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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칭찬해줄 젊은이가 있는데 취재 좀."

전에 취재한 여성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다. 칭찬할 만한지 아닌지 당신도 살펴보시라.

20세에 건강악화, 고물상까지 해봐

지난 10일, 구세군 안성요양원에서 만난 공익요원 박지호(22)씨. 첫 인상은 별로 고생 해보지 않은 평범한 청년인 듯. 적어도 인터뷰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학생활 1년 만에 얻은 건 '건강악화'였다. 20세 나이에 고도비만에 고혈압. 머리가 아파 쓰러진 후에야 병명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 아버지를 이은 유전증세였던 것. 남들 보다 두 배로 건강에 유의해야할 사람이 두 배로 안일하게 생활한 결과였던 셈.

건강회복을 위해 등산부터 시작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젊은 나이에 이게 뭔가. 뭔가 달라져야 겠다'. 대학을 휴학하고 '사회적 경험 쌓기'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건강악화는 지호씨의 인생전환점이 되었다.

지호씨는 요양원에 근무하면서 주방보조를 자원했다. 좀 더 편한 생활보다 다향한 경험을 위해서라고.
▲ 박지호 공익요원 지호씨는 요양원에 근무하면서 주방보조를 자원했다. 좀 더 편한 생활보다 다향한 경험을 위해서라고.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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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센터 짐 나르기, 막노동, 짜장면식당 주방보조, 치킨 집 배달 등. 여기서 백미는 고물수집이다. 그렇다. 고물상이다. 리어카로 시작해서 오토바이, 1톤 트럭으로 발전하며 해봤다는 것. 더 신기한 건 그 모든 걸 1년 사이에 해봤다는 것. 물론 그 전에 경험한 아르바이트 경력까지 포함한 거다.

새벽 인력사무소에 나가본 건 고3 시절이다. 그 때 이미 덩치가 있어 막노동을 해본 것.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새벽에 줄서서 차례를 기다려봤다고. 현장에 가서 하루 종일 공사현장 청소만 해보기도 했다.

요양원 공익요원도 주방보조도 자원해

건강 때문에 현역입대는 대상이 아니었다. 기간 산업체에 복무하려 했다. 그 때, '요양원 공익요원' 자리가 있다고 했다. 경험 좋아하는(?) 지호씨는 자원했다. 자원하고 안 일이지만, '지하철과 요양원 근무'는 기피 근무처라는 걸 알았다. 힘든 곳이라는 이유다.

지호씨의 각오는 "이왕 하는 거 멋지게 하자"였다. 작년 9월 말에 요양원에 배치된 후 어르신들 수발에도 열심을 냈다. 요양원 주차장 공사도 함께 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일이 바로 요양원 주방보조였던 것. 이때도 자원했다.

지호씨는 왕년에 자장면 식당 주방보조 경험 살려주시고. 설거지, 양파와 마늘 까기, 주방청소 등이 그의 하루 일과다. 현역으로 말하면 취사병 중에서도 후임이 하는 잡일에 속한다.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엔 어르신들을 만나 안부를 묻는 것도 거르지 않는다.
요양원에서는 지호씨가 손자 같아서 어르신들이 좋아한다. 지금은 서로 '사랑합니다'라며 손을 맞잡았다. 요양원 측의 동의를 얻어 사진을 게재한다.
▲ 어르신들과 함께 요양원에서는 지호씨가 손자 같아서 어르신들이 좋아한다. 지금은 서로 '사랑합니다'라며 손을 맞잡았다. 요양원 측의 동의를 얻어 사진을 게재한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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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조부모 손에 자란 경험이 있는 지호씨에겐 그들이 바로 조부모처럼 느껴졌던 것. 업무 외에 어르신들이 특별히 심부름을 시키면 그렇게 뿌듯했다고. 그 순간은 마치 자신이 그들의 손자가 된 듯해서란다. 

혹 치매가 있는 어르신이 자신에게 "도련님"이라고 하면 그렇게 대답한다고. '도련님 같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를 생각하며. '선생님'으로 부를 땐 '선생님'으로. '이웃집 총각'으로 부를 땐 '총각'으로 응대한다. 어르신에게 맞춰줘야 좋아한다는 걸 잘 아는 지호씨다.

"공익 끝나면 '여친'과 의류노점상할 겁니다."

그런데, 이쯤하고 드는 의문 하나. 아무리 20세에 건강악화가 되었다 해도 단 시간에 왜 그리 사회경험에 집착했을까?

인터뷰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알게 된 것 하나. 바로 '여친'의 아버지가 롤 모델이었던 것이다. 고3 때 지금의 '여친'을 만났다. 점차 '여친의 집 방문'이 잦아지며 그녀의 아버지의 삶을 보게 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장면배달을 시작으로 온갖 경험을 했단다. 지금은 짜장면 식당 사장이다. 이런 삶은 지호씨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이 부분에서 기자도 '나도 누군가에게 영향력 있는 어른일까'를 돌아보게 했다.

"제가 이것저것 해보니 옷장사가 나을 것 같아서요. 공익요원이 끝나면 '여친'과 바닥부터 차근차근 해볼 생각입니다. 노점상부터 경험 쌓은 후에 옷가게를 경영할 겁니다. 바로 '여친'과도 팀워크를 맞출 수도 있고요."

이 커플은 장래를 약속한 사이다. 이 커플은 아무리 장사를 해도 영어는 잘 해야겠다며 영어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단다. 공익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그들. 지호씨는 요양원 식당에서 주방보조를, '여친'은 자장면 식당에서 서빙을 한다. 이 모든 경험이 살아가면서 재산이 될 거라는 이유다.

지호씨는 주방에서 설거지, 양파까기, 마늘까기, 주방 청소 등 주방보조 일을 자원해서 하고 있다.
▲ 설거지 지호씨는 주방에서 설거지, 양파까기, 마늘까기, 주방 청소 등 주방보조 일을 자원해서 하고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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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복학엔 뜻이 없다. "문 닫는 자영업자가 늘어난다"는 뉴스도, '왜 사서 고생하려 하느냐"는 주변의 염려도 그들의 결심을 흔들지 못했다. 한 때는 '내가 잘 가고 있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이 정도면 우리는 인정해야할 듯하다. 오늘도 주방에서 성실하게 설거지 하는 그를 보니 '미래설계'가 단순히 '공수표'가 아니란 걸. 주변에서 왜 그토록 칭찬이 자자한지를.


태그:#공익요원, #요양원 공익요원, #박지호, #안성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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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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