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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고장 향토문화발전 위하여 입장료 1,000원을 받고 있음
▲ 박물관 입구 우리 고장 향토문화발전 위하여 입장료 1,000원을 받고 있음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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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모아온 전통생활용구와 민속품으로 군산향토민속박물관을 조성한 이황세(64세) 관장.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2년 전 정년퇴임했다. 교사 출신답게 학생들의 체험학습장(2002 년)으로 시작한 이곳은 2006년 정식으로 '군산향토민속박물관'이라는 명칭을 달게 됐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옛 생활도구들이 사라지고 모두 서구화 되는 시점에서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에게 과거의 생활상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 관장. 그의 뜻 있는 행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군산 전군도로를 지나갈 때 항상 궁금했다. 멀리 보이는 '군산향토민속박물관'이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그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입구에 들어서자 이곳이 어떤 곳인지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조상의 슬기와 지혜가 담긴 군산향토민속박물관(오륙질두레정수논두렁 백로장)은 우리 지역의 조상님들이 사용하시던 생활용구가 소박하게 전시돼 있습니다. 아직 시설이 미비하지만 우리 고장 향토 문화 발전을 위하여 입장료 1000원을 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상자에 넣어주세요.

지역 어르신들의 손때 묻은 생활용구들이라….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감돌았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나무, 돌, 장승, 철, 화분 등 서로 다른 것들이지만 미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니 골동품에 가까웠다. 그러나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가치를 뽐내는 듯 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평생 모은 전통생활용구로 직접 박물관 조성
▲ 이황세 관장 평생 모은 전통생활용구로 직접 박물관 조성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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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겨울 한복을 한껏 차려입은 이황세 관장님이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2층 건물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작업을 하고 오신 모양이었다.

"요즘 올드북(old book) 카페를 하나 만들고 있지. 아마 옛날 유명한 책은 나한테 다 있을 거여. 나는 기냥 있는 대로 모아버링께∼ 허허. 일단 뜨끈한 차 한잔 마시면서 얘기하자구."

정감 있는 사투리가 친할아버지를 만난 듯 반가웠다. 갑작스런 한파로 꽁꽁 언 몸이 커피 한 모금에 스르륵 녹아내렸다. 그 찰나에 이 관장님이 말문을 열었다.

"인간들은 참 쓸데없는 짓거리들을 많이 혀. 세상을 얼핏 들여다보면 뭔가 다들 죽어라 허는디, 그게 다 뭔 소용이여 무덤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걸. 당최 쓸데없는 짓이지. 그중에서도 난 더 특별히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지."

그가 말하는 쓸데없는 짓. 그건 평생 모아온 전통생활용구를 말한다. 한국 사람들이 말은 퉁명스러워도 속은 정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전통생활용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금세 들통 났다.

"관람 오는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 어느 게 가장 비싼 거냐, 또 어느 걸 가장 아끼냐. 그렇게 어딨어. 그냥 나한텐 다 비싸고 소중하지."

기자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이 질문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관장님의 선견지명(?) 에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책이 한 가득인 그의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두께가 10cm가 넘는 옥편을 놓고 매일 한자를 쓴다고 한다. 그렇게 써내려온 한지의 양도 이제는 수백 장에 이른다고 하니 그의 수집광 면모는 생활 속 습관에서 베어나는 듯하다.

"내가 천성적으로 그런가벼. 버려지는 게 싫어. 어쩔 땐 없어지는 걸 내가 지켰다는 사명감도 든다니깐. 평생을 모으는 대로 모았어. 본가에서 물려받은 것도 있고, 내가 발품 팔아 모은 것도 있고, 또 주위에서 알음알음 갖다주기고 하고."

그가 말하는 쓸데없는 짓. 그건 평생 모아온 전통생활용구를 말한다. 한국 사람들이 말은 퉁명스러워도 속은 정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전통생활용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금세 들통 났다.

그렇게 해서 모은 전통생활용구를 보기 위해 박물관으로 향했다. 낡은 전등에 전기가 들어가는 순간 1,322㎡(400평) 공간에 자리한 전시품들은 환한 빛의 옷을 입었고,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청난 규모의 공간도 그렇지만 방대한 전시품의 양과 무엇보다 이 모든 걸 손수 일군 이 관장님의 노고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수장고 수준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그리고 전시품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과 사용 용도, 그리고 이곳에 오게 된 경위를 신바람 난듯 설명했다.

 400평 공간에 수만가지 생활용품들이 즐비하다.
▲ 박물관 내부 400평 공간에 수만가지 생활용품들이 즐비하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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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과 모자
▲ 박물관 내부 신발과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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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목공용품과 장비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 박물관 내부 각종 목공용품과 장비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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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기의 변천사. 마치 영화세트장 같다.
▲ 박물관 내부 전화기의 변천사. 마치 영화세트장 같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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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을 가리킨다.
▲ 박물관 내부 이 관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을 가리킨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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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옛날 문짝이여. 옛날엔 이렇게 삐뚤삐뚤혔지. 이건 뭔지 아는감? 아마 이 물건을 모를 나이 같은디 말여. 이건 전화교환기여. 들어는 봤지? 또 이건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어? 옛날엔 이렇게 개 밥그릇, 돼지 밥그릇 따로 있었당께. 대나무 파리채는 시방 봤고?…"

그야말로 1980~1990년대 영화세트장이 따로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선풍기, 라디오, 리어카, 컴퓨터는 물론, 이름도 생소한 바라, 장태, 홧대. 그리고 한번쯤은 사용해봤고, 봐왔음직한 물건들이 즐비했다.

물품 종류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모양새가 더 장관을 이뤘다. 게다가 옛날 집 구조를 그대로 본 떠 만든 모형 집과,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갈 때 타고 가는 꽃상여까지 박물관은 온갖 진귀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그의 말대로 만일 손에 잡히는 귀신이 있다면 그 귀신도 갖다놓을 기세였다.

장장 두 시간 가량의 시간을 들여서야 박물관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다. 정원으로 나오니 이곳도 박물관이 따로 없었다. 직접 만든 연못부터 우물과 두레박, 범종, 교회 종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더라고.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지혜롭게 살아왔단다' 하고 말야. 그래서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물건이라도 모으게 되나벼. 평생 이 병은 못 고칠 것 같재? 허허허."

수집에만 일가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에도 조예가 깊은 이 관장 . 현재 군산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산월리 고분'은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발견됐다고 한다. 또 자신이 사는 정수마을이 금강과 만경강물이 만나는 유일한 곳이라 하여 마을 초입, 정수비도 제작했다.

자신이 살아가는 곳을 아끼고, 우리 지역 선조들이 사용한 생활용구를 보존하여 박물관까지 조성한 이 관장. 그의 노력은 본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내가 사라질 때까지 배웅하는 관장님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관람문의 : 군산향토민속박물관 063-452-9696



태그:#이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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