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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읍내 어느 미용실, 세련된 머리 스타일을 원하면 이곳을 찾아라.
 화천읍내 어느 미용실, 세련된 머리 스타일을 원하면 이곳을 찾아라.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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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인구가 얼마나 되나요?"
"6만 명 정도 됩니다."

강원도 화천을 처음 찾은 어느 대학교수의 질문에 정갑철 화천군수는 이같이 답했다. "전국에서 가장 작은 지자체 중 하나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네요"라는 말을 받아 정 군수는 "사실 주민 수는 2만5000여 명이지만 군인 수가 3만5000여 명 정도 되니까 6만 명이란 말이 틀린 말은 아니죠"라고 말한다.

38선 이북지역에 위치한 강원도 화천에는 민간인보다 군인들이 더 많이 산다. 한국전쟁 중 국내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전개된 곳 또한 이곳 화천이다. 종전 후 이곳에 살아왔던 사람들과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은 이곳에 터를 잡고 군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것이 화천읍내 상권이 형성된 이유이다. 이런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상가 간판들이 있어 소개해본다.

육군 중사 스타일이 되어 버린 내 머리

"저희 가게에 네 번째 오시는 거죠?"
"네, 네 번째 맞는데요. 저 사실 이 미용실에 12년 전에 마지막으로 오고 그동안 오지 않았었습니다."
"아니, 왜요?"

읍내 미용실 젊은 주인의 질문에 솔직히 왜 이곳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때에는 어떤 아주머님께서 머리를 잘라주셨었어요"
"네, 저희 어머님이세요. 그런데 그게 무슨…."

무궁화미용실, 간판 이름도 참 촌스럽다. 12년 전 '주인의 애국심이 참 대단한 모양이다'라는 호기심에서 들렀던 미용실. 들어서자마자 주인에게 "예쁘게 잘라주세요"라고 말하고 한참을 졸다가 일어난 나는 화들짝 놀랐다. 머리를 어떻게 이렇게 깎아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누가 봐도 이건 육군 중사 스타일 머리다.

"너 머리 어디에서 깎았냐?"

다음날 출근했을 때 옆 동료 직원이 물었다.

"왜?" 
"말해주면 거기 안 가려고."

미용실 주 고객이 군인들이다 보니 당시엔 군인 스타일로 머리를 깎는 미용실이 흔했다.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미용실은 그나마 낫지만 연세가 좀 드신 분들에게 맡기면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군인을 만들어 놓곤 했다. (군인 스타일 머리) 덕분에 읍내를 지나다 병사들로부터 경례를 받는 경우도 참 많았다.

"요즘 무슨 무슨 '머리방'이나 '헤어샵' 등 세련된 명칭도 많은데, 간판은 안 바꾸세요?"
"어머님께서 지으신 이름인데, 이젠 정감이 가서 바꾸지 않을 생각이예요. 왜, 이상하세요?"

젊은 주인은 세련된 간판보다 예부터 어머님께서 지어 사용해온 토속적인 상호가 이곳 시골마을에서 더 적합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군인백화점에서 군인도 파나요?

군인백화점, 군인은 팔지 않습니다.
 군인백화점, 군인은 팔지 않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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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마! 너 총 사왔어?"
"아뇨, 안 사왔습니다."
"이 자식이 군기가 빠져서, 빨리 PX 가서 총 사가지고 와!"

고참병의 장난에 속에서 PX로 총을 사러 갔던 신병 이야기 등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화천에는 '군인백화점'이란 간판을 단 군인용품 가게가 서넛 있다.

이곳에는 포탄, 소총, 수류탄 등의 무기류를 제외하고 모든 군인용품을 다 취급한다. 군화를 비롯해 군번줄, 야전삽, 곡괭이, 군인수첩, 군복, 깔깔이 등 말 그대로 모든 군인용품을 취급하는 백화점이다. 따라서 주 고객은 자대에서 지급받은 물품을 분실한 병사나 필요에 의해 여분을 준비하는 병사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곳에서 군인도 파나요?"
"네, 계급별로 나누어서 판매를 하는데, 장교는 조금 비싼 편입니다."

1년 전, 간판 이름이 흥미로워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보고 어느 여성분의 질문에 대해 이같이 농담으로 답 맨션을 보냈다.

"정말요? 얼마나 하는데요?"

이런~ 농담으로 질문한 것인 줄 알고 농담으로 답을 한 것인데, 이분은 진담으로 여겼나보다.

지금 다방의 주 고객은 노인들...

다방, 이젠 주 고객층이 젊은이들이 아닌 노인들이다.
 다방, 이젠 주 고객층이 젊은이들이 아닌 노인들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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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 초까지 전국 어디에나 흔했던 것이 '다방'이었던 것 같다. 군사지역인 화천읍내만 해도 수십 개의 다방들이 즐비했다.

외출을 나온 병사들이 갈 곳이 딱히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곳에 가면 예쁜 종업원들이 옆으로 다가와 "오빠! 나 인삼차 한 잔만 사주라"라는 말이 그렇게 밉지는 않았다. 전방에서 여자라고는 구경도 하지 못하던 병사들에게는 이건 일종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각 다방업주는 예쁜 아이(종업원) 모시기에 경쟁이 치열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많던 다방들은 다 사라졌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터미널 옆의 어느 다방을 찾았다. 소파를 이용한 의자 등 분위기는 옛날 그대로 인데 고객층이 군인들에서 노인층으로 바뀌었다. 들어서자 주인은 내가 '단골이 될 만한 나이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는지 별로 반기는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왜 상회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곳에서 물건을 사면 자신이 직장에서나 부대에서 승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면 자신이 직장에서나 부대에서 승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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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수퍼, 마켓 등 상가들의 명칭도 다양한데, 과거 상가들은 꼭 '상회'라는 명칭을 붙였다. '마산상회' 그러면 십중팔구 마산이 고향인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이고, '평안쌀상회'라는 곳은 평안도에서 피난 온 사람이 운영하는 쌀가게로 보면 거의 정답이다.

읍내를 쭉 둘러보던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 '승진상회'라는 간판이 붙은 구멍가게였다. 미닫이문과 건물 형체로 보아 족히 몇십 년은 이 간판 이름을 사용해온 듯하다. "왜 가게 이름을 '승진상회'라고 했을까"에 대한 답은 간단히 나왔다. 군인들 특히 장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진급, 즉 승진일 테고, 이곳에 오면 빨리 승진이 될 수 있다는 주인의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진 간판 이름 같다.

삼유삼무 운동, 대체 무슨 운동일까!

뭘 없애고 뭘 지키자는 운동인지, 흥미롭다
 뭘 없애고 뭘 지키자는 운동인지, 흥미롭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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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식당에 걸린 빛바랜 액자 안의 글귀. '손님맞이 3유3무 운동'.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아마 손님을 맞는 데 있어서 3가지는 유지하고 3가지는 없애자는, 관청에서 주민계도용으로 배포한 것 같다. 3유(有)로는 질서 지키기, 친절하기, 청결하기. 3무(無)로는 부당요금 안 받기, 심야영업 안 하기, 시비폭력 없애기. 업주들이 얼마나 불친절하고 식당이 얼마나 청결하지 않았으면 이런 문구를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 상인들은 군 장병이나 면회를 온 가족들에게 친절할 이유가 없었다. 3년간 병역을 마친 병사들이 이곳을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에서 어쩌다 나온 병사들을 대상으로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늘 음식값, 술값 등의 요금으로 인한 시비와 싸움은 끊이질 않았다.

'심야영업 안 하기'라는 글귀도 이상하게 보인다. 1980년대부터 (전방지역을 포함) 전국적으로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모든 상가들은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왜 관청에서 심야영업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 이유는 대부분 군인과 업주들의 싸움이나 술값 시비는 심야에 발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당시 행정에서 심야영업 금지 제도를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맹목적적인 현대화가 능사일까!

평화로운 화천읍내 모습
 평화로운 화천읍내 모습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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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화천 맞나요?"

1980년대 칠성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어떤 중년신사의 질문이다. 제대 후 "화천을 향해 소변도 보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화천의 어느 부대에 배치됨에 따라 면회를 왔다는 그 사람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말을 반복한다.

"내가 이곳에서 군 생활할 때 추억은 비포장도로의 먼지,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선 다방, 술집 그리고 식당이나 숙박업소 업주들의 불친절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변해 바다가 되었다)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는 말로 함축했다.

"과거의 것을 맹목적으로 털어버린 문화가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지요."

그의 말은 사방거리나 봉오리 마을에 옛 풍경을 살려 과거 그곳에서 군 생활을 했던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위한 '향수의 거리'로 만들면 또 다른 여행상품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그의 말에서 '과거의 잔재를 밀어버리고 현대화만를 고집하는 것만이 능사인가'를 생각한다.


태그:#화천읍, #화천, #군사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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