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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시간이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인근 한 빌딩에 노동자와 시민들이 모였다. 60여 평 사무실을 꽉 메운 100여 명 앞에 30대 초반의 두 변호사가 나타났다.

"경제적 궁핍 또는 무지 때문에 법의 보호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992년 8월 23일 다산인권센터의 전신인 다산인권상담소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김칠준·김동균(52) 변호사는 경기 지역의 인권문제를 다뤄보겠다며 다산법률사무소 한 구석에 인권상담소를 개소했다.

시작은 법률사무소 부설기관이었지만 이들의 활동은 대한민국 인권운동사이기도 하다. 삼성을 상대로 노동자 감시 철회와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했고, 평택 대추리에서는 이곳 활동가들이 온몸을 던져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운동을 벌였다. 철거지역·파업현장 등에서 자행되는 용역폭력에 맞서 인권을 지켜냈다.  

인권 현실이 척박하던 시절,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인권 지킴이'로 활동해온 다산인권센터가 스무 살이 됐다. 다산인권센터의 20년 역사는 현장에서 발로 뛰어 온 상임활동가들이 만들어왔다. 이가운데, 20대 때부터 지난 16년 동안 다산인권센터와 함께 동고동락한 활동가가 있다. 박진(41)씨다.  

25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다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박씨를 만났다. 그와 함께 다산인권센터의 20년 발자취를 되짚으며 우리 사회의 인권 현주소를 살펴봤다.

인권운동 20년... '가정폭력방지법' '컨택터스 청문회' 실현 역할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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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상담소(현 다산인권센터)가 출범한 1990년대 초반. '인권'이라는 말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불심검문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고, 경찰이 연행되는 시민들을 곤봉으로 때리는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텔레비전 전파를 타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경찰들이 지나가던 시민들을 붙잡고 가방 소지품을 검사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어요.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는데, 집회에 나갈 때면 가방 소지품을 꼭 확인했죠.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같은 책이라도 발견되면 바로 연행됐으니까요. 경찰에 잡혀가서 얻어맞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요. 시민의 권리가 그만큼 제약됐던 거죠."

당시 인권운동가들은 시민의 제약된 권리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쳤다. 다산인권상담소 역시 노동자·빈민·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소송 변론, 캠페인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여러 문제를 이슈화시켰다. 1996년 '이상희 할머니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경기도 광명의 한 할머니가 딸과 자신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던 사위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당시 가정폭력을 이기다 못한 딸이 여러 차례 신고했지만 '국가가 가정에 개입을 할 수 없다'며 묵살당했다.

당시 다산인권상담소는 국가가 살인을 부추긴 것이라며 피해여성 변론과 구명운동을 벌였다. 박씨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발로 뛰며 이 사건을 알렸고, 이는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법률상담소에서 '다산인권센터'로 독립한 이후인 2005년부터는 삼성의 노동자 감시 문제를 사회에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수원은 삼성의 도시예요. 그만큼 삼성 노동자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었어요. 경기 지역 인권단체인 우리가 그들의 문제를 맡은 거죠. 특히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이 사측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현실을 해결하고자 했어요. 삼성을 상대로 벌인 소송은 대부분 졌지만, 그래도 삼성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운동은 성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삼성SDI의 노동자 위치추적 감시 의혹 사건을 세상에 처음으로 폭로했다. 이외에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이들의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며 '삼성 바라보기 문화제', '삼성공장 순례단' 등의 활동을 추진했다.    

최근에도 다산인권센터가 인권 현장에서 제 힘을 발휘한 사례가 있다. 안산 SJM 용역폭력 사건이다. 당시 노조를 상대로 폭력을 휘두른 사설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가 국회 청문회에 나오기까지는 다산인권센터를 포함한 인권단체의 역할도 컸다.

"용역폭력문제는 이전부터 있었어요. 문제는 노동자들이 용역한테 맞아서 피 흘리는 점만 지적이 돼왔다는 거예요. 사실 근본 문제는 용역폭력에 의한 노조 파괴거든요. 다음 번에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는 근본 문제부터 해결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했어요. 2011년부터 다른 인권단체들과 모여 가이드라인 작업을 했습니다. 덕분에 SJM 문제가 터지자마자 경비업법 개정 등의 방안을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어요."

"이명박 정부 인권 점수? 꼭 줘야 하나요"

수년 동안 인권 현장을 누벼온 박씨. 그는 정부 정책이나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시민이 늘어난 현상을 지목하며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이전보다 우리 사회에서 신장됐다고 평가했다. "20년 전에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천막 농성을 벌이는 일을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과제는 많다.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그의 가족 23명이 목숨을 잃었고, 울산 현대자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은 25m 높이 송전탑 한가운데서 농성을 벌이는 중이다.

"1997년 노동법 개정 이후로 사회권과 노동권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앞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며 활동하는 게 다산인권센터와 다른 인권단체들의 소명이겠죠."

마지막으로 이 질문은 꼭 해야만 했다. 이명박 정부의 인권 수준은 몇 점일까.

"꼭 점수를 줘야 하나요. 마이너스 점수도 줄 수 없겠는데요.(웃음) 이 정부 들어 인권실태가 개악된 부분이 많다는 걸 실감해요. 대표적인 게 '언론 통제'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대통령이 전하는 소식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로 접해야 할 줄 상상이나 했겠어요. 지금 시대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지난 8월까지 논란이 일었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연임 문제도 현 정부의 인권 수준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은 '깜둥이', '야만족', '독재' 발언으로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은 인권위원장 연임을 재가했다.

27일 오후 5시, '인권콘서트'에서 만나요

다산인권센터 20주년 축하 인권콘서트 포스터
 다산인권센터 20주년 축하 인권콘서트 포스터
ⓒ 다산인권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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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여성·환경·노동단체들과 연계해 인권운동의 지평을 넓혀가겠다는 그가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은 두 가지다. '관심'과 '후원'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외면받는 현실에 대해 사람들이 공감하고 아파해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인권단체들의 후원회원이 좀 더 늘었으면 해요. 저희만 해도 부채 3000만 원을 안고 단체를 운영하느라 재정적으로 힘이 듭니다."

지금이라도 다산인권센터를 응원하고 싶다면, 늦지 않았다. 오는 27일 오후 5시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 삼호아트센터에서 '다산인권센터 20주년 축하 인권콘서트'가 열린다. 참가비는 문화제 후원금으로 대신한다.


태그:#다산인권센터, #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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