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2년 6월 18일 월요일.

강원도 화천에서 행한 <평화안보백일장>의 쓰라린 패배를 뒤로하고, 나는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전거여행에, 지역축제 방문을 접목하는 방식은 확실히 신선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몸은 많이 축났다. 그저 방문객의 입장에서 보고 즐기는 축제에 참가했으면 모르겠는데, 능동적으로 움직여야하는 글쓰기 대회에 참여했으니, 예상치 못한 체력의 소진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난 1등을 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1등은커녕 가작에도 못 들어, 인건비도 못 건졌으니 강원랜드에서 '한 판 땡길' 이유도 없어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기념으로 정선에도 가보고, 가리왕산도 탐방할 생각이었는데 애초 계획이 어긋난 것이다. 그래서 여행 경로를 수정했다.

화천에서 양구를 향해 가는 길. 이 길을 따라 시원하게 강변을 질주했다.
▲ 북한강의 자전거도로 화천에서 양구를 향해 가는 길. 이 길을 따라 시원하게 강변을 질주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화천 -> 양구 -> 인제 -> 양양 -> 강릉 ->울릉도

이 코스로 길을 잡았고, 실제로 이 코스로 주행을 했다. 그런데 이 코스에는 중간에 한계령이 자리 잡고 있다. 한계령! 그 이름만으로도 아웃도어 여행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설악산 한계령!

일단 자전거를 타고 설악산을 넘는다는 것이 무척 '환상'적인 일인데, 게다가 다른 고개도 아닌 한계령을 넘어간다는 것이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화천에서 한계령으로 가려면 양구를 거쳐 가야 한다.

'국토중앙 양구'

위의 명칭은 양구군에서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지역을 두루 다니다 보면 각 지자체마다 자신들의 특색을 슬로건화 해, 네이밍 한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천시는 '대한민국 생태도시 순천', 거창군은 '거창한 거창', 장흥군은 '정남진 장흥' 등으로 브랜드화했다. 거창군의 '거창한 거창'이야 지역 명칭을 브랜드화 시켰음을 단 번에 알아낼 수 있지만 장흥군의 '정남진'이나 양구군의 '국토중앙 양구'는 쉽게 그 뜻이 와 닿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남진은 장흥군이 서울에서 정남쪽으로 있다고 하여 정남진이라는 명칭을 썼다고 했는데, 정동진을 빗대서 생각해보니 그 뜻을 쉽게 이해하게 됐다.

그럼 국토중앙 양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 양구군은 DMZ를 끼고 있는데... 조금만 더 가면 북한인데...

한반도 중앙에 양구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
▲ 국토중앙 양구 한반도 중앙에 양구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남한, 북한을 뛰어넘는 한반도적인 슬로건이다. 휴전선 남쪽이라는, 협소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양구는 철책선에 갇힌 변방에 불과하지만 철책선을 걷어낸 후의 양구는 국토의 정중앙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미래지향적이고 통일지향적인 구호라고 할 만하다.

남쪽만 나와 있는 교통지도와 남쪽지역 날씨만 알려주고, 북한 지역은 '언저리'로 알려주는 날씨방송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죽비소리와도 같은 일침을 가하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 구글 어스에는 북한지역 정보가 나오지 않지만, 옛날 <대동여지도>에는 남북한의 구분이 없지 않았던가? 지리적으로 남과 북을 구분하는 사고도 극복해야 할 분단고착적인 사고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려있다고 하지만 백두대간이 갈렸는가? 남쪽 백두대간이 따로 있고, 북쪽 백두대간이 따로 있겠는가? 다 똑같이 소중한 우리의 백두대간이지 뭐!

화천에서 양구로 넘어가기 위해서 파로호 인근을 지나야 했다. 멀리 파로호댐이 보인다.
▲ 파로호 화천에서 양구로 넘어가기 위해서 파로호 인근을 지나야 했다. 멀리 파로호댐이 보인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국토의 정중앙이라서 그런가? 양구를 진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최근에 양구는 도로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다. 올봄에 배후령 터널이 개통됐기 때문이다. 5.1Km라는 국내 최장거리 터널이 개통되어 양구와 화천을 오가는 길이 많이 편리해졌다고 한다. 기존의 양구는 소양호와 파로호를 끼고 있어 도로교통이 무척 불편했었다. 그 두 호수가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길이 그곳을 '뼁~'하고 돌아가야 하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차에 배후령 터널이 개통되었으니 화천과 양구에 사시는 분들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난 왜 양구를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말을 했나? 이율배반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5.1Km나 되는 터널을 통과한다고 생각을 해봐라. 그거 정말 못할 짓이다. 400~500m 짜리 터널을 지나는 것도 정말 괴로운 일인데 무려 5.1km에 달하는 터널 구간을 지날 때의 고통이란! 내 고막을 도려낼 것 같은 자동차의 소음은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다. 그나마 뒤에서 오는 차가 승용차면 다행이지, 22톤짜리 바퀴 8개 달린 덤프트럭이 뒤따라온다고 생각해봐라!

그 긴 장거리 터널을 지나고 나니, 탈진할 정도로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설상가상이라고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어둠 속에서도 야영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여행일지를 보니, 난 양구군 양구읍에 있는 사명산 양구학생 캠핑장에서 텐트를 쳤었다. 도착 시간을 보니 23시였다.

박수근 미술관 앞에 있는 박수근 공원. 산책하거나 사색하기 제격이다.
▲ 박수근 공원 박수근 미술관 앞에 있는 박수근 공원. 산책하거나 사색하기 제격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다음날.

난 양구읍내로 진입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양구는 소양호와 파로호를 끼고 있다. 그래서 호반의 도시로 보이기도 한다. 양구 읍내에서 가까운 곳에 박수근미술관이 있었다. 양구 읍내에서 걸어갈 수도 있을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난 그곳에서 좋은 감흥을 받고 왔다. 자전거여행에 지역축제가 접목되고, 또 미술관 탐방까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박수근(1914~1965)은 양구군 양구면(현 양구읍) 정림리에서 출생을 했다. 가난했던 그는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게 됐는데 그런 성장배경은 박수근의 작품들에 오롯이 스며들게 된다. 그는 화강암처럼 두툼하고 거친 풍의 질감으로 작품들을 많이 제작을 했는데 그런 작품들은 서민적이면서도 소박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악〉(1932),〈나무와 여인〉(1950년대),〈행인〉(1964), <할아버지와 손자〉(1964) 등등... 작품명만 봐도 한국적이지 않은가? 그런 박수근미술관은 선생의 작품들과 함께 일대기를 기록한 공간이었다. 2002년에 개관한, 비교적 최근에 개관한 곳이라 그런지 전시공간과 편의시설도 합격점을 줄 만 했다.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다.
▲ 박수근 선생 좌상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박수근 선생 생가터에 200여 평 규모로 건립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은 그 자체로 문화공간이었다. 앞산이 보이는 확 트인 공간에 있는 미술관은 전면에 공원과 함께 야외전시장이 있었다. 그냥 얼핏 봐도 산책하기도 좋고, 사색하기도 좋은 공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나는 공원에 앉아 야외전시물들을 감상하며 식사를 했다. 왜 이상하게, 난 그렇게 멋진 문화공간에 들어서면 허기가 지는지 모르겠다. 야유회를 가면 도시락부터 챙기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긴 잘 먹어야지. 그래야 구비구비 돌아가는 한계령을 넘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는 '인제'로 향하는 것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느냐고? 원통해서 어찌하라고? 그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가서 물어보시라.
 
가난했던 박수근 화백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직접 역사 그림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감옥에서 역사편지를 썼던 인도의 네루 총리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 고구려이야기 가난했던 박수근 화백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직접 역사 그림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감옥에서 역사편지를 썼던 인도의 네루 총리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박수근 고구려이야기
▲ 박수근의 고구려이야기 박수근 고구려이야기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박수근 화백이 이런 작품도 그렸다. 박수근 화백에게서는 서양 화풍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 박수근 화백 작품 박수근 화백이 이런 작품도 그렸다. 박수근 화백에게서는 서양 화풍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박수근 미술관에 가면 무언가 작품을 제작해야 할 것 같다. 그 곳에 가면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되는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한 번 설치미술(?)을 해보았다. 박수근 선생은 내 자전거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 박수근과 자전거 박수근 미술관에 가면 무언가 작품을 제작해야 할 것 같다. 그 곳에 가면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되는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한 번 설치미술(?)을 해보았다. 박수근 선생은 내 자전거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 제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태그:#양구, #박수근, #박수근미술관, #국토정중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