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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을 지나는
너는 한낱 이방인
부질 없는 정경에 감상치 말라
(중략)
이곳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말라

영원한 무연의 이방인


유정-시, <이방인>중


상해가
 상해가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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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4일)이 입춘인데 냉기가 살갗을 바늘처럼 찌른다. 그러나 이 혹독한 겨울 끝, 귀를 쫑긋 세우면, 앙상한 가로수에서 새순 움트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계절은 약속을 어기지 않고, 2월의 새파랗게 볼이 얼어붙는 꽃샘추위 속에 햇살의 빛깔이 한 겨울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날씨가 이렇게 못견디게 추우면 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음식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날뿐이다. 문득 어느 시인의 시구가 생각난다. '첫눈이 오면 만두가 먹고 싶다/ 만두 같은 눈을 퍽퍽 맞으며 돌아가는 골목길에…/만두 같은 눈을 퍽퍽 맞고 싶다'는 시구. 정말 하얀 만두 같은 따뜻한 눈이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상해거리
 상해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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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을 열 때 모락모락 나는 김과 괜히 기분을 들뜨게 하는 홍등의 네온 간판이 즐비한 부산의 차이나타운(Chinatown)은 서울의 이태원 거리만큼 이국 냄새가 물씬한 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진짜 중국 같은 거리다. 경부선 열차의 종점, 부산역 맞은편에 존재하고 있어서 외지의 여행객들이 찾기도 쉽다.

이곳은 먹거리 뿐만 아니라 치수가 큰 옷 파는 가게 등 다양한 외국인 상가들이 줄지어 있다. 특히 옛날 추억의 중국집 음식 자장면과 만두, 공갈빵, 짬봉 등 입맛 대로 파는 중국 음식점이 많다. 그런데 간판이 모두 외국어 일색이다.

이는 부산시에서 상해거리를 미국의 차이나 타운과 같은 관광명소로 가꾸기 위해 광고물관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역특성에 맞는 광고물 설치가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대폭 완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글 간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중국인의 거리에서
 중국인의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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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차이나 타운은, 1998년 안상영 시장 시절 상하이(上海)와 자매결연을 맺은 후 상해가(上海街, 혹은 상해 거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상해거리는 '청관거리'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청나라의 대사관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거리는 중국인들이 형성한 음식문화거리이기도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민족의 아픔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에 이곳은 해안가(부산포)였다. 청국상인들이 본국에서 가져온 각종 생필품을 팔았다. 그러나 당시 약소국가였던 조선 백성들은 이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수난과 설움을 당했다.

그후 청일 전쟁의 패배로 일본인에게 상권을 반납하기도 했다. 그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이 진주하던 중앙동에 있었던 택사스촌이, 1953년 11월 옛 부산역 앞의 대화재로 소실되자, 미군 중심의 유흥가가 이곳의 청관거리 일부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의 손꼽히는 관광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붉은 빛이 흐르는 거리
 붉은 빛이 흐르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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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市)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도는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는 자칫 바다에 빠뜨릴 듯한 머리를 위태롭게 사리며 깜작 놀라 멎고 그 서슬에 밑구멍으로 주르르 석탄 가루를 흘려 보냈다.

집에 가봐야 노루꼬리만큼 짧다는 겨울해에 점심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들은 학교가 파하는 대로 책가방만 던져둔 채 떼를 지어 선창을 지나 항만의 북쪽 끝에 있는 제분 공장에 갔다. -오정희의 소설<중국인의 거리>에서

삼국지 거리
 삼국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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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와 중국 상해시(上海市)의 자매결연을 계기로 한·중 교류 및 우호 증진과 상해관광객 방문에 대비하고자 옛 청관거리를 '상해거리'로 새롭게 단장한, 청관거리 서편에는 충요촌이 있다.

이곳은 중국 산동성 화교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6·25전쟁이 발발한 후 인천과 서울에 살던 화교들이 이곳으로 피난 와서 형성된 마을이다. 충효촌이란 이름은 화교들의 자녀들이 외지에서 어렵게 살다가 다시 부모들을 찾아 돌아온다고해서 '충효촌'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큰 옷이 필요하세요 ?
 큰 옷이 필요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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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개 신발 주머니에, 보다 크고 몸놀림이 쨉싼 아이들은 시멘트 부대에 가득 석탄을 팔에 안고 낮은 철조망을 깨금발로 뛰어넘었다. 선창의 간이 음식점 문을 밀고 들어가 구석 자리의 테이블을 와글와글 점거하고 앉으면 그날의 노획량에 따라 가락국수, 만두, 찐빵 등이 날라져 왔다.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에서

상해거리와 화교
 상해거리와 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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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이곳에서 차이나 타운 축제가 열리고 있다. 특히 매년 10월이면 상해거리와 부산역 일대에서는 차이나타운 축제가 열린다. 사흘간 열리는 이 축제에는 중국전통 용춤, 사자춤 공연을 비롯해, 중국 궁중의상 패션쇼, 소망기원 풍등(風燈) 날리기, 중국 전통악기 고쟁 연주, 불꽃놀이, 수타면 시범, 중국무예 시연 등 다양한 볼 거리가 제공되어 중국의 풍물을 엿볼 수 있다.

상해거리가 관광특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여,'삼국지 거리', '패왕별희 거리' 등 테마 풍물거리가 볼만하다. 중국인들이 12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의 문화를 뿌리 깊이 내려온 상해거리. 이곳에 오면 중국 음식문화와 그들의 삶의 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는 이벤트가 준비된 거리라 하겠다.

상서로운 그곳, 중국인의 거리
 상서로운 그곳, 중국인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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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타운 입구에는 붉은 아치형의 '상해의 문'이 설치 되어 있다. '상해의 문' 외 동화문, 남해문, 북해문이 있다. 거리를 걷다보니 이곳에서는 한국인인 내가 이방인이 된 것 같다. 

온통 붉은 기운이 감도는 중국인의 거리. 그러고 보면 중국 사람만큼 붉은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 같다. 중국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생명의 색깔로 여겼다고 한다. 또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삼국지. 그 삼국지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벽화로 그려진 '삼국지 거리'와 <패왕별희 거리>도 있다.

불빛이 휘황한 어둠의 저편 골목길에서는, <중국인 거리>에 나오는 '치옥'이가 나타날 듯도 하였다. 오정희 소설<중국인 거리>는 인천의 '차이나 타운'이 무대이다. 이 소설은 소녀의 눈을 통하여, 6·25 전쟁 이후 한국 사회의 역경을 그린 작품이다.

중국인 거리, 화교
 중국인 거리, 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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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는 '초량돼지갈비골목'도 있다. 돼지갈비만을 전문으로 취급해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갈비집들이 약 50여 개가 들어서 있다. 밤이 깊어가니 야단스러웠던 불빛들도 하나 둘 작아져 갔다.

그나저나 산책을 마치고 단골 만두집 찾아가니 오늘은 일찍 만두가 다 팔렸다고 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좋아하는 만두는 못 먹고, 자장면으로 대신했다. 이런 아쉬움을 아는 듯 네온 불빛들은 나를 위로하는 듯 따뜻했다.

중국인의 거리
 중국인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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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1월 25일 다녀왔습니다.



태그:#상해거리, #부산역, #화교, #러시아, #차이나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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