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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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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강서씨가 한진중공업의 민주노조 탄압과 손배가압류를 규탄하며 목숨을 끊은 지 1개월이 다 되가고 있지만, 사측은 개인적인 죽음으로 매도하며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매일 조합원들과 함께 한진중공업지회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고 최강서씨 투쟁 26일 차인 지난 15일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 농성 천막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났다. 김 지도위원은 "최강서 동지가 자신의 몸을 던져 만들어낸 틈을 최대한 벌려서 (투쟁 승리의) 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11년 309일 크레인 고공농성 후 그동안 한진중공업 투쟁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
"그동안 사측이 여러 번 약속을 어겼다. 노사 합의를 어긴 전력이 있어서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2011년 합의는 국회가 마련한 권고안이고, 그 권고안을 만들기까지 희망버스가 다섯 차례나 왔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수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았다. 또 조남호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서,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기 때문에 그런 합의까지 어길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최소한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한진중공업 사측은 민주노조를 깨는데 총력 집중한 것 같다. 조남호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경영정상화를 여러 차례 언급할 때 뒤에서는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2011년 11월 10일 노사 합의 시에는 경영정상화 내용을 약속하고 94명이 복직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무기한 휴업이나 이런 식이 아니었다. 합의 정신을 어긴 것이다. 그 이후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다.

저는 크레인에서 내려오기 전부터 이미 사측이 준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랬으니까 내려오자마자 그런 작업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 해 10월 노조 선거에 출마한 김상욱 집행부를 사측이 밀었는데 차해도 집행부가 출범했다. 저들은 복수노조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우리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현장에 어수선한 틈을 타서 복수노조를 만들고 강제휴업을 한 뒤 민주노조 탈퇴를 복귀 조건으로 내걸었다. 민주노조를 탈퇴한 사람들만 복귀할 수 있었다.

그것이 조합원들에게 실제적인 압력이 됐다. 지금은 공장에 들어가지도 못하지만 들어가 보면 도크가 다 비어있다.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조합원들 눈에 그런 게 보이니 실제 생존에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이미 4년 넘게 5년째 수주를 단 한 척도 안 받았다. 앞으로도 받을 것이라는 기약이 전혀 없고, 소문으로는 공장이 문을 닫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이 특수선에서는 기술적으로 뛰어나 경쟁력이 있으니 필리핀으로는 가져가지 못한다.

군함 부문도 한진이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 필리핀에는 댈 것도 아니고 국내 조선소도 못 따라온다. 이것만 살려서 진해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이 공장은 폐쇄할 수도 있다. 살아남는 인력 800명 중 1/3 정도 되는 이들이 상시적 불안에 놓여 있다.

이 노조를 탈퇴하고 저 노조로 간다는 것은 양심이나 신뢰의 문제가 아니다. 의리의 문제도 아니다. 조합원들이 굉장히 미안해 한다. 저녁에 퇴근 선전전을 하면 복수노조를 포함해 우리 조합원 거의 100%가 먼저 인사를 한다. 복수노조 간부들만 빼고 거의 인사를 먼저 한다. 남아서 싸우는 민주노조 조합원들보다 복귀한 사람들이 더 불편할 것이다.

더구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강서는 유서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돌아오라고 했다. 조합원들도 알고 있다. 저렇게 분열되면 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 안다. 그렇지만 미래의 일보다 당장 내 목숨과 내 생존이 걸린 일이다.

며칠 전 한 50대 가장이 퇴직 후 이틀 만에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노동자에게 직장은 먹고사는 생존의 장을 떠나서 그들의 모든 것이다. 영혼까지 포함된 것이다. 어제 저녁에 문화제를 하는데 올해 정년퇴직한다는 아저씨가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직장에 다닌 지 30년이 넘었다고 했다. 아침에 눈 뜨면 무조건 출근하는 일상이다. 휴직자들도 다 30년이 넘은 사람들인데 아침에 갈 데가 없어도 눈이 떠진다고 했다. 2003년 구조조정 때도 조합원들을 희망퇴직·명예퇴직으로 잘랐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작업복 입고 출근하는 일을 30년 넘게 해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휴직을 한 상황에서 아침에 일어나 작업복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니 그걸 보는 가족들은 어떻겠는가. 미치는 것이다. 이 아저씨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사는 시간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많았다. 동료들과 같이 일하고, 점심 먹고, 담배 피고…. 그런 일상에 훨씬 익숙한 이들이다.

휴가라고 해서 집에 있으면 일주일 정도는 견디지만 그게 넘어가면 불안해진다. 공장을 떠나면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밥 나오고 옷 나오는 그런 것을 떠나서 여기서 일하며 자신이 인정받고 그런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배척 당하고 버려진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와 영혼이 파괴되는 것과 같다. 자본은 그런 걸 모른다. 안다고 해도 그들에게 사람은 곧 돈이다. 공장을 돌려서 이윤을 내는 것만이 저들의 목적이다. 공장을 이전하거나 해외로 나가서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하면 가차없이 하는 이들이다.

최강서를 비롯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잘렸다. 젊은 사람들이 노동운동 역사를 알고 노동운동 이념을 알겠는가. 제가 단식하기 전에 출근 시위를 1년 넘게 할 때도 저 사람들은 자신이 피켓을 들고 복직을 호소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로 3000명 넘게 잘리고 23명이 죽을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우리 조합원들도 해고는 남의 일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해고 당하고 노동자들의 세계관이 흔들린 것이다.

최강서의 부인도, 누나도, 가족들도 모른다. 강서 누나가 '손배가압류 철회를 해야 하고 손배가압류 그걸 죽어서도 잊지 못한다고 강서가 그랬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했다. '민주노조 사수,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1년을 투쟁하고 그리고 나서 노사합의 후 1년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그 1년이 얼마나 길었겠는가. 제게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들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였다. 그것은 굉장히 크게 다른 것이다. 다른 데서 알바를 하면서 노가다를 한 분도 많고, 그렇게 1년을 기다렸다.

2012년 11월 8일 인사발령이 나야 하는데 나지 않았다.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지 두 시간 만에 발령장을 들고 왔다. 그 전에도 입사하는 과정에서 서류를 갖고 굴종적인 내용의 요구를 하고 그래서 논란이 심해 순조롭지 않았다.

인사발령이 난 게 11월 9일이고 12일에 모여서 버스 두 대를 나눠 타고 교육장에 갔다. 그때 모여서 사진도 찍고 파이팅을 외치며 웃었다. 그런데 4시간 만에, 강서 부인은 월급봉투에 3시간이라고 돼 있다고 한다. 3시간 만에 휴업이 떨어졌다. 투쟁하면서 몇 번을 배신당하고 몇 번을 용역깡패에 짓밟히고 경찰에 연행 당하며 힘들게 온 사람들에게 한 짓이다. 거기에 박근혜가 당선되는 결과까지 빚어졌다.

뭐라고 해야 하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져 버린 그런 상황인 듯하다.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같다. 합의가 순조롭게 지켜질리 만무했지만, 사측은 노동조합의 소비조합과 신용조합·병원을 차례로 다 폐쇄했다. 1층부터 시작해서 차례차례로.

그들은 공장을 감옥처럼 만들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담배 살 데도 없고, 커피 자판기도 없다. 막장에 다다른 듯한 절박감을 준다. 그렇게 사람들을 위축시키려는 것이다. 갈 데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여기 남은 사람들은 정말 오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 하나씩 빼앗아가는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12월 26일까지 맨 꼭대기 층에 있는 노조 사무실을 비우라고 했고 21일 강서가 그렇게 됐다.

2003년 김주익·곽재규 두 사람의 열사가 생기면서 사측은 기업 이미지에 굉장히 타격을 받았다. 우리가 지어달라고도 안했는데 자기들이 나서서 복지관 건물을 지어줬다. 건물을 지어놓고 기자들을 불러 떡을 자르며 갈등과 대립의 역사가 아니고 노사 화합과 상생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사측은 그냥 단순한 건물 폐쇄인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두 사람 목숨을 바친 곳이다. 노사화합이니 하니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 건물이다. 그 건물을 한층 한층 문을 잠근 것은 대화와 타협이 더 이상 없음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조합원은 물론 간부들도 출입을 못하게 한다. 관리자들이 수십명 나와서 문도 보강하고 공장을 교도소로 만들었다. 사측이 최근 한 일이라고는 문 공사·담 공사·CCTV 공사뿐이다. 사무장과 교선부장이 노조 사무실에 있다가 못 나왔는데 그건 이야기가 돼서 요 앞까지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의도는 명백하다. 민주노조를 놔두지 않겠다는 뜻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경영 정상화가 아닌 민주노조 파괴 음모다. 2년 간 그걸 치밀하게 사측이 진행해 온 것이다. 최강서가 그걸 막고 있는 형국이다."

"최강서는 구김살 없던 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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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현장에서 본 최강서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 친구는 구김살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저를 좀 어려워 한다. (젊은 조합원들은) 나이 차도 많이 나서 강서 또래들이고 막내뻘이다. 강서가 서른 다섯 살이니까. 저를 직접 아는 친구들 보다는 저를 대변해서 알기 전에 현장에서 옛날에 진숙이란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미지로 쌓인 다음에 저를 본다.

우리 조합원 중 젊은 친구들은 저를 모르고 저도 잘 모른다. 제가 크레인에 올라가 있을 때도 그걸 이해 못했다고 한다. 자기 일도 아닌데 왜 저렇게 하나 그런 반응들이었다고 한다. 젊은 친구들은 생각이 그렇지 않겠는가.

이미 이 친구들은 2003년 무렵이나 그 직전, 혹은 그 후에 입사한 사람들이다. 최강서는 김주익·곽재규 열사가 돌아가시기 전에 입사했다. 그래서 박창수 열사 때의 상황도 들어서 잘 알았고 김주익·곽재규 열사 투쟁 때도 있었다. 한진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워낙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잘랐다. 그 후에 들어온 친구들은 한진이 굉장히 좋은 회사라고 했다. 과거에 정말 현장에서 온갖 어려운 상황에서 일하던 것을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작업복도 안 줘서 그지 같은 걸 테이프 붙여서 입고, 도시락도 진짜 그런 걸 주고. 내 <소금꽃나무> 책을 읽고 믿기지 않아 했다. 왜 그러고 살았느냐고 했다. 이미 열사들이 자기 목숨을 던져 만든 근로 조건을 누리기만 했으니 그러지 않겠는가.

4대 조선소에 비하면 임금도 한참 못 미치지만 이전보다 작업복이 사시시철 구분돼서 나오는 것도 놀라운데, 식당도 새로 지어서 식사 질이 비교가 안 되게 월등해지고 그랬다.

채길용 집행부가 들어선 후 정리해고자들과 갈등이 심했다. 안 싸우려는 집행부였기 때문에 내가 크레인에 올라간 것이다. 한진은 집행부가 뽑히면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게 강하다. 반대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기보다 어쨌든 우리가 뽑았으니 믿고 따른다는 정서가 굉장히 강하다.

크레인에 올라서도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 집행부가 결정하면 대의원 대회나 그런 데서 조합원이 나서서 틀린 결정이라는 말을 못한다. '우리가 뽑은 건데 우짜겠노'라면서 그냥 만다. 강서는 대의원대회에서 집행부에게 똑바로 하라고 하고 채길용에게 따지고 그랬다. 나이도 젊은 친구가 강직한 성품을 가졌다.

제가 크레인에 있을 때 거의 매일 밤마다 문자를 보냈다. 우리 조합원들은 미안해하고 그래도 직접 문자를 보내고 그러지 않았다. 술 먹으면 울고불고 그래서 사람 속을 뒤집어놓고 그랬지만. 더구나 강서 또래는 그러지 않았는데 강서는 전화도 하고 문자도 자주 보내고 그랬다.

강서가 트위터를 했는데 나 때문에 나하고 소통하려고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계정이 살아있다. 늘 안부를 묻고 괜찮냐고 힘들지 않냐고 했다. 트위터에 디엠(DM)이라고 해서 쪽지 기능이 있는데 그걸 자주 사용했다. 태풍 오는 날도 보내고.

강서는 또래 중에서 리더십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았고 실천하면서 자기 몸을 빼거나 사리지 않았다. 통솔력이 있는 친구였다. 저는 강서가 절망하고 포기했다기보다 이렇게라도 돌파하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 도저히 길이 없고 어려운 상황에서 박근혜까지 당선되니 고착된 벽을 자기 한 몸을 던져서라도 돌파하려고 한 것 같다.

말에 거침이 없고 농담도 잘하고 우스운 소리도 잘하고 어느 무리에서든 분위기를 이끄는 그런 친구였다.

한진에는 1991년 박창수 열사, 2003년 김주익·곽재규열사가 있다. 정말 무겁고 비통한 역사를 가졌다. 박창수 열사는 제 입사 동기이자 훈련소 동기다. 곽재규 열사는 선배고, 김주익 열사는 같은 부서 동료였다. 강서는 한참 어린 후배인데 이런 친구까지 그렇게 되니 정말 마음이 아프고 가족들 보기 미안하다."

"최강서의 죽음은 직접살인이나 마찬가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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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서씨의 부친은 아들 죽음을 두고 '조남호 회장에 의한 간접살인'이라고 했다. 한진중공업과 조남호 회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간접살인 아니다. 직접살인이다. 최강서는 살해당한 것이다. 김주익·곽재규도 그랬다. 김주익 열사가 129일 동안 크레인에 있을 때도 교섭 한 번을 안 했다. 이번에도 그 수순이다. 교섭을 안 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신관을 폐쇄하고 궁지로 몰아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그 때 어용노조가 해결사인 듯 나서서 우리하고 하자고 유도한다.

그런다고 우리가 흔들리나? 저들은 정말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기자들과 이야기를 해도 한진중공업의 마인드를 이해 못하겠다고 한다. 2011년에도 제가 크레인에 올라갈 일이 아니었다. 청문회와 국정감사까지 할 일도 아니었다.

재벌총수가 12년 만에 청문회에 불려나왔다. 보통은 청문회를 한다고 하면 즉시 해결이 된다. 한진이 청문회에 나와서 국정감사장에까지 나와서 약속해 놓고 어떻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야당 의원들도 그렇게 말한다.

이번에도 사람이 죽기 전에 약속을 이행했어야 한다. 이 정도 밀어붙이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저들도 안다. 미리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이 생기면 일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 의지를 갖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런 조짐이 안 보인다.

보통은 비선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서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고, 유가족을 회유하고 그러는데 한진은 그것도 안 한다. 오로지 틀어 막기만 한다. 그래서 더 분노하는 것이다. 우리 쪽수가 얼마 안 되니 밀어붙이면 된다고 할지 모른다.

우리 남은 사람들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다. 오판이다.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은 이 싸움 안 끝난다. 밀면 밀린다고 생각하지 말라. 2003년 일을 눈으로 보고 겪은 조합원들이다.

아침에 출근시위를 할 때 관리자들을 두드려 패고 그랬다. 어용노조 간부들은 혼자 못 다닌다. 임원 3~4명씩 몰려 다녔다. 어용노조 간부들이 우리를 보면 도망을 갔다. 어용노조 간부들이 맞아서 폭력으로 최강서를 포함해 6명을 고소해 놨다. 강서가 그렇게 되기 보름 정도 전 일이다.

강서는 어용노조 집행부에 대한 분노가 컸다. 저들 때문에 일이 더 힘들어진다고 느끼니까 그랬을 것이다. 강서 부인도 '강서 씨가 저 복수노조 간부들을 회사보다 더 미워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말로만 열사정신 계승 하지 말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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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크레인에 있을 때 민주노총을 생각하며 정말 고민스러웠다. 민주노총이 솔직히 힘이 되지 못한다는 그런 것 보다 애증이라고 해야 하나…. 워낙 민주노총에 대한 기대가 커서 그랬을 테지만.

희망버스가 5차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민주노총 간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생각했다. 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그걸 몇 마디 말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진정성·역동성·대중 스스로들의 자발성이라고 본다. 민주노총은 이런 것들을 이미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관료들이 남고 지침이 남고 공무원이 남았다고 본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 벌어져도, 크레인에 특공대가 들어와 84호 크레인을 탔다. 우리 조합원들은 이미 다 쫓겨났고, 제가 전화할 사람은 민주노총 위원장밖에 없었다. 위원장은 조금만 더 버티라고 했다. 미치는 것 같았다. 거기서 혼자서 어떻게 버티나. 힘내서 조금만 버텨달라고 했다.

금속노조 위원장에게 전화를 해도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만 했다. 그걸 트위터에 올리면 날라리들은 왔다. 출근해서 일하다가도 조퇴도 안하고 비행기를 타고 KTX를 타고 달려왔다. 와서 울고불고 하고, 크레인 앞 길에서 노숙도 하고 그랬다. 나는 크레인 위에서 그걸 봤다.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본부장이나 금속노조 위원장도 미안한 게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나 우리가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느꼈다.

노동운동이, 민주노총이 고민할 게 많다. 지금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있지만 저는 조직의 역동성이 죽은게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지도부에게 그런 걸 말하면 현장이 죽었다고 한다.

저는 현장을 다니는 사람이다. 대동공업에서, KEC에서 요구하면 간다. 전 현장에 가면 노조 사무실이나 식당에서 조합원을 만나지 않고 한 시간 먼저 가든, 뒤에 오던 조합원들 일하는 걸 보고 몇 마디라도 이야기를 듣곤 한다.

저는 그렇게 20년 넘게 현장을 다니고 보면서 현장이 죽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해봤다. 그런데 똑같은 현장을 보면서 왜 현장이 죽었다고, 조합원이 안 움직인다고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상층 중심의 의결구조·지도부 중심의 지침 하달 구조들이 조직을, 대중을 고착화시켰다. 대중이 사라진 대중 조직이 됐다. 현장에도 대의원 대회가 있고 의결구조가 있다. 대의원들이 자신이 의견을 내기 위해 조합원들 의견을 묻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게 있는지 조합원은 알지도 못한다.

조직이 제 역할을 못하면 싸우는 이들이 극단화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죽고 철탑 위에 올라가고, 크레인에 올라간다. 그리고 그 날짜들은 점점 길어진다. 이건 지도부의 책임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책임이라고 난 생각한다. 말로만 열사정신 계승하지 말고, 말로만 비정규직 철폐하지 말자.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 천막을 쳤으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철탑에 올랐으며, 민주노총이 거기 와서 일하고 회의하고 먹고자고 싸우고 해야 한다. 그런 말을 하면 그런 현장이 한두 군데냐고 한다.

난 그게 본능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싸움을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생각할지 모르나. 이게 중요한 일이고 사람 생명이 걸린 일이고 운동의 미래가 걸린 일이면 앞뒤 재지 말아야 한다. 재면 이미 끝나는 것이다. 재기 시작하면 못 갈 이유가 더 많아진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이 사무실 중심으로 되는 것 같다. 그러니 관료화 될 수밖에 없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건지 답답하다. 현대차 철탑도 그렇다. 노동조합이 철탑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게 노동자들은 더 절망스러울 것이다. 자본과의 싸움은 오히려 낫다. 노동자는 어차피 자본과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 아닌가.

크레인에 있을 때도 자본과는 천날 만날이라도 싸울 수 있었다. 용역과는 하루 24시간 대소변을 던지며 치열하게 싸웠다.

민주노총이 이렇게 돼 버리니 무릎에 힘이 다 풀린다. 절박한 사람들은 기대가 더 크다. 우리가 보내는 하루하루와 철탑 위에서의 하루하루는 다르다. 저들에게는 조직적 결정과 태도 하나하나가 얼마나 절박하게 느껴지겠는가.

어느 조직이던지 가장 약자의 편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다수의 판단이 아니라 약자의 판단이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숫자로 판단한다. 민주노총 내에서 비정규직이 설 자리가 없다.

싸움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냐의 문제다. 저는 한진중공업이 중요하지만 현대차 철탑농성과 쌍용차 투쟁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쌍용차 투쟁이 4년이나 됐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짊어져야 할 짐을 저 몇몇 사람들이 짊어지고 4년을 싸워왔다.

지금이라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총력을 다해서 싸움을 풀어야 한다. 기업노조 김규환 위원장 성명서는 기도 안 막힐 수준이었다. 금속노조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걸 힘으로 보여줄 때가 됐다.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도 어려움을 알겠으나 비정규직지회 동지들과 좀더 소통하고 약자 입장에서 문제를 판단해서 풀어야 한다. 어느 한쪽을 배제한 채 우리 결의는 이렇다 하고 가면 안 된다. 운동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나는 쌍용차 4년이 정말 안타깝다. 77일을 고립된 채 싸우지 않았는가. 크레인에 고립돼 봐서 안다. 고립된다는 것은 처절한 외로움이다. 외로움이 이토록 절망적일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아무도 없었다. 금속노조도, 민주노총도 없었다.

이제라도 우리 문제로 받아서 싸워야 한다. 4년 간 23명이 죽었다. 그러고도 우리가 아직 노조일 수 있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 노동운동이 승리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은 어떻게 싸워야 할까?
"민주노총 지역본부들을 다녀보면 무력감이 느껴진다. 노동운동이 밀리고 복수노조와 타임오프 등으로 노동운동이 힘들어지는 것에 더해서 쌍용차·한진중공업·KEC·유성·발레오 등 수많은 사업장들, 그 지역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던 사업장들이 복수노조로 약화되고 지역의 구심점들이 사라졌다.

눈에 띄게 운동이 숨 죽어버렸다. 위기가 기회라고 한다. 열사정신을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강서가 자기 몸을 던져서라도 돌파구를 열려고 한 그 뜻을 받아 반드시 열어젖혀야 한다.

틈을 최대한 벌려서 문을 만들어야 한다. 기회는 어느날 갑자기 주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싸움의 성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금속노조 사업장들을 보면 조합원들의 나이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고령화도 심각한 문제다. 젊은 신규 조합원들,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끊임없이 조직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학습도 해야 한다. 옛날에는 노동조합을 하려면 학습부터 했다. 요즘은 공부를 도대체 안한다. 어려울수록 원칙을 지키고 공부하는 그런 풍토를 되찾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세계> 온라인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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