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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건 뭘까? 소재 고갈? 시청률 하락? 모르긴 몰라도 그 중 하나는 '결방'일 것이다. 방송이 제 때 전파를 타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애써 만든 결과물을 지금 당장 시청자에게 내보일 수 없다는 일차적인 문제 외에 앞으로도 그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 즉 제작진의 입장에서 결방은 곧 시청자와의 단절이요, 시청률의 하락이다. 시청자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어서 방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어도 성미에 차지 않는다 싶으면 주저 없이 채널을 돌린다. 게다가 요즘은 TV 말고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이젠 아예 채널을 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TV를 꺼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청자는 변덕스러운 것만이 아니라 참을성도 없어서, 이젠 얌전히 TV 앞에 턱 받치고 앉아 방송을 기다리는 짓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시청자의 비위를 맞추려면 방송을 잘 만들어야 한다. 결방이 없어야 함은 문자 그대로 '기본'이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방송의 흐름상 한두 회만 빼먹어도 시청자는 앞의 내용을 다 잊어 버리게 되고, 다시 방송이 시작한들 이전만큼의 흥미를 갖게 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라마의 경우 한 번의 결방이 그대로 시청률의 향배를 결정지어 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드라마를 보려고 자리에 앉은 시청자는 보던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지 않으면 자연히 채널을 돌리게 되고, 그렇게 한 번 다른 방송으로 방향을 튼 시청자를 다시 되찾아오기란 쉽지 않다. 드라마보다 호흡이 긴 예능의 경우 사정이 조금 낫다 할 수 있겠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근근이 버텨야 하는 처지는 매한가지라 결코 방심할 수 없다.

장기간 파업으로 시청률 4%까지 떨어져

장기간 파업으로 24주간 결방해야 했던 <무한도전>.
 장기간 파업으로 24주간 결방해야 했던 <무한도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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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시작해 7월 17일 잠정 중단할 때까지 무려 170일 동안이나 이어진 MBC의 총파업은 MBC의 많은 프로그램에 직격탄을 안겨줬다. 지상파 방송사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인 뉴스는 방송 분량과 보도의 질, 시청률 등 여러 면에서 더 이상의 굴욕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고, 각종 교양 및 예능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외주제작이 활성화된 드라마만이 겨우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무한도전>은 독보적인 장기결방으로 파업기간 내내 MBC 파업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여타의 예능 프로들이 모두 대체인력을 가동해 파업 얼마 후부터는 정상방송하기 시작한 것과는 달리, <무한도전>만은 끝까지 대체 제작진의 투입 없이 방송이 완전 중단되었고,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반 <무한도전>의 방송시간에는 지난 방송들이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전파를 탔다. 한두 달도 아니고 무려 6개월 가까이 말이다.

시청률의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아무리 <무한도전>이라고 하지만 6개월 가까운 결방을 버텨낼 재간은 없었다. 파업 초반 얼마간 10%대의 시청률을 유지했지만(사실 이것만으로도 <무한도전>의 대단함을 짐작할 수 있다. 재방송만으로 몇 주 동안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방송이 어디 흔한가) 이내 내리막길을 달린 시청률은 4, 5%대까지 떨어져 이후 파업이 끝날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했다.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연일 <무한도전>의 앞날을 두고 진단과 예견이 쏟아졌다. 김재철 MBC 사장의 발언을 비롯하여 각종 MBC 및 방송 관계자들의 코멘트가 흘러나오면서 제작진 교체설 및 외주제작화, 프로그램 폐지설 등이 떠돌았다. 바닥을 친 시청률에 좋지 못한 말들이 뒤섞이면서 <무한도전>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가득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뚝 떨어진 시청률이 방송이 재개된다고 쉽게 회복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긴 결방 견딜 수 있었던 건 기다려준 팬덤의 힘

파업 종료 후 첫 방송은 사실상 지난 1월 마지막 방송의 요약본이었음에도 14.0%라는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파업 종료 후 첫 방송은 사실상 지난 1월 마지막 방송의 요약본이었음에도 14.0%라는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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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우려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한도전>은 파업이 끝난 직후 전파를 탄 7월 21일 방송에서 14.0%(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올리며 동시간대 1위 자리를 되찾아왔다. 썰물처럼 빠졌던 시청률은 무려 10%가 껑충 뛰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소위 '무도빠'로 불리는 <무한도전> '팬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방송의 결방과는 상관없이 <무한도전>을 믿고 응원하는 고정 마니아층, 팬덤이 있었기에 <무한도전>은 24주라는 유례없는 장기결방 사태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팬덤이야말로, 지난 7년 <무한도전>의 역사 그 자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무한도전>은 놀라운 시청률의 상승을 일궈냈다. 방송 초반만 하더라도 50회를 장담할 수 없었던 그들이 2006년 말에 이르러서는 동시간대 1위에 오르고, 2008년 초 '이산 특집'에서는 드디어 30%의 벽을 돌파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팬덤은 2009년 이후 확실한 고정 시청자로 자리매김하여 이후 <무한도전>은 15%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 자리를 굳건히 수성 중에 있다.

시청률 조사회사 TNmS에서 발표한 2012년 1월 1일부터 6월 24일까지 방송된 지상파 프로그램의 시청자 성 연령별 시청률 순위를 살펴보면 <무한도전>은 10대 남자 시청자에게 4위, 10대 여자 시청자에게 3위, 20대 남자 시청자에게 3위, 그리고 20대 여자 시청자에게는 2위에 이름을 올렸다. 10대와 20대가 주 시청자 층이었다는 뜻으로, <무한도전>이 여타의 예능과 달리 결속력 강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던 데는 이 점이 크게 작용했다.

마치 아이돌의 그것처럼, <무한도전>의 팬덤은 강한 충성심으로 방송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으로 성장했다. 지난 파업 기간 동안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4, 5%까지 떨어졌음에도 동시간대 방송되던 KBS <불후의 명곡2>나 SBS <스타킹>의 시청률이 크게 오르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했던 것은 <무한도전>의 고정 시청자들이 그 시간대에 아예 TV를 보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무려 10%에 달하는 시청자들이, 아예 TV를 꺼버린 것이다.

인터넷과 밀접한 이들 무도빠들은 <무한도전>을 단지 예능 프로의 하나로 머물게 하지 않았다. 방송에서 만들어진 각종 캐릭터와 제작진의 자막 등은 사진으로 캡쳐되고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곳곳에 퍼져나갔고, 제작진과 출연진이 다시 그것들을 피드백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선순환으로 <무한도전>은 예능을 뛰어넘어 인터넷 문화를 대변하고 젊은 층의 정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팬덤 눈밖에 나니 뭇매 맞는 <무한도전>

<슈퍼7> 콘서트 논란을 책임지고 하차를 선언했던 길은 제작진과 멤버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하차를 번복하고 방송에 재합류했다.
 <슈퍼7> 콘서트 논란을 책임지고 하차를 선언했던 길은 제작진과 멤버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하차를 번복하고 방송에 재합류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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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팬덤의 존재는 <무한도전>에게 있어서 마냥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팬덤이 확고하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들의 영향력 또한 크다는 것. 7년이란 세월 동안 <무한도전>과 같이 자란 팬덤은 이제 단지 응원만 하는 소극적인 위치에서 한 걸음 나아가 방송을 향해 자신들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무한도전>의 팬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10대와 20대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인터넷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내고, 이런 것들은 포털사이트 및 커뮤니티 사이트, SNS 등을 통해 확산되는 과정에서 언론이 가세하여 논란과 의혹이 되고, 여기에 일반 누리꾼까지 합세하여 최종적으로 여론으로 발전한다. 자연히, <무한도전>의 제작진과 출연진은 팬덤의 목소리를 결코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 벌어졌던 <슈퍼7> 콘서트 논란은 <무한도전> 팬덤의 영향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무한도전>의 파업기간 동안에도 매주 모여 아이디어 회의 등을 하던 중 방송재개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조금씩 준비를 하며 시작됐던 <슈퍼7> 콘서트 계획은 그러나 감춰져 있던 베일을 벗고 본격적인 티켓 예매를 시작하는 순간 뜻하지 않은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논란의 불씨가 된 것은 고가의 티켓 가격이었다. 지금까지 연례행사로 있어왔던 연말 콘서트에서 한 번도 티켓 장사를 하지 않았기에 팬들은 티켓을 판다는 것에 의아해했고, 더구나 그 가격이 일반 가수들의 콘서트와 비교했을 때 더 고가였다는 것에 분노했다. <슈퍼7> 콘서트는 <무한도전>의 방송 녹화가 아니기에 MBC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없어 티켓을 팔 수밖에 없었고, 티켓 판매 수익금으로는 지금까지 <무한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좋은 곳, 좋은 뜻에 기부할 계획이었음이 추후 밝혀졌지만 이미 폭풍이 지나간 뒤였다.

티켓 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조정된 이후 팬덤이 문제 삼은 것은 김태호 PD의 배제였다. SNS를 통해 한 누리꾼이 김태호 PD에게 콘서트의 진행 상황을 묻자 김태호 PD는 "<무한도전> 콘서트가 아니라 저는 잘 몰라요"라고 대답한 것이 화근이 됐다. <무한도전>의 팬덤에게 김태호 PD의 존재는 각별하다. 그는 <무한도전>을 떠받치는 기둥과도 같은 존재로, 그가 없는 <무한도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MBC가 파업 기간 동안 끝내 <무한도전>에만은 대체 제작진을 투입하지 않은 것도 이런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김태호 PD가 배제된 콘서트, 더군다나 콘서트 날짜와 시각은 <무한도전>의 방영되는 토요일 오후 6시 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이 알던' <무한도전>이 아니었기에 팬덤은 분노했고, 인터넷을 통해 그 분노는 여과 없이 표출됐다. 결국 <슈퍼7> 콘서트는 취소됐고, 콘서트 준비를 맡아 진행했던 멤버 길은 방송 하차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팬덤에 웃고 울고... <무한도전>의 숙제

팬덤이 있었기에 반년 가까운 장기결방에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팬덤이 있었기에 반년 가까이 준비한 콘서트는 무산됐다. <무한도전>의 팬덤은 결코 쉽게 방송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은 <무한도전>이 자신들이 알던 방송에서 벗어나려 하는 순간 가차 없이 키보드를 두드릴 것이다.

<무한도전>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끊임없이 변화하여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방송가에서 7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이 거리낌 없이 시도하고 변화를 줄 수 있었던 건 분명 변치 않는 성원으로 최소 시청률을 보장하는 팬덤 덕분이었다. 하지만 팬덤이 그들이 어떤 것을 시도하더라도 마냥 박수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 이번 논란을 통해 확인됐다. 300회를 맞이한 <무한도전>이 600회로 가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태그:#무한도전, #김태호,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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