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근태 전 의장
▲ 김근태 김근태 전 의장
ⓒ 한반도재단

관련사진보기

김근태 전 의장의 영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빈소에 가지 않았다.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지도 못했고, 그를 잘 알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리영희 선생님이나 문익환 목사님 부인 박용길 장로님이 소천하셨을 때는 빈소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고, 사람들과 슬픔과 애환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님을 보내드릴 때는 시간마다 함께 했고 만장도 들었다.

그런데 김근태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안타까웠지만, 이상하게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왠지 나같은 시민이 아닌, 정치인들과 김근태를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들이 그의 빈소를 찾아가 참회하는 심정으로 그가 남긴 유지 '2012년 점령하라!"의 의미를 새기며 결의를 다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용산 참사 3주기를 맞아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지를 찾았을 때 동그마니 흙으로 덮여있는 김근태의 묘지를 먼발치서 보았다. 가볼까 말까 먼발치서 망설였다. 정동영, 양홍관 등 2012년을 점령하러 나선 용사들이 발길을 했을 때에야 따라가서 가만히 말했다. "사람들이 2012년 잘 점령해서 야만의 시대를 끝내야 편히 쉬시겠죠. 2012년 잘 점령할게요"라고.

김근태 전 의장을 공적자리서 만난 것은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일 당시 <오마이뉴스>가 마련한 '독자와의 대화'에서 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손석희의 100분 토론> 출연을 시작으로 총리나 장관들이 독자들과 토론하고 질문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MBC 특별 생방송으로 마련된 '참여정부 100일, 대통령과의 만남'은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인 100일 만의 일이었다.  국민과 직접 대면해 대화도 하고 질문도 받는 자리라고 해서 갔는데, 당시 노무현 내통령은 너무나 자신감에 넘쳐 있었고 100일 간의 변화와 치적을 이해시키기에 여념이 없어 차분하게 국민의 질문이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두 번째로 <오마이뉴스>에서 자리를 마련해 만났던 김진표는 학생들이나 학부모의 날카로운 질문을 그저 얼버무리거나 아래 사람을 시켜  변명으로 일관하기에 바빴다. 한영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닌다던 여학생의 논리적이고 당찬 공격에 답변조차 제대로 못하고, 변명만 하던 교육부 장관이 얼마나 무능해 보였던가.

세 번째 만남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만남이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이나 교육부 장관이면서 부총리였던 김진표와의 만남에서 하도 실망을 많이 했던 터라 '또 실망 하겠지'라며 별 기대 없이, 아니 사실은 국민연금이라는 것에 대해 좀 따져보겠다는 마음으로 갔던 자리다.

<오마이뉴스>가 마련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독자와의 만남이 끝난 뒤 사진을 찍었다.
▲ 김근태 전 의장과 <오마이뉴스>가 마련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독자와의 만남이 끝난 뒤 사진을 찍었다.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일단 김근태 장관은 이전의 두 사람과는 만남의 자세부터 달랐다. 몇 명의 패널을 주축으로 준비해온 자기 이야기만 하는 일방통행 방식이 아닌, 참석한 시민과의 쌍방 소통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최대한 듣겠다는 자세로 경청하고 성의 있게 대답했다. 따져 물으려고 단단히 작심하고 갔던 자리에서 오히려 설득을 당하고 돌아오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은 이유를 당시는 잘 몰랐다. 그가 정말 소통하려는 자세로 독자들과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후 공적인 자리에서 살짝 스치긴 했지만 어느덧 일반 시민인 나는 김근태라는 이름을 잊고 살았다. 그가 위태롭다는 소식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잊으려했던 갚지 못한 빚을 떠올려야 했다. 그가 마지막 길을 가면서 빚을 돌려받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우린 산자인 그에게 진 빚을 망자인 그에게 되갚아야 하는 채무를 우리 모두 지게 된 것이다.

4마석 모란공원 김근태 전 의장 9제 추모제에서 인재근 여사
▲ 인재근 여사 4마석 모란공원 김근태 전 의장 9제 추모제에서 인재근 여사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2012년 점령하라!" 그가 우리 모두에게 갚으라고 명령하고 간 채무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그 시대를 살아온, 아니 한반도에서 삶을 이어온 우리 모두는 그에게 빚을 진 사람들이다. 야만과 독재의 시대를 침묵하며 살아 온 죄. 누군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하며 죽어가거나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갔을 때 아무것도 모른 채 먹고 마시며 잠을 잔 죄. 그렇다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 모두가 고문을 받았어야 한다거나 감옥에 갔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걸어 온 그 참혹하고 야만스러운 시대를 우리가 청산해야 한다는 의미다.

얼마 전 <뉴스타파>에서 김근태의 부인이며 동지인 인재근이 인터뷰한 것을 보았다.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바위덩어리에 눌림을 당한 기분이었다.

고문이 남긴 트라우마가 김근태 몸의 곳곳과 마음의 곳곳에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돼 있었다. 치과에 가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의자가 전기고문 의자를 연상시켜 평생 치과 치료를 거부했다던 김근태. 코에 호스를 주입해야만 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손사래를 치며 거부해 힘이 들었다던 말을 들으며 김근태는 평생 상처의 감옥에서 살다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만과 독재의 시대에 침묵하지 않은 죄로 그는 평생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2월 16일, 김근태의 49제 탈상 자리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은 <뉴스타파>를 보고 나서다. 야권연대를 바라는 마음에서인지 오색의 테이프를 준비해 바라는 것을 글로 쓰라고 했다. 참석한 많은 이들이 2012년 점령의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후배들이 인재근 여사의 출정을 격려하는 합창을 하고 있다.
▲ 민청년 후베들 후배들이 인재근 여사의 출정을 격려하는 합창을 하고 있다.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도봉 갑에서 민주통합당 전략 공천 1호로 고 김근태의 아내며 동지인 인재근을 세웠다고 한다. 환영한다. 우리는 곳곳에서 이기심을 버리고 연대해  2012년을 점령해 정치적 사회적 야만의 시대를 끝내야만 한다.

한미FTA와 함께 국민을 노예로 팔아먹는 야만의 시대, 생명의 젖줄 4대강 곳곳을 파헤쳐 한반도를 피멍들고 죽어가게 만든 야만을 1%의 부른 배를 더 채우기 위해 1500일이 넘도록 한데 잠을 자게 만든 재능투쟁장 해고 노동자 등 이땅의 노동자들이 겪는 야만의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만 한다.

2012 점령하라!
▲ 김근태 49추모제 2012 점령하라!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그렇다. 우리는 끝내야 한다. 26년 해고노동자로 산 김진숙을 35미터 고공 크레인에 309일이나 머물게 한 야만을. 21명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2632명을 길거리로 내몰고도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하는 쌍용자동차와 이 사회의 야만을, 여든 노옹 백기완 선생을 영하 10도의 날씨에 길거리에 앉게 하고 경찰의 저지로 오줌을 싸게 만드는 야만 중의 야만을. 일꾼으로 대신 뽑아놓으면 국민 위에 군림해 거짓과 변명을 일삼으며 싸움이나 해대는 국회의 뿌리 깊은 야만을 우리는 극복하고 점령해야만 한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며
▲ 송경동. 김진숙 지도위원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며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시민들은 2012년을 점령하기 위해 시대의 어둠을 밝힐 촛불을 들 것이다. 권력과 자본을 등에 업고 비리. 거짓, 야합과 술수에 능한  정치꾼들을 이제는 철저히 가려내고 새로운 정치 판도를 만들어 내야 것이다. 촛불을 밝혀 든 이들은 외친다

1. FTA 범국본이 선정한 7인의 낙선 대상자를 공천에서 반드시 배제하라.

2. 한미FTA에 대한 입장을 후보자 정체성 판단의 주요요소로 반영하여 재벌개혁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이루려는 당의 입장을 분명히 하라.

3. 촛불정신 계승의 강령에 따라 의정활동이 탁월하고 촛불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민주개혁 후보들을 파벌과 관계없이 공천에서 반영하라.

야권연대만이  2012년 정권교체 촛불승리를 이뤄내 또 다른 6.10의 기쁨을 보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연대는 권력을 거머쥐기 위한 야합이나 타협이어선 안 된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돌아봄이 먼저다.  용서와 화해는 그저 상대의  잘못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철저히 그 길에서 돌아서게 만드는 것이다.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진정으로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지금 나는..... 

- 김근태 의장이 이근안을 만나고 돌아와 썼던 글 중

덧붙이는 글 | 서울의 소리에도 보냈습니다. 맨 아래 김근태 의장 글은 독일에서 만드는 <풍경>이라는 신문에 실린 기고글 '김근태와 밀양' 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태그:#김근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