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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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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닌데, 내 맘은 이게 아닌데 널 위해 준비한 오백 가지 멋진 말이 남았는데 사랑한다는… 그 흔한 말이 아니야 그보다 더욱더 로맨틱하고 달콤한 말을 준비했단 말야 <뜨거운 감자의 노래 '고백' 中>

2월의 마지막 날, 김진숙씨가 하는 강연을 들었다. 1시간 남짓 이어지는 강연을 듣는 내내 난 '사랑'이라는, 그 미치도록 진부한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연단에 서서 매체를 통해 알려졌던 내용과 그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없는 내용을 섞어가며 좌중을 압도하고 있을 때, 난 너무 추상적이어서 가끔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사랑'이라는 게 사람 머릿수만큼 존재하는 거라고 투덜거렸던 바로 그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녀는 강의 내내 단 한 번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그녀가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강의의 소감을 말해야 한다면 흔해서 멀미가 날 지경인 '사랑, 그놈'을 가지고 할 수밖에 없다고…. 난 그날 그녀의 수척한 얼굴에서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해내지 못했다.

그녀는 겨울의 칼바람이 부는 1월의 새벽, 35m 높이의 크레인에 올랐다. 자신의 동료(김주익)가 129일을 살다 목숨을 저버린 그곳. 그 허공을 향해 오르며 그녀가 품었을 숱한 생각과 감정들을 난 상상해 낼 수가 없다. 너무 추워서 내일 올라갈 걸하는 후회가 들었다고, 좌중을 향해 그런 농담을 던지며 애써 그녀가 잊으려 하는 그 깊고 어두운 마음의 자락을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해 볼 길이 없었던 거다.

크레인에서 보면 사람들 숫자 줄어드는 것까지 다 보여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닌 곳에,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해가며 오른다는 것 자체가 온통 모순이 아니던가. 의지할 것이라곤 냉기 서린 쇠벽 하나뿐인, 하늘을 향한 그 차갑고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그녀가 처음 맞닥뜨린 건 먼저 간 동료의 죽음이었다.

"크레인을 향해 올라가던 중 어느 난간 하나를 잡았는데, 소름이 쫙 끼쳤어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곳이 바로 김주익이 죽어간 자리였더라고요."

그 촉감은 크레인에 오르고서도 1주일이 넘게 생생하게 기억됐다. 그 기억과 함께 그녀는 그의 시신이 놓여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죽음에 끝까지 냉담했던 세상과의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50년 가까이 산 땅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올라간 죽음의 자리. 그 높은 곳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동료의 지지와 응원으로 간신히 하루하루를 이어갔던 허공 위의 삶.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사측과 정부가 똘똘 뭉쳐 퍼붓는 공세는 나날이 집요해져만 갔고 그와 더불어 그녀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도 하나 둘 사라져갔다.

"위에서 보면 다 보여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지켜봤죠. 나중엔 조합원의 3분의 1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고요."

그녀는 말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 올라갈 때 조합원 수가 2500명이었다고…. 그 숫자가 내내 계속 함께했다면, 만약 그랬다면 김주익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누군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동료가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기에 오히려 그녀의 목소리는 바닥으로 더 낮게 깔렸다. 인간이기에 반드시 지켜내야 하고 또 인간이기에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은 것들을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걸어야 하는 세상. 그렇게 가진 모든 걸 버려도 사람답게 사는 거 하나 지켜낼 수 없는 세상. 우리가 가슴에 따스한 무엇하나를 남겨두고 사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런 우리들의 세상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바닥으로 다시 바닥으로, 그렇게 낮게만 깔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람이 불면 모든 공간이 함께 흔들리며 울어대는 그 아찔한 높이에서 그녀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간 것일까. 그런 시간의 풍경을 가늠해 볼 새도 없이 그녀의 육성이 날카롭게 치솟는다.

저의 조건은 단 하나 '정리해고 철회' ... 내려올 방법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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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상에서 곧 잊혔습니다. 답답했지요. 하지만 퇴로가 없었습니다. 제가 뭐 여러 가지 조건을 달고 그곳에 올라갔더라면 그 중 몇몇은 양보하고 또 합의하고 그렇게 내려올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는 단 하나의 조건만을 내걸었습니다. '정리해고 철회' 그러니 이게 해결안 되면 내려올 방법이 없는 거죠."

내려올 길이 없는 곳에 올라 간 이 시대 또 한 명의 바보. 그 바보가 아침마다 깨어나 내려다보던 저 아래 세상. 그곳에서 겨울이 지나고 봄의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고, 다시 계절이 바뀌어 갈 채비를 하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버스들이 도착했다. 그녀가 누누이 '기적'이라 말하는 그 사건이 일어났다.

"크레인에 올라간 지 157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6월 11일에 희망버스와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왔어요. 그때 조합원들이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웃는 걸 봤어요. 그들은 제게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게 도저히 웃을 수 없는 곳에서 웃을 수 없는 싸움을 하는 제게 내내 화두가 되었지요."

'웃으면서 싸워야 남들과 함께 싸울 수 있고, 그렇게 함께 싸워야 끝까지 싸울 수 있다'는 명쾌한 답을 얻기까지 그녀는 크레인 위에서 마치 전쟁과도 같은 삶을, 숨 쉴 때마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죽음의 기운과 함께 살아내야 했다.

'희망'이 기적의 얼굴을 하고 다녀간 이후, 그나마 크레인 근처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은 시퍼런 용역들의 등쌀에 떠밀려 모두 다 쫓겨났다. 그녀에게 하루 세끼 끼니를 올려주던 황이라씨만 우여곡절 끝에 유일하게 남은 자가 되었다. 그 외로운 자리로 다시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비수가 날아들었다.

"어느 날 트윗을 통해서 제게 이런 메시지가 왔어요. '70년대 암흑의 시기를 전태일이 횃불이 되어 밝혔고, 80년대는 박종철이 그랬고 이제 그대가 이 시대를 위해 횃불이 될 차례'라고 쓰여있더군요."

그녀는 생각했다. 아! 이 싸움은 진짜 내가 죽어야 끝날 것인가. 아무리 표현하려 해도 그저 '고통스러웠다'라는 한마디 외엔 방법이 없는 그녀의 시간. 그 지옥의 한가운데로 날아든 메시지는 그렇게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다른 한 편에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그녀의 살아있음을 기도하고 있다는 걸, 그 간절한 마음들의 목소리를 그녀는 기억해냈다.

"저녁 여섯 시만 되면 잊지 않고 나타나 백배 서원을 하시던 분들, 크레인 옆에서 미사를 보시던 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분들을 저는 하나도 모릅니다. 제게 무슨 일만 있다고 하면 서울에서, 부산에서 쫓아왔던 날라리들, 여름방학을 꼬박 화장실도 없는 크레인 옆에서 보낸 그 많은 학생. 당신들은 무엇이 그렇게 간절합니까? 어떤 마음으로 이 먼 곳까지 달려오는 겁니까?"

그 질문들을 그녀는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 묻고 싶었다. 그들은 왜 나를 살리고 싶어 하는가. 끝내 묻지 못했던 그 질문들은 그녀의 가슴 한켠에 쌓여 다시 그녀의 생명을 밝히는 횃불이 되었다. 죽지 않으리라.

"1차 희망버스에 700명이 왔어요. 2차에는 1200명이 왔고요. 3차 때는 진입 자체가 어려워지자 이 분들이 3시간이나 산을 타고 넘어서 왔습니다. 어느 날 어디선가 막 무언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처음엔 절 부르는지도 몰랐어요. 그렇게 30분이 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저 멀리,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사람들이 저를 향해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제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죠, '진숙아!'"

그녀는 그날 사람들과 그렇게 만났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크레인이 보이는 좁은 공간에 와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가면 다시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무리가 올라와 같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녀도 마주 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녀는 그날 6시간을 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309일. 그 숫자를 세기고 그녀가 내려왔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녀는 그곳을 살아서 내려왔다. 그녀의 목에 걸린 꽃다발이 의미하듯 그녀는 싸움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녀는 승리의 결과보다 '살아 있음'이라는 것으로 세상이 그녀에게 보여준 사랑에 뜨겁게 보답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간절히 부른다는 것. 그 사랑의 행위 안에서 지켜낼 수 있었던 한 사람의 생명. 그리고 그 살아 돌아온 생명이 다시 세상을 향해 목 놓아 부르는 애틋한 이름들. 이런 사랑을 두고 그 누가 감히 '그 흔한 말'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가슴에 남은 '사랑'은 어떠한가

그녀가 들려주는 가슴 시린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죽어간 핏빛의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도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온기가 남아있었던 건, 한때 그녀의 동료를 죽이고 그녀를 잊었던 세상에 대해 그녀가 다시금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객조차 모조리 사랑하는 '사랑 과잉'의 시대에 아직도 흔하지 않은 말로,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언어로 '사랑'을 실천하는 자. 그녀는 그렇게 세상의 중심에 올라 사랑을 외쳤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그리고 세상에 대한 그의 자세를 인간적인 자세로서 전제한다면, 너는 사랑은 오로지 사랑하고만, 신뢰는 오직 신뢰하고만 교환할 수 있다. 네가 사랑을 하게 되더라도 그 사랑에 화답하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리고 너의 생활표현으로 너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력하고 불행한 것이다. <1844년 경제학 초고>, 칼 마르크스

우리 가슴에 남아있는 '사랑'은 어떠한가. 그것은 이내 흔하고 진부한 것이 되어 딱딱하게 버려졌는가. 김진숙, 그녀는 강의를 위해 오백 가지 멋진 말들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이젠 우리가 그보다 더 로맨틱하고 달콤한 말을 준비해야 할 차례다. 내 옆에 선 이에게, 내가 모르는 이들이지만 그토록 나의 얼굴을 닮아있는 그들을 향하여…. 우린 그렇게 세상을 향한 뜨거운 고백을 준비해야 한다. "나의 사랑은, 더이상 무력한 것이 아니다"는 그 사랑의 고백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박현아 기자는 <희망버스 김진숙이 말하는 희망과 배움> 오픈특강 수강생입니다.

2012.2.29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2012봄강좌

앎의 즐거움, 모든 변화의 첫 걸음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http://academy.pspd.org)는
1996~2002년 참여사회아카데미에 이어 2009년 봄 새롭게 오픈한 참여연대 시민교육의 새로운 이름이다.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교육의 장을 넘어 시대와 삶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일상의 행복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진보·인문·행복의 배움터를 꿈꾸고 있다.



태그:#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봄강좌, #김진숙, #오픈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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