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최강서씨가 사측의 민주노조 탄압 중단과 158억 손배가압류 철회를 촉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

한진중공업은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노동조합의 교섭 요청을 거부했다. 한진중공업 기업노조는 지난 14일 '고 최강서열사 문제 해결에 대한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성명서'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정치투쟁 변질' '수주활동 장애' '교섭대표 노동조합' 등을 운운하며 최강서씨의 죽음과 유가족의 심정을 모독했다.

최강서 노동자 투쟁 26일 차인 지난 15일, 부산 영도 구민장례식장에서 최강서씨의 부친인 최용덕(64)씨를 만나 아들을 잃은 심정과 한진중공업 사측에 바라는 바를 들어봤다. 최용덕씨는 "내 아들 강서의 죽음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에 의한 간접살인"이라며 빠른 시일 내 아들의 유언이 실현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정리해고 된 아들, 집 찾아와서 했던 말 "어떻게 사나"

고 최강서씨 아버지 최용덕씨.
 고 최강서씨 아버지 최용덕씨.
ⓒ 노동과세계 변백선

관련사진보기


- 한진중공업에서 일하셨는데 언제 입사해서 언제까지 일하셨습니까. 최강서씨는 어떻게 한진중공업에 입사했습니까.
"1976년 5월 5일, 지금의 한진중공업이 대한조선공사 시절에 입사했다. 나는 조선소에서 '마킹'이라고 하는, 도면을 가지고 물건의 모습을 그리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 당시 IMF 위기가 와서 빅딜 1호로 당시 경기도 의왕에 있던 사업장과 경남 창원에 있던 철도 차량 제조 공장, 그리고 한진중공업 세 공장이 통폐합됐다. 나는 그때 구조조정을 통해 창원공장에 가서 일하게 됐고, 그곳에서 2009년 정년퇴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강서를 애초 한진중공업에 입사를 시킨 게 잘못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을 몰랐다. 이런 사고가 생길 줄 알았더라면. 강서가 군대 갔다 와서 취직을 해야 했는데 한진중공업에서 채용을 한다고 했다. 직업 훈련생으로 입사했다가 현장으로 넘어갔다. 강서는 현장에서 배관 일을 했다.

나는 일자리가 창원이다 보니 그곳에서 거주하는 일하는 동안 강서가 명절이나 일요일에 한 번씩 찾아와 만나곤 했다. 강서는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고 하고, 대의원이 됐다고도 했다.

강서는 2011년 2월 14일에 정리해고 됐다. 해고되기 얼마 전, 강서는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며 이야기를 했다. 애기들 데리고 어떻게 먹고 살면 좋겠느냐고, 가족들 하고 어떻게 사느냐고 말이다.

내가 한진에 있을 때는 금속노조 지회만 있었다. 지금은 복수노조가 만들어져 회사에 노조가 두 개라고 한다. 한 회사에 노조가 두 개 있다는 것은 민주노총과 어용노조가 서로 싸우라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래서 이 지경이 된 거 아닌가."

"정리해고는 노동자와 그 가족까지 죽이는 행위"

지난 8일 인수위 앞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고 최강서 열사 투쟁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강서씨 아버지 최용덕씨.
 지난 8일 인수위 앞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고 최강서 열사 투쟁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강서씨 아버지 최용덕씨.
ⓒ 노동과세계 변백선

관련사진보기


-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아들 최강서씨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우리 강서는 진짜로 부모를 섬기는 아이였다. 정말 가슴 아프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강서는 키도 크고 잘생기고. 어디 가도 뭘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자식이었다. 갑자기 이런 변을 당해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강서는 유서를 통해 158억 원 손배를 전부 철회하라고 했다. 내 자식이 스스로 그 큰 짐을 지고 갔으니 나는 내 아들의 뜻이 헛되지 않게 '열사 정신'이 오롯이 계승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강서의 명예도 회복되길 바란다. 빠른 시일 내 그게 다 해결이 돼 장례를 치러야 하지 않겠나. 그게 부모 마음이다. 더 오래 가서는 안 된다.

언론에서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비관자살'이라고 보도했다. 정말 어이가 없고 숨통이 꽉 막힌다. 국회 청문회에서 조남호 회장이 현장 복귀를 약속해놓고 복귀한 지 4시간 만에 한진중공업은 또 노동자들을 쫓아냈다. 어떻게 노동조합을 그렇게 탄압할 수 있는가. 손배가압류로 우리 강서는 억수로 힘들어했다. 국회 권고안을 받아들여 노사합의를 해놓고 어떻게 그렇게 약속을 저버릴 수 있는가.

노조가 정리해고를 철회하라고 그렇게 2년 가까이 싸웠다. 합의를 하고도 1년 간 입사를 못하고 기다리다가 힘들게 다시 들어갔는데, 4시간 만에 강제 휴업을 했다고 한다. 진짜 듣기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나는 우리 강서가 그렇게까지 힘든 줄은 몰랐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걱정을 끼칠까봐 말을 아끼고 못했을 것이다.

그 충격으로 아내는 혈압이 위험수위까지 올랐다. 170~185까지 갔다. 입원을 해서 보름 동안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조금 나아져 퇴원해 지금은 집에 누워있다. 우리 강서가 나이가 올해 서른 다섯밖에 안 됐다. 아직 철도 잘 모를 나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재미나게 살 나이에 이렇게 됐다.

어용노조에 500명 이상이나 있다고 한다. 강서는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동료·형님들이 어용노조로 갔다고 원망스러워 했다. 유서에도 그렇게 쓰지 않았나. 참 심적으로 많이 아프고 통곡할 일이다.

정리해고라는 게 사람을 죽이는 거다. 그게 바로 정리해고다. 본인 한 사람만 죽이는 게 아니다. 가족까지 다 죽이는 게 정리해고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노동조합을 죽이려고 정리해고를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한진중공업이 노동조합을 죽이려고 민주노조를 없애려고 정리해고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당시에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400명이나 같이 정리해고를 했다는 소리를 듣고서 말이다."

"기업노조에 있는 사람들, 다시 지회로 돌아오길"

- 얼마 전 대통령 인수위 앞 기자회견장에서 "한진중공업과 전쟁을 한다는 각오로 왔다"고 하셨다.
"그때 기회가 돼서 이야기를 하다가 하도 복받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한진중공업과 전쟁할 각오로 왔다고 말이다. 데모를 하겠다는 것 보다는 그렇게 말하면 그래도 한진중공업에 압박이 돼서 사태가 해결되는 데 효과가 있지 않겠나 싶어 그랬다.

우리 강서가 간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한진중공업은 아직도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가 복수노조 인원이 많으니 그쪽에 대표성이 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그것 때문에 더 어려워지고 있지 않나 싶다.

우리 강서가 사랑하는 동료·친구·형님들이 어용노조로 가서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강서가 한 번은 집에 와서 그런 말을 했다. '회사가 사람들을 포섭하려고 어용노조에 가입하면 돈 1000만 원씩을 지급했는데, 정년퇴직이나 희망퇴직을 할 때 돈 준 걸 제외하고 준다'고, '그러니까 다시 회수'하는 거라고 말이다.

나는 강서의 유서대로 그 사람들이 다시 지회로 돌아오길 바란다. 지금이라도 지회로 돌아와서 힘을 합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정말 좋겠다는 간절한 심정이다."

- 한진중공업 지회와 금속노조·민주노총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노동조합이 지금 서울 상경투쟁도 하고, 조남호 회장 집 앞에서 1인시위도 하고 여러 가지로 상당히 욕을 많이 보고 있다. 그렇게라도 해서 한진중공업을 압박해서 빨리 사태가 수습이 되길 바란다. 나는 그저 강서의 듯이 헛되지 않게 되고, 명예회복이 되길 바랄 뿐이다. 저도 그렇고 강서 엄마와 누나·동생도 다 마찬가지다. 빨리 수습이 돼서 동생·형 장례를 치르는 것밖에 없다."

"26일째 냉동고에 누워있는 아들... 장례 치러야 한다"

지난해 12월 21일 부산 영도구민장례식장에 마련된 최강서씨의 빈소. 유족이 최씨의 영정 앞에 앉아있다. 최씨는 부인과 사이에 7살, 5살 난 아들을 남겼다.
 지난해 12월 21일 부산 영도구민장례식장에 마련된 최강서씨의 빈소. 유족이 최씨의 영정 앞에 앉아있다. 최씨는 부인과 사이에 7살, 5살 난 아들을 남겼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 박근혜 당선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박근혜 당선인은 인수위를 가동해 국정을 인수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노동자들이 죽고 사는 문제는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본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당시 공약으로 '경제민주화' '민생대통령' '대한민국 국민 100%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100%는 무리라고 해도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우리 노동자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것 아닌가. 박 당선인이 대통령이 되면 없는 이들 편에 서서 대통령 직무를 해주길 바란다. 만날 가진 사람들은 진짜 좋은 세상에서 좋은 삶을 살고, 우리 없는 노동자들은 일만 많이 하고 돈은 적게 받는다.

강서가 죽고 나서 제가 얼마 전에 강서 월급봉투를 봤다. 회사로부터 월급이 200만 원 정도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월급봉투를 보니 기본급이 14만 원 정도였고, 이것저것 합쳐서 140~150만 원이 됐던 거 같다. 그런데 실제 수령금은 40만 원이었다. 강서가 오랫동안 일을 못했으니 회사에 있는 신용조합이나 그런 데서 돈을 빌려 썼던 것 같다. 그런 걸 갚아주고 40만 원을 받았던 거다. 봉투를 보고 나서 정말 복받쳤다. 우리 강서가 그렇게까지 힘든 줄은 몰랐다."

- 한진중공업 사측과 조남호 회장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강서의 죽음은 조남호 회장에 의한 간접살인이다. 이재용 사장도 마찬가지다. 조남호 회장은 지회와 협상을 해서 빨리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그렇게 돼 빨리 장례를 치를 수 있기를 바란다. 강서가 쓴 유서 내용이 실현되고 명예회복이 되길 바란다. 회사가 나서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 그것도 민주노조가 있는데 복수노조를 만들어 지회를 파괴하는 것은 정말 잘못이다.

우리 강서를 오늘(15일)로 26일째 냉장고에 누워있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최강서의 부모는 조남호 회장에게 조속한 시일 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성의 있는 답변을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내 아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명예회복이 꼭 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노총 신문 <노동과세계> 온라인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최강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