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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3일 서초동 삼성본관 건물 앞에서 열린 고(故) 황민웅씨 7주기 추모제.
 지난 7월 23일 서초동 삼성본관 건물 앞에서 열린 고(故) 황민웅씨 7주기 추모제.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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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3일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는 '역사적'인 집회가 개최됐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웅씨의 추모집회였다. 2007년 삼성그룹이 이곳에 입주한 이후 합법적으로 개최된 첫 번째 집회다. 추모집회를 금지한 서초경찰서의 처분에 삼성일반노조가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법원이 "집회가 허용된다고 해서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도 없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줘 가능했다.

이때까지 서초동 삼성 사옥은 사실상 집회의 '무풍지대'였다. 그동안 삼성은 집회신고를 먼저 접수하는 방법으로 사옥 주변의 노조 집회를 봉쇄해왔다. 매일 밤 서초경찰서 앞에서 집회신고를 위해 자리를 깔고 길게 늘어선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삼성이 고용한 용역 아르바이트생은 그 줄에서 단 한 번도 맨 앞자리를 뺏기지 않고 장소를 차지했다. 먼저 신고 된 집회를 이유로 서초경찰서는 노조의 집회를 '불허'해왔다.

최근 <오마이뉴스>가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서울지역 집회신고 다발지역 상위 30개소'에 따르면 '서초동 삼성본관 앞'은 총 720회 신고가 접수돼 종합 3위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243일 동안의 기록으로 매일 거의 3번의 집회가 신고된 것이다. 여기에는 삼성전자가 243회로 매일 집회를 신고했고, 삼성물산이 238회, 삼성중공업이 237회 신고했다.

집회의 목적도 '매일' 개최될 정도의 사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삼성은 '우수협력사 기술협력 지원 촉구', '일-가정 양립을 위한 조직문화 개선 촉구', '1인 시위 빙자한 불법시위 근절 촉구'를 각 집회의 목적으로 제기했다. 이 가운데 단 18회만 개최돼, 개최율은 2.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이른바 '유령집회'인 것이다. 경찰청 자료에는 삼성뿐 아니라,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홈플러스 등 대형유통업체의 '유령집회 신고'도 두드러졌다.

'우수협력사 기술협력지원 촉구', '1회용품 사용자제 캠페인' 행사 매일 개최?

올해 가장 많은 집회가 신고 된 지역은 중랑구 사가정역 앞으로, 전국노점상연합(전노련) 사사정지부가 449회 신고하는 등 총 748회 접수됐다. 전노련은 전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 등과 함께 서울에서 가장 많은 집회를 신고한 단체로, 생존권 투쟁을 목적으로 노점상들이 밀집돼 있는 지하철역 주변과 중랑구청, 금천구청 등 관공서 앞에 집중적으로 집회신고를 냈다.

두 번째로 집회 신고가 많았던 지역은 신촌의 현대백화점 앞이다. 총 727회 신고가 됐는데 모두 현대백화점이 신고했다. '1회용품 사용자제 캠페인'을 목적으로 하루에 2, 3개씩 신고를 한 셈이다. 현대백화점은 압구정점 앞에도 488회 집회신고를 냈다. 여기는 압구정점과 현대백화점 본사가 '건전한 상거래 확립'을 목적으로 각각 244회씩 신고했다. 현대백화점은 두 곳을 합해 971회 집회 신고를 했지만, 집회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롯데백화점도 청량리점에 '홍보 및 거리정화 캠페인'을 목적으로 488회 신고했지만 실제로 개최를 한 적은 없다. 이 지역은 전노련에서도 223회 신고해 서울에서 네 번째로 많은 신고가 접수된 곳이다. 홈플러스 면목점 앞도 업체와 전국노점상연합의 집회신고가 집중된 지역이다. 홈플러스 204회, 전노련이 204회를 신고했다. 홈플러스는 금천점 앞에도 270회 신고를 했지만 집회를 개최하지는 않았다.

그밖에도 그랜드힐튼호텔(578회 신고/0번 개최), 신라호텔(461/0), CJ제일제당(455/0), 이랜드 월드(408/17), 태광산업(394/0), 재능유통(450/0), 쌍용건설(215/0) 등이 '유령집회'를 남발하는 업체로 드러났다.

대기업들의 이런 행태는 지난 3년 동안의 누적 자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2009년 6월 1일부터 지난 6월 말까지 3년 동안 집회신고 횟수 상위 30개 단체를 살펴보면, 삼성물산이 7878회 신청해 단 1회 집회를 열었고, 현대백화점이 신촌에 2359회, 압구정에 2252회 신청해 한 번도 집회를 개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랜드가 2128회, 재능유통이 2085회, 두산타워 2050회, 신세계건설 2018회, CJ제일제당 2017회, 태광산업 1964회, 두산중공업 1820회 신고가 있었지만 모두 개최 건수는 0이다.

이 기간 중 서울 서초 삼성 본사 앞에는 총 3465회(삼성물산 1213회, 삼성중공업 1152회, 삼성전자 1100회) 집회가 신고됐지만, 실제로 개최된 것은 단 2회뿐이다. 전체 순위로 따지면 두 번째로 많은 집회가 신고됐다. 같은 기간 종로구 종묘공원에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노인단체들이 '안보교육'을 목적으로 2620회 집회를 신고해 771번 개최했다.

"회사들이 점령, 원하는 날짜에 집회개최 불가능"

ⓒ 봉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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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과는 대기업들이 집회장소를 선점해 다른 집회의 개최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는 집회 개최 48시간 이전에 집회신고서를 제출하고, 경찰은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집회신고를 받아주게 돼있다. 집회를 제한하는 '결격 사유'로는 '폭력 사태가 일어날 우려가 있는 경우'나 '사전에 신고 된 집회가 있는 경우'가 주를 이룬다.

기업들은 이 점을 이용해 장기간 집회를 선점하는 방식으로 회사에 불리한 집회를 막아 온 것이다. 법원은 최근 삼성일반노조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 준 것과 함께, 지난해 12월 KT 퇴직자 등으로 구성된 '희망연대노조'가 광화문 KT본사 앞에서 열려던 집회를 다른 집회가 먼저 신고 됐다는 이유로 경찰이 금지하자 "먼저 들어온 형식적 집회신고가 있다는 것만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집회를 막으면서 다른 집회를 개최하려는 쪽도 다수의 집회신고를 할 수밖에 없다. 김지희 전국금속노동조합 대변인은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회사가 거의 모든 날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려는 날짜에 집회를 개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노점상이나 노조에서 집회신고를 많이 하는 것은 집회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집회일자를 어떻게든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속노조는 지난 8개 월 동안 760번 신고를 하고 49번 집회를 개최했다.

경찰 "수차례 본청 지침 내려가, 상황 나아질 것"

이러한 '유령집회 신고'와 관련해 삼성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경찰통계에 잡히지 않은 집회가 있는 듯 하다"며 "내부적으로는 올해 들어 30회 이상 캠페인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시민사회단체나 노조의 집회 이외에도 각종 민원인들의 항의와 시위가 계속돼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경찰청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본청 정보과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집시법에 따라 선순위 신고된 집회가 있으면 후 순위 집회를 받지 않는 게 규정이지만, 다른 집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집회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상황"이라며 "그것이 집회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있어, 방해 의도가 명확할 경우 현저하게 불법이 예상되거나 양측의 충돌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최대한 집회신고를 받아주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집회의 자유는 헌법상의 권리이기 때문에 단순히 선순위가 있다고 해서 금지통보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공감한다, 수차례 본청의 지침이 내려갔기 때문에 앞으로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삼성,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집회신고,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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