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 걸려있던 영화 <두 개의 문> 홍보포스터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 걸려있던 영화 <두 개의 문> 홍보포스터 ⓒ 성하훈


이명박 정권 내내 대립과 긴장을 유지해 왔던 영화진흥위원회와 독립영화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올해 독립영화를 돌아볼 때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다. 영진위원장이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 단상에 올라 축사를 한 것은 몇 년 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한 흑백영화 <지슬> 또한 독립영화계에 기대감을 안겨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부산영화제 4관왕을 차지한 데 이어 2013년 선댄스 영화제와 로테르담 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독립영화의 대표적인 성과는 단연 다시 문을 연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최고의 흥행작으로 등극한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으로 요약된다. '인디스페이스'와 '두 개의 문'은 2012년의 독립영화를 짧게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였다.

한편으로 정치적이고 과도한 등급심의 탓에 몇몇 영화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향한 독립영화인들의 분투는 이어졌다.

영화인들의 힘으로 되찾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5월 재개관한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인들뿐만 아닌 한국 영화계의 의지가 집약된 산물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탄압 속에 사실상 강탈당했던 공간은 영화인들의 힘으로 복원됐다. 영화감독, 배우, 스태프, 관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고 그들이 모은 돈은 공적자금 지원 없이도 독립적인 영화관을 만들어 냈다.

 지난 5월 개관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지난 5월 개관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 시네마달


'인디스페이스'의 재개관은 정치적 억압에 굴하지 않는 독립영화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간판을 내린 지 2년 6개월 만에 오뚝이처럼 우뚝 선 '인디스페이스'의 명성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재개관과 함께 <두 개의 문> 흥행을 견인해 내면서 독립영화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다양한 독립영화들이 인디스페이스를 거점으로 개봉됐고, 감독과 배우들은 관객들과의 만남을 위해 빈번하게 극장을 찾았다. 덕분에 110석의 좌석은 자주 매진되며 독립영화에 큰 힘을 줬다.   

고작 4개 관에서 출발한 <MB의 추억>은 인디스페이스를 통해 주목받으며 상영관을 확장한 경우다. 최근 재개봉한 <종로의 기억>도 인디스페이스에서 매진을 기록하며 다시금 관객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2주 치 시간표를 미리 공개하고, 독립영화 한 편의 하루 3회 상영 보장 등을 통해 관객의 사이를 좀 더 좁히는데 이바지했고, 민간독립영화전용관의 존재 이유를 각인시켰다. 영진위가 직영하는 독립영화관 '인디플러스'와 함께 독립영화를 쌍끌이하게 된 것은 올해 독립영화진영이 이뤄낸 가장 큰 성과다. 인디스페이스와 비슷한 시기 강릉에서도 '독립예술극장 신영'이 생겨나는 등 지역독립영화관 설립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다만 안정적인 운영은 독립영화 진영에 남겨진 과제다. 영화상영만으로는 운영비 조달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회원제를 통한 모금으로 '독립자존'을 위한 힘을 키워가고 있으나, 다양한 대안 마련은 필요해 보인다.

2012 흥행작으로 등극한 용산 참사의 진실 <두 개의 문> 

용산참사의 진상을 밀도 있게 재구성한 <두 개의 문>은 올 한해 가장 주목받은 대표적 독립영화였다. <워낭소리> 뒤를 잇는 흥행영화로 주목받았다. 7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독립영화 최대 흥행작품으로 우뚝 섰다.

영화를 공동 연출한 김일란, 홍지유 감독은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았다.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비롯해 환경재단에서 시상하는 ''2012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상 등도 함께 수상하며 영화가 이뤄낸 성과를 인정받았다.

 영화 <두 개의 문>을 연출한 김일란(우), 홍지유(좌) 감독

영화 <두 개의 문>을 연출한 김일란(우), 홍지유(좌) 감독 ⓒ 성하훈


무엇보다 <두 개의 문>은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를 다시금 주목하게 하였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무모한 희생이 있었음을 밝혀내며 언론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상영관을 찾았다가 관객들에 의해 쫓겨나는 일이 발생할 만큼 사회적 파장도 만만치 않았다.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확장됐지만, 스크린 수가 취약한 탓에 관객들이 직접 극장을 빌려 영화를 보는 단관(단체 관람)도 <두 개의 문>이 만들어낸 문화적 현상이었다. 배급비용이 없어 800여 명의 배급지원단을 모집해 개봉한 것도 영화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흥행으로 인해 도리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받은 개봉지원금을 반환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독립 다큐의 취약한 현실도 드러냈다. 흥행작을 만들어냈다고는 해도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제작비는커녕 생활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독립다큐감독들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독립다큐진영은 영진위의 다큐멘터리 지원 정책에 문제가 크다며 비판을 제기했는데, 영진위 측은 정책적인 허점이 있음을 시인하면서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해외 영화제 수상해도 국내에서는 '상영 금지'

표현의 자유 제약은 올해도 많은 독립영화인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을 소재로 한 <잼다큐강정>은 올해 초 영진위가 직영하는 인디플러스에서 상영이 보류되며 논란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 영진위 측이 "오해가 있었다"며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됐으나, 이명박 정부 내내 이어진 탄압 탓에 독립영화진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상영이 불가능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등급도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등급은, 해외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은 빼어난 영화들이 관객들과의 만날 기회를 가로 막혀 영화계의 원성을 샀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한 장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한 장면 ⓒ 곡사필름


베니스, 로테르담, 밴쿠버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 <줄탁동시>에 '제한상영가' 등급 탓에 이후 일부 장면을 수정해 재심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간신히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영등위의 잣대는 세계 영화계의 안목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규환 감독의 <무게>는 베니스영화제 퀴어 라이온상, 인도영화제 최우수감독상. 탈린영화제 감독상 등을 잇달아 수상했고 부산영화제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국내 관객들과의 만남은 제한상영가에 가로막혔다. <바라나시> 역시 제한상영 등급에 막힌 상태에서 연달아 두 작품이 영등위의 등급에 가로막히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김곡·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 역시 한 차례 제한상영가에 이어 재심의에서 같은 결정이 나와 독립영화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영등위는 영화의 폭력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명박·박근혜를 풍자했기에 '정치적인 심의'였다는 것이 감독의 주장이다.

김곡·김선 감독은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개봉을 위해 애쓰고 있으나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서 정치적 탄압이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독립영화 인디스페이스 두 개의 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