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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고객님, 이자 납부일이 15일입니다. 통장에 잔고 확인바랍니다 OO은행'

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통장에 잔고가 부족했나 보다. 6년 전, 아이 방을 꾸미느라 전세 놓았던 방 하나를 뺐고,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느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당시엔 '그깟 2500만 원, 2~3년이면 갚을 수 있겠지'라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2/3 정도는 갚았지만, 아직도 한 달에 3만5000여 원의 이자가 꼬박 꼬박 통장에서 빠져 나간다. 어깨를 짓누를 만큼 부담을 주진 않지만, 뭔가 찝찝하고 빨리 상환해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가계부채 900조 시대, 주변에 대출 한 번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아비규환에 가깝다. 아침 신문에는 생활고를 못 이긴 엄마가 갓난아기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이 실려 있고, 저녁 뉴스는 '물가 때문에 못 살겠다'는 주부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차 있다. 카드 빚 때문에 자살하고, 은행 빚 때문에 가족 모두가 죽음을 택하는 일이 하루도 빠짐없이 벌어지는 '부채공화국', 이것이 2012년 대한민국의 민얼굴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가계부채가 912조 9000억 원 규모이며 가구당 4560만 원, 인구 1인으로 환산했을 때 183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가계부채 1000조 돌파도 시간 문제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6년에 걸쳐 2500만 원을 갚고 있는 내 처지에서 보면, 통계상으로 나온 빚의 규모를 현실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지난해 1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저소득층(소득 하위 20%)의 경우 10가구 중 6가구가 적자 살림이라는데, 온 식구가 허리띠 졸라맨다고 한들 언제 저 빚을 다 갚고 저축하며 살 수 있을까.

대기업 곳간 채워준 정책, 이것이 MB노믹스의 실체

ⓒ 자료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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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 특별 관리를 해왔던 생필품 52개 품목(MB 물가지수)의 가격은 3년 동안 꾸준히 올라 지난해 7월 기준으로 22.6%나 올랐다. 이에 반해 가계 소득은 대부분 미미한 수준으로 늘었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2010년 국제노동기구(ILO)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2007년부터 3년 동안 실질임금 상승률이 계속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기균 충남경제진흥원장은 자신이 쓴 <고환율의 음모>에서 2008년부터 3년 6개월 동안 명목임금 상승률이 7.3% 미만이었다고 주장했다.

'747공약'으로 표를 끌어 모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임기 초반부터 공약과는 정반대 길을 걸었다. 강만수 사단의 억지춘향식의 환율 정책은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도 삼성 등 대기업에 막대한 부를 몰아주었으며, 고물가에 시름하는 서민들은 날이 갈수록 늘었다. <고환율의 음모> 송기균 원장에 따르면, 2009년 환율폭등으로 수출기업은 77조 원 이익을 얻었지만, 국민들은 63조 원의 손실을 입었다.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대기업의 곳간을 채워준 고환율 정책, 이것이 MB노믹스의 실체였다.

이렇듯 경제 정책에 실패한 MB정부가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내놓은 카드는 다름 아닌 저렴한 대출이었다. 시장 상인들이 '장사가 안 돼 죽겠다'고 하소연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시계를 풀어주며 미소금융을 찾아가라고 했다. 이 뿐만 아니었다. 몇 차례 연거푸 내놓은 주택정책은 말이 서민을 위한 주택정책이지 실상은 저렴한 대출을 알선할 테니, 집을 사라는 것이었고 결국 이는 '건설사 살리기'가 됐다. 대학 등록금은 또 어떤가? 반값 등록금에 대한 화답은 든든학자금대출(취업 후 상환 학자금)을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전세난이 터져도, 소 값과 배춧값이 폭락해도 대책은 저렴하게 대출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위급한 상황에서 은행 문턱을 낮추는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대출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고 대출 이후 수습책이 전무했다는 데 있다. 은행 문턱 낮추어 놓았으니 대출 받아 해결하라는 임기응변식의 정책으로 국민들의 순간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빚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었다. 워킹푸어, 허니문푸어, 하우스푸어, 에듀푸어, 실버푸어까지… 빚 권하는 정부가 만들어 낸 비극적인 계층의 희극적인 이름이다.

저렴한 대출, 서민들 살리는 길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9월 2일 새벽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해서 식당에서 만난 상인 강계화씨에게 자신이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선물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손목시계를 선물하며 "이게 청와대 시계다. 이거 차고 미소금융 찾아가 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9월 2일 새벽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해서 식당에서 만난 상인 강계화씨에게 자신이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선물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손목시계를 선물하며 "이게 청와대 시계다. 이거 차고 미소금융 찾아가 보라"고 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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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계대출 폭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증가 일로에 있는 가계 대출 총량도 문제지만, 정작 더 우려스러운 건 대출 계층의 상환 능력과 대출 제도의 위험성이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쏟아낸 대출 제도 대부분은 저금리 기조에 근거한 변동금리이고 당장은 이자만 내고, 몇 년 후 원금을 상환하는 거치식 대출이다. 원금상환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대출자의 고통은 이자만 내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다. 또 이 시점의 이자는 대출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변동이율의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지금보다 이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저금리 기조를 수정하여 금리 인상을 추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인상을 고민해야 된다는 경제학자들의 권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계 대출 900조 원이 넘는 현실에서 그나마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건, 저금리와 원금 상환이 유예된 거치식 대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 벌기일 뿐 언젠가는 원금을 상환해야 하고 저금리가 고금리로 돌아서면 서민들은 막다른 길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대출 이자 10%, 15%. 우리는 아직도 겪어보지 않았지만 세계 경제의 금리 흐름을 감안한다면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다.  

진정 서민들을 생각했다면 일자리를 만들고 고용안정을 우선해야 했고 골목 상권을 지켜줘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4년 내내 반대 길을 걸었다. 고용유연화라는 미명 하에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했고, 최저임금의 100% 지급조차도 유예의 유예를 거듭했다. 골목상권이 대형자본의 먹잇감이 되었을 때도 시장의 자율을 강조했다.

서민들은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기에 달마다 카드를 긁고 든든학자금대출을 신청했으며 은행에 전세금 대출을 요청했다. 하지만 결국 쌓이고 쌓인 대출금에 서민들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했고, 우리 사회가 뭔가 잘못됐으며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자본의 약탈적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경제 민주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새누리당 공천 결과, 서민들 위하는 것 맞나?

새누리당은 반값등록금 공약을 폐기하고 든든학자금대출 이자를 현행 3.9%에서 2.9%로 내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 새누리당 선거 홍보 팸플릿 새누리당은 반값등록금 공약을 폐기하고 든든학자금대출 이자를 현행 3.9%에서 2.9%로 내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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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서민들의 절실한 요구에 화답한 정치인이 있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새누리당의 화두를 경제민주화로 설정한 그는 재벌 개혁론자 김종인 교수를 비대위원으로 영입했고, 재래시장을 돌면서 골목 상권보호와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MB노믹스와 결별한 듯 한 그의 행보에 시장 상인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그가 내세운 경제민주화 화두가 꼼수라 한다. 일각에서는 MB노믹스의 바통 이어받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비난을 쏟아내는 건 야당만이 아니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처럼 입성했던 김종인 비대위원조차도 새누리당에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인물이 없다고 공천 결과를 혹평한 바 있다.

새누리당의 공천 결과를 보면, 김종인 교수가 왜 그렇게 혹평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한미FTA 전도사를 자처하며 골목상권 보호를 가로막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강남에 전략공천됐고, MB노믹스를 입안한 이만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비례대표 10번에,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 공약을 만들어 2007년 박근혜 대선을 도왔던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도 비례대표 12번을 받았다. 부산진 갑에 출마한 나성린 의원과 송파 을 유일호 의원 등은 대표적인 감세주의자인 데다, 친대기업 인사라고 불리던 사람들이다.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새누리당 공약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간 줄기차게 요구된 비정규직 문제는 금·복리후생에 대한 차별 개선의 선언만 있을 뿐 비정규직제도를 바꾸겠다는 전향적인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골목상권을 지키겠다는 선언과 달리 대형마트, SSM 강제 휴무 등의 공약도 들어 있지 않다. 대학등록금을 낮추기 위한 방안도 대학 회계 투명성 제고 및 국가장학금 추가 지원이 전부다. 더구나 900조가 넘는 가계부채에 대한 공약은 전무했다.

경제민주화 뒷받침할 인물 없는 게 새누리당 현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선대위원들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9대 총선 중앙선대위 발대식 및 공천장 수여식에서 선전을 다짐하며 박수치고 있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선대위원들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9대 총선 중앙선대위 발대식 및 공천장 수여식에서 선전을 다짐하며 박수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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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저렴하게 돈을 빌려 주겠다는 공약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제한적인 지역에 한시적'으로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저소득층 전세자금 이자부담 경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학 학자금 대출이자를 3.9%에서 2.9%로 낮추겠다는 공약도 있다. 서민금융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전통시장에 저금리의 미소금융 자금 지원과 햇살론 및 새희망홀씨대출 공급규모를 확대한다는 공약도 있다.

저렴한 이자로 돈 빌려주겠다는 공약이 900조 원이 넘는 빚을 안고 사는 서민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일례로 학자금 대출의 경우 변동금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이자를 2.9%로 낮춘다고 해도 돈을 갚아야할 시점에 똑같은 이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명박 정권 내내 저렴한 대출의 유혹에 빚더미에 올라앉은 서민들이 앞으로 4년 동안 또 빚을 내서 살아야 한다면, 그건 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새누리당의 저렴한 대출의 공약은 서민경제의 약이 아니라 독이다. MB노믹스의 폭탄을 받아 안은 새누리당의 또 다른 폭탄 돌리기 공약일 뿐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저렴한 대출이 아니라, 저렴한 대출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부의 집중을 막아 서민들도 대출 안 받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근간이다. 표를 위해 경제민주화를 내걸었지만, 정작 경제민주화를 뒷받침할 인물이나 공약이 없는 게 새누리당의 현 주소다.


태그:#19대 총선,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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