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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사람들은 정말 농구를 좋아한다. 모든 동네에는 크고 작은 야외농구장이 있다. 이곳에서 하루종일 젊은이들이 무더위 속에서도 활기찬 하루를 보낸다. 가난한 동네의 경우 작은 모퉁이 땅에 얼기설기 나무로 농구골대를 만들고 이곳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필리핀 마닐라의 도시빈민 밀집지역인 나보타스 인근의 야외농구장에서는 이런 모습을 수개월째 볼 수 없다. 지난해 9월 27일 필리핀의 마닐라를 강타한 태풍 '네삿'으로 지역의 모든 야외농구장은 태풍피해 이재민 대피소가 되었다. 태풍피해를 입은 지 8개월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이재민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 나보타스에 있는 태풍피해 이재민 임시 대피소
▲ 8개월째 태풍피해로 임시대피소로 사용되는 야외농구장 필리핀 마닐라 나보타스에 있는 태풍피해 이재민 임시 대피소
ⓒ 이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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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태풍 '네삿'은 필리핀 루존의 중심에서 북쪽에 위치한 22개 지방에 홍수 피해를 입혔다. 15만 명 이상이 대피소로 이동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 태풍 피해를 가장 심하게 당한 곳이 나보타스다. 태풍으로 만조 시보다 2배 이상 높아진 파도는 방파제는 물론 인근 지역의 집들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이러한 소식은 긴급히 세계 사회에 타전되었고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8개월여가 지난 지금 이곳에 관심을 갖는 외부의 손길은 거의 중단되었고 단지 국제구호단체와 현지 NGO 단체들의 지원만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직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은 처절한 고통 속에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필리핀은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에 들어섰다. 필리핀은 4~5월이 가장 무더운 여름이다. 이 무더위에 좁은 야외농구장에서 최소한의 칸막이로 생활하는 이재민들의 형편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심각한 상황이다.

5월 1일 노동절을 휴일을 맞아 뜻밖의 선물을 받아서 기뻐하는 이재민들
▲ 뜻밖의 선물 사랑에 빵에 기뻐하는 사람들 5월 1일 노동절을 휴일을 맞아 뜻밖의 선물을 받아서 기뻐하는 이재민들
ⓒ 이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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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노동절 휴일로 온 마닐라 시내가 조용한 시간에 이재민 대피소에 반가운 손길이 이어졌다. 필리핀 불라칸주 산호세델몬테시의 해피벨리라는 지역에 위치한 작은 빵집인 하바나이베이커리에서 모처럼을 휴일을 맞은 대피소의 이재민들을 위해 신선한 빵 400세트를 선물했다. 빠빠야, 론드레스, 빤디쇼스 등 다양한 빵을 400가정에 선물한 것이다. 이 사랑의 빵은 한국의 몇몇 교회들의 협력으로 지원되었다.

이 빵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공급한 하바나이베이커리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빵집이다. 하바나이베이커리가 위치한 지역은 필리핀 정부의 강제철거 이주정책과 태풍과 화재 등 각종 재난으로 인해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주민 지역이다.

불라칸주 산호세델몬테시에 위치한 이곳은 마닐라에서 동북쪽으로 35킬로미터 정도에 위치한 곳으로 현재 토지개간과 이주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정부는 이곳에 2만여 명의 마닐라 도시빈민을 이주시킬 예정이고 현재 6000여 명이 이주를 마친 상태이다.

필리핀 정부는 도시개발 정책과 각종 태풍 화재 등 이재민들을 마닐라 도심 외곽의 지역에 이주시키기 위해 대규모 이주민 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 필리핀 정부의 이주정책에 의해 조성되고 있는 마닐라 외곽의 가야가야 이주지 필리핀 정부는 도시개발 정책과 각종 태풍 화재 등 이재민들을 마닐라 도심 외곽의 지역에 이주시키기 위해 대규모 이주민 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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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의 생활은 심각하다. 벽돌을 얼기설기 쌓고 양철지붕만 덮어 바둑판처럼 다닥다닥 지은 집들은 무더운 여름 내부의 온도가 50도에 육박하는 그야말로 단열의 개념조차 도입하지 않은 집들이다. 이것도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20년 이상 장기임대 형태로 매월 월세를 내야 한다.

이곳의 심각한 문제는 주거뿐만이 아니라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반시설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때문에 상당수 가정의 남자들이 마닐라로 다시 나가 비정기적인 노동을 하며 최소한의 수입을 보내주고 있어 가정해체의 위기가 내재되어 있는 지역이다.

하바나이베이커리는 기술교육과 일자리를 통한 빈곤해소를 위해 국제개발협력단체인 사단법인 캠프(이사장 홍성욱)가 서울 영은교회(고일호 목사)의 지원으로 이주민 지역에 건축 설립한 사회적기업이다.

사단법인 캠프는 필리핀 현지법인 캠프아시아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신대학교(총장 채수일)의 지역발전센터와 함께일하는재단(이사장 송월주) 등과 공동협력을 통해 사회적기업을 통한 아시아 빈곤해소 모델개발 프로젝트를 지난 2010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하바나이베이커리에서는 지역청년 11명이 필리핀 정부의 기술교육 기관인 테스다(TESDA)의 전문 강사에게 제빵교육을 받고 현재 제품생산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누구보다도 배고프고 힘든 시간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태풍피해 이재민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신난 모습니다.

좁고 열악한 공간에서 400여 가정을 위해 4가지의 빵을 만드는 데 20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꼬박 밤을 새며 빵을 만든 것이다. 이렇듯 힘든 노동에도 플로이드(19세)는 구슬땀을 흘리며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기적 같다"며 보람을 말했다.

캠프는 사회적기업을 통한 아시아빈곤해소 모델을 위해 빈민지역에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고 기술교육과 제품생산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빈곤계층을 지원하고 있다.
▲ 도시빈민 이주지 가야가야에서 운영되는 하바나이베이커리 캠프는 사회적기업을 통한 아시아빈곤해소 모델을 위해 빈민지역에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고 기술교육과 제품생산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빈곤계층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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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예상치 않았던 사랑의빵 선물을 받아든 대피소 이재민들은 환호했다. 그동안 외부의 관심도 끊기고 정부의 지원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힘들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휴일을 맞아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빵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고, 이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용기를 얻는 모습이었다.

8개월째 임시대피소 생활중에 출산한 아이를 안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고된 일상이 묻어 난다.
▲ 야외농구장 임시대피소에서 출생한지 한달된 아이와 아버지 8개월째 임시대피소 생활중에 출산한 아이를 안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고된 일상이 묻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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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재민들의 고민은 깊어가기만 한다. 정부는 대피소 생활을 접고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이주민지역 가야가야로 이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민들은 이주민지역의 심각한 문제점을 알기에 정부의 요구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을 돕고 있는 현지 빈민연합 NGO 단체 조토(ZOTO)의 부츠 사무총장은 "이들이 이주민지역에서 겪을 고통을 뻔히 알고 있는데 정부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 인근 지역에서 생활할 수 있는 대안을 정부가 제시해야 한다"며 정부에 강력히 맞서고 있다.

6월이면 우기가 시작된다. 임시로 만들어진 야외농구장에서 우기를 견디는 것은 또다른 고통의 시작이다. 하루 속히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이재민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태그:#아시아빈곤, #빈곤, #마닐라, #캠프, #사회적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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