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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 장남 장호권씨가 20일 오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하고 있다.
 고 장준하 선생 장남 장호권씨가 20일 오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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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독재 정권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선생. 최근 그가 타살 당했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나오면서 재조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묘소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두개골에 마치 망치에 가격당한 듯한 직경 6cm의 외상이 발견된 것이다. 사망 당시 등산 중 실족사했다는 것이 정부 발표였으나 끊임없이 타살 의혹이 제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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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적인 진상규명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장 선생의 아들 장호권씨는 20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하여 "(유골을 검시하는 과정에서) 처음 머리 부분을 보는 순간 37년 동안 억눌러왔던 화가 치밀었다"며 "그간 의구심만 가지고 역사에 묻으려고 했던 사건이 현실로 드러났으니 아들로서 굳은 마음으로 (진상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이날 청와대에 진상규명을 위해 재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을 냈다. 청와대에 규명을 요구한 것은 과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관이었기 때문. 장씨는 "당시는 조사를 했지만 수사권이 없어 한계점에 부딪혀 손 놓고 있던 시점이었다"며 유골 검시가 가능한 현재 다시 대통령에게 조사를 촉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가 2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 재조사 요구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다가 경찰들에 의해 막히자, 고개를 숙이고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장하준기념사업회와 유가족은 "최근 묘소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37년 만에 처음으로 검사한 결과 명백한 타살의 증거가 드러났다"며 "국가가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로 이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조사에 착수할 것"을 요구했다.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가 2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 재조사 요구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다가 경찰들에 의해 막히자, 고개를 숙이고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장하준기념사업회와 유가족은 "최근 묘소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37년 만에 처음으로 검사한 결과 명백한 타살의 증거가 드러났다"며 "국가가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로 이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조사에 착수할 것"을 요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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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 못하다가 이장 과정에서 유골 검시

이어 장씨는 조사가 끝났는데 왜 또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항간의 말은 사실 관계를 모르고 하는 "개념이 없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도 부검이 고려되기는 하였으나 두 가지 이유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을 비롯한 장준하 선생의 지인들이 부검이 누가 될 것이라며 반대했고, 유골이 혹시 진토가 되었다면 부검이 불가능할 것이라 봤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진상규명위원회는 '규명 불능'으로 조사를 매듭지었다.

그러한 규명 불능의 조사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은 작년 5월의 일이다. 당시 비가 많이 와서 장 선생의 묘가 붕괴되었던 것. 축대가 무너지고 파손이 심해 유족들은 보수 비용을 상당히 예상하던 차였다. 그 와중에 파주 시장으로부터 파주에 후손들에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장 선생의 추모공원을 만들어 장 선생을 모시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고 한다. 그 결과 올해 추도식을 앞둔 8월 1일 이장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장씨는 그간의 의문 해소를 위해 이장을 하는 김에 유골 검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법의학자들과 함께 시신 수습 과정을 참관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장 선생의 유골이 잘 보전된 것이 확인돼 법의학자의 눈과 손을 통한 수검을 진행하면서 외상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두개골 함몰 상흔을 발견하였다.

장씨는 타살의 심증으로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당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가 발동되는 과정에서 장 선생님과 박 전 대통령의 관계는 극악으로 치달았다"는 것과 "사건 당시 목격자의 신원과 증언, 정황, 현장 상태, 시신 상태 등에서 일관성이 의심되었다"는 것.

장 선생은 일제 치하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했고, 그 뒤로는 유신독재 반대에 투신하는 등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아도 여러모로 대척점에 섰던 인물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점에서 독재 정권이 정적을 제거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 장씨는 죽음 자체를 들여다보아도 의심 가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선 머리 뒤 상흔은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형태라는 것이 법의학자들의 주장이고, 머리에 그 정도 외상이 있다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야 하는데 다른 상처가 없었다는 것. 추락 현장에 굉장히 큰 돌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팔다리 등이 멀쩡했다는 점에 의혹이 들 수밖에 없다고 장씨는 말한다.

지난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에 원형으로 함몰된 흔적이 있다.
 지난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에 원형으로 함몰된 흔적이 있다.
ⓒ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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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증언, 걸려온 전화 등 의혹투성이

목격자의 증언에도 의혹이 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발견 후 인공호흡을 하다가 내려와서 점심밥을 먹고 있는 일행에게 장 선생이 떨어졌다고 말하고 다시 산에 오르기까지 1시간 20분밖에 안 걸렸다고 하는데 현장검증에 따르면 같은 과정이 2시간 30분 넘게 걸렸다고 한다. 또 현장에서 40분이나 떨어진 거리의 군부대 의무병이 치료를 받으러 온 장 선생을 목격했는데 이 역시 사건 발생과 목격, 신고 시간을 고려하면 다른 증언과 일치하지 않는다.

장씨는 "일이 미리 계획된 상황에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강력한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장씨 모친은 사건 당일 1시 30분경 사고 사실을 신원 확인이 안 되는 이에게 전화를 통해 들었는데, 그 당시 목격자들이 장 선생을 발견한 시간이 1시 30분에서 2시 사이였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전화를 사용하려면 1시간 30분 거리의 파출소까지 내려와야 하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이외에도 목격자의 신원이 불분명하다는 점, 사건 초기 증언이 이후 진상 규명에서 누락되었던 점 등 불명확한 점이 많다는 것을 이유로 들며 장씨는 "어딘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각본을 가지고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장씨의 이후 삶도 정황 근거가 되었다. 장씨가 의문의 테러를 당하고 유족을 돕는 이들이 탄압을 당했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장씨는 20년 동안 타국을 떠돌며 외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37년 만에 장 선생의 유골 검시가 이루어진 것이지만 현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해체된 상태다. 타살이라는 공식 결론이 나오면 재조사를 해야 한다. 장씨는 "개묘를 하면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므로 6개월 내에 과학적인 부검이 필요하다"며 "만약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저희 가족과 민주화 운동의 모든 세력이 집결하여 범국민적인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장씨는 "시신이 망가지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 하기에 대선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을지 고심이 많았다"고 밝혔다. 장씨는 항간에 왜 박근혜 후보를 겨냥하느냐는 이들이 있다며 "박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딸일 뿐 타살과 관련은 없지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으로서 박 후보와 박 전 대통령이 완전히 분리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아는 듯하다"고 말했다.

또 장씨는 박 후보가 언급되는 것은 연좌제가 아니냐는 발언에도 애초에 연좌제를 언급한 이들은 그들이라며 "박정희 유신독재의 잔재들이 함께하는 이상 그것은 (박정희의) 현재 진행형이 된다"고 주장했다.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에서 열린 '장준하 공원 제막식 및 제37주기 추도식'에서 한 참배객이 고인의 묘소에 큰절을 하고 있다.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에서 열린 '장준하 공원 제막식 및 제37주기 추도식'에서 한 참배객이 고인의 묘소에 큰절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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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장 선생의 유골은 새로운 곳에 안장되어 있는 상태다. 장씨는 과거와 달리 안장 후에 '돌베개'와 같은 돌을 올려두었다며 빠른 개묘가 가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인터뷰 말미에 장씨는 자신이 장 선생을 제대로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외적으론 장 선생님이라 불렀고,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보다는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했던 한 분의 선생님으로 모셨다는 것. 이어서 장씨는 "하지만 이번 8월 1일 아버님을 뵙는 순간 자식으로서 그 분의 한과 뜻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태그:#이털남, #장준하, #박정희, #박근혜, #장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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