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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표지
 <의자놀이> 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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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는 살인이다.

TV를 통해 보도된 뉴스의 영상에서, 인터넷신문의 기사에 첨부된 사진에서, 혹은 SNS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게시물을 통해 보고 들었던 낯익은 문장이다. 그 말을 작가 공지영이 쓴 책, <의자놀이>를 통해서 다시 접하게 되었다.

해고가 살인이라니. 이 말을 처음 들은 뒤에는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기에 저런 표현을 쓴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한 사람이라면, '해고를 당했거나 직장을 잃었다면, 다른 직장을 구하면 될 일 아닌가' 하고 무덤덤하게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은 내가 했던 것과 같은 물음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라고. 도대체 어떤 이유로 쌍용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당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23명의 사람들이 죽은 걸까. 책을 펴고 책장을 한 장씩 넘기자, 픽션보다 끔찍한 현실이 펼쳐졌다. 르포르타주라는 책의 부제처럼,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의 보고서이자 기록이다.

경영난이 아닌 회계조작... 미처 알지 못한 '쌍용차'의 진실

2009년, 쌍용자동차는 2646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정리해고를 발표한다. 뉴스에서는 '긴박한 경영상의 문제'라고 정리해고의 이유를 보도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작 정리해고를 당한 당사자들인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이들은 부당하다며 77일간의 옥쇄파업을 했다. 파업이 장기화되자, 무장한 경찰과 공권력이 동원되어 진압하기에 이르렀고 사태는 종료되는 듯 보였다.

그것이 대중에 알려진 쌍용차 사태의 대략적인 사건개요였다. 공중파 언론에서는 그 이상의 자세한 탐사보도가 이어지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많은 뉴스들에 묻히며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점차 잊혀져갔다.

<의자놀이>를 쓴 작가 공지영씨도 책의 서두에서 밝혔다. 도와달라는 그들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이 사건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달았노라고. 정확히 내가 느낀 심정이 그랬다.

이 책에 따르면, 문제의 발단은 애초에 잘못되었던 정리해고였다. 회사가 겪고 있는 경영상의 어려움은, 실은 회계조작을 통한 거짓말로 드러난 것이다. 2004년 쌍용자동차를 헐값에 인수한 '상하이자동차'라는 중국 회사가 핵심인력과 관련기술을 빼돌린 뒤에 '먹튀', 즉 자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고의부도를 낸 것이었다. 당시 상하이차는 쌍용자동차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중국 은행에서 2000억 원 대출이 가능했으나 어느 것도 실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숨기고 중국으로 철수하는 명분을 얻기 위해서 상하이차는 한국의 회계법인 회사들을 통해 쌍용자동차의 자산가치를 대폭 깎아내린 보고서를 발표한다. 회사의 유형자산이 줄어들자, 상대적으로 부채비율이 늘어났고 이는 쌍용차가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한국감정원이 재평가한 쌍용자동차의 유형자산은 2배 이상 높아 회사가 안정적인 상태로 드러났지만 회계법인 회사들은 이를 무시해버린다.



정리해고·파업·무력진압... 그리고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

정리해고가 발표되자, 노동자들은 해고의 부당함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를 알리기 위해 공장 안에서 파업도 시작했다. 옥쇄파업은 무더위 속에서 77일간이나 계속되었고, 정부는 '법치주의 확립'을 내세우며 강경진압의 뜻을 드러냈다.

하지만 파업이 해고노동자들에게 남긴 것은 상처뿐이었다.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했고, 경찰은 연일 헬기를 띄우고 최루액을 뿌려댔다.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과 음식의 공급도 막았다. 부당해고를 말하는 노동자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행위에는 보수언론들도 동참했고, 궁지에 몰아넣은 뒤 무장한 경찰대원들이 투입되어 진압한다.

훗날 그 위험성 때문에 국제사면위원회가 사용금지를 권고한 대테러진압무기인 테이저건까지 등장한 이 무력진압을 경찰은 '진압 우수사례'라며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꼽았다. 무장이 해제된 파업노동자들을 여러 명의 무장경찰이 옥상에서 짓밟고 곤봉과 방패로 때리던 영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책에서는 이 부분을 '인간사냥'이라는 단어로 묘사하고 있는데, 관련영상을 떠올려보면 그 표현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닌 듯하다.

파업이 진압된 후, 경찰은 파업과 관련된 사람들을 수십 명 구속하고 연행한다. 물리적 폭력이 지나간 뒤에 심리적 압박이 뒤따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손배소와 가압류 등 경제적인 고통까지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해고노동자들은 보수언론들에 의해 '회사를 망가뜨린 귀족노조', '빨갱이'로 낙인찍혔기에 취직에도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해고의 부당함은 아무도 들어주질 않았다. 파업이 끝난 후, 해고노동자들은 전쟁을 겪은 사람에게나 찾아올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고, 거기다 사회로부터 격리되다시피 한 대우와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지자 이들은 서서히 죽어갔다. <의자놀이>가 출간되기 전까지 22명의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자살과 돌연사로 목숨을 잃었고, 그 이후에도 최근 1명의 희생자가 또 다시 나왔다. 알려진 것만 23명이 쌍용차 사태로 세상을 떠났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23명이 죽은 비극... '다 같이 사는 세상'이 되어야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4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찾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위로하고 나서자,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공지영 작가의 책 <의자놀이>를 건네주며 두 손을 붙잡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4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찾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위로하고 나서자,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공지영 작가의 책 <의자놀이>를 건네주며 두 손을 붙잡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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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사의 해고노동자들 3000여 명 중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극심한 고통 속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사자들을 상담한 정신의학박사 정혜신씨도 말했지만, 이들의 죽음은 이들의 정신이 나약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무자비했던 공권력과 무관심한 세상 때문이었다(책의 제목은, 이러한 비극을 아이들의 숫자보다 적은 의자를 배치한 뒤 앉는 사람만 살아남는 '의자놀이'에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나는 <의자놀이>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불과 몇 년 전에, 다른 나라가 아닌 내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이처럼 잔인한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놀랐던 다른 이유는, 대기업에 비해 약자의 처지에 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정부가 귀 기울여 듣기보다는 무참히 짓밟았다는 사실이었다. 외국계 대기업의 기술유출과 이어진 먹튀를 막지 못한 이명박 정부가 그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묵인하고, 대화의 노력보다 무력진압을 택했던 결정은 국가의 존재의미를 다시 떠올려보게 한다. 

2009년의 쌍용차 사태를 소외받은 해고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룬 책 <의자놀이>는 공지영 작가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책이다. 책의 수입금은 모두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쓰이며, 이미 두 차례 기부금이 전달된 바 있다.

깊어가는 가을, 독서의 계절이 끝나가기 전에 <의자놀이>를 한 권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권력이 외면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 현재도 진행형인 이 슬픈 '죽음의 행진'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부당한 정리해고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국가권력의 기만과 횡포를 제대로 알고 기억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책의 구매가 곧 해고노동자를 돕는 일이기도 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의자놀이> 공지영 씀, 휴머니스트 펴냄, 2012년 8월, 208쪽, 1만2000원



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휴머니스트(2012)


태그:#의자놀이, #쌍용자동차,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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