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 구경 오니 마음이 좋다. 참 살맛난다. 한 20년 더 살아서 100살까지 살면 진짜 좋겠다."

 

올해 여든 살인 농부 최명순씨의 소망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마을에 사는 그는 지난 5일 마을주민들과 함께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시 짓는 농촌마을 농부들, 서울 시 낭송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오마이뉴스> 사옥 '서교동 마당집'에서 열렸다.

 

어린아이부터 89세 농민까지, 주민들이 함께 시를 짓는 마을로 유명한 이곳은 스물일곱개의 작은 마을들로 이루어졌다. 그 중 용정리에 거주하는 13명의 여성농부를 포함해 총 18명이 서울을 찾았다. 대부분 예순 살 이상이었고, 중학생과 40대 주부들도 동행했다. 전남문화예술재단의 후원으로 열린 이 자리는 전국여성농민회, 여성환경연대도 함께 참여했다.

 

"에고 떨려서 어째, 글씨도 안 보이네" 생애 첫 낭송회

 

오후 7시 30분, 마루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로 빗소리와 함께 시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낭송한 시는 마을시집 <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저, 도서출판 강빛마을 펴냄)에 실린 기존작품들과 함께 최근에 지은 신작들이었다.

 

"에고 떨려서 어째. 글씨도 안 보이네. 돋보기 좀 줘!"

"(마이크) 이거 어디다 대야 하는 거여? 남사스럽네."

 

난생 처음 서는 '낭송회'라 그랬을까. 그들의 손에 들린 시집이 후들후들 떨렸다. 시집의 글자는 작아서 돋보기 없이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돋보기 한 개를 여럿이 돌려쓰며 어렵사리 시를 읽어내려 갔다.

 

근래 한글을 배우며 시를 짓기 시작한 김삼례(62)씨는 떨리는 맘에 글씨를 잘 못 읽어 드문드문 멈추었다. 그는 숨 한 번 고르고, 읽고를 반복하며 끝까지 또박또박 시를 낭송했다. 정계순(71)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글씨가 헷갈려 '기분'을 '가객'이라 읽었다. 글자에만 오로지 집중해 읽은 탓이다. 그는 "가객? 이게 뭐여. 내 시 아닌 것 같은데"라며 당황했다.

 

조랑조랑/ 많이 열어서/ 기분 좋았다/ 그런데다가/ 매실금이 자꾸 자란다.

 

정계순씨의 신작 '매실금'이라는 시는 당연 인기였다. 동시처럼 아이의 감정이 묻어나면서, 농촌 시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비가 오지 않은 탓에 올해 죽곡마을 농사는 대부분 흉작이다. 그러나 그의 과수원만큼은 풍년이었고, 매실을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매실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그는 '금'처럼 귀한 '매실 값'이 오르자 이를 기뻐하며 "자꾸 자란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가뭄 속에서 '조랑조랑' 피어낸 풍성한 수확물을 바라보는 '농심'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행사 도중 색다른 공연도 펼쳐졌다. 젊은 여성농부 김도연(49)씨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마을 최고령 김봉순(89)씨의 시 '내 인생'을 판소리로 읊었다. 도시 텃밭을 가꾸는 여성환경연대에서도 깜짝 무대를 준비했다. 그들은 마루 위에 초를 펼쳐놓고 촛불을 켰다. 전등의 불빛은 잠시 거두었다. 촛불을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자는 의미에서다. 이들은 "농촌여성에게 텃밭뿐만 아니라 마음 밭 일구는 법도 배워야겠다"며 "시를 들어보니 마음 밭을 예쁘게 일구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칠 줄 모르는 농부들의 춤판·노래판... 잠 못 이루는 밤

 

"에고 저것이 (노래가) 터졌다 터졌어! 이제 큰일 났네 그려.(웃음)"

"주변에서 신고 들어오는 것 아니여?"

 

이어진 뒤풀이 시간, 곡성에서 손수 공수해 온 두 되의 막걸리와 술 빵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막걸리를 마시며 피로를 풀던 이들이 하나 둘씩 일어서더니 장구를 메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루에 춤판, 노래판이 벌어졌다. 집단가무와 돌림노래로 흥은 계속 이어졌다.

 

함께 어울리던 20대 젊은여성이 "어떻게, 이렇게 잘 노세요?"라며 묻자 박성림(60)씨는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 화전놀이 때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놀아.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는 것이여!"라고 말했다.

 

오전 3시가 되도록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30~40년 동안 마을에서 희로애락을 나눈 언니, 동생들이지만 함께 외박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군가 잠들기라도 하면 바닥을 장구처럼 두드려 소리를 내는 이도 있었다. 함께 밤을 지새웠으면 하는 맘에서다. 신추자(67)씨는 "내 생에 두 번 다시 이런 행복이 있을까" 싶다며 "우리 우정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죽곡마을, 마을 시집에 이어 '마을 수필집' 준비중

 

오전 3시에서야 잠들었던 이들이 오전 5시가 되자 삼삼오오 일어나기 시작했다. 농촌에선 밭 매러, 농사지으러 나가야 할 시간이지만 그들은 연필을 잡았다. 수필을 쓰기 위해서다.

 

"아침에 출발할 때 비가 많이 와 슬펐지만 버스를 타고 보니 기분이 좋아 맘이 붕 떴다. 서울에 도착해 방송국 구경을 여기저기 했다. 나 태어나고 생전 처음이라 신기했다. 마이크에 대고 시도 읽어보았다. 내가 쓴 시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낭송하니 내 마음은 기분이 좋아 붕 떴다. 어찌나 좋던지. 시가 하나 더 있다면 또 낭송하고 싶어라. 이런 분위기에서 낭송하니 내가 진짜 시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낭송이 끝나고 분위기가 좋아 활기차게 마음껏 놀고 막걸리도 한잔 했다. 비 오는 하루였지만 비도 추억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여러모로 모두에게 감사했고 감사했습니다."

 

수필의 주인공인 김봉순(65)씨처럼 죽곡농민 대다수가 이번 서울방문이 처음이거나 몇 십 년만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 중 이들은 아이처럼 "방송국과 동물원은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일정이 갑작스럽게 추가되었고, 자그마한 25인승 콤비버스에 올라 국악방송부터 용인 놀이동산까지 곳곳을 방문했다. 이 여정 중 라디오 생방송에 죽곡농부들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일정 도중 피로를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나 도저히 못 걷겠어"라며 정계순씨는 일행에서 계속 뒤처졌다. 성치 않은 다리 탓도 있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신고 있던 고무신이 자꾸만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앞서 걷던 죽곡농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기다렸다.

 

"언니. 10년 후에 나들이 가려고 죽곡에 큰 관광버스가 와도 여기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어. 아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여. 그러니께 쪼매 더 힘내부려요!"

 

이렇게 서로 의지하던 그들은 "하루만의 풋사랑이제, 아쉬워서 어째"라며 "우리 저녁 하기 싫응께! 저녁까지 먹고 용정리 늦게 들어가자!"라고 웃음꽃을 터트리며 죽곡행 버스에 올랐다.

 

한편, 반가운 소식이 있다. 내년 죽곡마을에서 마을 수필집을 펴낼 예정이다. 지난해 첫 마을시집에 이은 새 문집이다. 김재형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관장은 "농민들이 쓴 생생한 수필들을 정리해보면 시에서 담아내지 못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며 "죽곡마을의 역사뿐만 아니라 농촌의 근현대사를 이들의 글 속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큰 기대감을 표했다.


태그:#죽곡마을 , #시 짓는 마을, #서교동 마당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