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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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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까지 오는 주황색 고무 장화를 신었다. 벨트를 매지 않았더니 허리춤에 노끈을 두르고 장화를 고정시켜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장화가 줄줄 흘러내린다나. 고무 장화는 갯벌을 다닐 때 푹푹 빠져 신발이나 옷이 젖을 수 있기 때문에 꼭 갖춰야하는 필수품이다.

18일, 낙지잡이 동행취재를 했다. 장소는 어촌체험마을로 유명한 화성시 백미리. 취재에 동행한 이는 황호현 감독(화성시청 공보담당관실)과 홍예선씨. 황 감독 취재에 내가 따라붙었다. 낙지잡이 취재갈 때 꼭 같이 가고 싶다고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다. 예선씨는 황 감독이 같이 가자고 한 건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미리가 '나와바리'인 예선씨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을 더 많이 했다.

낙지잡이를 하는 분 가운데 예선씨 8촌 형님이 계셨고, 낙지잡이에 일가견이 있는 그 분을 따라다니면서 낙지잡이의 진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 8시 50분경, 백미리 갯벌체험장 입구 주차장에서 트럭 짐칸에 올랐다. 갯벌체험장 입구에서 배를 타는 곳까지는 콘크리트 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그 길을 트럭을 타고 가기 위해서였다. 비닐장화에 모자, 토시 등으로 중무장을 한 아주머니 혹은 할머니들이 트럭 짐칸에 같이 올라탔다. 플라스틱 소쿠리에 작은 갈고리, 플라스틱 바구니 등을 갖고 있기에 이 분들이 낙지를 잡으러 가는구나, 했더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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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이 덜컹거리면서 외길을 따라 달려 나갔다. 길 끝에 멈춰선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잡아당겼고, 배에 올라탔다. 엔진소리가 울리고 배가 출발했다. 바다를 가르면서 달리는 배 뒤로 흰 거품이 그림자처럼 남으면서 따라온다. 기온이 뚝 떨어진 탓에 바닷바람은 쌀쌀했다. 배에 올라탄 이들은 죄다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바다에서는 계절이 앞서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 10분쯤 바다 위를 달렸을까? 배가 바다 위에 멈췄다. 그냥 내리란다. 바닷물에 발이 푹 빠진다. 이래서 비닐 장화가 필수품이구나. 바다에서도 옷이 적을 염려를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을 수 있으니 말이다.

너른 갯벌이 언뜻 보기에 평야처럼 펼쳐진다. 배를 타고 왔으니, 육지의 끄트머리는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체 어딘가? 황 감독이 '도리도'라고 설명한다. 입하도와 국화도가 갯벌 너머로 보인다. 바다 위에 갯벌이 넓게 펼쳐진 섬이 있다는 건 어찌 알고 여기까지 낙지를 잡으러 왔을까?

썰물 때 갯벌이 드러나면 낙지와 바지락을 잡거나 캐고, 물이 다시 들어오면 잡은 물것들을 들고 배에 올라 육지로 돌아간다고 했다. 바다 위에 세워놓은 배는 물이 빠지면서 갯벌 위에 올라앉은 형국이 되고, 물이 들어오면 다시 바다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그러면 그 배를 타고 가는 것이다.

설명으로 들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더니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이해된다.

"나는 여기 갯벌이 죄다 돈으로 보여요."

굴을 까는 홍예선씨
 굴을 까는 홍예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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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잡이 취재 중인 황호현 감독(오른쪽)
 낙지잡이 취재 중인 황호현 감독(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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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갯벌 위에 올라선 예선씨가 느닷없이 말했다. 돈? 왜?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선씨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갈고리로 갯벌을 긁으면서 흙을 뒤집으면 바지락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잡은 바지락을 공판장에 가서 팔면 돈이 된다. 낙지도 마찬가지다. 잡아서 팔면 돈이 된다.

하루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잡으면, 낙지를 잡으면 못해도 최소한 30만 원은 손에 쥘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갯벌에 널린 것이 먹을 것이고, 그것들을 잡아가면 돈으로 바꿀 수 있으니 갯벌이 돈으로 보인다는 예선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온 아주머니들은 갯벌에 흩어져서 갈고리로 흙을 뒤집으면서 바지락을 캐기 시작했다. 갯벌의 크고 작은 돌덩어리에는 굴이 잔뜩 붙어 있었다. 처음에야 굴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호미를 준비해 온 예선씨가 호미 끝으로 그것들을 두드려서 굴을 꺼낸 것이다. 먹으라고 내주는데 신선한 굴 맛이 제대로 난다. 하지만 아직 굴이 제철이 되기에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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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들이 바지락을 캐다가 낙지를 잡는 줄 알았더니, 낙지는 섬 안쪽으로 들어가야 잡는단다. 30분 이상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나. 갯벌 위라도 걷는 거야 문제없지, 하면서 걸었다.

예전에 섬 여행을 하면서 낙지잡이를 하는 아주머니들을 본 적이 있어서 백미리도 그런 줄 알았더니 이곳에서 낙지잡이는 남자들 몫이었다. 어쩌다가 낙지를 잡는 여자도 있지만 드물단다. 너무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곁에서 지켜보자니 정말 힘든 것처럼 보인다.

삽으로 갯벌 흙을 푹 떠내고 그 자리에 엎드려 한 팔을 집어넣고 휘휘 저으면서 낙지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어깨까지 갯벌 안으로 들어간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낙지를 찾아내기를 반복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삽 끝을 갯벌에 박고 한 발로 힘을 주어 누르면 삽이 갯벌 속으로 쑥 들어간다. 그러면 흙을 푹 퍼내는 것이다.

"저 흙이 제법 무거워. 흙이 고운데다가 물에 푹 젖어있으니 무게가 엄청 나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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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리가 '나와바리'라는 예선씨가 설명한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낙지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한 번 나가서 100여 마리 정도를 잡는다는데 삽질을 한 번 할 때마다 한 마리를 잡는다면 최소한 삽질을 100번을 해야 한다는 건데, 낙지가 있을 확률은 50~70% 정도란다.

그렇다면 100마리를 잡으려면 최소 140회는 삽질을 해서 흙을 퍼내고, 엎드려서 낙지를 잡는 동작을 되풀이 한다는 결론이다. 곁에서 지켜보니 다섯 군데나 삽질을 했는데 낙지가 잡히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잡혀 나온 낙지는 크고 작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갯벌 흙을 잔뜩 묻힌 채 끌려나온 낙지를 바닷물에 한 번 헹궈서 통 안에 집어넣는다. 통 안에서 꿈틀거리면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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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가 많이 나온다는 곳으로 가니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30~4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삽을 하나씩 들고 흩어져서 낙지를 잡고 있었고, 그 근처에 천여 마리가 넘는 것 같은 갈매기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었다. 갈매기들은 시끄럽게 울어댔다. 갈매기들이 낙지 잡는 사람들 주변을 빙빙 맴도는 것은 그들이 뒤집어엎은 갯벌 흙 속에서 나온 작은 가재를 잡아먹기 위해서란다.

갈매기들은 사람들이 시끄럽고 귀찮아서 해코지라도 하면 가만히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떼로 덤벼들면서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곳 백미리에서는 가재를 '쏙'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다른 지방에서는 이걸로 튀김을 해먹기도 하고 해물탕에 넣기도 한다는데 백미리에서는 어째 천대(?)를 받는 것 같았다. 낙지와 바지락, 망둥어, 게 등을 잡는 게 더 실속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백미리에서는 망둥어 낚시도 많이 한단다.

갯벌 흙 속에는 쏙 말고도 개불도 많아서 흙을 뒤집으면 꿈틀거리면서 기어다니곤 했다.

이게 '쏙'이다. 어른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
 이게 '쏙'이다. 어른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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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개불
 요건 개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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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가 별로 잡히지 않는다고 하더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예선씨 8촌 형님 뒤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이 분, 정말이지 낙지를 잘 잡는다. 삽을 들고 갯벌 위를 천천히 걷다가 제법 큰 것 같은 구멍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삽을 꽂는다. 그리고 발로 푹 누른 뒤, 흙을 퍼내고 엎드린다. 조금 뒤 낙지 한 마리가 땅 위 세상으로 끌려나오면서 온몸을 뒤튼다.

예선씨는 그가 갯벌 위에 휙 내던진 낙지를 잡아 바닷물에 잽싸게 헹군 뒤 통 속으로 집어넣는다. 사각형 스티로폼 통 안에 낙지가 가득 차면 120마리 정도가 될 거란다. 낙지 한 마리가 3500원에서 4천원이니, 돈으로 환산하면 대체 얼마인가? 하루벌이로는 아주 짭짤한 것 같다. 물론 잘 잡는 사람에 한해서겠지만.

갯벌에는 갈수록 파헤친 흙이 많아진다. 낙지 잡는 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쉬지 않고 흙을 뒤집어 대기 때문이다. 낙지잡이 체험을 하러 왔다는 한 남정네는 물이 들어올 때까지 10마리를 잡았다고 한다. 낙지는 처음 잡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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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리 어촌체험마을은 낙지잡이 체험뿐만 아니라 망둥어 낚시, 조개 캐기 체험 등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주말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것이 황 감독의 설명이다. 겨울에는 굴 캐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멀리까지 밀려나갔던 물이 오후 1시가 넘으면서 서서히 밀려들었다. 그러더니 어느 사이엔가 갯벌 위에 올라앉았던 배들을 두둥실 띄운다. 낙지를 잡는 발걸음이 더 분주해지는 듯하더니, 낙지 잡던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다들 배로 향한다. 바닷물을 헤치고 걸으면서.

예선씨는 8촌 형님이 잡은 낙지를 실으러 먼저 배로 가고, 나는 황 감독과 함께 배를 타러 바다로 들어갔다. 바다 아래에 웅덩이가 숨어 있어서 자칫 잘못 하다가 발이 빠지면서 바다에 엎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황 감독이 귀띔한다. 바닷물에 빠져서 몸이나 옷이 젖는 건 상관없는데, 카메라는 절대로 안 되지. 정말 웅덩이가 있긴 하다. 갑자기 발이 푹 빠지는 곳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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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은 무릎 위까지 찼다. 다행히 장화가 허벅지까지 이어져있어 옷을 적시지 않고 배 위로 올라탈 수 있었다. 도리도에 올 때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과 함께 왔는데, 가는 배는 낙지잡이를 하던 남자들로 가득 찼다. 다른 배를 탄 것이다.

배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니 배가 좌우로 흔들린다. 바닷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리듬을 탄 것처럼 움직인다. 사람들이 배에 다 탔는데도 배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체 왜 그러나, 했더니 라면을 끓인단다. 하긴 2시가 다 되었으니 점심때가 훌쩍 지나고도 남았다. 시장기가 돌고도 남을 시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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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노동시간이 지났으니 이제는 즐길 시간. 배 위에서 라면을 안주로 가벼운 술판이 벌어졌다. 헌데 라면이 아주 끝내준다. 갓 잡은 낙지 서너 마리가 들어간 것. 백미리에서 잡히는 낙지는 몸통이 커도 아주 연하면서 아주 맛있다. 그런 녀석들이 들어간 라면이라니, 맛이 일품인 거야 당연하다. 

맛난 라면을 다 먹은 뒤에야 배가 출발했다. 섬은 어느 사이엔가 바닷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물이 다시 나가면 섬은 모습을 드러내리라. 배는 바다를 시원하게 가르면서 달렸고, 이따금 심하게 출렁거렸다. 10여 분쯤 바다 위를 달리자 저 멀리서 아침에 떠나온 백미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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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낙지, #백미리, #화성시, #도리도, #체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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