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9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국민의례하고 있다.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9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국민의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난주에 나는 꽤 많은 정치인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논문 들여다보며 연구하는 게 일인 사람에겐 흔치 않은 일인데, 바로 한중FTA 때문이었다.

한미FTA는 서비스·지적재산권·투자 분야를 노린 것

기본적으로 양자간 협정을 뜻하는 FTA는 말 그대로 아주 다양하다. 참여정부 이래 우리가 취한 전략은 "거대선진경제권과의 동시다발적 FTA"이다. 고강도의 충격을 이리저리 줘서 가장 경쟁력 강한 산업의 이익은 극대화하고, 경쟁력 약한 산업도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며 혹 죽어버려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미FTA와 한-EU FTA는 기실 농업과 중소 제조업을 버리고, 수출대기업과 서비스 산업으로 경제를 꾸리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삼성을 대표로 한 재벌, 그리고 기획재정부는 한 마음으로 네트워크 서비스산업, 의료와 같은 공공서비스 산업을 노리고 있다. 이게 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를 개방하고 민영화하겠다는 미국의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중FTA, 공공서비스 개방과 민영화 문제는 없을 것

그런데 한중FTA는 사뭇 다르다. 중국은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와 같이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통상 이슈에서의 협상을 기피할 것이 확실하다. 최근 이루어진 중국-뉴질랜드 FTA 중에는 이런 최신 통상 이슈를 포함한 것들이 있지만, 한국에 이들 분야를 강하게 요구해서 자국 제조업의 개방 수준을 높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중FTA에서는 한미FTA의 가장 큰 문제인 공공서비스 개방과 민영화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상품무역 분야에서의 이익도 미국과 EU에 비해서 훨씬 클 것이다. 2010년 대중국 수출은 1168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4분의 1에 달했으며, 흑자는 452억 달러로 전체 흑자의 80%에 달했다([그림1][그림2] 참조).

중국의 단순 평균 관세율은 9.7%이지만 관세환급을 고려하면(한국이 중국에 부품을 수출하고 그 부품을 사용한 상품이 다른 나라로 수출되면 관세를 환급해준다) 약 2.7%에 해당한다. 따라서 관세를 0%로 낮추기만 해도 당장 약 55억 달러(약 1168억 달러×0.027)정도의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기준, 단위 : 백만 달러, %, 자료 : 무역협회
▲ [그림1] 지역별 수출 금액과 비중 2010년 기준, 단위 : 백만 달러, %, 자료 : 무역협회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단위 : 억 달러, 자료 : 지식경제부
▲ [그림2] 주요 국가별 무역수지 변화 추이 단위 : 억 달러, 자료 : 지식경제부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농업과 중소기업은 이번에도 피해자

문제는 농업과 중소기업이다. 한중FTA는 한미FTA와 한-EU FTA 이후 농업 부문에서 유일하게 남은 신선채소나 과일을 궤멸시킬 것이다. 또한 한국과 중국은 아주 밀접한 분업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산업 내 무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전기나 비철금속, 정밀화학, 건설기계산업의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표1] 참조).

자료 : 2010년 4월 한중 FTA 정부 간담회 의견 중 일부 수정 사용
▲ [표1] 한중 FTA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자료 : 2010년 4월 한중 FTA 정부 간담회 의견 중 일부 수정 사용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다행히 중국은 자국 기업 하나하나의 이익을 위해 집요하게 개방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정치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미국은 주별로 특정 산업이 있어서, 각 주의 의원이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지역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지만, 강력한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통상협상은 전체 이익을 목표로 한다.

또한 자국의 완성차나 전자산업 등 유치산업을 보호하고자 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도 무리하게 취약 산업 개방을 요구할 수 없다. 미국처럼 전 분야에서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들급 선수가 헤비급 세 명과 권투하는 것

하지만 한중FTA가 한미, 그리고 한-EU FTA에 이어서 발효된다고 생각해 보라. 이는 미들급 선수가 헤비급 선수 세 명과 동시에 권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세계금융위기는 기존의 무역투자협정 전체를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은 스티글리츠 보고서의 내용이다.

"이번 위기를 통해 얻은 교훈에 비춰보면, (한미FTA와 같이 - 인용자 주) 국가의 권한을 제한하는 협정들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줄임) 특히 WTO의 금융서비스협정 아래서 가능한 합의들이 강제된다면 각 국가들이 성장·공평성, 안정화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규제체계를 개선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줄임)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무역협정들을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는 국익 최대화를 내거는 제로섬 게임 방식의 FTA 전략 전체를 수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 방식으로 전개된 WTO 룰마저도 바뀌어야 하는데(예컨대 새로운 통상 이슈 분야와 농업분야는 모두 개정해야 한다) 구식 FTA를 중국처럼 거대한 나라와 또 맺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를 거스르는 행위이다.

이제 새로운 교류형식을 창안해야 하는데, 이는 차기 정부가 장기적인 세계경제 전망과 우리의 산업구조조정 계획, 복지사회 건설계획 등에 관한 큰 그림 속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경쟁 중심의 제로섬 게임 FTA는 구식 방법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영풍문고 앞에서 열린 '한미FTA 비준 무효 범국민 촛불문화제'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영풍문고 앞에서 열린 '한미FTA 비준 무효 범국민 촛불문화제'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을 고려할 때 한국과 중국 모두 외교안보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왕 그럴 거라면 장차 세계 속에서 동아시아가 어떤 정치, 경제적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역내 국가 간에 합의를 하고 그에 걸맞은 교류방식을 택해야 한다. 한마디로 기존 FTA와 같은 '경쟁해'가 아니라 '협동해'를 찾아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한국과 중국의 경우는 경쟁할 때보다 협동할 때의 상호이익이 크다. 따라서 함께 선택할 수 있는 사업은 얼마든지 있다. 양국 외환보유고 여유분의 북한과 중국 내륙 투자, 황사 방지를 위한 환경협력, 시베리아 가스관 사업, 중국 쪽 대륙간 철도연결, IT산업 표준 사업,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기술, 청소년 문화교류 등 무궁무진하다.

중국과의 국제협정은 FTA가 아니라 공동체적 협력을 목표로 한 새로운 유형의 세계 표준을 동아시아에서 만들 수 있는 기회이다. 중국이 홍콩과 맺은 '성과확대형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는 이런 구상의 맹아적 형태로 볼 수 있다.

한중FTA, 동아시아 협력, 복지국가 건설 위한 새 틀 되어야

더구나 유럽과 미국, 일본이 동시에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 확실한 지금,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즉 '수출입국'이라는 과거의 전략을 답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말이다. 수출대기업을 위한 환율정책, 저임금에 의한 경쟁력 확보와 같은 전략을 포기하고 내수를 늘리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동아시아 통화는 안정적 속도로, 적응 가능한 속도로 절상되어야 하며 임금은 인상되어야 한다.

이런 새로운 전략 속에서 역내 교류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즉 역내 경제정책의 조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표준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곧 세계의 표준이 되고 기존 FTA는 물론 WTO의 각종 규범도 그에 맞춰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런 장기 구상이 장사꾼 대통령의 정부에서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만일 구식 한중FTA의 조기 체결과 비준을 레임덕 시기에 거둘 유일한 성과로 여긴다면 한중FTA는 틀림없이 또 다른 치명적 독이 되고 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원장입니다.
* 이 기사는 새사연 누리집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한중 FTA , #한미 FTA , #한EU FTA , #동아시아 경제
댓글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