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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와 보수 진영에서는 '국익론'을 앞세워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강행하고 있고, 이에 맞선 반대 진영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렇다면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만큼 '국익'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거꾸로 대한민국 국익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은 과연 없는 것일까? 네 차례에 걸쳐 게재될 심층분석에서는 이러한 의문을 진단해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시작한 지난 7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포구에서 한 시민이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깃발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시작한 지난 7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포구에서 한 시민이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깃발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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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미국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필자의 지적에 대해 군 당국의 반론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다. 먼저 미군 함정이 제주해군기지에 올 이유가 없다고 주장할 때에는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업에는 미국 예산이 단 1원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돈이 들어가느냐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일례로 부산항에는 미국 예산이 안 들어갔지만 미 해군의 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 대형 군함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둘째는 "한미동맹을 위한 미 군함 출입항 기지는 부산과 진해에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한국 해군이 기존의 해군기지가 포화 상태에 있어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듯이, 60%의 해군력을 아시아-태평양에 집중시키겠다는 미국 역시 아시아에 기지와 기항지가 부족해 이들을 늘려나가겠다고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가관인 것인 그러면서도 경제적 효과를 부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011년 8월 국회 예결위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미 항모 전투전단 제주해군기지 1회 입항시 60억 원의 소비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6000명의 미군이 1인당 하루에 300달러씩 쓰면 이런 계산 나온다는 것이다. 갈수록 쪼들릴 미군이 이렇게 큰돈을 쓸 지도 의문이지만, 한중관계를 불안케 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당할 때에는 안 온다고 하고, 경제적 효과를 부풀릴 때에는 온다고 한다. 

주권적 선택이 불러올 '우리 운명의 타자화'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어 미국도 이용하게 되면, 한중관계는 마지노선을 넘나들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이와 관련해 '한국 해군의 기지를 건설하는 것인데, 왜 자꾸 미국이나 중국과 연계시키냐'는 반문을 많이 듣게 된다.

물론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한국 정부의 주권적 선택에 따른 것이다. 절차적으로 수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제주해군기지는 미국의 압력이 아니라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선택에 의해 강행되고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바로 그 주권적 판단이 가져올 결과는 우리 운명을 미중관계에 더더욱 종속시키는 '타자화'이고, 그래서 가장 '비주권적인 상황'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하겠다고 발표한 적은 없다. 왜 그럴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용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기지 반대 운동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현명한 방법은 기다리고 있다가 해군기지가 만들어지면 쓰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군측은 "주권을 무시한 일방적인 주장으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주권은 한미동맹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국 정부 역시 공식적으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불만을 표하거나 항의한 적은 없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내정 불간섭 원칙을 견지하고 있고, 타국의 정책이 자국에 대한 가시적인 위협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공개 발언을 자제하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수 년간 몇 가지 사례는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2006년 3월 하순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는 "(주한미군이) 제3국을 대상으로 하여 행동하게 되면 우리는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 발언은 한미간에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나온 지 한 달 뒤에 나왔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이었던 2008년 5월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 군사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유물"이라고 말했는데, 이 역시 이명박-부시가 한미 전략동맹을 천명한 지 한 달 뒤에 나왔다.

2004년 11월 29일 라오스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예정에 없던 한중 정상회담을 중국 측이 제안해 원자바오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원자바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최근 한국의 서해상에 미군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이 배치되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적국이 아닌데 이와 같은 시도에 대해 중국은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주한미군이 양안 문제에 개입하는 군으로 전환되는데, 이렇게 되면 중국과 한국 관계도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 내용은 6년이 지나서야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쓴 책을 통해서 알려졌다.

중국이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 한 관변 학자를 통해 그 속내를 내비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변강연구소의 뤼차오(呂超) 소장은 지난해 9월 6일 관영 <환구시보>를 통해,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될 경우 "미국의 중국 봉쇄와 지역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전초기지가 될 것이 확실하다"며, 특히 이 기지가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이용될 가능성에 강한 우려를 토로했다. 또한 한-중 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 있는 이어도 분쟁에 제주해군기지가 이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주해군기지가 몰고 올 한중관계의 재앙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해상에서 시공사 관계자들이 케이슨(방파제 축조용 사각 콘크리트 구조물)을 투하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해상에서 시공사 관계자들이 케이슨(방파제 축조용 사각 콘크리트 구조물)을 투하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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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자세히 언급한 것처럼,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해 이어도 초계 활동에 나서면 한중 관계는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중 양자간의 문제라는 점에서 어렵더라도 외교적으로 풀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런데 미-중 갈등에 휘말리면 한국의 선택지는 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쓰고자 하는데 못 쓰게 하면 한미관계는 어떻게 될까? 거꾸로 미국이 해군기지를 사용하면 한-중관계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제주해군기지를 미국도 이용하면 그 수위에 따라 중국도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나설 것이다. 여기에는 외교적 항의에서부터 여행 금지, 희토류 수출 중단과 같은 무역 보복 등 다양한 경제제재,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제주해군기지 보복 공격과 같은 군사적 조치까지 취할 수도 있다. 중국 내에서 반한 감정이 고조되면서 한국상품 불매 운동과 한류 타격도 예상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 시, 예상할 수 있는 중국의 군사적 조치로는 상하이 해군기지에 방공 미사일 배치, 제주해군기지를 겨냥한 미사일 배치, 공군 및 해군 작전 범위에 제주도 포함, 동중국해 수역에서 군사 훈련 실시와 같은 '무력시위'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이 이러한 조치를 취한다면 '중국위협론'은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고, 이에 대응해 한국, 혹은 한미동맹은 제주도나 그 인근 지역에 방공 부대 및 공군기지 건설과 같은 군사적 맞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될 것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이 이미 진행 중인 동아시아 군비경쟁을 격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중 간에 핵전쟁까지 비화될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하더라도, '남중국해-대만해협-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동중국해-서해'로 이어지는 '갈등의 해양선' 어디에선가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두 나라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해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하면, 한국은 국제법적으로도 중국에게 군사적 적대 행위를 하는 셈이 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이 한국의 해양 수송로를 봉쇄하거나 제주해군기지를 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수출로 먹고 산다'는 한국의 무역 의존도에서 중국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미국 및 일본과 합친 것보다 높은 20%대에 달한다. 또한 "해양수송로가 한 달만 막혀도, 한국은 망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동아시아 해양 수송로에 대한 의존도도 대단히 높다.

6자회담 의장국이자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과의 외교안보 관계도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미-일 3각관계가 강화될수록 북-중-러 3각관계도 강화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할 때,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체제의 강화는 평화적 통일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속성도 있다. 제주해군기지가 미국 해군의 기항지나 중간기지가 될 경우, 한국의 안보와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너무 비관적인 시나리오?

'너무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물론 미중관계의 앞날은 알 수 없다.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할지의 여부도 불확실하다. 미국이 사용하더라도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들 문제는 대부분 한국의 주권 밖에 일이다. 거꾸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의 운명은 급격히 타자화되는, 그래서 가장 비주권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역사적 사례와 구체적인 근거, 그리고 논리적 추론을 통해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나는 정부의 책임 있는 위치 있는 사람이 위에서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동맹 이론에 '휘말림(연루)'과 '버림받음(방기)'의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3자와 무력 갈등에 있는 동맹국이 군사 지원을 요청할 경우에 이러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동맹국의 요구를 수용하자니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반대로 동맹국의 요구를 뿌리칠 경우 동맹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우려가 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이러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또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지혜롭게 잘 관리해주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과도 배치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이 있다. 제주해군기지가 없으면 이러한 우려를 크게 덜 수 있다는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라는 한국의 주권적 선택이 우리의 운명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하여 묻게 된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한 길이 과연 어떤 것이냐고?

덧붙이는 글 | 다음에 이어질 글은 '대안은 있다'입니다. 정욱식 기자는 시민단체인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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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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