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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신이 보낸 전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꿀벌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신이 보낸 전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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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신이 보낸 전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달콤함과 아름다움과 평화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신의 전령,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꿀벌의 집터 탐색이 이 작고 멋진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을 자아낸다고 믿는다. -<꿀벌의 민주주의> 277쪽-

도대체 꿀벌이 어떻게 살기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신이 보낸 전령'이라고 말하는지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패륜적인 행동을 하거나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말할 때 흔히들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개와 관련한 감동적인 뉴스, 인간임을 저절로 부끄럽게 하는 반인륜적인 뉴스를 동시에 접할 때면 더더욱 실감하는 표현입니다.

지은이 토머스 D. 실리, 옮긴이 하임수, 펴낸곳 에코리브르의 <꿀벌의 민주주의>는 미국 코넬 대학교 생물학 교수이며 양봉가인 저자가 40여 년 동안 꿀벌집단들을 지켜보며 연구한 벌꿀 세계에 대한 연구 과정이고 결과이며 결론입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지도자의 의중이나 말 한마디가 중요한 의사 결정을 좌우하거나 방향을 왜곡시키고 있는 정치 현실이 계속된다면 '벌만도 못한 놈들', '벌들만도 못한 인간들 집단'이라는 표현이 머지않아 생기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연구자의 기본 자세, 연구 이렇게 해야

꿀벌의 민주주의 표지
 꿀벌의 민주주의 표지
ⓒ 에코르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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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벌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취미로만 생각하였던 벌에 대한 관심은 내과 의사가 되려던 마음을 접고 대학조차 벌과 관련한 전공을 선택해 진학하게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벌에 대한 연구는 40여년 이상 동안 지속됩니다. 

'연구자의 자세는 이래야 하고, 연구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보여주듯이 저자의 벌에 대한 연구는 정말 진지하고 지속적입니다. 논제를 설정하고, 연구를 진행해 나가는 방법, 결과 정리와 분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스펙 쌓기를 하듯 몇 년에 사이에 뚝딱 쏟아내는 여느 학위논문과 같은 연구결과가 아니라 학문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또렷한 연구목적을 갖고 장고의 세월에 걸쳐 실험하고 분석하며 숙성시킨 결과를 집대성한 파노라마 같은 내용입니다. 학술적 논문 같은 내용과 저자가 살아온 길이 저자의 사는 이야기로 잘 비벼진 비빔밥처럼 조화롭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에 앞서 연구한 사람들을 충분히 존경하며 그들의 연구결과를 소중하게 예우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하는데 함께 하였던 사람들, 학부생조차도 최고로 인정하거나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연구결과의 성과를 공유하는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습니다. 옮긴이의 덧글로 전문적인 용어나 이해를 돕기 위한 보충설명이  요소요소에 들어가 있어 쉽게 읽고 부드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소감입니다.

표절을 넘어 짜깁기나 복사 수준이라는 논문으로 학위를 받아 버젓하게 행세하고 있는 어떤 스포츠인, 대법원의 표절 판결을 받고도 '표절이 아니라 아이디어 인용일 뿐'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고 있는 어느 정치인의 작태가 횡횡하고 있는 현실에 견주어 보고 있노라면 저자의 연구의 자세는 더더욱 돋보입니다.  

수벌, 오로지 번식을 위한 짝짓기만을 위해 존재

여왕벌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암벌과 수벌은 어떻게 태어나게 되는지, 여왕벌의 역할의 무엇이며 일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수벌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 벌들의 생태에 관한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합니다. 

매화꽃에서 열심히 꿀을 채취하고 있는 꿀벌
 매화꽃에서 열심히 꿀을 채취하고 있는 꿀벌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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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벌은 집단 내에서 가장 게으르기도 하다. 일벌이 방을 청소하고, 애벌레를 먹이고, 벌집을 짓고, 꿀을 숙성하고, 벌통을 환기하고, 입구를 지키는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반면 수벌은 빈둥빈둥 놀며 일벌이 모아놓은 꿀을 축내거나 일벌 누이에게 먹이를 구걸한다. 그럼에도 수벌은 그들 집단이 번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을 한다. 바로 이웃 집단의 어린 여왕벌과 짝짓기를 한다. -<벌의 민주주의> 35쪽-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느라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남자로서는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다 오직 집단의 번성을 위해 짝짓기만을 하면 되는 수벌의 삶이 부러워지기도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벌의 민주주의>는 '벌' 개체의 생태에 대한 연구결과라기보다는 집단생활을 하는 벌들이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는지를 추적하고 실험하고, 분석하고 확인해 가며 규명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이야기며 결과를 정리한 연구 성과물입니다. 

저자는 연구를 통해 벌들이 나누는 의사소통 수단, 8자를 그리며 추는 엉덩이춤, 날갯짓, 움직임의 강도, 냄새, 피리소리와 같은 소리 등을 수단으로 하고 있는 벌들의 의사소통을 읽게 됩니다.  

집단생활을 하는 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단의 운명을 의지하게 될 보금자리를 꾸릴 집터입니다. 벌집은 벌들이 먹고 자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생계를 위한 꿀을 저장하고, 집단 번식을 위해 알을 낳아 키워야 하는 절대적인 공간입니다.

꿀벌은 인간에게 꿀만 주는게 아니라 가장 민주주의적인 의사 결정 과정도 보여주고 있다.
 꿀벌은 인간에게 꿀만 주는게 아니라 가장 민주주의적인 의사 결정 과정도 보여주고 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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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벌들이 집터를 찾아다니고 결정하는 과정은 헌신적이고 독자적이며 민주적입니다. 벌들이 집터를 선정할 때 살피거나 고려하는 사항들은 매우 과학적이고 섬세합니다. 벌들은 집터를 고를 때 입구 크기, 입구의 방향, 입구 높이, 입구 위치, 입구 모양, 구멍의 부피(크기), 구멍 내 벌집 유무, 구멍 모양, 구멍 내 습도, 구멍의 외풍 등 까지 다 살피고 측정합니다. 인간들이 집을 장만하며 풍수지리를 보고, 이렇게 저렇게 따지는 조건들보다 훨씬 현실에 합목적적이고 촘촘합니다.  

벌들의 의사결정 과정, 선거와 똑 닮아

꿀벌이 미래의 보금자리를 선택하는 민주적 과정은 일종의 선거와 같다. 여러 후보자(집터 후보자), 후보자들의 유세(8자춤), 상이한 후보자를 지지하는 유권자(특정 장소를 지지하는 정찰벌), 여전히 중립적인 유권자(아직 어떤 장소도 지지하지 않는 정찰벌)이 있다. 특정 장소를 지지하는 정찰대는 8자춤을 통해 중립적인 다른 벌들을 추가 지지자로 만들 수 있다. 아울러 한 번 어떤 장소를 지지했더라도 냉담한 유권자가 되어 중립적인 무리에 가담할 수 있다. 이러한 의사 결정의 전 과정은 중립적인 벌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 대한 지지자로 전환하는 긍정적인 피드백고리를 통해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지자들이 중립적 벌의 무리로 돌아가는 '누수(leakage)'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그림 6.1) -<꿀벌의 민주주의>143쪽-

꿀벌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모습도 감동적이지만 분봉으로 새로운 집터를 결정해서 나가는 과정은 가장 민주적이며  합리적인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의견을 하나로 모으며 합의해 나가는 과정은 정열적이지만 질서정연합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각자의 의견(집터 후보지)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기꺼이 귀 기울여주거나 동의해 주며 의견을 하나로 모아가는 과정은 아슬아슬 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정찰벌이 지도자 없이도 이 모든 일을 잘해낸다는 것은 경탄할 만하다. 이들은 분명 가장 큰 함정에 빠지지 않고도 꿀벌들을 조정해 훌륭한 집단결정에 다다른다. 여기서 가장 큰 함정이란 특정한 결론을 옹호하거나 집단이 선택지를 깊고 넓게 살펴보지 못하도록 군림하는 지도자를 말한다. -<꿀벌의 민주주의> 274쪽-

꿀벌들이 집터를 결정하며 살피는 조건은 인간들이 새집을 마련하며 살피는 조건들 보다 훨씬 섬세하다.
 꿀벌들이 집터를 결정하며 살피는 조건은 인간들이 새집을 마련하며 살피는 조건들 보다 훨씬 섬세하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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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벌들이 집터를 옮기는 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민주주의 요소와 방식이 코넬 대학교 신경생물학 및 행동학과 교수회의와 버몬트 주 브래드퍼드의 연례 마을회의 과정 등을 통해 인간들 집단에서도 의사를 결정하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실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벌만도 못한 인간들'이라는 말 안 들으려면

술수의 정치가 아닌 민주정치, 술수의 지도력이 아닌 감동 주는 지도력을 익히거나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떤 정치이론이나 처세술을 담고 있는 책보다 먼저 익히고 배워야할 덕목을 벌들의 의사결정 과정으로부터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개와 관련된 감동적인 뉴스들이 개만도 못한 사람들에게 도덕적 경종을 울려주듯이 벌들이 보여주는 민주주의는 폭력이 난무하고 독선의 결정구조가 회자되고 있는 여느 정치집단에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실감하게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꿀벌들이 보여주는 민주주의에 덧대 연구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연구자세, 글을 옮기는 이의 해박한 열정까지 곁들여 있어 연구를 하고 있거나 할 사람, 글을 옮기고 있거나 번역을 할 사람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꿀벌의 민주주의>┃지은이 토머스 D. 실리┃옮긴이 하임수┃펴낸곳 에코르브르 ┃2012. 4 30┃값 20,000원



꿀벌의 민주주의

토머스 D. 실리 지음, 하임수 옮김, 에코리브르(2012)


태그:#꿀벌의 민주주의, #하임수, #에코르브르, #8자춤, #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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