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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미국은 지금 말할 수 없는 충격에 빠져 있다. 초등학교 교정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다. 사망자 가운데 무려 20명이 6~7세 어린이였다. 이 끔찍한 사건은 온 나라를 슬픔과 분노로 몰아넣었고, 전국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여론으로 들끓게 했다.

하지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은 '총기 구매 절차를 더 엄격하게 하겠다'는 식의 있으나마나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고,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이 비극은 서서히 잊혀갈 것이다. 지난 8월 뉴욕시 총기 난사 사건 때도 그랬고, 7월 콜로라도 오로라 총기사건 때도 그랬으며, 4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사건 때도 그랬다.

32명이 숨진 버지니아 2007년 공대 사건도,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도 같은 길을 갔다. 총기 사건은 되풀이 될 것이고, 사람들은 놀라고 잊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자신이 희생자가 되기 전까지는.

미국의 총기폭력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구매자, 판매자, 정치권이 총기판매에서 얻는 이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미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총기 판촉행사의 모습이다.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사람들이 총기를 구경하고 있다.
 미국의 총기폭력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구매자, 판매자, 정치권이 총기판매에서 얻는 이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미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총기 판촉행사의 모습이다.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사람들이 총기를 구경하고 있다.
ⓒ 위키피디아공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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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하루평균 87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 총탄이 17분마다 생명을 하나씩 앗아가는 것이다. 이는 3억 인구가 넘는 미국 전체의 하루 평균 자살자 (104명)와 맞먹는 수다. 여기서 많은 한국인들이 안도할 지 모른다. 적어도 한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 눈에는 한국이 미국보다 나아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한국의 자살률은 미국의 자살률에 총기 사망률을 더한 것보다도 많다. 한국의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010년 기준으로 31명인데 반해, 미국 자살자는 15명이고 총기 사망자는 9명이다. 총기 사망자 가운데 6명이 자살이므로 중복된 수를 빼면, 한국 자살률은 미국 자살과 총기범죄를 더한 수의 두 배에 가깝다. 자살이 사회적 타살임을 생각하면, 총 없는 한국사회가 미국보다 더 많은 국민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총보다 잔인한 한국사회

미국에서 총기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동을 종잡을 수 없는 '사이코'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어디나 있다. 문제는 총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총기를 금지하면 되지 않을까? 그럴 수가 없는 이유가 있다. 총을 만들어 팔아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돈으로 정치인들을 떡 주무르듯 하기 때문이다. 미국총기협회(NRA)가 정계에 발휘하는 영향력은 한국 재벌 못지 않다.

그럼 국민이 총을 안 사주면 되지 않을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총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격할 때 느끼는 쾌감과 총을 소유할 때 느끼는 안전감을 포기하지 못하는 탓이다. 개인의 그런 '만족감'으로 인해 무고한 국민이 피 흘리며 쓰러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번 총기사건으로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있을 때, 공화당 의원인 루이 고머트는 "더 많은 총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모두 총을 버리는 게 아니라, 모두가 무장하는 게 해법이라는 것이다. 사적 이익 추구가 어떻게 한 사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국민 개인의 이기심, 기업의 탐욕, 정치권의 이해관계라는 세 축이 똘똘 뭉쳐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미국 성인들이 팔고 사는 총기는 미성년자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든다. 그래프가 보여주듯, 총기범죄는 10-20대 초반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
 미국 성인들이 팔고 사는 총기는 미성년자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든다. 그래프가 보여주듯, 총기범죄는 10-20대 초반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
ⓒ 미법무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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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기사건으로 숨진 희생자 대부분은 열 살도 안 된 어린이들이었다. 이들에게 총을 겨눈 가해자 역시 총기를 합법적으로 살 수 없는 20세였다. 이번 초등학교 난사 사건만이 아니다. 미국의 총기사고 대부분이 10대에서 20대초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욕심이 젊은이들을 죽고 죽이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아무도 '총 쏘는 게 너무 좋아서'라거나, '총기협회 비위를 맞추려고'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위권'이나 '시장주의'를 끌어들여 자신을 변명하고 합리화한다. 우리가 '경쟁력'을 핑계 삼아 자살하는 초등학생과 배달 오토바이를 몰다 목숨을 잃는 청소년들로부터 눈을 돌리듯 말이다. 어른의 헛된 만족감과 탐욕이 젊은이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몬다는 점에서는 미국과 한국이 같다.

미국사회에 부는 새로운 바람

총기 문제를 생각하면 암울하기 그지없지만, 미국사회에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 의료보험'만 이야기만 해도 '사회주의'를 떠올리고, '세금 인상' 말만 꺼내도 '빨갱이'라며 반발하던 미국사회에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11월 대선 직후 '오바마의 성공(President Obama's Success)'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오바마의 당선은 레이건 이래로 미국을 지배해 온 보수 경제이데올로기와 이념정치의 종말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사설은 "미국인의 오바마 선택은 부유층 위주의 감세정책과 공포, 불관용, 거짓의 정치로부터 등을 돌렸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작은 정부'와 '탈규제'를 내세운 공화당 후보 롬니의 패배 원인도 지적했다. 국민들이 롬니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시장방임주의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을 뒤흔든 월스트리트 점령시위나 '1% 부유층 독점 반대 운동'에 힘입었음은 물론이다. 보수당 후보 롬니는 반대로 정부 기능과 공적 영역을 축소하고 민영화 확대 필요성을 역설했었다.

롬니의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정책도 국민의 심판을 면치 못했다. 그는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의료혜택을 늘린다면서도 '세금은 올리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했었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유권자 60퍼센트가 부유층이나 국민 전체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답했다.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언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은 내놓지 못하는 '뜬구름 잡기' 공약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은 이민자와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훨씬 더 열린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경제체제와 1950년대 냉전주의에 매몰되어 있던 미국사회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진보, 사회적으로는 관용을 선택한 것이다.

당신의 무기를 포기하지 마라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첫날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청 지하1층에 설치된 부재자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첫날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청 지하1층에 설치된 부재자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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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번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후보를 고르기에 앞서, 한국의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투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해야 하므로, 우선 이 질문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불행히도 한국은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통계청 사회조사 보고에 따르면, 10대 자살충동 원인 1위는 성적과 진학이었고, 20대와 30대는 모두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한국 대학생 3 명중 1명은 휴학 상태다. 감당할 수 없는 등록금이 가장 큰 이유다. 당신이 투표장에서 표를 던질 때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당신은 곧 투표소로 향할 것이고, 마음 속에는 이미 점 찍어 놓은 후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더 고민하길 당부 드린다. 무엇 때문에 그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그 후보가 젊은이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누구를 찍는가는 당신 자유다. 하지만 그 한 표에 한국 젊은이들의 현재와 미래, 삶과 죽음이 달려있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누가 젊은 세대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후보인지, 누가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투표는 사회변화의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총과는 달리, 사람을 살리고 웃게 할 수 있는 무기다.


태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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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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