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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열린 '아동대상 성범죄 및 방임아동의 실태와 대책' 간담회 참석자들. 왼쪽부터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성태숙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 이여진 국회입법조사처 아동·보육담당 입법조사관
 9월 5일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열린 '아동대상 성범죄 및 방임아동의 실태와 대책' 간담회 참석자들. 왼쪽부터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성태숙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 이여진 국회입법조사처 아동·보육담당 입법조사관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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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나려면 마을 같은 공동체가 한 아이에게 관심을 쏟을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연이은 아동 성폭력 범죄 대책 속에는 '공동체, 환경'보다는 '처벌'이란 두 글자만 두드러지고 있다. 5일 오전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열린 '아동대상 성범죄 및 방임아동의 실태와 대책'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내며 "처벌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는 국회인권포럼과 국회입법조사처가 공동 주최했다.

'아동성범죄 실태와 예방대책'을 주제로 발표를 맡은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자 10명 중에 다섯 명은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반면 성인을 노린 연쇄성폭력범죄의 경우 범인의 거주지역에서 일어나는 비율이 29.8%였다. 가장 많이 아동·청소년 성범죄가 발생하는 장소는 누군가의 집(아동 40.6%, 청소년 44.3%)이었다. 김 연구위원은 또 "아동 성폭력은 오후 2~8시 사이에 아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주택가나 이면도로, 학교, 학원 등에서 많이 발생한다"며 "학교나 학원이 끝난 후 집중적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동 성폭력 범죄 대책은 크게 가해자 처벌과 재범방지, 피해자 보호,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한국은) 엄벌주의 정책으로 점철되고 있다"며 "성범죄가 10건 발생하면 사실상 하나만 신고되고 있는데, 이 10%만을 위한 처벌 강화에 너무 많은 힘을 쓴다"고 지적했다. 수사력을 향상시키고, 28.3%에 불과한 기소율을 더 높여 '성범죄 처벌이 확실하게 이뤄진다'는 인식을 퍼뜨려야 피해자들의 신고율이 높아질 수 있고, 처벌의 실효성도 확보된다는 뜻이다.

"성범죄 10건 중 1건 처벌에 너무 힘 쏟아... 사전예방대책은 미흡"

또 "아동여성보호대책 추진점검단이 종합대책 성과를 지난 5월 발표한 내용을 보면 사전 예방 대책이 미흡하다"며 "아동성폭력을 위한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 아동안전지킴이 등 각종지킴이사업 제도 개선과 아동안전교육 강화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폐쇄회로(CCTV) 화면 숫자만 늘릴게 아니라 방치되거나 인적이 드문 공간 등 범죄취약장소를 개선하는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rionment Design)'를 적용할 필요성도 꼽았다.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성태숙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아동방임 실태와 성범죄 예방을 위한 돌봄 안전망 확충을 위한 방안'을 발제하며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에 보호할 방법을 마련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지역사회에서 아동들이 성인의 그 어떤 보호도 받지 않고 활동하는 게 너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아이들의 등하굣길에 반드시 부모가 동행하도록 해 안전을 보장하고, 일상생활을 잘 지도하는 데에서 시작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성 정책위원장은 '잘 먹고 잘 자는 일' 또한 아동 인권 보호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통영 초등생 살해사건의 피해자는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굶기 일쑤였다. 성 정책위원장은 "배고픈 아이들은 일단 뭘 신경 쓸 겨를 없다. '과자 줄게'하면 위험해도 쉽게 넘어간다"며 "지금 아이들이 어른을 매우 불신하는데, 일단 맛있는 걸 먹여서라도 돌봄 체계 안에 들어와서 따뜻함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아동 정책 체계는 엉망진창이란 걸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며 "지금 돌봄사업이 난립하고 있는데, 정작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는 물어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국가차원에서 아동 돌봄 마스터플랜을 재정비하고 그 과정에 반드시 아이와 부모 등 당사자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게 성 정책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쉬운 길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길, 근본이 되는 길을 택해야 한다"며 "지역을 중심으로 아동 안전망을 재구조화할 길을 찾자"고 말했다.

"지역 중심으로 아동 안전망 마련해야" "기본에 충실하자"

9월 5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열린 '아동대상 성범죄 및 방임아동의 실태와 대책' 간담회 참가자들은 '아동들이 안전하게 자랄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9월 5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열린 '아동대상 성범죄 및 방임아동의 실태와 대책' 간담회 참가자들은 '아동들이 안전하게 자랄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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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로 나선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돌아보면 굉장히 불편하다"며 "비슷한 패턴이 늘 반복되고 있는데, 지금은 아동 성폭력·돌봄·인권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닌가 싶다"고 얘기했다.

이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요즘 흉악해졌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점점 성범죄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맞다"며 "성범죄 연구가 가장 많이 이뤄진 미국만 해도 1970년대 중반부터 (성범죄를)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사회도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대대적으로 전환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라며 "보이지 않은 것, 편하지 않지만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여진 국회입법조사처 아동·보육담당 입법조사관은 "나주 성폭행 사건 가해자가 '피해아동도 나도 운이 나빴다'고 말했다는데, 사살 너무 많은 아이들이 성맹수(아동을 대상으로 한 폭력적인 성범죄자, Sexual Predator)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며 "성폭력 피해를 입거나 혹은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걸 '너의 운'으로만 여긴 게 지금까지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입법조사관은 "경찰청이 대책으로 불심검문을 내놓은 것이 정부의 (낮은) 문제 인식을 보여줬다"며 "공무원들이 각자 하던 일을 바탕으로 대책을 만들 게 아니라 현장과 학계,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국회가 9월부터 3개월 동안 운영하는 아동·여성대상 성폭력 대책특별위원회가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며 "유명무실한 아동빈곤예방법 개정, 방임아동 실태조사 등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아동성폭력, #아동방임,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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