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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앞 갯벌에 바지락을 담은 망이 널부러져 있다. 뒷편으로는 주민들이 모여 바다쪽를 바라보고 있다.
▲ 주인 잃은 바지락망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앞 갯벌에 바지락을 담은 망이 널부러져 있다. 뒷편으로는 주민들이 모여 바다쪽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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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산마루에 오르기 위해 자동차 엔진이 크게 요동쳤다. 엔진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고불고불한 내리막 도로를 내달리자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시골마을이 시야에 가득 찬다.

마을 지형이 흡사 개미의 목을 닮았다고 해서 지역에선 옛적부터 '개목마을'이라고 부르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먼지를 휘날리며 울퉁불퉁한 노면을 내달려도 얼굴 찌푸리는 사람 하나 못 만났다. 마을은 그야말로 고요함 그 자체였다.

마을 어귀서 꽤 떨어진 포구에 다다르자 사람들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포구 앞 태안해경 의항파출소 앞에 모여 있던 네댓 명의 주민들이 못 보던 차량에 경계하는 눈빛을 보낸다. 포구엔 보트를 실은 소방차량과 응급차, 인적들로 붐빈다.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버스정류장 인근 펜션에는 주민들이 죄다 모여 점심을 먹고 있다. 소방차와 응급차를 끌고 온 이들과 해경복장을 입은 열 명 남짓한 이들도 평상에 둘러앉았다. 바삐 밥상을 나르며 주문을 외치는 소리와 음식 만드는 소리, 그릇 씻는 소리, 밥 먹는 소리, 둘러 앉아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뒤엉켜 왁자지껄하다.

지난 7일, 마을주민 317명 중 65세 이상이 95명인 초고령화 된 작은 어촌마을서 집을 나간 이연을(74) 할머니가 2주일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소식은 이틀이 지나서야 알려졌다. 9일 오후 5시경 김관수(60)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 앞 평상에서 새참을 먹고 있었다. 마을서 운영하는 바지락 양식장서 공동 작업이 있는 날이면 으레 주민들은 김씨네 집서 새참을 먹었다.

분주하게 밥상을 나르던 김씨에게 이웃에 사는 할머니가 찾아와 예기치 않은 말을 꺼냈다.

"그러나 저러나 대서네 할머니가 그저께 나가서 안 돌아오고 있으니 어쩌냐."

순간, 김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왜 이제야 말해요!"

김씨는 이날 해경과 육경에 실종신고를 했다.

7일 오전 이웃집을 찾아 "밥맛도 없고 해서 갯가에 가서 바지락하고 파래 따다가 먹어야겠다"고 집을 나서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단서는 마을 주민 서너 명이 할머니 집 앞 갯벌서 목격했다는 증언이 전부다.

경운기를 타고 마을 공동어장을 향하던 부부가 "갯일을 하던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는데 대답은 없었다"며, 기억을 되살렸고 할머니와 동행했던 마을 주민은 "(바지락을) 캘 게 없어 먼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날 주민들은 마을 공동어장에서 바지락 채취 작업을 했다. 관절염을 앓던 할머니는 한쪽 다리의 무릎을 구부리지 못하는 '뻗정다리'였다. 마을 공동어장은 할머니 집에서 1~2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마을에선 공동어장이 아니면 바지락 채취 작업이 불가했다. 일종의 동네 룰(rule)이었다. 이유는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서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동네 룰에서 유일하게 제외됐다. 그래서 늘 할머니는 혼자 바지락을 캤다.

할머니의 집 앞 갯벌은 마을서 육성치 않다보니 호미로 캐본들 영글지 않은 바지락뿐이다. 수월찮게 갯일을 해야만 반찬거리를 얻을 수 있다. 할머니를 마지막을 본 주민은 "등 뒤에 가방을 둘러매고 손수 만든 스티로폼 방석을 깔고 앉아 갯일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갯일을 나간 할머니가 사라지는 사고가 발생해 태안해경과, 119구조대, 지역주민 등이 지난 10일부터 수색작업을 펼쳤다.
▲ 찾아야 할텐데... 갯일을 나간 할머니가 사라지는 사고가 발생해 태안해경과, 119구조대, 지역주민 등이 지난 10일부터 수색작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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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행방이 갑작스레 묘연하자 가족들도 애가 탔다. 당뇨와 고혈압 치료를 위해 20일 정도 인천서 머물다 고향 집으로 내려온지 하루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할머니의 큰아들 A씨는 "일요일(7일)에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집에 내려와 하루 밤을 자고 새벽에 인천으로 올라갔다"며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도 그냥 '마실가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비슷한 일로 형제를 잃었는데 또…"라며 말을 흐렸다.

수색작업은 9일 밤부터 시작됐다. 부족한 손전등은 차량으로 10여 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마트서 구입했다. 주민 60여 명이 이날 밤 두 시간가량 갯벌서 수색작업을 펼쳤다. 그러나 할머니를 끝내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튿날에도 수색작업은 이어졌다. 할머니의 행방에 대해선 '의식불명에 의한 사고사'란 추론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결정적인 이유는 '병원서 재보니 고혈압 수치가 400을 넘었다고 하더라'는 말과 '고혈압 약이 떨어져 오후에 병원간다고 했는데'란 증언 때문이다.

물증도 있었다. 할머니가 채취한 것으로 보이는 바지락망과 호미가 할머니를 목격했다는 지점서 발견됐다. 결국 '갯일을 하던 할머니가 고혈압으로 정신을 잃었는데 물이 차오르면서 떠내려갔다'는 결론에 다들 동감했다.

수중 수색작업은 태안해양경찰서의 122구조팀이 맡았다. 해상과 해안가는 119 구조대서 고무보트를 타고 육안으로 확인했다. 주민들도 갯벌로 나갔다. 몇 명은 선박을 끌고 구조대와 함께 바다로 향했다. 수색작업을 지켜보던 주민은 "기름유출사고 때도 기름 닦으면서 피부병이 걸려 오래 고생했는데 물속에서 가시느라고 얼마나 고생했겠어"라며 한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하지만 수색 5일이 넘도록 끝내 할머니는 발견되지 않았다. 해경은 지난 14일부터 가족들의 '수색작업 중단' 요청으로 구조팀 투입을 끝냈다. 구조팀은 또 다른 행방불명 사건에 투입됐다. 119구조대도 구조작업을 종료했다.

마을 주민들도 잠정적으로 수색작업에서 손을 뗐다. 마냥 수색작업만 몰두했다간 한 해 농사를 다 망칠 수 있다. 마을 공동어장 바지락 채취 작업도 손을 놓고 있기엔 마을서 공동으로 투자한 공금이 크다.

지난 1938년 원북면 신두리서 태어나 맞은편 어촌마을 의항2리로 시집간 뒤로 74년 동안 갯마을을 떠나지 않은 이연을 할머니가 2012년 5월 7일 집 앞 갯벌서 사라져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할머니를 찾으려 들썩였던 동네는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바람이 조그만 불어도 날아가 버릴듯한 위태로워 보이는 민들레 포자가 할머니 집 앞 들녘에 피었다. 할머니가 사라진지 2주일이 넘었지만 집 앞 풍경은 변함이 없다.
▲ 집 앞에 핀 민들레 포자 바람이 조그만 불어도 날아가 버릴듯한 위태로워 보이는 민들레 포자가 할머니 집 앞 들녘에 피었다. 할머니가 사라진지 2주일이 넘었지만 집 앞 풍경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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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충남 태안,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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