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름 바꾸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계시길..."

이정도면 협박 수준이다. 자칭 '고소고발남'인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8일 배우 김규리씨를 겨냥해 날린 트위터에 날린 글 중 일부다.

강 의원은 8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서귀포시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발파 소식에 안타까움을 호소한 김규리씨에게 "구럼비라는 예쁜 이름 때문에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고 있는데"라며 "광우병 걸릴까봐 청산가리 먹겠다고 하다가 이름 바꾼 김규리 또 나섰지만... 구럼비는 걍 바위일뿐... 또 이름 바꾸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계시길..."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협박에 이은 고소의 화살은 '고대녀' 김지윤씨로 비켜갔다. 강 의원은 8일 통합진보당 청년 비례대표 후보 김지윤씨를 변호사 자격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그는 김지윤씨가 "제주 해적기지 반대. 강정을 지킵시다"라고 적힌 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 해군ㆍ해병대 전우회 소속 123명을 대리해 통합진보당과 함께 모욕죄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만화가 강풀이 7일 자신의 SNS에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발파 반대를 촉구하는 포스터를 그려 게재했다.

만화가 강풀이 7일 자신의 SNS에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발파 반대를 촉구하는 포스터를 그려 게재했다. ⓒ 강풀 트위터


배우 김규리 트위터 글에 비난 퍼붓는 강용석과 <조선일보>

여기에 <조선일보>도 가세했다. 8일자 인터넷 판에 게재된 "시위 단골들 제주에서 또 나섰네"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규리를 비롯해 강정과 관련해 트위터로 의견을 표명한 방송인 김미화, 가수 이효리를 언급했다. 공지영 작가, 진중권 교수와 함께다.

앞서 이 신문은 7일 '탈북자 강제북송 침묵하던 일부 연예인들, '구럼비'에 다시 목소리'라는 기사에서 "강정마을은 당신들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에요. 맘대로 하지 마세요.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요. D.K.K.K(Don't Kill Kangjung Kurumbi)"란 글이 적힌 종이를 들고 찍은 사진을 게재한 가수 신효범을 언급했다.

더불어 앞선 김규리씨의 트위터 글을 소개하며 "그는 2008년 4월 MBC PD수첩의 왜곡 방송으로 촉발된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당시 소위 '청산가리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뒤, 이름을 '김민선'에서 '김규리'로 개명한 인물이다"며 기사 속에 김규리씨의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이들 연예인 가운데 최근의 탈북자 강제 북송과 관련해 언급한 인물은 거의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일부 누리꾼과 이른바 '알바'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들이 강정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 연예인들에게 퍼붓는 비난은 8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용석 의원의 트위터 글과 <조선일보>의 기사는 시너지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 구럼비 발파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정치적 견해로 해석해도 무방한 걸까.

 신효범이 7일 오전 자신의 SNS에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폭파 저지를 호소했다.

신효범이 7일 오전 자신의 SNS에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폭파 저지를 호소했다. ⓒ 신효범 트위터


'환경 전도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강정 소식을 접했다면?

할리우드 톱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지난 2008년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뽑은 '지구를 구할 50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10년 전 <비치> 촬영 당시 타이 푸켓 부근의 한 섬의 자연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은 그는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재단'을 설립, 환경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하는 중이다.

지구 온난화를 다룬 환경 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을 제작하고 나레이터로 직접 나서기도 했던 그는 지구 생태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54,000 종의 생물에 대해 주목하기도 했다. 인간에 의해 사라지고 마는 자연과 생물을 환경보호 측면에서 접근한 디카프리오가 만약 강정과 구럼비를 접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평화의 섬 제주를 파괴하는 움직임에 저항해 온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온 세계적인 석한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 공대(MIT) 명예교수의 의견과 엇비슷하지 않았을까.

강정과 구럼비를 향한 연예인들의 안타까움에 '색깔'을 씌우는 행태가 불온하고 부적절해 보이는 건 그래서다. 그들의 입장이 트위터를 통한 한 짤막한 의견 표명이란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더 이상 사람의 욕심으로 지구가 자연이 파괴되는 일 따윈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신효범의 글에서, "내가 아니라 나의 후손을 위해서. 먼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자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란 김규리의 글에 '자연'이 아닌 '진영'과 '색깔'을 읽는 시선은 꽤나 변태적이지 않은가?

 배우 차인표·신애라 부부 등 30여 명의 연예인들이 탈북자들을 위로하고 중국 내 탈북자들의 북송을 반대하는 콘서트를 연다. 사진은 지난 2월 KBS 2TV 시트콤 <선녀가 필요해> 제작발표회 당시의 모습이다.

배우 차인표·신애라 부부 등 30여 명의 연예인들이 탈북자들을 위로하고 중국 내 탈북자들의 북송을 반대하는 콘서트를 연다. 사진은 지난 2월 KBS 2TV 시트콤 <선녀가 필요해> 제작발표회 당시의 모습이다. ⓒ KBS


"색깔론으로 치부시키는 꼬라지 하고는..."

여전히 인터넷과 SNS 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핫'하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맞춰 냉탕과 온탕사이를 오가는 것은 물론 그러한 의견 표명 자체를 폄하하는 일도 빈번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언급한 '크라이 위드 어스' 콘서트를 주도한 배우 차인표는 어떨까. 그는 동료 연예인 49명과 지난 4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을 자비로 빌려 중국정부의 탈북자 북송을 반대 콘서트를 개최한 바 있다.  

지난달 20일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북송 시위에 박선영 의원과 함께 참석하기도 했던 차인표는 "이념을 떠나 동포 목숨 걸린 일"이라며 정치와는 무관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봉사와 종교 활동으로 유명한 차인표에 대한 비난 여론은 극히 드물다.

차인표의 바른 이미지 덕분이 아니다. 그 콘서트에 동참한 연예인은 59여 명에 달한다. 그들 모두에게  이념의 잣대를 들이댈 순 없다. 자연스레 방점은 '인권'에 찍힌다. 앞선 강정에 대한 의견들은 '자연'이다. 그러니까, '인권'과 '생명'을 강조한 차인표와 '자연'을 먼저 고려한 이효리· 김규리·신효범이 중시한 것이 근본적으로 크게 다른 것일까.

굳이 '소셜테이너'나 '폴리테이너'란 낙인과 딱지를 들이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연예인의 발언과 활동에 관해 '자기 진영'에 맞는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해답은, 배우 김민준이 '강정'과 관련해 트위터에 남긴 글에 담겨 있다.

"아름답다는 곳 보존 못해 실망스럽고 못 봐서 아쉽다는데 색깔론으로 치부시키는 꼬라지 하고는..."

강정 구럼비 김규리 차인표 강용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