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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기억력은 대단합니다. 지난해 여름방학때 경남 고성 공룡박물관을 다녀오면서, 내년에는 사천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지난 28일, 통영을 다녀오면서 오래만이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이용했습니다. 국도를 이용하면 사천을 지나 진주에 갑니다.

"아빠, 지난해에 항공우주박물관에 간다고 약속했잖아요?"
"..."
"아빠, 나도 가고 싶어요."
"..."
"이 길로 가면 사천 나오잖아. 아빠는 틀림없이 항공우주박물관에 갈 거야."
"..."


3명이 노래를 부르는데 별 수 있나요. 결국 갔습니다. 몇 년 전에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길눈이 어두웠는지 헷갈려 한 바퀴를 돌아 겨우 찾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마냥 좋아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혼자 관림하겠다며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박정희 전용기 'C-54 SKYMASTER'

가장 먼저 눈에 띈 비행기는 1966년 미군에서 넘겨받아 개조를 거쳐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박정희 대통령이 탔던 'C-54 SKYMASTER' 대통령 전용기였습니다. 안에는 박 전 대통령 사진과 함께 박정희 삶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 아이와 막둥이가 대통령 부부가 국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면 손을 들고 흔든 후 트랙을 내려오는 것을 봤는지 흉내를 냈습니다.

1969년부터 73년까지 박정희 대통령이 탔던 'C-54 SKYMASTER' 대통령 전용기
 1969년부터 73년까지 박정희 대통령이 탔던 'C-54 SKYMASTER' 대통령 전용기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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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탄 대통령 전용기에서 딸 아이와 막둥이가 손을 흔들고 트랙을 내려오고 있다.
 박정희가 탄 대통령 전용기에서 딸 아이와 막둥이가 손을 흔들고 트랙을 내려오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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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유수호관'에는 북한 김일성 주석이 탔던 자가용도 전시돼 있어서 흥미를 자아냈습니다. 전시관 설명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 자가용이 이곳에 전시될 때까지의 여정은 정말 파란만장했습니다.

이 자동차는 1948년 소련의 스탈린이 북한의 김일성에게 선물한 승용차로서 한국전쟁 당시 1950년 10월 22일 한국육군 제6사단 수색대가 평안북도 영변북방 25km 거리의 신흥동에서 노획했습니다.

김일성 자가용, 항공우주박물관에 오기까지

이것을 1951년 6월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 12월 23일 의정부에서 전사한 유엔군사령관 '윌튼 워커' 장군의 부인에게 선물했고, 이 승용차를 인수받은 부인은 1951년 7월 다른 미국산 승용차와 교환했다고 합니다.

김일성이 탔던 자가용
 김일성이 탔던 자가용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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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합니다. 사단법인 유엔한국참전국협회 지갑종 회장이 국군의 명예와 안보교육의 실증으로 활용하는 한편 역사적인 자료로 보존하려고 1969년부터 1982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찾아나선 끝에 당시 미국의 자동차 수집상이 소유하던 것을 되찾아왔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건너간지 31년 3개월 만인 1982년 10월 22일의 일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자동차는 사천으로 옮겨 온 뒤 1996년 8월부터 12월까지 러시아의 원제작사 기술진이 참여 하에 승용차 의내·외장 도장, 정품 타이어 교환, 차체 주요부품 교체 등 수리 복원해 이 자리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전사품으로서 핵심적이고 귀중한 자료 일뿐만 아니라 승용차 발전사에 세계적으로 희귀한 골동품이라고 전시관은 설명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북한이 탔던 오토바이
 한국전쟁 때 북한이 탔던 오토바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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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동막골>에 나왔던 수송기도 있네

자유수호관에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탔던 오토바이도 있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인공기도 함께 전시돼 있어 변하기는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2005년 8월 상영돼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세웠던 <웰컴투 동막골>에 나왔던 미군 수송기 C-123K Provider도 있었습니다. 수송기 안에는 웰컴투 동막골이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 영화는 국군과 인민군이 오히려 하나가 돼 미군과 싸우는 마지막 장면을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보수세력은 이 영화를 '반미 영화'라고 비판했습니다.

월컴투 동막골에 나왔던 비행기
 월컴투 동막골에 나왔던 비행기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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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컴투 동막골 비행기 안 모습. 위 모니터에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월컴투 동막골 비행기 안 모습. 위 모니터에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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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50 고등훈련기

또 다른 볼거리는 21세기 유일 초음속 고등 훈련기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2번째 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한 나라로 진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던 'T-50 GOLDEN EAGLE'이었습니다. 작았지만 날렵하고, 우리 하늘을 지키기 위해 훈련할 수 있는 기종으로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비행기입니다.

T-50
 T-50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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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T-50은 우리에게 씁쓸한 아픔을 남겼습니다. T-50이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정원 헛발질 때문입니다. 지난 2011년 2월 16일 국정원 직원 3명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에 잠입했다가 들통나 "국정원이 절도범"이냐는 조롱을 당한 바 있었지요.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수집하려던 정보는 국산 고등 훈련기인 T-50 수입을 검토 중인 인도네시아의 가격 조건 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 자랑인 T-50을 망신 준 것이지요.

과연 무기 없는 세상이 올까

발걸음을 돌려 나오는데 마은 한 쪽은 아파왔습니다. 이유는 전시된 모든 것이 결국은 사람을 해하는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수송기가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군인을 실어나릅니다. 폭격기는 땅을 초토화시킵니다. 전투기는 살아남기 위해 먼저 쏴야합니다. 탱크와 전차와 발간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미가서 4장 3절)

모든 무기를 보습과 낫으로 만들어 사람을 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 수 없을까요? 항공우주박물관을 나오면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각종 전차와 발간포 그리고 탱크. 모든 것들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들이다.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각종 전차와 발간포 그리고 탱크. 모든 것들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들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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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항공우주박물관, #박정희전용기, #김일성자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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