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류택현이 4월 13일 잠실 KIA전에 등판해 프로야구 투수 최다경기 출전 기록을 세운 뒤 마운드를 내려가며 오른손으로 모자를 들어 팬에게 인사하고 있다.

LG 류택현이 4월 13일 잠실 KIA전에 등판해 프로야구 투수 최다경기 출전 기록을 세운 뒤 마운드를 내려가며 오른손으로 모자를 들어 팬에게 인사하고 있다. ⓒ LG 트윈스


프로야구는 적자생존의 논리로 무장한 전쟁터와 같다. 실력이 떨어진 선수는 오늘 당장 유니폼을 벗어도 이상하지 않다. 화려하진 않지만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LG 트윈스의 노장 왼손 투수 류택현(41)이 그래서 돋보인다.

1994년 프로에 입문한 류택현은 19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투수다. 겉보기에 그가 세운 기록은 그다지 대단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류택현은 그동안 프로야구 1군에서 563이닝을 던져 13승28패 6세이브 103홀드 평균자책점 4.46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2007년 23홀드로 이 부문 1위를 차지한 걸 빼면 변변한 타이틀이 없다.

그러나 그의 814경기 출전 기록은 결코 가볍게 볼 게 아니다. 프로야구를 거쳐 간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가 선발 등판한 경기는 13경기뿐이지만 몸 관리는 구원투수가 더 힘들어 기록의 가치가 낮진 않다.

류택현은 4월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에 9회 무사에 구원 등판해 1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류택현은 이 경기에서 승과 패는 물론 홀드도 기록하지 못했다. 게다가 소속팀인 LG는 KIA에 6-8로 졌다.

하지만 이 등판은 그 어느 경기보다 특별했다. 류택현은 814번째로 마운드에 오르면서 오른손 사이드암 투수였던 조웅천 SK 와이번스 투수 코치가 세운 프로야구 투수 최다경기 출전 기록인 813경기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다.

팔꿈치 수술을 이겨내다

류택현의 814경기 출전 기록은 부상과 재활을 거쳐 극적으로 이뤄졌다. 류택현은 2년 전인 2010년 시즌 중 왼쪽 팔꿈치에 통증을 느꼈다. 노장인 그에게 부상은 곧 은퇴와 다름 없었다. 한국 나이로 마흔 살이 된 그는 젊은 선수들에 비해 회복이 더뎌 재기를 장담할 수 없었다. 주변에선 주로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길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류택현은 흔들리지 않고 수술 뒤 재활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택했다. 그는 2010년 9월 11일 서울의 한 정형외과에서 '토미 존 수술'로 알려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수술비는 자신이 부담했다.

LG는 9월 26일 소속 선수들을 정리하면서 수술을 마친 그를 방출했다. 대신 LG는 류택현이 잠실구장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왼쪽 팔꿈치에 칼을 댄 류택현은 지난해 동료들을 지켜보며 재활 훈련에만 매달렸다. 뚜렷한 취미가 없는 류택현에게도 길고 지루한 재활 훈련은 힘든 과정이었다. 무엇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는 근성으로 끝까지 꿋꿋하게 버텼다.

김기태 LG 감독은 묵묵히 재활 훈련을 이겨낸 류택현을 주목했다. 김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그를 선수와 지도자를 겸하는 플레잉 코치로 영입해 마지막 기회를 줬다. 류택현은 지난 겨울 1군 진입을 놓고 후배들과 경쟁해 당당히 살아남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

 LG 류택현이 4월 13일 잠실 KIA전 9회 무사에 등판해 공을 던지고 있다. 류택현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LG 류택현이 4월 13일 잠실 KIA전 9회 무사에 등판해 공을 던지고 있다. 류택현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 LG 트윈스


투수 최다경기 출전 신기록을 세운 류택현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군 후배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류택현이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 주로 지는 경기에 나서던 류택현은 야구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8년을 뛰었지만 고작 7승을 거두는데 그쳤던 그가 거쳐야 할 자연스런 과정이었다.

하지만, 류택현은 고민 끝에 변하기로 했다. 선발투수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틈새시장인 왼손 타자를 주로 상대하는 구원투수가 돼 마지막까지 살아남기로 한 것이다. 오른손 타자에 비해 수가 적은 왼손 타자는 대체로 왼손 투수에게 약하다. 모든 팀이 왼손 구원투수를 따로 두는 이유다.

변신은 성공했다. 각이 큰 커브를 앞세운 류택현은 LG에서 왼손 타자를 잘 상대하는 믿음직한 구원투수로 자리 잡았다. 재활에 성공한 지금도 류택현은 LG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전력이다.

류택현은 현재 직구 최고 구속이 시속 140km에도 이르지 못한다. 구속만 보면 프로야구 1군 투수로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씩씩하게 타자를 상대하고 있다. 많은 경험이 쌓여 '야구 9단'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은 류택현에게 잘 어울린다. 프로야구 투수 최다경기 출전 기록을 세운 류택현은 이제 경기에 나설 때마다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포기를 모르는 류택현이 19년이 지나서야 진정한 강자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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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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