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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온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큼 명확한데도 이에 대한 논의는 생산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을 앞세운 재계는 헌법을 들먹이며 재벌개혁이 위헌이라고 반박한다. 어떤 이들은 재벌개혁을 무조건 재벌해체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제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두고 토론해야 한다. 무엇을 목표로 하여,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나 규제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새사연이 먼저 재벌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기자말

최근 여론조사에서 '재벌대기업체제 개혁과 경제민주화'가 28.6%로 이번 대선 최대 쟁점으로 꼽혔다고 한다. 참여연대와 원혜영 의원실이 조사한 결과다. 세계를 휩쓴 99%의 점령운동과 함께 작년 말부터 시작된 경제민주화 논의가 이제는 모든 대선 주자가 입장을 밝혀야 할 만큼의 쟁점이 되었다.

경제 생태계 망치는 재벌이라는 공룡

왼쪽부터 현대자동차 그룹 사옥, 삼성전자 사옥, LG 트윈타워 전경
 왼쪽부터 현대자동차 그룹 사옥, 삼성전자 사옥, LG 트윈타워 전경

지금 한국사회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일 수밖에 없다. 국민경제라는 생태계 내에서 재벌의 독식이 도를 넘어섬으로써 노동자, 상인, 소비자, 중소기업 등 나머지 경제주체들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유통 대기업을 규제하지 않고 상인들의 생존을 말할 수 없으며, 대기업의 하청단가 후려치기를 규제하지 않고 중소기업의 발전을 말할 수 없으며, 대기업의 독과점과 담합을 규제하지 않고 소비자의 권리 보호를 말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을 건드리지 않고 민주화해야 할 경제영역은 거의 없다.

즉, 지금 한국사회에서 재벌의 문제는 지나친 경제력 집중에 있다. 경제력 집중이란 크게 시장 집중, 소유 집중, 일반 집중으로 구분된다. 시장 집중은 일정한 분야 또는 산업에서 일부 선도기업의 시장점유율 정도로 판단한다. 일부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과도할 경우 독과점이 심화될 수 있다. 소유 집중은 기업의 의결권 주식이 특정인에게 집중되어 있는 정도이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과 관계가 있다. 일반 집중은 특정 기업이 국민경제 전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의 정도이다.

5대 재벌의 매출액, GDP대비 56% 차지

우리의 경우 이 세 가지 집중도가 모두 높다. 가전, 자동차, 석유, 통신 등 각종 품목에서 두세 개의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벌 가족 일가가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한 기업 내에서의 영향력도 매우 높다. 무엇보다 일반 집중도가 높은데, 국민경제 전체에서 5대 재벌, 10대 재벌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

2010년 기준 5대 재벌의 규모를 살펴보자. 5대 재벌의 매출은 650조 원으로 GDP 대비 56%를 차지한다. 자산은 620조 원, 순이익은 51조 원, 계열사 수는 364개에 달한다. 재벌들의 규모는 외환위기 직전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축소되었다가 최근 10년 간 급격히 회복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5대 재벌의 매출 규모는 2배, 자산 규모는 3배, 순이익은 4배 증가했으며, 계열사 수는 150여 개가 늘어났다.

이런 수치들을 보면 한국경제에는 5대 재벌, 10대 재벌만 존재하는 듯하다. 이들은 막대한 경제력 집중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한국경제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 경제 뿐 아니라 정권에 훈수를 두고, 국회와 사법부에 로비를 하고, 싱크탱크와 언론을 동원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2011년 기준 전년 대비 대기업 매출액은 22.6%, 당기순이익은 64.4% 성장했지만 가계 소득은 5.3%, 전체 경제성장률은 4.2%에 그쳤다.
▲ 2011년 대기업과 국민경제의 성장률 비교 2011년 기준 전년 대비 대기업 매출액은 22.6%, 당기순이익은 64.4% 성장했지만 가계 소득은 5.3%, 전체 경제성장률은 4.2%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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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 승계 진행되면 독과점 심화될 것

힘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그 힘은 남용될 수 있다. 정치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독재가 나타나는 것처럼, 시장에서도 독점이 나타난다. 독점은 효율적 경제성장과 공정한 분배를 저해한다. 독점은 기본적으로 자유시장경제의 독이다. 게다가 시장에서의 독점은 선출되지 않은 사회권력으로 진화하여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있다.

특히 향후 몇 년 안에 삼성, 현대차 등 주요 재벌의 3세 승계가 더 구체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재벌가는 자녀들에게 계열사를 분할 상속하면서 파생재벌 그룹들을 새로 만들어낸다. 2세 승계를 통해 삼성은 CJ와 신세계로, 현대는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로, LG는 GS와 LS로 파생되었다. 이렇게 파생된 재벌들까지 합칠 경우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는 훨씬 심화된다. 이 상태로 재벌의 세대가 넘어갈수록 우리 국민경제는 점점 더 많이 재벌 가문에게 귀속될 것이다.

재벌 2세, 3세 승계는 파생 재벌을 양산하면서 경제력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 5대 재벌 친족그룹 포함할 경우 경제력 집중도 재벌 2세, 3세 승계는 파생 재벌을 양산하면서 경제력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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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경제력 집중 완화시킬 수 있어야

따라서 앞으로 재벌개혁은 국민경제에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재벌의 불법과 탈법을 엄격히 통제하고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재벌의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초과이익공유제나 법인세 인상을 통한 사후 분배로도 부족하다. 경제력 집중 자체를 완화시킬 수 있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재벌 개혁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 약화를 목표로 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 재벌 개혁을 위한 총괄 개념도 지금 우리사회에서 재벌 개혁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 약화를 목표로 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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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재벌을 법체계 안으로 포용해야 한다. 현재 우리 법에는 재벌이라는 존재가 없다. 오직 개별 기업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제 재벌을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규정하고 그에 걸맞는 통제와 의무를 가해야 한다. 기업집단법(재벌규제법)이 필요하다.

또한 재벌이 과도하게 장악한 시장의 각 분야에서 재벌의 힘은 규제하고, 반대로 다른 경제주체들의 힘은 키울 수 있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재벌의 힘을 분산시키는 방법으로는 순환출자금지, 출자총액제부활, 금산분리 등 기존에 시행되었다가 최근 약화되었던 규제들을 부활시켜야 하며 나아가 계열분리 또는 기업분할 명령제를 새롭게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태그:#재벌개혁, #경제력 집중, #독점, #기업집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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