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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양대 선거를 앞두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보편 복지가 기본적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부자 증세도 상당히 큰 공감대를 얻고 있다. 2011년에 경제위기가 재발하고 1%의 탐욕에 저항하는 월가 시위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변화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비록 강도와 초점은 다르지만 보수적인 새누리당조차 경제민주화를 정강의 맨 앞자리에 놓는 등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보수와 진보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보수와 진보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복지와 경제민주화

이뿐인가?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노동계가 실로 눈물겹게 반복하며 주장했던 '비정규직 차별 철폐'나 '노동시간 단축', '해고요건 강화'를 포함해 심지어는 노동조합 조직률을 올려주기 위한 노동법 개정까지 정치권에서 터놓고 주장하는 분위기가 됐다. 이제 진보의제는 보편복지 논쟁을 종결시키고, 경제민주화로 진입했으며, 2012년 그 다음단계인 노동민주화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

진보의제는 보편복지에서 경제 민주화로 진입했으며, 그 다음단계인 노동 민주화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
▲ [그림1] 2012년 선거를 앞둔 의제 변화구도 진보의제는 보편복지에서 경제 민주화로 진입했으며, 그 다음단계인 노동 민주화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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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정치권의 '급격한 좌클릭'이라 표현한다. <조선일보>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과거 민주노동당 공약을 베끼고 있다고 통탄하고 있다. 그런데 한 발만 떨어져서 문제를 보면 지금 상황이 '너무 빠른 좌클릭'을 운운할 정도인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너무 많다.

경제민주화라고 하지만 주장하는 내용들은 고작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이나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화를 요구하는 수준이다. 이는 대체 언제 때 경제민주화란 말인가? 이 제도들은 대표적인 독재정권인 전두환 정부가 만든 것이다. 전례가 없던 획기적인 개혁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정리해고 요건 강화나 비정규직 임금격차 완화 등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전에 노동운동이 대체로 주장하던 것들이다.

갑작스런 '좌클릭' 아닌 오랜 '우클릭'의 결과

이런 현실은 1997년 환란이후 우리나라 경제민주화나 노동민주화가 심각한 후퇴를 거듭했다는 것을 방증해 준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 사회의 진보가 그동안 혁신성과 자신감을 상실하고 매우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근 진보 담론의 확산을 보고 '좌클릭'이라며 깜짝 놀라서 당황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진보가 혁신 구상을 갈고닦지 못한 것이 아닐까? 오히려 보수가 이끌어온 담론 구조에 거의 비슷하게 맞춰 버린 것은 아닐까? 사실 지금은 보수의 '갑작스런 좌클릭'에 놀랄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진보가 '오랫동안 우클릭' 해온 것에 놀라야 한다.

민주정부 10년, 그리고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우리 사회를 잠식했던 신자유주의와 그 필연적 산물인 양극화로 인한 국민의 누적된 고통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누적된 고통은 그 동안의 반동의 역사를 바꿀 잠재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더욱이 2008년 시작돼 잠깐의 회복을 제외하고는 점점 더 장기적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와 현재 경제 모델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 결과 민심의 아래에서부터 진보를 향한 기대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고, 그 초기적 형태는 복지 담론의 빠른 확산이었다. 그러나 복지담론 확산은 시작일 뿐 점점 더 경제민주화, 노동민주화, 자본 통제로까지 진보에 근거해 사회운영과 사회모델을 다시 찾아보려는 열망이 확산되고 있다. 다만 진보운동과 진보정책들이 여기에 준비돼 있지 못할 뿐이다. 지금의 좌클릭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까지의 우클릭을 반성하면서 문제를 짚어보자.

돈이 일하기 좋은 환경은 사람이 일하기 나쁜 환경

지난 16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뒤로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새 로고가 걸렸다.
 지난 16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뒤로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새 로고가 걸렸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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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금융규제 완화 → 경제의 금융화 → 금융의 세계화'로 표현된다. 이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돈이 돈을 버는 모든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따르는 반대급부의 대가가 있었다. '사람이 노동하는 환경을 사상 최악으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구가했던 자본주의 황금기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당연히 1970년대까지 기능했던 노동을 보호하는 사회적 협약, 즉 계급적 타협구조를 붕괴시켰다. 기존의 사회적 타협은 '노동을 관리하고 분배할 권한을 자본가들에게' 넘기는 대신 '자본가들은 시장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규제를 받아들여야 하고, 경제 성장의 중요한 부분이 포괄적인 사회복지 계획으로 돌려지는 것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과 자본사이의 사회적 협약의 결과,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조합운동의 단체 협약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의 보호와 유급 휴가, 고용규제에 관한 법들이 강화되고 종업원들의 보호와 안전이 보장됐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확대되고 사회적 안전은 강화됐다. 또한 임금과 소득은 체계적으로 상승하고 격차는 줄어들었다. 자본주의 황금기는 이런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노동자의 안정적 구매력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규제 완화와 개방화, 자유화라는 이름 아래 국가와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과 함께 특히 노동시장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을 하고 노동법과 단체협약을 무력화시켜 나갔다. 그것이 우리에게 질리도록 익숙한 노동 유연화, 또는 유럽에서의 유연 안정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는 노동시장에서의 잔혹한 독재

노동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이른바 '신자유주의 노동 환경'은 빠르게 변하는 첨단기술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다. IT 업종이면 몰라도 청소용역이나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가 첨단기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또한 '신자유주의 노동 환경'이 만들어 낸 유연화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안전성을 담보한다고 해서 쉽게 해소될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결국 노동 유연화의 진실은 노동의 잔혹화였고 노동의 야만화였다는 것이 아스비에른 발(노르웨이의 노동운동가)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노동시장은 근로자들의 경험과 자격과 지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으며, 외부 컨설턴트들에 의한 구조조정에 점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아웃소싱과 역외 아웃소싱, 다운사이징, 유연성 강화가 작업장에서 개별 직원과 노동조합의 권력을 동시에 약화시켰다.

(노동 시장에서의 규제 철폐는)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작업 조건과 노동시장이 더욱 거칠고 잔혹해졌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과 구조조정, 노동 강도, 노동시장의 유연성, 그리고 불안정성이 지금 일의 잔혹화와 노동의 배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근대 복지국가의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노동법과 단체 협약이 일상의 작업장에서 종종 훼손되고 무시되며, 작업장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심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있는 근로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본문 중에서)

그 결과, 지금 우리의 노동시장은 매우 분명하게 양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주변으로 밀려난 집단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됐고, 그것이 현재 한국과 자본주의 국가 노동시장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다.

비정규직, 저임금, 아르바이트야말로 주류 노동자

청년유니온이 최근까지 다뤄온 청년 노동실태들, 죽음을 무릅쓴 30분 피자배달 아르바이트생들, 주휴수당도 못 받는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최근에 조사한 평균 월수입 69만 원으로 살아가는 청년 뮤지션들은 사실상 아무런 노동권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무법화된 현재 노동시장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절대 극히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현재 노동시장의 2400만 취업자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바람직한 노동 환경이라고 생각하는 공기업과 대기업 일자리 약 200만 개가 오히려 특수한 예외 사례일 가능성이 높다. 200만개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2200만 개의 일자리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제대로 된 노동환경과 노동권,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 민영화 된 공기업인 KT는 2000년대 이후 2003년 5000명, 2009년 6000명에 이르는 인원을 긴급한 사유 없이 구조 조정했다. 일상화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서 예외지대는 없다. 현재 300인 이상 대기업의 비정규직도 44.6%에 이른다. 공공부문의 아웃소싱과 외주화는 민간보다 심하다.

▲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정규직이라도 중소기업 정규직은 훨씬 더 열악한 노동 조건에 있다. 여기에서 다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을 비교하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0% 미만으로 줄었다([그림2] 참조).

이명박 정부 들어서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0% 미만으로 줄었다
▲ [그림2]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비교 이명박 정부 들어서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0% 미만으로 줄었다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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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의 경우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을 직장에서 제공 받는 비율은 대체로 30%대에 머물고 있다. 3분의 2가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소득도 낮고 사회 안전망도 없이 살아가는 워킹 푸어(Working Poor)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는데, 2010년 1분기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체 가구의 7.7%가 여기에 해당한다. 최저임금 기준이 평균임금의 32%로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미달자가 200만 명을 넘는다.

▲ 은수미 박사의 면접 조사에 의하면 모텔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공식적으로는 '무직'에 해당하는 방식의 현금 급여로 생활하고 있고, 입점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학원 강사, 보험 판매사원,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가사 간병인들 모두가 '노동자'라는 대접도 받지 못하고 원하지도 않는 '자영업자'로 불리고 있는 실정이다.  

규제 완화가 기초적인 노동권 무너뜨려

이처럼 셀 수 없을 정도의 비정상적인 노동행태들이 난무한 결과, 공기업과 대기업의 정규직 형태의 일자리가 예외가 됐으며, 나머지 주변부적 일자리들이 우리 사회 노동시장의 사실상 표준이 됐다. 1990년대 말에 이미 GM, AT&T, IBM이 미국에서 직원을 가장 많이 고용한 기업이 아니었다. 대신에 직업 소개 회사인 맨파워가 가장 많은 종업원을 거느린 회사가 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이것이 노동 유연화라는 그윽한 이름아래 만들어졌던 '신자유주의 노동환경'의 진정한 실체다. 신자유주의의 전형적인 규제 완화는 금융시장이나 기업 활동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가장 파괴적으로 관철됐다. 해고 규제 완화, 노동시간 규제 완화, 노동보호법의 규제 완화, 직업 알선 소개와 파견에 대한 규제 완화에 이르기까지 기초적인 노동권을 무너뜨리는 온갖 규제 완화로 인해 중심이 주변이 되고 주변이 중심이 됐다. 한국 노동시장의 행태를 더 이상 그윽한 '노동 유연화'라고 부르지 말자.

소득 불평등 해결 없는 경제회복은 없다

회복될 것 같았던 세계경제 위기가 다시 장기화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다. 유럽 위기 전개양상에 따라서는 또 한 번의 극심한 혼란을 수반할 수도 있다. 이처럼 세계경제 위기가 장기화하고 좀처럼 회복 동력을 찾지 못하자 단순한 금융규제를 넘어서 실업과 고용 소득문제를 천착해야 하고, 기간 누적된 소득 불평등 문제에서 뿌리를 찾아 이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정적 경제회복은 없다는 강력한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씨티그룹이나 AIG같이 파산지경에 이르렀던 은행들의 부실이 일정하게 청산됐고, GM을 비롯한 제조업의 수익률이 상당히 회복됐음에도 왜 높은 실업상태와 낮은 소득상태는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소득 불평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것은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노동시장의 심각한 파괴와 황폐화의 결과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신자유주의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부의 재분배를 낳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공에서 민간으로, 노동에서 자본으로, 빈자에서 부자로 재분배가 이뤄졌다. 사회 엘리트들에게로 부가 집중되면서 민간의 빈곤뿐만 아니라 공공의 빈곤도 크게 악화됐다. 달리 표현하면 복지국가의 발전을 상징했던 부의 재분배가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본문 중에서)

이것이 바로 1%의 탐욕에 저항하는 99%의 저항운동인 월가 점령운동이 전 세계의 호응을 얻게 됐던 배경이면서 동시에 세계경제 위기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노동권과 노동안정을 지켜주던 각종 규제와 질서들이 파괴되고 그 결과 각종 형태의 저임금이 지속되면서 소득 불평등은 점차 심각해졌다. 반대로 사회의 1%로 부가 집중된 것이다. 99%에서 1%로 부의 역 재분배를 심화시킨 구조는 바로 '신자유주의 노동 환경'이었다.

자본주의 위기의 활로는 노동시장에 달려 있어

지난 15년 동안 한국사회에서도 자본 측에는 소득과 저축이 쌓여 갔지만, 노동 측에는 소득도 저축도 쌓이지 않았다. 대신에 착실히 쌓여간 것은 부채였다. 부채로 소비하는 동안에는 낮은 소득도 감출 수 있었다. 부채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잔혹한 노동시장의 실체' 역시 사회의 중심 문제로 등장하지 못했다. 노동시장이 착실히 피폐해지는 반대편에서 자본시장은 착실히 살찌우고 있었음에도 부채는 이 모든 것을 감춰 줬다. 마침내 부채가 임계점에서 폭발하고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업, 국가와 기업, 국가와 국가의 모든 관계에서 채무자와 채권자의 성격이 전면에 부상하면서 감춰졌던 실체가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결국은 자본주의를 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수준의 소득불평등 개혁 없이, 그리고 소득불평등의 근원인 노동시장의 개혁 없이 자본주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는다. 특히 이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1990년대 미국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다.

라이시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상위 1%로 소득이 집중됐을 때 발생했으며, 반대로 자본주의의 안정적 발전과 성장은 소득 격차가 낮아졌을 때 실현됐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총 소득 중 상위 1%에게 돌아간 몫이 1928년과 2007년의 경우 23%를 넘으면서 최고치에 달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필연적이었다([그림3] 참조).

라이시는 상위 1%로 소득이 집중되었을 때 자본주의에 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 [그림3] 미국 상위 1%의 비중의 역사적 변화 추이 라이시는 상위 1%로 소득이 집중되었을 때 자본주의에 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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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행하게도 1929년 대공황의 경험을 절반 정도 밖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십중팔구 제2의 대공황이 될 뻔한 상황이었지만, 대공황의 경험을 토대로 신속하게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하고 엄청난 구제 금융과 경기부양책을 쏟아 부어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라이시는 "(구제 금융과 경기 부양책으로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방지했기 때문에, 더 큰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시급성이 약화되고 말았다"고 개탄한다. 절박한 더 큰 난제는 바로 '불평등의 심화'였다는 것이다. 난제의 해결을 미룬 대가는 잠깐의 경제 회복 뒤에 다시 찾아온 위기였고 그 위기는 지금 장기화 추세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신자유주의가 노동시장에 가한 충격은 단지 몇 가지 정책 변화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가 파괴한 것은 민주주의였다. 신자유주의는 민영화라는 이름아래 공공부문을 사적인 시장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아래 노동과 자본사이의 사회적 협약과 규율을 노동시장 자유화로 바꿨다. 그때 민주주의는 차례로 시장으로 대체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시장으로 대체하는 것

민주주의적 통제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공공 부문의 많은 공익적 서비스가 사적 자본의 이윤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시장으로 들어왔다. 노사간 오랜 협의와 민주적 절차를 밟아야 할 노동 규칙들이 규제 없는 노동시장에 맡겨졌다. 시장에는 어떤 정치적 책임도 없으며 어떤 선거의 영향을 받는 주체나 행위자도 없다. 이제 국민들에게 중요한 사안들이 국민들에게 선거로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주가로 평가 받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결정권이 점점 시장의 행위자들에게로, 재정적으로 막강한 개인들과 조직들과 관료들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로 옮겨가고 있다."(<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본문 중에서)

결국 신자유주의가 규제완화와 민영화라는 이름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정치적 통제,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시장에 대해) 규제를 한다는 것은 곧 자본과 시장의 힘들의 영향력에 제한을 둠과 동시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주체와 근로자들과 그 조직에 권력을 부여할 법률과 규율을 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반대는 무엇인가? "민주적 영향력과 사회적 안전, 노동조합의 권리를 행사할 도구를 폐지하게 되는 것이다. 결정권이 정치체제로부터 시장으로 이관되는 것이다."(<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본문 중에서)

노동개혁은 민주주의의 확립

요약하면 무엇인가? 노동개혁은 단순한 '일자리 창출' 문제나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확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돈이 돈을 버는 환경을 엄격히 규제'하고 대신에 '사람이 노동하는 환경을 최적으로 만들기 위해' 제도와 규율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뜻에서 지금 시대의 개혁은 자본시장을 엄격히 다운사이징(down-sizing·소규모화) 하고 노동시장을 업사이징(up- sizing·확대)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이어 노동개혁 방안들이 막 쏟아지기 시작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조금씩 노동개혁안을 내놓기 시작했고 통합진보당은 2월 12일 '5대 노동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노동사회연구소에서도 '9대 노동공약'안을 제시했다. 속속 추가적인 노동개혁 대책이 줄을 이을 것이다. 이 모든 개혁안은 단순한 노동시장 정책 수단을 넘어서 민주주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노동민주화의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경제민주화란 '민주주의가 시장에 우선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시장질서가 중심이고 경제 민주주의가 보조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렇다면 노동민주화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적 자본의 재산권과 이윤 추구의 자유를 인정하되, 자본의 이윤추구 권리보다 국민이 일을 할 권리가 우선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최종적으로는 기업이 의거할 곳은 주식시장의 주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와 선거여야 한다.

이제 노동민주화를 주장할 때

그런 점에서 볼 때, 특히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협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정치적 여건을 확보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1930년대 뉴딜 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도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여준 것이었고, 자본주의 황금기 시기가 작동했던 것도 노동자의 협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에서 "노동조합 가입 및 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조항을 없애거나 보완해서 실업자 및 다양한 형태의 근로자와 관련 단체에게 단결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이나, 통합진보당의 "2017년까지 노동조합 조직률 20%, 단체협상 적용률 50%로 확대 하겠다"는 주장은 의미가 있다. 또한 노동사회연구소에서도 "중앙-산업 및 지역-기업차원에서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중층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 개선을 하자"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이미 논의가 붙은 경제민주화를 더 확장하여 노동민주화로, 그리고 더 나아가 노동자 경영 참여까지 갈 수 있는 전진적인 사회개혁 틀을 짜보자. 지금은 그런 시기다. 정치권이 의외로 '좌클릭'하고 있다고 대견해 할 시기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태그:#노동 민주화, #진보의제, #신자유주의, #노동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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