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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형식적이거나 개념적으로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느껴서 공감하는 편이 더 쉬운 것일 수 있다. 원림이라는 말도 그렇다. 사전을 들추어 개념화할 수 있지만 느끼지 못하면 그저 추상명사가 되어버린다. 거기에는 우리의 문화와 철학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수식어를 붙여 우리의 원림이라 하면 그나마 나아지긴 한다. 우리의 원림을 구성하는 요소들, 우리 계류, 우리 계곡, 우리 수풀, 우리 동산, 우리 담, 우리 연못, 우리 계단, 우리 화계, 우리 굴뚝, 우리 문과 창살 등 디테일한 부분을 하나하나 상상하면 우리의 원림을 어렴풋이나마 그릴 수 있다.

소쇄원 담 원림은 담이나 인공 너머로 공간이 확대된다. 소쇄원은 담 안으로 공간이 한정되지 않는다
▲ 소쇄원 담 원림은 담이나 인공 너머로 공간이 확대된다. 소쇄원은 담 안으로 공간이 한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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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어떤 대상을 언어를 사용하여 개념화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없다. 어떤 사물의 이름을 모를 때 그 사물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수식어를 동원하는 번거로움과 답답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분하고 귀찮고 재미가 없더라도 어떤 대상을 명확하게 할 필요는 있다. 이 글은 원림이라는 개념을 명확화하고 규정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우리의 원림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는 데에 목적이 있다.

소쇄원 계류  원림은 계곡과 계류를 조경 삼아 적당한 곳에 정자를 배치한다
▲ 소쇄원 계류 원림은 계곡과 계류를 조경 삼아 적당한 곳에 정자를 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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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辭典)에 원림은 '집터에 딸린 숲'으로 되어 있다. 이는 사전적 의미일 뿐 개념적으로 볼 때 설명이 부족하다. 개념적으로 원림은 동산과 숲, 계류를 조경으로 삼고 거기에 집칸이나 정자를 배치하고 물길을 조성하여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 화단을 가꾸어 꾸민 정원이다. 원림은 공간을 집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집터에 딸린 숲이나 계류, 계곡까지 공간을 확대한다. 담 또는 인공 너머 자연을 그대로 정원으로 끌어들이려는 생각이 원림에 잘 드러나 있다.

창덕궁 후원 원림은 동산과 숲을 조경 삼아 적당한 곳에 정자나 집칸을 배치한다
▲ 창덕궁 후원 원림은 동산과 숲을 조경 삼아 적당한 곳에 정자나 집칸을 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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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림은 자연이 주인이고 사람은 단지 자연을 빌린 객에 불과하다. 이렇기 때문에 빌린 사람은 주인인 자연을 함부로 해하거나 도려내거나 오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자연에 대한 태도다. 이런 자연에 대한 태도에 의해 중국과 일본, 한국의 정원의 특징이 드러난다.

명옥헌원림 원림의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민간원림
▲ 명옥헌원림 원림의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민간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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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함부로 해하여 완전히 해체한 다음 새로운 정원을 꾸미는 것은 중국의 정원이요, 지나치게 오리고 도려내어 전혀 새로운 정원을 만드는 '성형정원'은 일본의 정원이다. 우리의 원림이라는 개념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원림에는 원림(苑林)과 원림(園林)이 있다. 명옥헌 원림은 원림(苑林)이고 독수정원림은 원림(園林)이다. 원림(苑林)과 원림(園林)의 차이는 무엇인가? 원(苑)과 원(園) 차이인데 사전에서는 둘을 혼용해서 쓰고 있다. 정원(庭園)과 정원(庭苑), 조원(造園)과 조원(造苑), 선원(仙苑)과 선원(仙園), 궁원(宮苑)과 궁원(宮園)등은 같은 뜻으로 보고 있다.

독수정원림 독수정 정자와 그에 딸린 숲을 말한다
▲ 독수정원림 독수정 정자와 그에 딸린 숲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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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庭園)은 예전에 일본에서 이식된 단어로 보고 이제는 정원(庭苑)으로 쓰고 있으며 궁원의 경우, 창덕궁 궁원을 말할 때 비원(秘苑), 후원(後苑), 북원(北苑), 금원(禁苑)으로 말하는데 모두 원(苑)을 쓰고 있어 궁원은 이제 궁원(宮苑)으로 쓰면 된다. 

창덕궁후원 원림의 개념에 부합하는 궁궐원림
▲ 창덕궁후원 원림의 개념에 부합하는 궁궐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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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것은 원림(苑林)과 원림(園林)의 차이다. 예전에 정원을 임원(林園), 화원(花園), 임천(林泉), 원림(園林)이라 하였는데 이때의 원은 모두 원(園)이다. 이것을 그대로 가져와 쓰면 원림(園林)이 맞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원림이라 이름 붙은 것은 담양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 담양 독수정원림(獨守亭園林), 장흥 용호정원림( 龍湖亭園林)과 부춘정원림(富春亭園林), 보길도 윤선도원림( 尹善道園林), 화순 임대정원림(臨對亭園林), 순천 초연정원림(超然亭園林), 담양 소쇄원(瀟灑園), 예천 초간정원림(草澗亭園林), 장성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 등이다.

명옥헌 원림(苑林)을 제외하고 모두 원림(園林)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단순히 착오 내지 원(園)과 원(苑)을 혼용해서 사용한 습관 때문에 그대로 사용했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념적으로 보면 원림(苑林)은 앞서 얘기한 원림의 개념에 충실한 용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원림의 개념에 가장 완벽하게 맞는 원림은 창덕궁 후원과 명옥헌 원림, 소쇄원이다. 화순의 임대정원림도 비교적 원림의 개념에 가까운 원림이다. 

명옥헌원림에서는 창덕궁후원의 두 영역이 보인다. 하나는 명옥헌원림의 큰 연못을 보면 후원의 부용지 영역이 보이고 명옥헌 정자와 주변 계류, 그리고 작은 연못을 보면 후원의 옥류천 영역이 보인다.

창덕궁후원 부용지 영역  명옥헌원림의 큰 연못을 보면 부용지 영역이 보인다
▲ 창덕궁후원 부용지 영역 명옥헌원림의 큰 연못을 보면 부용지 영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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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림의 개념에 충실한 후원(後苑)은 '원(苑)'을 쓰고 있어 후원을 떠올리며 명옥헌원림의 이름을 붙이면 원림(園林)보다는 원림(苑林)이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쇄원(瀟灑園)은 소쇄원(瀟灑苑) 내지 소쇄원림(瀟灑苑林)으로, 보길도 윤선도원림(尹善道園林)은 윤선도원림(苑林)으로 쓰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창덕궁후원 옥류천 영역 명옥헌원림의 작은 연못과 계류를 보면 옥류천 영역이 보인다
▲ 창덕궁후원 옥류천 영역 명옥헌원림의 작은 연못과 계류를 보면 옥류천 영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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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원림들은 앞서 얘기한 원림의 사전적(辭典的) 의미, 즉 '집터에 딸린 숲이나 계류, 계곡'의 개념에 충실한 것이다. 원(동산)과 림(숲)의 합성어의 성격을 갖고 있다. 예전의 정원의 이름인 임원(나무가 무성한 뜰), 임천(숲과 샘,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기 알맞은 곳)의 사전적 의미에 가깝다. 

그러나 원림이라는 것을 단지 겉으로 드러난 모양만 보고 원림(園林)과 원림(苑林)을 구분할 일이 아니다. 원림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림이라는 것이 예천 초간정원림을 제외하면 모두 호남에 분포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영남과 호남의 누정과 원림의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다.

예천 초간정원림 원림 중에 유일하게 영남에 존재한다
▲ 예천 초간정원림 원림 중에 유일하게 영남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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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리적으로 호남은 지세가 완만하고 평평하여 영남보다 원림을 조성하기에 더 유리하였다고 봐야한다. 호남은 정자를 짓더라도 거기에 주저앉아 자연을 가꾸고 살집으로 만든 반면 영남은 장쾌한 자연 속에 거주하기보다는 간헐적으로 휴식과 학습할 목적으로 정자를 지었다. 영남의 누정은 계곡과 강변의 경승지에 세워졌고, 호남의 누정 혹은 원림은 생활현장에 세워졌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정치와 문화의 차이에 기인한다. 기묘사화 후 사림파는 중앙정치무대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데 영남사림은 서원과 서당을 중심으로 학맥을 유지하였고 호남사림은 누정과 원림을 중심으로 지방문화를 이어 갔다. 자연적으로 영남의 정자는 생활공간이기보다는 휴식공간 성격이 더 컸다. 반면 호남은 정자와 원림중심으로 은둔과 은거생활을 하여 정자와 원림은 생활공간이고 학습공간이 된 것이다.

명옥헌원림과 소쇄원 기타 여러 원림은 원림을 꾸민 생김새나 세워진 위치가 다르지만 영남의 누정문화와 대비되는 원림만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정원을 이제 정원(庭苑)으로 통일하여 쓰고 있듯이 원림의 개념과 그 속에 담긴 문화까지를 포함한 개념으로 원림(苑林)으로 통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pressianpl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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