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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가을비가 내린 다음날은 기온이 내려가고 약간의 바람도 불지 모른다. 조급해졌다. 화천읍에서 평화의 댐까지 구간에 펼쳐진 단풍이 하나라도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카메라를 메고 차를 몰았다.  

화천읍내에서 평화의 댐까지 느긋하게 단풍을 감상하면서 운전을 하면 40분이면 족하다. 요즘 이곳의 단풍이 최고조에 달했다. 10월말까지는 단풍이 장관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을 단풍감상 드라이브 코스로 이 구간을 추천한다.

화천 발전호 앞, 북한강 자전거 100리길 구간의 단품
 화천 발전호 앞, 북한강 자전거 100리길 구간의 단품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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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발전소
 화천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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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바다 파로호
 산속의 바다 파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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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일본에 의해 건립된 화천 발전소. 이 발전소 탈환을 위하 한국전쟁 중 피아 10만 여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발전소 때문에 생겨난 호수가 파로호이다. 깨뜨릴 파(破), 오랑캐 로(虜)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군들 3만여 명이 수장된 호수라는 뜻이다.

꺼먹다리. 다리 색깔이 까맣다고 꺼먹다리라 부른다.
 꺼먹다리. 다리 색깔이 까맣다고 꺼먹다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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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먹다리. 화천댐과 발전소 건설 자재운반을 위해 놓여진 다리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다리 상판 목재는 수차례 보수를 했지만, 교각은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총탄과 파편의 상처를 안은 채 서 있다. 이 다리는 아래의 콘크리트 다리가 신설되기 전인 80년대까지 화천읍에서 간동면을 잇는 유일한 교통로였다. 

처녀고개에 있는 처녀상
 처녀고개에 있는 처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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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고개. 풍산리 고개 아랫마을에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이 처녀는 같은 마을에 사는 도령과 함께 장래를 약속했다. 도령은 장래를 약속한 처녀를 남기고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났다.

그 후부터 처녀는 날이 저물면 도령이 넘어 간 고갯마루에 올라 산굽이를 돌아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며 도령이 올 날만 기다렸다. 그러나, 장원급제를 하고 돌아오겠다던 도련님은 소식이 없고 세월만 흘렀다. 도령이 한양으로 떠난 다음 첫 봄에 처녀는 자기 키와 같은 소나무를 골라 버선을 매달아 놓았다.

이렇게 기다리길 십 년. 처녀의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었다. 어느 날 처녀는 빛이 낡은 도령의 꽃버선을 새로 만들어 소나무에 매달려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실족하여 그만 절벽으로 굴러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처녀가 죽던 날, 도령은 장원급제하여 돌아왔다. 장원급제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달려온 도령에게 처녀가 죽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그는 양지바른 곳에 처녀를 묻고 그 옆에 초가를 짓고 두문불출했다.

풍산리 은행나무길
 풍산리 은행나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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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리 은행나무 길
 풍산리 은행나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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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리에 펼쳐진 은행잎이 장관을 이룬다
 풍산리에 펼쳐진 은행잎이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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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리 마을 전경
 풍산리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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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부터 이 일대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동리 이름을 '풍산리'라 짓고, 처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녀가 버선목을 매달았던 소나무를 성황으로 모시고 이 고개 이름을 '처녀고개'라 불렀다.

전형적인 농촌마을 풍산리. 처녀고개에서 설명을 한 것처럼 산골마을인 이곳은 늘 풍년이 든다는 의미에서 풍산리라 이름 붙여진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사람들의 표정엔 늘 여유가 넘친다. 마을 사람들은 10여 년 전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가 자라 이제는 은행나무 숲을 이뤄 이 마을의 명물로 자리하고 있다.

평화의 댐으로 가는 진입로
 평화의 댐으로 가는 진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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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가는 길
 평화의 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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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가는 언덕 길
 평화의 댐 가는 언덕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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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단풍의 어울림
 소나무와 단풍의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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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리 마을에 설치된 평화의 댐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해산령까지 702미터 높이의 오르막을 올랐다. 이 길은 1986년도 이전에는 없었다. 평화의 댐이 만들어지면서 자재운송과 장비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도로이다. 산을 깎아 꾸불꾸불 이어진 도로는 초창기엔 흉물스럽게만 보였지만, 지금은 도로 옆에 자란 나무와 풀들이 단풍을 이뤄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평화의 댐 가는 길
 평화의 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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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가는길 단풍
 평화의 댐 가는길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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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가는길, 박달나무 단풍
 평화의 댐 가는길, 박달나무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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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나무 단풍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아니 박달나무가 단풍이 드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노란색의 은행잎에 버금간다 할 정도로 색감이 진하다.

해산터널
 해산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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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터널. 풍산리 마을에서 20여분 꾸불꾸불 산허리를 돌다보면 1986미터의 길이인 터널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터널길이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터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1986년 당시 5공화국에서 북한의 임남댐에 대비 평화의 댐 건설을 발표했다. 북한에서 수공을 할 경우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완전히 잠기고 63빌딩의 반이 물에 잠긴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1986년도 평화의 댐을 착공하고, 그 의미를 기리기 위해 터널길이도 1986m로 맞추었다는 것이 이 터널에 얽힌 이야기다.

해산령 쉼터
 해산령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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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리에서 평화의 댐 구간의 유일한 민가다. 이곳에서는 산삼 산채 비빔밥과 산야초를 이용한 차, 산야초 열매를 담근 술을 판다. 그런데 진짜 산삼이 들어갔는지 장뇌삼을 넣었는지는 주인만 안다. 산삼 산채비빔밥 1인분이 1만원인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진짜 산삼은 아닌 듯싶다.

이제 평화의 댐을 향해 올라온 만큼 내려가며 단풍의 정취에 빠져보자. 주변의 암벽과 어울린 작은 나무들과 소나무가 어울려 연출한 단풍, 특히 자작나무 단풍이 일품이다. 자작나무 또한 이렇게 우아하게 단풍이 드는지 아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차 창밖으로 펼쳐진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차 창밖으로 펼쳐진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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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가는 길, 해산령을 지나면 평화의 댐까지는 계속되는 내리막이다.
 평화의 댐 가는 길, 해산령을 지나면 평화의 댐까지는 계속되는 내리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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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창 밖의 풍경, 노란 단풍이 자작나무 단풍이다.
 차 창 밖의 풍경, 노란 단풍이 자작나무 단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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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가는 길, 창밖으로 파로호가 보인다.
 평화의 댐 가는 길, 창밖으로 파로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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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온 김에 평화의 종을 타종해 보자. 화천군청 소속인 해설사가 친절하게 평화의 종 조성 배경과 평화의 댐에 대해 설명을 하며, 한번 타종 하는데 500원 임을 말한다. 그 500원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자손들의 장학금으로 전달된다. 타종은 이념,종교,인종간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화의 댐 정상에서 내려 본 벨파크
 평화의 댐 정상에서 내려 본 벨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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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주변 단풍
 평화의 댐 주변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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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의 종, 37.5톤 규모의 범종이다.
 세계 평화의 종, 37.5톤 규모의 범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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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종 옆에 위치한 물문화관에 들렀더니 빨간 우체통 하나가 눈에 뜨였다. 자세히 보니 작은 글씨로 '느린 우체통'이라고 쓰여 있다. 무슨 의미인지 직원에게 물었다.

"이곳에 엽서를 넣으면 정확히 1년 뒤에 배달이 됩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느린 우체통입니다."

느린 우체통
 느린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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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문화관 옆 연못
 물문화관 옆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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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의 설명은 이렇다. 요즘 '빨리빨리'가 강조되는 이때에 한 번쯤 느림을 미학으로 만들어 보자는 의도에서 이 제도를 시행했단다. 엽서는 이곳에서 무료로 나누어준다. 자신의 현재 상황과 스스로 위로를 담은 글을 써 1년 뒤 받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제 다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오면서 감상하지 못한 이면의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겠다.


태그:#화천, #풍산리, #평화의댐, #단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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