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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베란다가 없는 원룸 건물이라 사람들은 햇볕 좋은 날 주차장에 빨래를 넌다. 지금 내 소망은 베란다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다.
 베란다가 없는 원룸 건물이라 사람들은 햇볕 좋은 날 주차장에 빨래를 넌다. 지금 내 소망은 베란다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다.
ⓒ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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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마다 나와 남자친구는 빨래를 돌린다. 일주일 동안 쌓인 빨래는 10킬로그램 통돌이 세탁기에 가득 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원룸에는 베란다가 없다. 그래서 날씨가 좋으면 빨래를 바깥에 내다 말린다. 한 손에 건조대를 들고 다른 손에 탈수한 빨래 뭉치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려면 팔이 빠질 지경이지만, 우리는 빨래를 널러 같이 나가지 않는다.

오늘은 내 차례다. 건물 옆 주차장 한쪽에는 벌써 부지런한 사람들이 내놓은 건조대가 햇볕 잘 드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건조대를 펴고 빨래를 하나하나 털어 널면서 주변을 힐끔거린다. 남자 친구의 커다란 옷가지를 널 때 동네 아주머니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뒤통수가 따끔따끔하다.

우리는 20대 후반의 직장인 동거 커플이다. 지방 출신의 '가난한 캠퍼스 커플'은 대학을 졸업한 뒤 '워킹푸어 커플'이 되었다. 둘 중 내가 먼저 졸업을 하고 파주에 있는 회사에 취직해 원룸을 얻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취직을 하지 못한 채 졸업한 남자친구는 기숙사에서 나오자 갈 곳이 없었다. 결국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만 내 방에서 지낸다고 했고, 그게 동거의 시작이 됐다. 당시 우리에게 '동거'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문제였다.

올해 초, 마침내 남자친구가 취직을 하고 따로 방을 얻어 나갔다. 비로소 당당하게 살게 됐다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월급은 한 달에 200만 원이 되지 않았다. 나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각자 매달 월세 40만 원을 내고 공과금, 생활비 등을 쓰면 남는 돈이 없었다. 겨우 본전인 생활. 게다가 둘 다 야근을 밥 먹듯 하다 보니 따로 시간을 내서 밖에서 만나기도 힘들었다. 마침 내가 서울에 있는 회사로 이직하게 되면서, 결국 우리는 다시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더 저축을 해서 일찍 결혼하자고 다짐했다.

문턱 높은 전세자금대출... "차라리 혼인신고를 해버릴까?"

조금이라도 집세를 줄이고 싶은 마음에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보러 다녔다. 하지만 은행 직원은 연봉을 물어보더니 번번이 난색을 표하면서 높은 이자를 불렀다. 한 은행에서는 신혼부부의 대출 혜택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결혼할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어찌나 탐이 나는지, 혼인신고라도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목돈이 없는 우리는 다시 비싼 월세방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구한 곳은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십여 분 거리에 있는 4층짜리 작은 원룸 건물이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2만 원. 건물 관리를 전혀 안 하는지 계단에 전단지가 우수수 떨어져 있고 검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주변은 재개발 중이다. 건물을 지어놓고 방치하는 목적을 알 만했다. 대신 월세가 싼 편이었다. 원래 옵션이 없는 방이었지만 이번에 들어오는 사람부터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도 놔주겠다고 했다.

 동네 곳곳에는 재건축 법에 반대하는 전단이 붙어 있다. "누구를 위한 주거환경인가요"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동네 곳곳에는 재건축 법에 반대하는 전단이 붙어 있다. "누구를 위한 주거환경인가요"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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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 주인이 엄청 부잣집 사모님이래. 건물 지어놓고 이 동네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어. 시세를 모르니까 우리가 전화 걸어서 201호 월세 얼마에 계약할게요, 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거지."

부동산 아줌마는 내 편의를 봐서 월세를 싸게 해주는 것처럼 생색을 마구 냈다. 언제인가부터 이사한 건물의 주인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파주 신도시에서 원룸을 구할 때도 그랬다. 부동산 아저씨가 말하길 건물 주인은 목동에 살고 처음 건물을 지을 때 말고는 파주에 온 적이 없다고 했다.

세입자 계약과 관리를 전부 근처 부동산에 맡겨두는 것이다. 동거 커플인 우리는 굳이 아침저녁으로 집주인의 의심스러운 눈길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달 꼬박꼬박 40만 원씩 우리 돈을 쥐는 남자를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도 집주인 얼굴은 보지 못하고 부동산 아줌마와 계약서를 쓰고 도장을 찍었다. 나 혼자 살 것처럼 말했지만 아줌마는 자꾸 남자친구를 흘깃흘깃 봤다. 생각보다 부동산 중개료가 많이 나와 땀을 흘리며 동전까지 탈탈 털어 금액을 맞춰 드리자, 아줌마가 웃으면서 큰 소리로 "아이고 아가씨, 이렇게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하냐"라고 말했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 애매하게 따라 웃기만 했다.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의 신종 마름들

이사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짐을 싣고 오니 미리 넣어두겠다던 옵션이 하나도 없다. 부동산 아줌마는 집주인이 처리할 일인데 자기한테 맡기는 바람에 늦어졌다고, 오늘 중으로 중고 가게에서 물건이 다 배달될 거라고 했다.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주인에게 계좌로 받았다고 내 계좌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문제는 에어컨을 설치할 때 생겼다. 설치비가 부동산 아줌마가 받아준 액수를 훨씬 넘었다. 아줌마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뭐가 그렇게 비싸냐며 깎아달라고 말하라고 했다. 이사하느라 지친 우리는 점점 화가 났다. 설치 기사는 실외기로 이어지는 길이대로 액수는 정확히 정해져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마음대로 에누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부동산 아줌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사정을 설명했다. 설치비를 미리 짐작해서 받아놓은 게 문제 아니냐고, 집주인에게 더 청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막무가내로 받은 돈에 맞추라고 신경질을 내는 것이었다.

"아가씨, 그 돈도 아가씨 생각해서 겨우 받아놓은 거야. 내가 미안해서 주인 분한테 어떻게 더 말을 꺼내?"

기가 막힌 우리는 계약서에 적힌 집주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차분한 목소리의 중년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저, 새로 이사 온 201호 세입자인데요."
"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잠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다 "아!" 하고 알겠다는 소리를 냈다.

"주인 분 맞으시죠?"
"아니요, 저는 일을 봐드리는 사람이에요. 제가 사모님 대신 부동산이랑 연락하고 월세를 받아서 전해드려요."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몇 단계를 거쳐야 주인한테 연락이 닿는 거야?

"사모님 남편 분은 변호사세요. 두 분 모두 바쁘셔서 이런 일까지 직접 챙기지 못해요."

묻지도 않은 말에 황당했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모자라는 설치비는 우선 내고 이번 달 월세에서 제하겠다고. 그런데 전화기 너머 교양 있는 목소리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가씨, 남자친구랑 동거한다면서? 사모님이 알았으면 아마 세 못주게 했을 텐데...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보증금도 싸게 들어왔으니까 그 정도는 직접 부담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아줌마, 우리도 가정교육 잘 받으면서 자랐어요. 작지만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했고 나름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동거한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말 대신 나는 "네……"라고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방바닥에 내려놓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남자친구도 착잡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혼 부부와 달리 동거 커플을 지원하는 제도는 전무하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 문제를 다룰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신혼 부부와 달리 동거 커플을 지원하는 제도는 전무하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 문제를 다룰 때가 된 것이 아닐까?
ⓒ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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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할 수밖에 없는 사회조건... 이제는 가치관을 바꿀 때!

대단한 부잣집 사모님이라는 집주인도, 그 사모님 일을 봐준다는 교양 있는 아줌마도, 길에서 마주치면 우리는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부동산 아줌마는 마주칠 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주인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면서 소작인들을 착취하고 괴롭히던 마름들은 지금 다른 이름으로 부활한 것 같다.

우리는 모자라는 에어컨 설치비를 내고 그 집에서 재미나게 잘 살고 있다. 살다 보니 이 원룸 건물에서 동거하는 커플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주말마다 햇볕 잘 드는 바깥에 내놓은 빨래를 보면 알록달록한 남녀의 옷이 섞인 건조대가 여럿이다.

잘못한 게 없다고, 떳떳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토요일 아침 남자친구와 둘이 집 앞에서 사이좋게 빨래를 널지는 못하겠다. 우리에게 모욕을 준 그 아줌마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어른들 대부분이 동거하는 젊은이들을 노골적이고 편견에 가득 찬 시선으로 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끔 정말 궁금하다. 얼굴 없는 부자 주인들한테 매달 40만 원을 더 내면서 각자 방을 얻어 살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정당해지는 걸까? 사회에 나가 자립하는 나이가 점점 늦어지고, 결혼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가 너무나 어렵고, 그래서 동거하는 커플이 점점 늘어나는 명백한 현실 앞에서, 여전히 동거를 비윤리적인 거주 형태로 비난해야 할까?

동거 커플에게도 결혼한 커플과 동등한 의무와 권리를 부여하고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서구의 사례를 이제 우리도 진지하게 논의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동거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책과 가치관 변화는 이 미쳐 돌아가는 부동산의 나라에서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시 그 교양 있는 아줌마와 전화를 하게 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줌마, 힐러리랑 빌 클린턴도 젊을 때 동거한 거 아세요?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도, 독일 대통령 요하임 가우크도 동거 커플이거든요. 우리를 모욕하지 마세요!"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에 응모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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