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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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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기업은 국가의 보호 속에서 성장했다. 보이지 않는 정경유착이 그랬다. 이제는 기업이 국가를 조종하는 모습이다. 국가의 통제와 제제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의 위에서 군림하는 경향이다. 국가의 수장이 기업 수장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상황이 그렇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본이 지닌 권력은 그렇게 막강하다. 그런 마당이니 경제학자들도 앞 다퉈 따뜻한 자본주의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에는 자본주의가 깊숙이 박혀 있어서 다들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때가 많다.

길 위의 철학자 김상봉 교수가 펴낸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꾸리에 펴냄)는 다르다. 칸트 철학 전공자인 그가 왜 기업 문제를 다룰까? 칸트가 말한 '유기체의 개념'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공성의 정신'을 되살리고픈 생각에서다. 함석헌 선생이 이야기한 '너도 나라'고 긍정할 수 있는 '서로 주체성의 관계'를 복원하고픈 생각이 그것이다. 그것이 기업의 경영주권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기업 경영의 주권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면 마르크스나 레닌주의자라고 말이다. 허나 김상봉 교수가 주장하는 바는 그것이다. 노동자들을 자본의 억압에서 해방하여 생산 활동의 자유로운 주체로 만든다는 것 말이다. 그것 없이 자본주의를 극복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래서 다른 체제를 만든다면, 결국 왜곡된 수탈구조로 소수의 관료 자본가들을 양산한 소련과 중국의 신흥 자본가를 양산하는 꼴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경영권을 행사한 실례가 있나? 사실 이 지점에서 김성오의 <몬드라곤의 기적>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책에서는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경영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이점'을 밝혀준다. 물론 김상봉 교수도 이 책에서 그런 예를 지적한다. 로버트 달(Robert Dahl)이 1985년에 출판한 책에서 말한 '자치 기업'이 그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나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어떻게 협동조합으로 만들 수 있을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달은 몬드라곤 협동조합부터(1985년에는 아직 존속하고 있었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의 노동자 자주관리제도까지 모두 자기가 말하는 자치기업의 범주 속에 포함시켜 논의를 전개시키는 까닭에 나로서는 정확히 어떤 것이 그가 말하는 자치 기업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랬으니 노동자 자치 기업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에게서 아무런 가르침도 얻지 못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96쪽)

그 같은 한계를 벗어날 길이 있을까? 김상봉 교수는 주식회사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주식회사야말로 자본의 결합체인 까닭이다. 이는 자본 출자자와 회사의 경영진이 누구인지의 여부는 주식회사의 실체와 상관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주식회사가 법인의 인격체가 되기 때문에 누구도 사유화 할 수 없는 '공공성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도(Mitbestimmung)에서 그 정신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재벌 해체는 어떨까? 김상봉 교수는 이미 일본은 60여 년 전에 재벌을 해체했다고 말한다. 실로 놀라운 사실 아닌가? 모든 문화까지 뼛속까지 닮으려 했던 우리로서 그걸 뒤쫓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것은 맥아더 사령부가 일본의 군벌과 재벌이 합하여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해체한 것이라고 한다. 강제적인 요소도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일본인들의 자발적인 공감이 컸다고 강조한다.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의 재벌을 지배하는 가문들로부터 모든 주식을 강제로 양수받아 그것을 매각했다. 그 주식의 총수는 1억 5천만 주, 총액은 68억 엔이었다 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 재벌 가문이 주식을 다시 매입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그런 후에 주식 판매 대금을 돌려주기는 하였으나 이마저도 고율의 세금을 매겨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돌아간 금액은 소액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재벌 계열회사에 재직하고 있던 재벌 가문의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여 재벌가문의 지배력을 인적으로도 완벽하게 청산했던 것이다."(226쪽)

우리나라는 어떨까? 만약 그랬다간 사회적인 혼란이 오지 않을까? 더욱이 빨갱이로 내몰려 매장되지 않을까? 김상봉 교수가 주식회사의 틀 내에서 바람직한 이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주에게는 배당금을, 노동자들에겐 경영권을 돌려주는 것 말이다. 그것이 본래 주식회사가 갖고 있는 법률적인 근거라고 말한다.

그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대안도 몇 가지 제시한다. 앞서 말한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도나 일본의 종업원 중심의 회사 운영이 그것이다. 물론 그런 유형은 단순히 법을 통해 강제된 제도가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 속에서 전통적으로 뿌리내려온 제도라고 한다. 그만큼 공공성의 정신을 강조한 예라는 뜻이다.

다만 우리도 몇 몇 곳에서 그걸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공기업의 사장 선출권을 노동자들에게 위임하고, 법인이 운영하는 기관도 종업원들이 기관장을 선출토록 하는 게 그것이다. KBS나 MBC도 사장 선출권을 노동자들에게 위임하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런 흐름이 사회 전반에 걸쳐 바뀌면 머잖아 우리나라도 독일이나 일본 못지않는 궁극적인 주식회사, 곧 노동자들에게 경영권이 돌아가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김상봉 지음, 꾸리에(2012)


태그:#기업, #주식회사, #몬드라곤, #김상봉 교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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