 가게가 주를 이룬다. 가죽가방, 액세서리, 쉐프샤우엔의 파란 벽을 그린 조금한 그림 등이다. 하지만 가끔 화덕에서 구운 빵을 이고 황급히 어디를 향하는 여자들도 보인다.

쉐프샤우엔 골목 안 풍경.
 쉐프샤우엔 골목 안 풍경.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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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심스레 구경을 하다가 한 청년을 만났다. 자기 집 옥상으로 올라오면 쉐프샤우엔의 정경이 보인다고 한다. 우리는 그 말이 썩 믿음직스럽진 않았지만 선한 그 청년의 인상과 쉐프샤우엔 메디아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말에 함께 가보기로 했다.

우연히 초대받은 청년의 집 옥상에서 본 마을 풍경은 또 다르다.
 우연히 초대받은 청년의 집 옥상에서 본 마을 풍경은 또 다르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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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고향은 사하라라는 이 청년은 지금 쉐프샤우엔에 혼자 살고 있다고 한다. 사하라 청년답게 머리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몸에는 통풍이 잘되는 파란 옷을 입고 있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치고는 굉장히 깔끔했는데 살림은 옷가지와 타진 그릇 몇 개 노트북이 전부였다. 밖으로 이어지는 방문은 물론이고 옥상과 이어지는 문도 활짝 열어두었다.

서로 자기소개를 간단히 마치고 청년은 서사하라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준다며 컴퓨터를 켰다. 사하라에서 사막투어 가이드를 해주었을 때 한국인들과 찍었던 사진을 자기가 더 신나하면서 보여주었다.

사하라에서 가이드로 일 할때 사진을 보여주는 청년
 사하라에서 가이드로 일 할때 사진을 보여주는 청년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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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다 본 후 그가 자랑하던 옥상으로 가보았다. 빨래를 하였는지 빨랫줄에는 밥말리 사진이 프린트된 티셔츠와 전통의상이 나란히 걸려있다. 밖을 바라보니 모로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산이 바로 앞에 있고, 아래에선 볼 수 없었던 옥상에서 낮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쉐프샤우엔 해 저무는 풍경.
 쉐프샤우엔 해 저무는 풍경.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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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을 옮기려니 어김없이 바닥에 액세서리를 하나씩 꺼내 펼쳐 논다. 보통 같았으면 '어쩐지 이럴 줄 알았어' 하며 실망했겠지만 혼자서 이렇게 삶을 꾸려나가는 청년에게는 이게 일이라는 생각과, 진심으로 웃으면서 자기 사진을 보여주었던 모습 때문에 고심 끝에 팔찌하나를 집어 들고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수다를 즐기다 목거리, 팔찌를 늘어 놓는 청년.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줘서 야속하지는 않다.
 아니나 다를까 수다를 즐기다 목거리, 팔찌를 늘어 놓는 청년.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줘서 야속하지는 않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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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청년이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상인은 호객행위를 하다가 물건을 구입하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태도가 바뀐다. 1년에 이백만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붉은 도시' 마라케시의 상인들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이런 상인들 때문에 '내가 이 사람들한테는 돈으로 보이는가 보다'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여기에서도 길을 걷는데 물건 값을 한창 깎아놓고 안 사갔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저씨가 있었다.

강한 인상의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이 베르베르인 전통 의상.
 강한 인상의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이 베르베르인 전통 의상.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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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가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 지역 현지사람이 우리를 보고 어떤 나라 인사말을 하는지에 따라서 여기에 아시아의 어느 나라 관광객이 많이 찾는지 알 수 있다. 대부분 지역에서는 '재키찬'(성룡)의 명성 덕분에 "니하오!"라는 인사말을 많이 듣지만 여기 쉐프샤우엔은 확실히 일본관광객이 많이 찾는 것 같다. 가는 곳마다 "곤니찌와, 곤니찌와!" 하니 말이다.

모로코 인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걸어오는 경우는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작년에 벽화마을로 유명한 아실라에 놀러 갔을 때 한 상점에서였다. 얼굴만 보고서는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고 우리말로 인사를 걸어오셨는데 깜짝 놀라 어떻게 한국인인지 알았냐고 물어봤다. 그분은 자기 이웃이 아실라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한국인 부부라며 그들이 한국말을 조금 알려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꿈에 그린 마을 같은 아실라에는 이렇게 정착해서 사는 한국인들이 몇몇 있다고 덧붙여 주셨다.

쉐프샤우엔에서도 한 상인이 우리말로 인사를 걸기에 물어봤더니 이번에는 이 지역에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사람들이 파견 와서 근무를 한다고 귀뜸해 주었다.

고양이가 유독 많은 모로코. 쉐프샤우엔도 예외가 아니다.
 고양이가 유독 많은 모로코. 쉐프샤우엔도 예외가 아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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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서 이상한 사람도 꼭 만나다.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자꾸 우리를 따라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길가에 우리 말고는 사람이 없어서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메디나에 도착할 때까지 따라오기에 눈길을 주니, 순화를 해서 말하자면, 자기와 놀아볼 생각이 없냐고 한다. 어이가 없어서 웃어넘겼지만 역시 이상한 사람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걸 확인해주었다.

여행하면서 좋은 사람만 만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나쁜 사람과 이상한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하나 꼽자면 이 사람들 덕분에 좋은 사람이 더욱 소중해진다는 것이다.

창문 옆의 또다른 창은, 챰을 내는 대신 그림한점으로 대신했다. 소박한 쉐프샤우엔은 내게 도시전체가 예술처럼 느껴졌다.
 창문 옆의 또다른 창은, 챰을 내는 대신 그림한점으로 대신했다. 소박한 쉐프샤우엔은 내게 도시전체가 예술처럼 느껴졌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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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모로코의 보석, 마라케시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쉐프샤우엔, #모로코,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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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한 만큼 다른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모든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세계에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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